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⑨] 시와 함께 산 91년···이생진시인 망백기념 전시회

천건희 기자
  • 입력 2020.08.05 18:14
  • 수정 2020.08.07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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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진시인 망백기념 전시회 포스터)

【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실제로 건강 수명은 70세를 넘지 못한다고 한다. 그만큼 70세 이후의 삶을 건강하게 보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러한 통계적 현실과는 상관없이,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끊임없이 창작의 열정을 쏟아내는 시인 이생진 선생님의 모습은 경이로움을 넘어 무한한 존경심을 갖게 한다.

그동안 독자들의 마음을 정화시켜 온 시인 이생진 선생님의 시구가 지난해 가을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을 통해 또다시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다.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올해 이생진 선생님은 백세를 바라본다는 망백(望百, 91세)의 나이이다. 이를 기념해 지난 8월 3일 도봉문화정보도서관에서 <시와 살다> 특별전시회가 열렸다. 이번 특별전시회는 이생진 선생님이 직접 들려주는 자작시 낭송 시간이 마련되었는데, 함께 참여한 지역주민들 뿐 아니라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시어 하나하나에 무심한 듯 스며들면서 청중의 마음을 움직였다.

자그마한 체구에 91세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이생진 선생님은 지팡이 없이 무대에 섰다. 그리고 여리지만 전달력 있는 목소리로 기타 선율에 노래하듯 ‘어머니의 숨비소리’, ‘그리운 바다 성산포’ 등을 낭송했다. 이어서 이생진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 낭송이 있었다.

(시낭송하는 이생진 시인, 촬영=천건희 기자)

특히 이생진 선생님이 1976년 보성중학교에서 가르쳤던 제자와의 만남은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었다. 반백이 되어 나타난 60대 제자는 본인보다 너무 작아진 은사님을 꼭 안아 드렸다. 그리고 시집과 스케치북을 꼭 지니고 다니시며, 나무젓가락으로 그림을 그리셨던 이생진 선생님의 중3 담임선생님 시절 일화를 전하며 추억에 젖기도 했다.

(스케치북에 그린 거문도, 백도 등대 풍경)

시인 이생진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3,400여개의 섬 중 1,000여 개를 다니시며 섬과 바다를 노래한 대표적 원로시인이다. 현재까지 시집 38권, 산문집과 편저 10권 등 50여 편이 출판됐다. 놀라운 것은 1955년 첫 시집 출판 이후 구순(九旬) 나이셨던 지난해에도 시집 <무연고(無緣故)>를 출판했다.

섬과 바다, 사랑에 이어 시인은 예술가들의 자취가 가득한 인사동(仁寺洞)의 역사와 지리적 위치를 시로 지어 인사동을 문학사에 기록물로 남기는 작업을 했다. 시인의 인사동 사랑은 ‘갈 곳이 사라지는 시인들을 위한 섬 인사도(島)를 지키기 위해’ 매달 인사동 카페 ‘시가연(詩歌演)’에서 시낭송회를 연다.

(시낭송회 모습. 촬영=천건희 기자)

이번 시인 이생진 망백 특별전시회 <시와 살다>는 오는 8월 31일까지 열리며, 이생진 선생님의 시와 직접 그린 스케치 작품, 첫 시집 초판본 등 귀한 소장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현장 관람이 어려운 분들을 위한 온라인 전시도 도봉문화정보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전시 관람뿐만 아니라 이생진 시인의 작품 필사, 스케치 작품 컬러링 체험부스 등 다채로운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다.

(시집 전시 모습. 촬영=천건희 기자)
(시집 전시 모습. 촬영=천건희 기자)

이번 전시는 도봉문화정보도서관이 구민들에게 시 문학을 통해 새로운 문화 활력을 주기 위해 도봉구 방학동에 거주하고 있는 향토 작가인 시인 이생진 선생님의 특별전으로 기획했다. 도서관마다 책은 있지만, 도서관의 힘을 만드는 건 사람이다. 지역 주민들을 행복하게 하고, 성장시키는 일에 묵묵히 헌신하는 분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도봉문화정보도서관에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이생진시인 관람객과 담소. 촬영=천건희 기자)

시인 이생진 선생님의 건강비결은 하루 1만5000보 걷기라고 한다. 올레길이 생기기도 전에 제주 걷기 일주를 하고 요즘 유행하는 ‘제주도 한 달 살기’도 먼저 시작했다. 지금도 매일 책을 읽고, 한 편의 시를 쓴다.

“인생이 길어야 예술도 길어진다”고 말하는 시인은 삼시 세끼를 본인 손으로 직접 챙기고 설거지까지도 한다. 남한테 의존하면 죽음이 점점 가까이 오는 법이라고.

섬에 대한 시들과 스케치 작품들로 여행을 다녀온 듯 설레고 행복한 전시회였다. 따뜻하고 열정이 있는 이생진 시인의 100세 기념 특별전시회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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