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기의밑줄긋기 46] 소피아 로렌의 해바라기, 고흐의 해바라기

박명기 기자
  • 입력 2019.08.26 10:39
  • 수정 2019.08.2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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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바라기]에서 소피아 로렌이 열차 안에서 흐느끼는 장면 / 사진=영화 캡처
영화 [해바라기]에서 소피아 로렌이 열차 안에서 흐느끼는 장면 / 사진=영화 캡처

해바라기는 대학 시절 내가 좋아했던 남성듀오 가수였다.

<내 마음속의 보석상자> <어서 말을 해> <모두가 사랑이에요> 등 서정적인 멜로디와 시적인 가사말로 폭넓은 대중의 사랑받은 포크의 전설 중 하나다.

이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두 개의 이미지가 있었다. 하나는 소피아 로렌이 주연한 영화 <해바라기>,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해바라기>였다.

지난 8월 초 우크라이나 출장길이었다. 수도 키예프에서 남쪽으로 5시간, 가도 가도 드넓은 들판을 달려가면서 영화 속처럼 노란 해바라기밭 풍경을 만나게 되었다.

흔들리는 해바라기 모습에 맞춰진 영화 [해바라기] 시작과 엔딩 / 사진=영화 캡처
흔들리는 해바라기 모습에 맞춰진 영화 [해바라기] 시작과 엔딩 / 사진=영화 캡처

아, 잊을 수 없는 영화의 첫 장면과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던 음악... 헨리 맨시니(미국)의 주제음악 선율에 맞게 흔들거리던 바로 그 해바라기 노란 꽃들이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 소피아 로렌 주연 <해바라기>...전세계 연인들의 해바라기 우뚝

우크라이나 땅은 넓고 컸다. 왕복 10시간 내내 차창 밖으로 지리한 들판, 지평선이 끝없이 이어졌다. 눈을 씻고 봐도 산은 도무지 보지 않았다. 대신 길 양옆 밭에는 해바라기, 옥수수, 감자밭이 계속 이어졌다.

영화 때문이었을까. 도중에 쉬었던 주유소 휴게소 옆 해바라기밭에서도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두 주인공이 해바라기밭에서 성큼 걸어 나올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우크라이나 평야지대의 해바라기밭 / 사진=박명기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우크라이나 평야지대의 해바라기밭 / 사진=박명기

평생 한 사람을 사랑했던 이탈리아 여인, 그녀는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찾아 머나먼 소련까지 찾아갔다. 하지만 남편은 이미 다른 여인과 가정을 꾸렸다. 더욱이 기억마저 상실했다.

기차역 플랫폼에서 그 모습을 확인한 순간 그녀는 몸을 돌려 달리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뒷모습을 남기고 떠나는 열차 안, 소피아 로렌은 오열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서글픈 울음소리였다.

플랫폼에 떨어진 소피아 로렌의 사진에 남자도 망각에서 깨어났다. 그것은 군복차림의 자신이 보냈던 사진이었고, 사진 뒤에는 그가 써 보낸 편지글이 있었다.

영화 [해바라기]에서 러시아 기차역에서 남편과 만나는 장면 / 사진=영화 캡처
영화 [해바라기]에서 러시아 기차역에서 남편과 만나는 장면 / 사진=영화 캡처

이후 남자는 어렵사리 이탈리아로 찾아가 그녀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이제 그녀도 다른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은 후였다.

스크린에 이 엇갈린 비련(悲戀)의 러브 스토리의 앵글이 해바라기밭에 비추었을 때 더 슬펐다. 해바라기밭은 끝없이 흔들거렸다. 해바라기밭은 전쟁에서 전사한 많은 사람들을 묻은 시체들의 무덤 위에 만들어졌다.

물론 ‘코도 눈도 입도 몸매도 크다’고 평을 받은 소피아 로렌은 매혹적이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몸매보다 더 눈부신 명연기로 전세계 연인들의 해바라기가 되었다.

■ 황금빛 향기가 뿜어져 오는 고흐의 명작 <해바라기>

네덜란드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누구보다 해바라기를 사랑했다.

그가 해바라기를 그린 이유가 재미있다. 화가 폴 고갱과 한 집에서 같이 그림을 그리던 시절, 고갱의 침실 벽을 장식하기 위해서 그렸다고 전해진다.

평소 해바라기 꽃을 유달리 좋아했던 고흐는 침실은 물론 화실을 노란색의 해바라기로 가득 채웠다. 그는 평생 총 12점 해바라기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 남부 아를(Arles) 지방에 있던 ‘노란집’ 작업실을 감싼 태양의 빛깔을 닮은 해바라기들은 화병도 배경도 전부 각각 노란빛으로 그려져 황금빛 향기를 뿜어냈다.

노란집에서 그린 유명한 <꽃병에 꽂힌 해바라기> 주제의 그림은 총 7점이었다. 꽃송이가 3개, 12개, 15개 등 각기 다르지만 이제 세상에 남아 있는 건 6점뿐이다.

2018년 용산에서 전시회를 가진 고흐와 고갱전과 노란집-해바라기 / 사진=포스터
2018년 용산에서 전시회를 가진 고흐와 고갱전과 노란집-해바라기 / 사진=포스터

고흐는 생전 지독한 가난과 싸웠다. 생전에 그린 1500점 중 유일하게 팔린 그림은 <붉은 포도밭>이었다. 그가 팔 생각이 아니라 동생 테오에게 선물했다. 그 그림을 전시회에 걸었고, 한 화가가 샀다. 그것이 팔린 그림의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는 우울증과 좌절감으로 37세에 권총 자살을 감행했다. 그의 <해바라기>는 1987년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445억원에 팔렸다.

살아있을 때는 가난했고, 죽어서는 전세계인에게 사랑받는 화가인 고흐, 고갱을 위해 그린 <해바라기> 덕분에 해바라기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 해바라기의 꽃말은 “당신만을 바라볼게요”

해바라기는 영어로 SUNFLOWER다. 한자어로 해를 바라보는 꽃, 향일화(向日花)로 쓴다. 꽃말은 “당신만을 바라볼게요”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만난 해바라기 / 사진=박명기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만난 해바라기 / 사진=박명기

“해바라기의 하―얀 꽃잎 속엔

퇴색한 작은 마을이 있고

마을 길가의 낡은 집에서 늙은 어머니는 물레를 돌리고”

모더니스트 시인 김광균은 시 <해바라기>에서 ‘해바라기의 하―얀 꽃잎’이라는 파격적인 표현을 한 바 있다. ‘하—얀’ 표현 때문에 되레 시는 마치 고흐의 <해바라기>를 보는 느낌이 든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대부분 황금빛 노란색이지만, 암스테르담 박물관에 있는 그의 <해바라기>의 경우 38개의 각기 다른 황색톤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영화 [해바라기] 속 해바라기탑 / 사진=영화 캡처
영화 [해바라기] 속 해바라기탑 / 사진=영화 캡처

시인 함형수는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시 <해바라기의 비명>의 부분)라고 노래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우크라이나 ‘노오란’ 해바라기밭을 떠올리며 IP TV를 통해 소피안 로렌의 <해바라기>를 다시 봤다. 역시 감동은 그대로였고, 뭉클했다.

영화 [해바라기] 엔딩 장면의 흔들리는 해바라기밭 / 사진=영화 캡처
영화 [해바라기] 엔딩 장면의 흔들리는 해바라기밭 / 사진=영화 캡처

그리고 나는 해바라기의 노래 <모두가 사랑이에요>의 “모두가 사랑이에요. 사랑하는 사람도 많고요. 사랑해주는 사람도 많았어요. 모두가 사랑이에요”를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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