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포-별방진-월정리해변-김녕-함덕해수욕장-용두암
해가 솟았다.
잔잔한 바다위로 마침내 손톱만한 불덩이가 불쑥 솟아올랐다. “해다~해가 보인다” 늘 맞이하는 아침이지만 그날만큼은 뭔가 새로운 아침 같았다.
“해야 떠라~해야 떠라~ 말갛게 해야 솟아라~고운 해야 모든 어둠 먹고 앳딘 얼굴 솟아라~” 80년대 따라 불렀던 노랫말처럼 오늘 그런 해가 성산일출봉에 떴다.
우리는 해돋이를 보기 위해 이른 아침 어둠을 뚫고 숙소를 나섰다. 아침이라 그런지 성산일출봉을 오르는 길은 라이딩만큼이나 땀났다. 마침내 쟁반처럼 둥글게 펼쳐진 정상에 오르니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했다.
구름이 약간 있어서 일출을 못 볼까 노심초사했지만 다행이 붉은 태양이 힘차게 솟구치는 장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해돋이는 언제 봐도 희망과 미래의 아이콘이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전날 숙취를 해장하려고 모퉁이에 있는 전복 라면집을 찾았다. 얼큰 시원한 전복라면으로 3일차 라이딩을 시작한다.
3일차 라이딩은 성산포를 나와 김녕, 함덕 해수욕장 등을 거쳐 용두암으로 내달리는 코스다. 해안가는 곳곳에 카페촌이 즐비하다. 멋진 면도 있지만 자연스러움이 사라지는 느낌도 동시에 들었다. 저 멀리 보이는 우도를 포토타임으로 감상하고 달리다 보니 해안가에 성이 하나 보였다. 제주의 성 별방진이었다.
배를 타고 들어오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성이다. 제주에는 이밖에도 온평리, 행원리, 한동리, 동복리, 북촌리, 애월리, 고내리 등 14곳에 아직도 성이 남아있다.
이번 코스는 주로 해안가를 끼고 도는 평지라서 비교적 쉬운 코스였다. 즐비한 카페촌을 따라 질주하다보니 어느덧 김녕에 도착했다. 몇 년 전 김녕에서 요트사업을 하던 지인이 추천한 동복리 해녀촌 맛집을 가자고 우겼더니 다들 반신반의한다.
그래도 후회 없는 맛집이라 그곳으로 직행했다. 여전히 지금도 생각나는 맛집이다.
회국수로 점심을 하고 다시 페달에 힘을 주었다. 자전거는 여전히 허벅지에서 발끝으로 전해지는 힘이 페달에 이어지면서 제주 한바퀴 완주를 위해 동력을 잃지 않고 굴러갔다.
함덕해수욕장에 다다르니 부드러운 모래사장이 두바퀴를 멈추게 한다. 바다에 발도 한번 담가볼 겸해서다. 여행객 틈에 끼어 커피 한잔을 마시니 라이딩 분위기를 잠시 잊고 있었다. 커피한잔씩 하고 다시 둥근 원을 완성하기 위해 제주 해안을 끼고 두 바퀴로 아스팔트에 스키드 마크를 내기 시작했다.
카페촌을 벗어나니 시골스런 풍경이 들어온다. 고구마를 캐는 농가도 있고 선사유적지 푯말 등도 보인다. 또 언덕이 없는가 싶더니 긴 언덕이 나타나고, 언덕 넘어에 사라봉 공원이 나온다. 알고 보니 사라봉은 제주민의 애환이 깃든 곳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제주항을 바라보며 배 떠나는 가족과 이별을 하던 곳이었다.
잠시 후 거상 김만덕 거리 표지판이 나온다. 얼마 전 드라마에도 나왔던 인물이다. 조선 정조 때 제주 출신 여성으로서 제주도와 육지의 물품을 교역하는 유통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이룬 인물이다. 특히 자기가 가진 부를 어려운 제주도민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준 것은 현 시대의 우리가 본받을 만하다. 김만덕의 사업수단과 통큰 기부는 서울 장안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켜, 사대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직접 만나보고 싶어 했던 여성스타였다.
제주항을 끼고 마지막 스퍼트를 하는데 도로 사정이 썩 좋지 않았다. 마지막 피날레가 머지않았는데 도로사정이 안 좋은 게 좀 흠이었다. 그렇지만 용두암을 향해 마지막 언덕을 오르니 목적지가 코앞이다.
용두암 시작점에 다다르면서 일행 모두 제주 한바퀴 완주에 성공했다.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를 누비는 문화 대통령이라면 지난 3일간은 8인의 건각들이 제주를 가장 많이 두바퀴로 다스린 라이더 대통령이었다.
#3회에 걸친 ‘제주 한바퀴’연재는 지난 2018년 10월7일부터 9일에 진행한 라이딩을 소개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