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쫓는 '자전거 노마드'①] 최충현 "위기마다 길위의 천사들이 있으니…"

허희재 기자
  • 입력 2020.07.23 15:53
  • 수정 2021.06.0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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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현 "위기마다 길위의 천사들이 있으니…"

호주 일주 중에서
호주 일주 중에서

[이모작뉴스 허희재 기자] 우리나라의 10명중 1명은 매일 자전거를 탄다고 한다.(한국교통연구원, 2017 발표) 휴일 근교 라이딩, 평일 자출(자전거 출퇴근), 짧은 산책 또는 근거리 이동수단으로도 쓰이는 따릉이까지 자전거 이용형태는 다양하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몇 시간이 아닌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수 개월 이상을 여행을 해야 한다면 어떨까. 숙식을 위한 텐트와 취사도구까지 많은 짐을 싣고 페달을 밟으며 다닌다는 것은 거의 고행에 가깝지 않을까.

실크로드, 산티아고 순례길, 유럽과 미국 횡단, 호주 일주, 파미르 고원까지 자전거 두바퀴로만 6만 km 이상 누빈, 몸속에 유목민의 피가 다량 흐른다는 열혈 여행자가 있다. 그것도 20, 30대 건장한 청년이 아닌 환갑이 훨씬 넘은 나이에 인생 이모작의 시작을 자전거 길로 택한 사람. 최충현씨(66)가 바로 그 사람이다.

33년 군 생활을 마치고 대학과 기업의 모셔가기 제안도 뒤로 하고 가슴 뛰는 꿈을 찾아 10년째 길을 달리고 있는 그에게 제2의 삶 '자전거 인생' 얘기를 들어보자.

Q.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있다면?

행운인가도 싶고 운명인가도 싶어요. 고1 때 담임선생님이 갑자기 '최충현, 여름방학 때 남해 자전거여행 할래?' 하셨어요. 선생님이 얘기하시니 그냥 따라 나섰는데 너무나 좋더라구요. 신작로, 비포장도로, 자갈길을 먼지 마셔가면서 포플러 나무 사이를 달렸던 것이 가슴에 깊게 남았어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우리나라도 이렇게 다녀보고 지구도 한바퀴 돌아보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때 어린 마음에 생겼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짐받이가 있는 삼천리자전거를 타고 한 달 동안 전국을 무전여행 했고, 군에 들어가서 30년간은 그런 꿈을 가질 수가 없었죠. 해외에 나간 경험도 한번도 없었구요.

은퇴 후 보통 직장생활을 한 번 더 하잖아요.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도 있고 일반 기업의 비상기획관으로 근무할 기회도 있었는데 고민했죠. 그런데 와이프가 꿈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해 보라고 응원을 해주더라구요. 그래서 전역 후 바로 떠났죠.

실크로드  여행 중에서
실크로드 여행 중에서

Q. 첫 자전거여행은 어디였는지?

세상 사람들이 많이 다니던 길, 역사와 문화가 있는 사람 사는 흔적이 있는 길을 가보자는 마음에서 처음 시작한 것이 실크로드죠.

보통 장안에서 터키 이스탄블까지를 실크로드라고 하는데 중간쯤 우르무치에서 아프간 파미르로 넘어가야 할 때 빈라덴의 사망으로 외교관계가 안좋았어요. 그래서 더 이상 못가고 티클라마칸 사막만 횡단하고 돌아왔죠. 아쉬워서 나중에 로마에서 시작해서 실크로드를 지나 부산까지 이어지는 길을 다녀왔어요. (첫 여행은 몇일이었나) 110일이었죠. 중국비자가 3개월밖에 안되니까 현지에서 연장하느라 혼났습니다. 중국 말도 못하는데 경찰서 가서 손짓발짓 해가면서. 근데 사람이 희한해요. 어려울 때 도와주는 천사들이 많아요. 황량한 우르무치에도 한국인 선교사가 나와있더라구요. 그 분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용산 바이클리에서 만난 최충현씨, 촬영=김남기 기자

Q. 장거리 자전거 여행에 대한 가족의 걱정이나 반대는 없었나?

그 점 에 대해서는 가족들한테 특히 와이프한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잖아요. 자전거는 아무래도 위험하죠. 근데 와이프가 저한테 그러더라구요. '좋아하는거 하다 죽는다면 그것도 행복한거 아니냐, 그리고 한국에서 어디 길 가다가 사고 날 수도 있는거고. 사고라는 건 삶 속에서 어디서나 날 수 있는 거니까 그런 걱정은 묻어두겠다'고 하더라구요. 군인이라 돈도 별로 없는데 갖고 있는 적금을 깨서 여행비도 많이 후원해줬어요. 제 여행의 후원자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코스나 여행을 고른다면?

사람마다 취향이나 당시 상황에 따라 달라져서...  건강상태가 안좋거나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되면 그 여행지에 대한 기억이 나빠질 수밖에 없어요. 개인적으로 고른다면 가장 여유로움과 많은 사람을 만났던 산티아고에요. 어린 아들이 시한부 생명의 엄마를 모시고 걸어가던 모습, 이라크전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영혼을 달래는 기도로 눈물을 흘리며 걸아가던 신부님의 모습 등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어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종교를 떠나서 한번은 가보라고 누구한테든 추천하고 싶어요.

또 사람들이 친절하고 도움을 많이 받았던 곳은 독일이었어요. 정말 많은 감동을 주었던 지역이었죠. 성취감을 갖게 했던 코스로는 미국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횡단하는 7천 km 길을 들 수 있겠네요. 고생도 많이 하고 힘들었지만 그만큼 성취감이 컸어요. 지금 젊은 친구들에게 방학을 이용해서 다녀오라고 추천하죠.

(미국 대륙 횡단을 마치고 노스베이 해변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며 포효하는 최충현씨)
미국 대륙 횡단을 마치고 노스베이 해변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며 

Q. 가장 험난하고 힘들었던 코스는?

파미르가 역시 가장 힘들었죠. 코스도 힘들었지만 파미르의 문화나 먹는 음식 같은게 안맞아서 혼났어요. 일주일간 배탈이 나서 아주 고생했어요. 거기의 위생상태가 우리나라의 50~60년대 같아서 기름 묻은 보에 빵과 양젖 같은 우유를 주면, 안먹을 수도 없고, 먹고 배탈이 나는 거죠. 파미르는 5천~6천의 고지 협곡에 만년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엄청 차가워요. 그 바람을 쏘이며 자갈길을 가느라 보통 시속 15km 내외로 가는데 거기서는 5km도 안나왔어요. 내려서 끌고가기도 하구요. 하지만 이런 척박한 곳에서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경이로움을 느꼈어요.

에피소드1. 어른이 있는 사회 독일, 잘못은 지적하고 필요한 도움은 확실히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해요. 장례식, 결혼식, 자기들끼로 모여 다투고 있는 곳. 그런 곳을 구경하다가 거기서 친구가 돼서 그 사람 집에서 하루 자고 가기도 하고. 여행 일정을 그런 식으로 잡아서 가기 때문에 사람 속에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나라별로 많아요.

그 중에서 부끄럽고 혼이 났던 일은 독일에서 무심코 횡단보도를 약간 스쳤는데 할머니가 나를 붙잡더니 '저전거길로 가든지, 내려서 끌고 가든지 하라'며 나무라셨어요. 얼굴이 화끈해져서 잘못했다 사과하고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갔어요. 그리고 하이델베르크쪽 내려가는 남부 시골에서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산책하던 할아버지에게도 혼이 났지만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셔서 독일에서는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거기 노인들은 여행자들에게 잘못된 것들은 지적하지만 또 필요한 도움에는 굉장히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을 보고 여기는 어른이 있는 사회이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려는 자세가 되어 있는 곳이라고 느꼈어요. 저도 한국에 와서 외국인이 길을 물어보면 따라가며 가르쳐 주거나 지도로 정확하게 알려주는 습관을 거기서 배워서 갖게 됐어요.

파미르의 내리막에서 넘어져
파미르의 내리막에서 넘어져

에피소드2. 파미르 길 위에서 만난 의사

파미르에서 내리막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심하게 넘어져서 못 일어났어요. 운이 좋아 다행히 지나던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의사였어요. 골절은 없었는데 타박상이 심했어요. 날은 무진장 덥고 상처가 따가웠는데 그 사람이 차에서 커다란 붕대를 가지고 와서 몸에 다 감아주더라구요. 그 덕분에 3차례 시도해서 가게 된 파미르를 완주 할 수 있었어요. 또 한 번의 천사를 만난거죠.

에피소드3. '백의의 천사'를 만나 따뜻한 호텔에 지친 몸을 누이고

노르웨이 베르겐을 갔을 때 비가 많이 와서 저체온증으로 온몸이 떨리고 너무 추웠는데, 숙박비가 비싸서 와일드캠핑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캠핑할 자리를 찾고 있는데 누군가의 ’태극기다‘라는 한국 말이 들렸어요. 제가 자전거 뒤에 태극기와 방문국의 국기를 달고 다니거든요. 해외 취업한 우리 간호사들을 만난거에요. 그 팀 중 한 사람이 먼저 돌아가서 방이 하나 비니 쓰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픈 몸을 편히 쉴 수 있었죠. 그런 백의의 천사를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만날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에피소드4. 영국 여행자에게 신발 한켤레를 후원받다

터키에서는 아주 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길가 가로수 사이에 텐트를 치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신발이 없어졌어요. 아마도 개가 물어 간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슬리퍼를 신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영국 여행자 한 명이 ’너 신발이 왜 그러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사연을 얘기했더니 ’괜찮다면 내가 너에게 신발 값을 후원해도 되겠냐‘고 하는 거에요. 제가 그때 여행 7개월째 되던 때라 감사히 받아 신발을 샀어요. 

Q. 그렇다면 주로 잠은 노숙을 하나?

와이프가 저에게 노숙자라고 해요. 와일드캠핑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행비 절약을 위해서고 또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싶어서에요. 유럽은 예약문화잖아요. 호텔이나 캠핑장도 사전예약을 해야 하는데 자전거가 고장 나기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자유롭게 다니니까 일정을 맞추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오후 4~5시경쯤 되면 잠자리로 어디가 좋을지 살펴보며 가는데, 개울가와 다리 밑이 캠핑하기엔 최고에요. 목욕도 할 수 있고, 세탁도 하고, 누가 와서 괴롭히지도 않구요.

<2편으로 이어짐>

(파미르고원에서 와일드캠핑)
타클라마칸 사막의 구릉에서 와일드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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