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여행이다②] 금오도 기행 1···어머니의 품을 닮은 남해 섬마을

윤재훈 기자
  • 입력 2020.04.13 12:57
  • 수정 2021.09.17 01: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오도' 기행 어머니의 품을 닮은 남해 섬마을

<서울 서부 50+센터 인생학교> 시니어들과 떠난 여행 (촬영=윤재훈 기자)

남쪽바다 봄은
동백꽃으로부터 온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툭, 툭, 떨어지는

순한 목숨들

지난 세월, 그대와 함께,
피고 지고

문득, 고맙다고,
환하게 웃는 것 같다.
- 동백꽃 어머니, 윤재훈

여행은 익숙함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낯선 곳으로 감행을 시도해 본다.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남해바다 끝, 300리 한려수도 여수(麗水). 세계 엑스포 박람회가 결정되고 이 도시는 그만 산천개벽(山川開闢)을 해버렸다. KTX가 들어오고 아쿠아리움과 세계 일류급 호텔이 생기더니 한 해 1,3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관광객이 이 조그만 도시를 다녀간다.

그 옛날 서울역에서 16시간이 걸리던 비둘기호 야간열차를 타고, 자리가 없으면 선반 위에 올라가거나 의자 양쪽 틈 사이로 끼여 들어가 잠이 들어도, 굳이 흠이 되지 않던 시절. 내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마지막 기적을 울린 열차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남쪽바다 끝. 가끔은 도둑 열차를 타다 걸린 사람들이 머리를 긁적이던 그 도시.

그렇게 나는 수없이 시발역에서 종착역까지 우리나라 수도를 오고갔다. 자정쯤 대전역에서 가락국수 먹던 일도 잊을 수가 없다. 찐 계란과 사이다에 비스켓을 팔던 그 홍익회 아저씨들의 특유한 목소리가 생각이 난다.

“진계란이 왔어요, 사이다도 있습니다.”

혹시나 나는 어머니와 같이라도 가면 아저씨가 지나갈 때마다. 엄마를 힐끔힐끔 올려다보았다. 그러면 못내 모른 척 하거나, 어떤 때 기분이 나면 사이다와 찐 계란을 사 주셨다. 굵은 소금에 계란을 콕, 콕, 찍어가며 사이다와 달게 마시던 그 한 시절을 잊을 수 없다.

나는 땅 끝(土末)에서 태어났다.
차를 타면 항상 시발역에서 종착역까지 달려갔다.
남쪽바다 끝에서 완행버스를 타면 비포장 길을 따라 장흥, 강진, 보성, 벌교, 순천만, 유배지의 땅들을 샅샅히 훓고, 다시 바닷가 마을 여수에 닿았다.
그 길에서 고산(孤山)을 만나고, 다산(茶山)을 만나며, 초의와 영랑도 만났다.
선인들의 깊은 고뇌에 찬 얼굴도 보았으며, 그 사이 버스를 타고 내리던 수많은 남도의 주름 패인 얼굴들도 보았다.
돌고개 따라 펼쳐지던 누런 들판에서 가끔씩 튀던 메뚜기를 보았으며, 허기지게 달려가던 또랑물도 역력하다.
천관산 아래로 내달리던 버스에서 본 남도의 山모랭이, 山모랭이들.
지금도 순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 후 도시로 나와, 다시 기차를 타도 여전히 시발지에서 종착지까지 줄기차게 달려갔다.
하룻밤을 샌 기차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면 긴 기적소리를 동백꽃처럼 역두(驛頭)에 뿌렸다.
오동도 절벽 위 어디쯤, 위태로이 걸린 회집에서 친구와 소주잔을 부딪치며 회를 씹던, 설익은 회포들이 문득 떠올랐다 밖에서 울어 애이던 파도소리와 갈매기들의 소리도.
기찻칸에서 만났던 아줌마들의 낯선 음성, 한밭 어디쯤에서 새벽시장을 나가기 위해 굽은 허리로 올리던 밤색 광주리에 대한 기억과 그들의 억센 손가락 마디가 보인다.
기나긴 열차 시간에 의자 사이로 기어 들어가 자거나, 기차의 선반 위에서 그들의 구수한 사투리에 잠을 깨면, 기차는 목쉰 소리를 내면 만경평야나 충청도의 어디쯤을 달리고 있었다.

이제 나는 더 변방으로 밀려 났다.
어제 밤 잠 속에서 새 한 마리 울고 가는 것을 보았다.
老철도원의 목쉰 소리가 플랫포옴의 천장을 타고 울려온다. 서울역의 대합실은 언제나 만원이다 수도.의 종착역에서도 내려, 다시금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더 달려야만 내가 사는 곳이 나온다.
테크놀러지가 우주로 전파를 쏘아대는 이 시대에도, 항상 변두리로 변두리로만 내몰리는 삶들이 있으니.오늘도 그 삶들 몇 서로를 껴안고 문득 지하차도에서 잠이 든다.
찬송가를 틀고 노래를 부르면 지나가는 맹인의 낯선 삶도, 저 혼자 열차 칸을 맴돌다가 빠져 나간다.
오늘 아침 산길을 내려오다, 문득 다람쥐 한 마리를 만났다. 내 앞으로 지나가는 어린 시절, 이 길을 내려가 오늘도 나는 길게 기지개를 켜고 달려온, 저 지하철을 탈 것이다.

- 땅 끝 인생人生, 윤재훈

광장에 커다란 소나무와 그 역에 자그마한 매점이 있었고, 해풍에 낡아가는 영업용 택시들이 햇볕 아래 길게 손님을 기다리던 역, 수십 년간 그렇게 굳건히 서있던 여수역도 단번에 자리를 옮겨 버렸다.

갯비린내 날리던 바닷길, 길게 놓인 그물들이 햇빛에 낡아가고, 하릴없는 낚시꾼들만 앉아 시간을 죽이던 곳, 제빙공장에서 나온 커다란 얼음들이 터널을 타고와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부서져 어선으로 떨어져 내리던 <종포(鍾浦)>, 한 여름 그 제빙공장 얼음 창고 안에서 굵은 땀을 흘리시던 아버지.

새벽부터 나온 바닷가 아지매들의 거친 소리가 요란하던 <중앙동 어판장>. 이제 그곳은 여수의 어느 카페에서 알바를 했던 청년이 가수가 되어 부른 <여수 밤바다>가 유명세를 타고 있다.

“…여수 밤바다 이 바람에 걸린
알 수 없는 향기가 있어
네게 전해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 버스커 버스커, <여수 밤바다>

낭만 포차와 종포(鍾浦) 해양공원이 새로 조성되더니 급기야 <다큐 3일>에까지 나왔다.
여수의 명물 중의 하나, 그 종포 바다에서 바라보는 여수 야경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필자도 세계의 유명한 도시들을 수없이 다녀본 여행자지만 그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풍경이다.
포장마차에서 회 한 접시와 소줏잔을 앞에 놓고 바라보는 밤바다는 그야말로,

“마시기는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먼저 취한다.”

- 김영남, <정동진>

잡힐 듯 바로 앞에 있는 돌산 대교는 시시각각 오색으로 몸을 바꾼다. 오른편에는 이순신 장군의 전설과 함께 투구를 엎어놓은 것 같은 장군섬이 떠있고, 그 옆으로는 여수항이 꿈결처럼 펼쳐진다.
왼쪽으로는 낮으막한 야산 위 돌산 공원이 보이고, 제 2돌산대교와 그 위로 케이블카들이 점점이 별처럼 떠간다. 바다 속에도 그 풍경들이 함뿍 빠져 같이 일렁거린다.
그리고 그 섬의 끝 향일암까지 들어가는 바닷길도 정말 아름답다. 거기에 임진란 작전회의가 열린 보물 제 324호 우리나라 최대의 목조건물인 진남관, 거북선, 여수의 둘레길인 갯가길까지, 여수의 아름다움을 반도 말하지 못했는데, 방파제 끝에 빨간 하멜등대가 깜박 거린다.

북쪽에는 종고산이 솟아 있고요
남쪽에는 장군도가 놓여 있구나
거울 같은 바다 위에 고기 잡는 배
돛울 달고 왔다갔다 오동도 바다
아 아름답구나 여수항 경치
아 아름답구나 여수항 경치

- 조종응,  <여수항 경치>

<여수항 경치>가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이 노래는 여수 팔경을 자랑하던 50년대 조종응 선생이 작사, 작곡한 노래이다.
종포 앞으로는 가막만이 펼쳐지고 올망졸망 섬들이 이어진다. 돌산도, 여자도, 개도, 백야도, 낭도, 조발도, 제도, 월호도, 화태도, 금오도, 안도, 연도, 하와도, 상화도, 사람들이 사는 섬만 꼽아도 제법 된다.

오동도 꽃숲에서 밤을 지새며
진남관 바라보며 꿈을 꿉니다.
너와 나의 파란 꿈은 어디로 가고
돌산 앞바다에 파도만 일렁이네
나 혼자 걸어가는 오동도 다리
갈매기 울음만이 애닮프구나.
- 이미자, <동백꽃 피는 항구>

지금이야 몇 군데 다리까지 생겼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야말로 외로운 섬(孤島)들 이었다. 섬에 사는 아이들은 푸른 꿈을 안고 상급학교를 진학하기 위해 여수로 나왔고, 다시 바닷바람을 맞으며 배를 타고 집으로 갔다.

그중에서도 오늘 찾아가는 섬은 금오열도에서 가장 큰 섬 <금오도(金鰲島)>이다. 돌산도 신기항에서 출발하면 금오도의 <함구미항(여천항으로 가는 배도 있다)>이 지척이다. 우리 땅에는 4,400여개의 섬이 있고 그중 사람이 사는 섬은 500여개라고 하는데 이 섬은 21번째로 큰 섬이다.

오늘 그 섬에 동백꽃을 찾아간다. 동백꽃은 바로 여수의 상징이다. 이맘 때 쯤이면 오동도 섬 전체는 물론 향일암, 동백골 등 여수 전역에 붉은 정념을 뚝, 뚝, 떨어지게 하는 꽃이다.

남편은 오동도를 돌며 고기를 잡았다
어느 날 더 많은 고기를 잡아
아내를 기쁘게 해주려고
수평선을 넘어가더니 영 돌아오지 않았다
어둠만 으르렁거리며 섬을 감쌌다

하루 이틀 세월은 가는데,
수평선을 바라보다 아내은 눈이 시리고
남편을 부르는 목쉰 소리만
파도에 묻혀 애돌았다
아침이면 절벽에 올라가 꽃점을 쳐보고
저녁이면 갯바위를 도는 갈매기에게 물어 보았다

속절없는 세월은 가고
나날이 마음의 병이 깊어 가는데
밤새 시누대만 몸서리치며 울었다
바닷바람은 띠집을 안고 밤새 궁글었다

어느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도적들이 섬으로 올라오고
아내는 쫓기다 벼랑까지 내 몰렸다
동박새는 머리 위에서 구슬프게 울며
무어라고 옛 얘기를 하며 돌 틈으로 사라지는데
그녀는 아스라하게 흰 꽃이 되었다
파도만 몰려와 하얗게 부서졌다

어느 날 수평선으로 배 한 척 올라오고
서러운 남편은 돌아 왔건만
빈 집 마당에는 바람만 울어옛다
“며칠만 더 기다리지
그것도 못 기다리나
며칠만 더 기다리면 평생 해로하는 것을.

원수로다, 원수로다, 저 바다가 원수로다,
몸이야 갈지라도, 몸이야 갈지라도,
넋이야 두고 가소, 불쌍하고 가련하다”

남편은 절벽 위에서 슬피 울었다
아내를 묻고,
만월의 늑대처럼 서럽게 몸부림을 쳤다
바닷바람만 달려들어 왕벚나무를 흔들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동박새 날아들어
뭐라고 지껄인다

“온다 온다 남편이 온다, 아이 답답 며칠만 기다리지, 넉넉 잡아‥.
원수야, 원수로다, 죽은 사람 불쌍해라, 넉넉잡아 며칠만...”
이라고 구슬프게 울어댔다
남편은 매일 절벽을 찾아가,
선홍빛 가슴 열고 섬을 돌며 울었다

그 후 무덤 위에 꽃 한 송이 돋아나고
꽃 다 진 한 겨울에 홀로이 피어나니,
흰 눈 속에서도 정절을 지킨 꽃이여
외로운 섬에서 꽃등 하나 밝혀두고
천 년 동안 이 섬을 지켜온 꽃이여
- * 연리지 동백(連理枝 冬柏), 윤재훈

오래전에 부산에서 여수까지 엔젤호가 다니고 부둣가 어판장 아지매들은 간간히 이미자의 <삼백리 한려수도>를 구성지게 불렀다.

노을진 한산섬에 갈매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그림 같구나
굽이굽이 바닷길에 배가 오는데
님 마중 섬색시에 풋가슴 속에
빨갛게 빨갛게 동백꽃처럼 타오르네
바닷가에 타오른다네
- 이미자, <삼백리 한려수도>

그 시절 엔젤호가 너무 빨리 간다고 하여 어른들은 파도 위만 찍고 달린다는 전설을 만들어 내어, 우리는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다 그 배가 지나간다고 하며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그럼 진짜 배가 파도 꼭지만 콕, 콕, 찍고 날아가는 듯했다.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저 배를 꼭 타 봐야지, 하면서 꿈을 꾸다가, 친구들과 홀, 훌, 옷을 벗어 던지고 바다로 뛰어들던 기억이 새록하다.

배 뒷전으로 봄날 햇물결이 부서지고 봄 바다를 산보 나온 갈매기들이 따라 오며 목청껏 울어 댄다. 흥얼흥얼 노랫가락이 해풍을 타고 들려온다.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헛튼 약속도 없이 봄날 꿈 같이 따사로운
저 무욕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곳이 어디 메야
강남 길로 해남 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물결 너머로,  어둠 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

-정태춘 <떠나가는 배>

섬에 얼마나 삼림이 울창하였으면 검게 보인다 하여 <거무섬>이라 불렀고, 그것을 비슷한 한자로 표기하다보니 <금오도(金鰲島)>가 되었다고 한다. 더러는 금빛 거북을 닮아서 ‘금오’라고 부르기도 한데, 옛 지도인 청구도나 대동여지도에는 <거마도>라고 표기되어 있다.

섬은 어업보다 농사가 더 많았는데, 지금은 인근에서 방풍(防風)나물 재배가 가장 많은 섬이 되었다. 불과 오륙 년 전만 해도 대부분 고구마를 심었는데, TV에서 값도 비싸고 약효가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섬 전체로 퍼져 버렸다. 특히 중풍과 당뇨에 좋다고 한다.

“아, 입이 마르든만 그 즙을 짜먹은 게, 입 마른 것이 싹, 없어져 불었어, 아따, 참 좋네”

일찍 뭍으로 나갔던 아낙은 벌써 볼 일 다 보고 들어오고, 할머니들은 이 섬의 특산물인 방물나물을 몇 푸대 들고 나와 아직 그 끝이 매서운 해풍 아래 팔고 있다.

금오도의 중심은 우실(牛室)마을이다. 마을의 산세가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고 마을은 그 외양간의 해당하는 모양새라 그리 지어졌다고 한다.

옛날에는 국영 사슴목장이 있었고, 임금의 관을 만드는 소나무인 황장목이 자라 봉산(封山)으로 지정되어 인적이 없었으며, 조선시대에는 황장봉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차츰 인근에 살던 사람들이 몰래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새벽 밭에 나갔던 아주머니들은 벌써 아침 먹은 것이 다 꺼지고 배가 고픈지, 하꼬방 할매가 장작불에 푹 고아 논 돼지 족발을 먹고 있다. 길손도 배가 고파 말을 건네자 앉으라 한다. 안으로 들어가 이 인근에서는 유명한 개도섬의 명주인 <개도 막걸리>를 한 병 사와 같이 괘기(섬사람들의 방언)를 먹었다.

유송리 여천마을 동쪽 바닷가에서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버린 조개껍질이 쌓여 이루어진 퇴적층인 조개더미 유적이 동서로 30m, 남북 15m로 발견되었다. 여기에서는 빗살무늬 토기, 점줄무늬 토기, 겹아가리 토기 등 14점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신석기 시대부터 이 지역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이다.

금오도 두모리에는 청동기 시대 대표적인 돌무덤인 지석묘 7기가 있다. 여수 지역 고인돌은 남방 고인돌이 변화한 것으로, 넓고 판판한 1매의 상석을 지석이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드디어 비렁(벼랑)길을 따라 출발했다. 다도해(多島海)가 발아래 놓여 오늘따라 세숫물처럼 잔잔하고 우리의 정처 없는 발걸음도 쉬엄쉬엄 산마루로 접어든다.

우리는 ‘어머니의 품처럼 너른 바다’라고 말한다. 물은 인류의 모태이다. 그래서 인류는 물이 존재하는 혹성을 찾아 우주를 탐험한다. 물이 있으면 공기가 있을 테니까? 그래서 누군가는 바다 해(海)에는 어머니 모(母)가 들어있고, 프랑스어 어머니mere에는 바다mer가 들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 어머니 양수에 쌓여 있어 무의식 층에 바다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욕조에서 아기를 낳으면 수월하게 나온다고 한다. 인류의 기원도 바다에서 생명체가 올라왔다고 하기도 하며, 그래서 정자도 물고기를 닮았다고 한다.

제 1코스는 송광사 터 가는 길이다. 이 인근에는 세 개의 송광사가 있다. 하나는 호남의 대사찰인 순천의 송광사, 또 하나는 여기서 멀지않은 고흥 앞바다에 떠있는 섬 안에, 주지 스님이 하심(下心)을 화두로 잡고 있는 송광암, 그리고 우리가 오늘 가는 흔적만 남아있는 송광사 터이다.

깎아 지르는 듯한 절벽 길로, 때로는 산등성이로, 나무 하러 다녔던 오솔길이다. 그 옛날 이 섬사람들의 척박한 삶이 소매의 땟국물처럼 깃들여 있을 그 길로, 오늘은 시름없는 관광객들이 간다. 따사로운 남국의 봄볕 아래 산등성이에서 염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땅 속에서 가지 끝에서 쑥, 쑥, 밀고 올라오는 꽃망울 소리 요란하다. .

특히나 인근의 먼 바다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거문도 쑥>이 유명한데 이곳 역시 섬이니 약효가 뛰어나다.

(홍세민, <흙에 살리라> 뮤직비디오 영상 캡쳐)

초가삼간 집을 지은 내 고향 정든 땅
아기염소 벗을 삼아 논밭 길을 가노라며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것을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리리까
나는 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
- 홍세민, <흙에 살리라>, 1973년

잊혀졌던 옛 노래가 절로 나온다. 화석 속에서나 옛 문헌에 있을 것 같을 정도로 급하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갈수록 고향과 어머니의 정이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올망졸망 모여서 사는 마을은 즐겁고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돌담이 정겹다. 저 앞에 보이는 섬을 넘어가면 태평양의 너른 바다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이 섬에 태어나 꿈을 키우며 뭍으로 떠나고, 더러는 평생 이 섬에서 어부로 살아갈 것이다.

허리가 활처럼 휜 할머니는 평생 이물이 난 밭일을 끝내 놓지 못하고 지난겨울 찬바람을 이긴 봄똥(배추)를 뽑고 있다. 오늘 점심은 저것을 묵은 된장에 푹푹 비벼, 바다에서 돌아온 아들 점심상이라도 차릴 모양이다.

* 연리지-부부의 애절한 사랑을 나타내며 실지로 나무가 서로 얼싸 앉고 있다. 오동도에 막 오르다 보면 실제로 ‘연리지 동백’이 있다.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