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는 대학 시절 내가 좋아했던 남성듀오 가수였다.
<내 마음속의 보석상자> <어서 말을 해> <모두가 사랑이에요> 등 서정적인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말로 폭넓은 대중의 사랑받은 포크의 전설 중 하나다.
이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두 개의 이미지가 있었다. 하나는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영화 <해바라기>,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해바라기>였다.
지난 8월 초 우크라이나 출장길이었다. 수도 키예프에서 남쪽으로 5시간, 가도 가도 드넓은 들판을 달려가면서 영화 속처럼 노란 해바라기밭 풍경을 만나게 되었다.
아, 잊을 수 없는 영화의 첫 장면과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던 음악... 헨리 맨시니(미국)의 주제음악 선율에 맞게 흔들거리던 바로 그 해바라기 노란 꽃들이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 소피아 로렌 주연 <해바라기>...전세계 연인들의 해바라기 우뚝
우크라이나 땅은 넓고 컸다. 왕복 10시간 내내 차창 밖으로 지리한 들판, 지평선이 끝없이 이어졌다. 눈을 씻고 봐도 산은 도무지 보지 않았다. 대신 길 양옆 밭에는 해바라기, 옥수수, 감자밭이 계속 이어졌다.
영화 때문이었을까. 도중에 쉬었던 주유소 휴게소 옆 해바라기밭에서도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두 주인공이 해바라기밭에서 성큼 걸어 나올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평생 한 사람을 사랑했던 이탈리아 여인, 그녀는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찾아 머나먼 소련까지 찾아갔다. 하지만 남편은 이미 다른 여인과 가정을 꾸렸다. 더욱이 기억마저 상실했다.
기차역 플랫폼에서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 그녀는 몸을 돌려 달리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뒷모습을 남기고 떠나는 열차 안, 소피아 로렌은 오열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서글픈 울음소리였다.
플랫폼에 떨어진 소피아 로렌의 사진에 남자도 망각에서 깨어났다. 그것은 군복차림의 자신이 보냈던 사진이었고, 사진 뒤에는 그가 써 보낸 편지글이 있었다.
이후 남자는 어렵사리 이탈리아로 찾아가 그녀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이제 그녀도 다른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은 후였다.
스크린에 이 엇갈린 비련(悲戀)의 러브 스토리의 앵글이 해바라기밭에 비추었을 때 더 슬펐다. 해바라기밭은 끝없이 흔들거렸다. 해바라기밭은 전쟁에서 전사한 많은 사람들을 묻은 시체들의 무덤 위에 만들어졌다.
물론 ‘코도 눈도 입도 몸매도 크다’고 평을 받은 소피아 로렌은 매혹적이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몸매보다 더 눈부신 명연기로 전세계 연인들의 해바라기가 되었다.
■ 황금빛 향기가 뿜어져 오는 고흐의 명작 <해바라기>
네덜란드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누구보다 해바라기를 사랑했다.
그가 해바라기를 그린 이유가 재미있다. 화가 폴 고갱과 한 집에서 같이 그림을 그리던 시절, 고갱의 침실 벽을 장식하기 위해서 그렸다고 전해진다.
평소 해바라기 꽃을 유달리 좋아했던 고흐는 침실은 물론 화실을 노란색의 해바라기로 가득 채웠다. 그는 평생 총 12점 해바라기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 남부 아를(Arles) 지방에 있던 ‘노란집’ 작업실을 감싼 태양의 빛깔을 닮은 해바라기들은 화병도 배경도 전부 각각 노란빛으로 그려져 황금빛 향기를 뿜어냈다.
노란집에서 그린 유명한 <꽃병에 꽂힌 해바라기> 주제의 그림은 총 7점이었다. 꽃송이가 3개, 12개, 15개 등 각기 다르지만 이제 세상에 남아 있는 건 6점뿐이다.
고흐는 생전 지독한 가난과 싸웠다. 생전에 그린 1500점 중 유일하게 팔린 그림은 <붉은 포도밭>이었다. 그가 팔 생각이 아니라 동생 테오에게 선물했다. 그 그림을 전시회에 걸었고, 한 화가가 샀다. 그것이 팔린 그림의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는 우울증과 좌절감으로 37세에 권총 자살을 감행했다. 그의 <해바라기>는 1987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445억원에 팔렸다.
살아있을 때는 가난했고, 죽어서는 전세계인에게 사랑받는 화가인 고흐, 고갱을 위해 그린 <해바라기> 덕분에 해바라기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 해바라기의 꽃말은 “당신만을 바라볼게요”
해바라기는 영어로 SUNFLOWER다. 한자어로 해를 바라보는 꽃, 향일화(向日花)로 쓴다. 꽃말은 “당신만을 바라볼게요”다.
“해바라기의 하―얀 꽃잎 속엔
퇴색한 작은 마을이 있고
마을 길가의 낡은 집에서 늙은 어머니는 물레를 돌리고”
모더니스트 시인 김광균은 시 <해바라기>에서 ‘해바라기의 하―얀 꽃잎’이라는 파격적인 표현을 한 바 있다. ‘하—얀’ 표현 때문에 되레 시는 마치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는 느낌이 든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대부분 황금빛 노란색이지만, 암스테르담 박물관에 있는 그의 <해바라기>의 경우 38개의 각기 다른 황색톤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시인 함형수는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시 <해바라기의 비명>의 부분)라고 노래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우크라이나 ‘노오란’ 해바라기밭을 떠올리며 IP TV를 통해 소피안 로렌의 <해바라기>를 다시 봤다. 역시 감동은 그대로였고, 뭉클했다.
그리고 나는 해바라기의 노래 <모두가 사랑이에요>의 “모두가 사랑이에요. 사랑하는 사람도 많고요. 사랑해주는 사람도 많았어요. 모두가 사랑이에요”를 흥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