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 21] 아줌마의 힘

오은주 기자
  • 입력 2019.09.0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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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추석이 들어있는 9월이 오자 명자씨는 신바람이 났다. 현재 58세로 본인 표현대로 환갑이 낼모레인 명자씨가 신이 난 까닭은 올해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자신을 추석 특판기간 동안 임시직으로 뽑아주었기 때문이다. 명절을 앞둔 마트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풍경이지만 그 역시 익숙한 게 명자씨였다. 명자씨는 40대 내내 마트에서 정규직으로 일했던 베테랑 계산원이었다. 그래서 마트에서 추석과 설 특판기간에 경력자들을 보충해서 임시직으로 쓸 때마다 명자씨는 일을 해왔다. 50대에 들어서 애들이 다 대학을 가고 나자 명자씨는 ‘애들 학원비’라는 절실한 목표가 사라져서인지 몸이 여기저기 아파와서, 남편의 월급에 맞추어 살기로 하고 마트 일을 그만 두었다.

명자씨도 한 때는 일을 안 하고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만 살아가는, 그것도 일견 돈걱정이 없어 보이는 여자들을 부러워했다. 지금이라고 그 마음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나, 마음만 먹으면 일을 할 수 있는 건강함이 우선 누군가에게 고마웠다. 유전자의 힘이라면 부모님에게 고마워해야 할 터이고 자신이 관리를 잘한 결과라면 자신에게 자부심을 가질 일이다.

여전히 붙박이 정규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40대 아줌마들을 보자 명자씨는 괜히 격려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애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고 낮시간 동안 파트타임이나 교대근무를 하던 후배 아줌마 직원들 몇몇은 아직도 계산대에서 한층 빨라진 손놀림으로 능숙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명절을 앞둔 터라 카트마다 물건이 넘치고 카운터 앞에는 줄꼬리가 길었다. 계산원들은 피곤에 절은 게 분명한데도 연신 웃으며 응대를 했다. 진상 손님을 만나도 웃음을 지어야 하는 그 속내가 계산작업보다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명자씨라 자신보다 젊은 판매, 진열, 계산원 아줌마들을 볼 때 마음이 짠했다.

저쪽 3번 계산대에 경옥씨가 보였다. 명자씨는 아까 휴게실에서 받은 박카스를 들고 경옥씨에게 다가갔다.

“어머! 명자 언니, 올해도 어김없이 오셨네요.”

밝게 웃으면 인사를 하는 경옥씨의 표정에 명자씨는 안심을 하며 박카스를 건넸다.

“이거 마시고 힘 내! 몸은 이제 다 돌아온 거지?”

“네, 요즘은 가끔 확인하러만 병원에 가면 돼요.”

경옥씨는 몇 년 전에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고, 상태가 좋아지자 다시 마트에 일하러 온 터였다. 그래도 아직 완치판정을 받은 상태가 아니니 집에서 주부노릇만 하면 좋겠는데 형편은 그렇지가 못했다.

“전 힘들어도 열심히 일하는 소박한 언니들이 많은 마트가 일하기 좋아요.”

“그래요, 나도 지금은 일 안 하다가 이렇게 바쁠 때만 일하지만 경옥씨 나이 때는 마트내의 모든 일을 다 했잖아. 남자들도 힘들다는 진열까지 다 해봤어. 마트 일이라면 훤하니까 그나마 나이가 들어도 필요할 때 불러주는 거야.”

“저도 나름대로 마트 전문가가 되려고 판매부터 포장 진열, 계산까지 돌아가며 다 해보고 있어요.”

명자씨는 마트에서 허리를 붙잡고라도 일하는 아줌마들이야말로 여전히 야무지게 살아가는 여인군단임을 다시금 느꼈다. 지난날, 최저임금을 놓고 사측과 협상을 할 때 보여주었던 마트 아줌마들의 협동심과, 그러면서도 파국을 막으려던 애사심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추석이 끝나고 자신의 특판직이 끝나서 소비자로서 이 마트를 찾을 때 다시금 경옥씨를 만나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대가 있어서 진정 고맙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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