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20] 부모님댁 슈퍼마켓

오은주 기자
  • 입력 2019.09.02 10: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결혼한 아들이 며느리, 손녀와 함께 주말인 토요일 저녁에 정국씨 집으로 왔다. 깡총거리며 현관에 들어서는 3살난 손녀는 정말 사람꽃이라 할 만큼 귀엽기 그지없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온가족이 주말저녁에 밥을 같이 먹는데 가끔은 외식도 하지만 주로 정국씨의 집에서 아내가 마련한 음식으로 식사를 하는 편이다.

정국씨는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식탁에 둘러앉은 아들 내외와 손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딸과 아내, 이렇게 모두 여섯 명의 식구들을 둘러보자 마음이 뿌듯해져 왔다. 아내 역시 식사를 준비하느라 힘들기는 해도 한 주일 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즐거움에 기꺼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직장에 다니느라 주말에는 쉬려는 며느리만 꺼려하지 않으면 주말에 함께 식사하기를 작은 가족문화로 정착시키겠다는 게 아내의 야심찬 계획이었다.

점점 가족의 연대가 약해져 가는 시대에 아내의 의도는 아름다웠지만, 그 다음 순서가 꼭 필요한지가 정국씨는 늘 의문이었다. 아들네 식구가 제 집으로 돌아갈 무렵이 되면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너네 오늘은 뭐가 필요하니? 우리 먹을 것 사면서 이것저것 좀 사다 놨으니 보고 가져가라. 당분간 먹을 만큼.”

아내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들녀석이 며느리에게 물어본다.

“우리 포도랑 복숭아 다 먹지 않았나? 아까 그 병어조림도 맛있던데. 엄마, 그것도 몇 마리 더 있어요?”

며느리는 살짝 미안한 마음에 대답을 머뭇거리고 있는데, 아들은 벌써 냉장고로 다가가서 밑반찬 통도 들어보고 넣고 야채랑 과일도 주섬주섬 꺼낸다. 마치 슈퍼마켓에서 장이라도 보는 폼새다.

“역시 우리 엄마네 슈퍼가 제일 좋네요. 내가 좋아하는 게 많아.”

아내는 아들네가 가져가도록 아예 식재료를 많이 사들이고 밑반찬을 만들었다. 덕분에 아들네 손이 바쁘다, 엄마네 식재료가 좋다 등의 이유를 들먹이며 노골적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 모습을 전지적 관찰자적 시점에서 바라보는 정국씨에게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살아계시면 연세가 90줄일 자신의 어머니는 늘 당장 오늘 저녁 한 끼를 어떻게 식구들 입에 밥을 넣어주느냐에 마음을 졸여야 했다. 밥을 할 수 있으면 감사하고 다행이라 웃음을 띠며 자식들 밥그릇을 챙겼다. 그런데 정국씨의 아내만 해도 지금은 새로운 가족문화를 창달(?)하겠다는 거룩한 마음으로 주말에는 대식구밥을 기꺼이 하지만 웬만하면 집에서 밥을 안 하는 게 팔자 편한 여자의 상징처럼 생각을 했다.

정국씨의 어머니는 돈도 쌀도 없어 밥을 못하게 될 까봐 늘 끼니때마다 걱정이었는데, 아내는 장볼 돈도 있고 쌀도 빵도 많지만 대부분 밥을 하는 걸 귀찮아해서 “둘이 집에서 해먹으면 재료값이 더 비싸니 간단히 나가서 먹읍시다.”라고 은근히 채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들네는 또 어떤가? 경제적으로 훨씬 풍요롭고 식재료도 사방에 넘쳐나지만 스스로 밥을 해먹는 횟수는 가장 적었다. 주중에는 회사 밥을 주로 먹고 주말에는 배달음식이나 양쪽 부모님댁을 오가며 먹고, 얻어가서 먹고 하니 그들에게 음식은 늘 있는, 그래서 갈급하지 않은 소비의 대상일 뿐인 것 같았다.

정국씨는 집안 여인 3대의 먹거리에 대한 태도를 보며,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머리로는 받아들였지만 마음으로는 무언지 아쉽기도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