[홍양선의 두바퀴로 여는 세상 2] 서삼릉 왕릉 라이딩 그리고 초록길

홍양선 기자
  • 입력 2019.05.16 11:18
  • 수정 2020.03.2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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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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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도 짚은 초록이 우거진 야산과 들판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고양 덕양의 서삼릉이다. 서삼릉은 흔히 서오롱과 짝을 이룬 왕릉이다. 서쪽에 있는 3릉이라는 뜻이다. 오늘은 초록색으로 물들기 위해 서삼릉 왕릉 라이딩을 선택했다.

어김없이 주말 이른 아침에 애마(자전거)에 몸을 싣고 문 밖을 나섰다. 안양천 합수부를 지나 양화대교를 건너 행주산성 쪽으로 내달렸다. 그런데 성산대교 밑을 지나는데 뭔가 뒤쪽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어허 빵구네~” 자전거를 몇 년간 타면서 주행 중 바람이 완전 소진된 건 처음이다.

“정용아~ 내꺼 빵구 났네.” “어, 알았어. 천천히 가면서 기다려.” 성수에서 출발한 정용이가 마침 내 뒤에 있어서 곧장 만났다. 끌차(끌고 가는 자전거)로 간신히 가양대교 밑에 펑크 난 자전거를 세워놓았다. 그 바람에 모처럼 자가 정비 노하우를 얻게 됐다. 펑크 난 곳을 찾아 때우고 바람을 넣었는데 바람이 다시 빠진다. 주변을 살펴보니 나이 드신 아저씨가 여분의 튜브를 건넨다. “고맙습니다. 이거 받으시죠?” “아냐, 그냥 원가만 받아야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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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의 숙달된 기술로 자전거를 수리하고 다시 목적지로 향했다. 앞으로 예비 튜브는 필수품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코끝을 자극하는 봄바람에 몸 상태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역마살이 합쳐져 등비용곡선을 그리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창릉천을 따라 질주하다보니 어느새 서삼릉 표지판이 나온다. 좌회전하여 삼송 아파트 단지를 끼고 올라서니 초록이 무성한 야산이 나온다. 그곳을 넘으니 농협대학이 나오고 또 한 고개 넘으니 서삼릉 입구에 도착한다. 서울에서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나 싶을 정도로 자연미가 좋다. 개인적으로는 이곳에 대한 80년대의 기억이 또렷하다.

인근 부대에 근무하면서 고난의 100km 행군을 여러 차례 겪었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언덕을 넘어가는 양쪽길가에 쭉 뻗은 가로수는 30년 전 기억을 더듬어준다. ‘당시에는 주변에 아파트는 고사하고 전형적인 시골집도 드문드문 있었는데... 세월 많이 변했네!’라고 혼잣말로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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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릉 옆엔 원당종마목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 안으로 걸어가는 골목은 하나의 동화 속 오솔길이다. 언덕위로 올라서니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노랫말이 딱 어울리는 풍경이 펼쳐진다. 저 멀리 초원엔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거나 누워 있다. 경주마들도 오늘은 휴일이라 훈련 없이 쉬는 모양이다. 공원 안에는 경마 인력을 양성하는 아카데미도 있다. “명수야, 신체적으로 작은 사람만이 합격할 수 있단다” 이곳은 작은 거인이 우대받는 모양이다. 예전에 몽고 갔을 때 말을 타고 드넓은 초원을 한 바퀴 돌았던 기억이 난다. 그냥 말만 타고 걸었는데도 이튿날 다리에 알이 배길 정도였다. 순간 한 때 천하를 호령하던 기마민족의 기상이 저 멀리서 메아리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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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서삼릉 안으로 들어가 볼까? 말 그대로 3릉이다. 희릉(중종의 두 번째 왕비능) 효릉(인종의 왕비능) 예릉(철종능)이다. 또 소경원(인조의 맏아들) 의령원(사도세자의 맏아들) 효창원(정조의 맏아들)도 있다. 사도세자 정조 모두 맏아들을 3세와 5세에 잃었다. 희릉에는 중종이 함께 묻혀 있었는데 삼성동 선정릉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조선왕족의 무덤은 모두 120기에 달한다. 이중 42개는 능이고 14기는 원이고 64기는 묘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말하고,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무덤이다. 그 외 왕족의 무덤은 묘로 칭하고 있다.

역사에 밝은 명수가 옆에서 한마디 한다. “아마 광해군은 능이 없을 거야?” 그렇다. 여전히 조선왕조에서 君으로 불리면서 능으로 격상되지 못하고 있다. 광해군은 일명 폐모살제(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고,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죽인 것)를 이유로 인조반정으로 서인 세력에 의해 쫓겨나 제주도에 유배되어 생을 마감했다. 임진란 이후 중립외교를 펼쳤던 광해. 요즘 들어 광해의 통치철학이 새삼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요즘으로 보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등거리 외교와도 맞닿아 있다. 인조는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버리면서 청의 침략에 빌미를 제공, 병자호란을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삼전도 굴욕을 당했을 때 제주에 유배되어 먼발치에서 바라본 광해의 마음은 어땠을까?

잊을 수 없는 과거에 대한 복수의 마음일까? 인생무상일까?

“..............?”

Ⓒ홍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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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라이딩이 절묘하게 혼합되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장기가 맴돈다. 마침 나들이 나온 한 가족에게 물으니 서슴없이 “서삼릉보리밥집이요.”라고 알려준다. 라이더 3총사는 곧 언덕을 넘어 산모통이를 끼고 돌아 전형적인 시골풍인 서삼릉보리밥집에 다다랐다. 보리밥에 각종 나물 그리고 도토리묵에 상추와 풋고추를 더하니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보리비빔밥의 별미가 따로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최상급의 자전거를 만나니 업그레이드에 대한 욕심이 끊임없다. 앞으로 쭉 달려야 하니까 두 바퀴로 보는 세상도 업그레이드, 자전거도 업그레이드, 역사와 문화 체험도 업그레이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업그레이드 인생이 곧 인생 이모작 아닐까요?”

▲홍양선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졸업前 대우자동차 홍보실前 홍보대행사 KPR現 홍보대행사 프리스트커뮤니케이션즈 대표
▲홍양선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대우자동차 홍보실
前 홍보대행사 KPR
現 홍보대행사 프리스트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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