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2~3km 정도 떨어져 살았다. 여름만 되면 시골 바닷가 갯고랑에 가서 게와 망둥어 등을 잡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마음에 바닷물이 들어오는 줄 모르고 수영하다가 위험했던 순간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바둑판 모양의 염전을 지나다 보면 물을 끌어 올리는 풍차며, 사금파리로 된 염전 바닥에 새하얀 소금이 수북하게 쌓여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70년대 시골 초등학교에서는 깨어진 사금파리를 주어 오라는 과제도 있었다.
갯벌에서의 추억 속에 이번엔 서울 안양천 합수부에서 인천 소래포구까지 가기로 마음먹었다. 자전거로 찾아가는 소래포구는 어떠할 지 설렘이 앞선다. 안양천 자전거길을 질주하다가 안양 충현2교를 건너 시흥 물왕저수지까지 1차 목표로 내달렸다. 시흥과 인천 방향으로 한참을 가다 보니 물왕저수지 팻말이 보인다.
마침 자전거를 타고 있는 한 분한테 “왜 물왕저수지 인가요?”하고 물었다. “그거요? 물 반, 고기 반이라서 지어진 이름이죠.” 찾아보니 한자어로 ‘物旺(물왕)’이다. ‘만물이 왕성하다’는 뜻이다. 한 때는 흥부저수지(興富貯水池)로 불렸다. 시흥과 부천의 경계라서 따온 이름이었다.
예로부터 고기가 많아서 낚시터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쟁반처럼 둥그런 물왕저수지를 바라보니 시원함을 더해준다. 주변엔 어느새 아카시아꽃이 만발하여 특유의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싱그러운 향기에 가슴속이 확 트인다. 물가 주변엔 찔레꽃도 만발했다. 물가엔 물푸레나무도 빠지지 않고 바람결에 살랑거린다.
저수지를 지나 시흥 연꽃마을로 향했다. 주변의 논두렁엔 이앙기로 모내기가 한창이다. 어린 시절 모내기 하던 생각이 절로 난다. 70년대 후반 중학교 시절 아주 가물었던 어느 해에는 한 달 내내 공부 않고 모만 심으러 나갔던 기억도 난다.
소래포구에서 이어져 오는 수로엔 물이 가득하다. “여기요? 예전엔 수로를 타고 배도 드나들었지요.” 모내기하던 분이 정겹게 이야기해 준다. 모내기하는 시골 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아름다운 모습에 사진 몇 컷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연꽃 테마파크 또한 풍경이 아주 좋다. 서서히 소래포구에서 이어져 오는 개흙 냄새에 주변을 살펴보니 시골에서 접했던 예전의 갯고랑 모습 그대로다. 자전거 부대가 연달아 줄지어 내달리니 자연이 주는 혜택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소래포구를 중심으로 한쪽은 시흥 월곶이고 한쪽은 인천이다. 몇 번을 헤매다가 어렵사리 소래포구에 도착했다. 다리 밑에서 본 소래포구의 모습이 아주 분주하다. 곳곳에 파라솔이 펼쳐져 있고, 바닥은 흥건하게 젖어 있었지만 주말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거 얼마인가요?” “광어 2마리에 3만원에 가져가시죠.” 시장기에 다른 곳을 둘러보지도 않고 바로 선택했다. 횟감 따로 횟집 따로다. 주인을 따라 소로 길로 접어드니 자리가 준비돼 있다.
자전거를 타면서 맛집을 찾는 것이 즐거움이듯, 땀을 흠뻑 내고 굵게 썬 회 한 점을 입에 넣으니 그야말로 입 속에서 행복이 살살 녹는다.
소래포구는 일제강점기에는 수인선을 따라 소금과 어패류 착취기지였다. 1937년부터 1997년까지 수인선 협궤열차가 통과했던 곳이다. 해방 이후에는 고향에 갈 수 없는 황해도와 평안도 출신 실향민들을 중심으로 작은 규모로 어패류를 생산한 것이 소래항의 시초였다.
지난 2017년에는 큰 불로 인해 소래포구의 옛 명성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북적대면서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
도심을 지나 안양천, 물왕저수지, 논과 밭 그리고 연꽃마을과 소래포구 풍경을 감상하면서 40km를 내달린 오늘의 라이딩 또한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됐다.
“인생 이모작 스포츠 라이딩!”
그 안에 힘과 에너지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