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도 바꿨다. 분당 페달링 회수(rpm)를 알고 타기 위한 케이던스 속도계도 장만했다. 그런데 시범 라이딩 후 주말 라이딩을 못하고 있으니 온 몸이 근질근질하다. 그래서 지난해 친구들과 함께 했던 제주도 한 바퀴를 소개하면서 위안 삼을까 한다. 지난해 10월 7일부터 9일까지 2박3일간 일정으로 다녀온 ‘제주 한바퀴 라이딩’은 3회에 걸쳐 소개할 생각이다. 올 여름 라이딩으로 제주 한바퀴를 계획하고 있다면 조금이나마 참고가 될 듯하다. 동그란 육지를 에워싸고 있는 에메랄드 빛 푸른 바다를 감상하면서 천혜의 섬 제주로 떠나보자.
제주의 첫날 라이딩은 용두암~다락쉼터~한림항~협재해수욕장~해거름마을공원~모슬포~송악산~산방산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세상은 둥글다. 사람도 둥글다. 두 바퀴도 둥글다. 그리고 천혜의 섬 제주의 땅과 해안도 둥글다. 그 옆에 8인의 자전거 체인도 둥글다. 그렇게 2박3일간 제주 한 바퀴는 시작됐다.
20대에 군대서 100㎞행군을 많이 해보았지만 나이 50세를 넘어서 240㎞에 이르는 제주 섬을 두 바퀴로 함께 달린다는 것은 설렘 그 자체였다. 7일 아침 8시10분 김포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어느새 제주공항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일행은 곧바로 자전거를 찾으러 이동했다. 비교적 큰 탈 없이 태풍이 지나간 터라 마음도 가벼웠다.
“내 잔 차는 어디 있는 거지?"
“내 꺼는 여기 있네요. 와~잔 차(자전거의 줄임말) 보니 반갑네~~”
“열흘간 집 안에 잔 차가 없다 보니 그렇게 마음이 허전할 수가 없었는데…”
각자 애지중지하던 자전거를 만나니 다들 상봉의 기쁨에 동공이 확대되면서 2박3일간 펼쳐질 앞날을 생각하며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8인의 건각이 펼친 팔방미인 대장정(대장 정일섭)은 1팀(정일섭 홍양선 양태식 하영판)과 2팀(김영근 김상호 김민태 한명수)으로 구성, 힘차게 첫 페달을 내딛었다. 첫날 구간은 용두암에서 산방산 아래 숙소까지 시계 반대방향으로 질주하는 것이었다.
용두암에서 출발하여 바닷가를 끼고 달리다보니 8㎞가량 이호 해변이 이어졌다. 낭만적인 분위기의 카페와 해변의 벤치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한참을 달리노라니 도시 생활의 찌든 잡념이 모두 사라진다.
좀 더 해안도로와 접하는 안쪽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하듯 “질주” “질주” 하며 소리치는 후미 대장 소리에 마냥 내달렸다. 첫 스탬프 박스인 다락해변에서 도장을 꽝꽝 찍고 나니 사이버 인증이 자동 작동한다.
앞으로 전국을 모두 누비라는 신호 같았다. 어느새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돌다 보니 ‘구엄마을’ 돌염전에 다다랐다. 약 400m에 이르는 평평한 암반지대를 이루고 있는데 예전에는 그곳을 ‘소금빌레’라고 불렀다 한다. 1950년대까지 명맥을 유지하였던 곳이다. 돌염전을 뒤로 하고 다시 라이딩 하니 익숙한 곳이 보인다.
한림항이다. 한림항은 제주에서 가장 큰 어장이다. 한림 비양도에서 차귀도에 이르는 어장으로 옥돔, 조기, 갈치 등이 유명하다. 예전에 새벽 위판장을 찾았었는데 제주의 새벽을 여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그때를 생각하니 가락에 맞추어 조기를 터는 어민들의 노래 가락이 귓전에 들려오는 듯했다.
그 유명했던 영광 조기가 모두 이쪽으로 내려온 온 모양이다. 이어 협재해수욕장을 지나는데 바다 위 하늘을 달리는 행글라이더를 보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우리는 대신 자전거를 머리 위에 들고 저마다 포즈를 취하면서 한껏 소리쳤다. 영판이는 "넘 가볍네~~" 하며 자전거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며 코웃음을 짓는다.
한림항의 끝자락 차귀도를 지나니 모슬포 해안이 눈에 들어온다. 모슬포에서 쥐치회를 먹으려 했건만 역시 질주본능에 그만 지나쳐 버렸다. 또 모슬포에 얽힌 역사의 현장을 보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냥 지나쳤다.
모슬포의 아픈 역사는 일제에 의해 시작됐다. 태평양전쟁의 전초기지였던 모슬포는 일본군의 침략전쟁에 필요한 군수물품 제작에 활용되는 등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해방 후에는 또 다시 미군정의 손아귀에 들어가면서 아픈 역사는 계속됐다. 이어진 6.25전쟁 때에는 입대를 위한 훈련소 역할을 하던 곳이다. 아쉬움 속에 언덕길을 힘차게 내딛는데 저 멀리 해병대 기지가 보인다.
여전히 군사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다. 제주 한 바퀴 중 가장 아쉬운 부분이 모슬포항을 엉겁결에 지나친 것이었다. 나의 아버지도 6.25때 이곳에서 훈련병 생활을 마치고 전선에 배치됐었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상처를 갖고 있는 모슬포항은 치유의 시간이 필요한 제주의 역사다.
어느새 해가 저 멀리 서쪽의 제주 바다 속으로 풍덩 들어갈 태세다. 송악산 언덕길에 오르니 석양빛이 첫날 라이딩에 지친 피곤한 몸을 위로해 준다.
“와~~오늘 해냈다. 다 왔어~저기 산방산 숙소 보이잖아….”
“제주 한 바퀴의 기쁨이 바로 요런 맛이구먼~”
저마다 자축하며 아예 잔디밭에 드러누워 지친 다리를 어루만진다. 이렇게 시작된 제주 한바퀴 첫 날 라이딩을 무사히 마쳤다. 이어진 저녁엔 제주 흑돼지 고기를 맘껏 흡입하며 하루의 여정을 되새기면서 서로를 자축했다.
"역시 제주 흑 돼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