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50] 친구의 부음

오은주 기자
  • 입력 2020.12.04 10:15
  • 수정 2020.12.1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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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고등학교 친구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웬만하면 문자나 카톡으로 보내는 시절에 직접 전화라니, 길게 의논할 일이 생겼나 싶었다. 그런데 친구는 충격적인 내용을 전했다. 또 다른 친구 경환이가 죽었다는 것이다.

“뭐야? 언제 교통사고를 당한 거야? 경환이는 몇 달 전에 부모님이 아파서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했잖아? 고향에 잘 있는 거 아니었어?”

그게 아니고, 실은 6개월 전쯤에 폐암 진단을 받았고, 수술을 할 수 없는 말기상태라 그냥 부모님댁에 머물며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삶을 정리하고 떠났다는 것이다. 중식씨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제 겨우 59세인데... 그리고 그 친구 경환이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는데 돌연 폐암말기라니, 이건 말도 안 돼. 누군가에게 마구 종주먹을 들이대거나 항의하고 싶었다. 빈소가 어디야, 빨리 문상 가야지 하는 중식씨의 말에 친구는 한숨을 길게 쉬었다.

“더 기가 막힌 일이 있어. 코로나로 빈소도 안 차리고, 가족 이외에는 알리지도 않았대. 경환이의 뜻에 따른 거래. 화장해서 고향 선산에다 평장으로 묘를 썼대.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냐?”

중식씨는 갑자기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59세가 병으로 돌연히 죽을 수도 있는 나이라는 것을 이제 정말 실감해야 했다. 작년 가을, 부인과 떨어져 혼자 살던 친구의 죽음을 직접 목격할 때만 해도 아주 특별한 예외려니 생각했다. 주변에서 또래 친구가 죽은 게 처음이라 얼떨떨하고 무언가 현실 방망이 같은 것으로 한 대 세차게 맞은 기분이었다. 그 친구는 대전 소재 모 대학 교수인 부인이 금요일에 서울로 와서 같이 지내다가 일요일 오후에 지방으로 내려가는 생활을 20년째 계속 하고 있었다. 동갑인 부인이 대학교수로 정년을 할 때까지는 그런 생활을 할 요량이었고, 친구는 참으로 건강한 편이었다.

그런데 문제의 일요일 오후에 친구부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부인은 일요일 점심까지 같이 먹고 대학교가 있는 대전으로 내려왔고, 잘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냈는데, 남편이 읽지를 않았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서 걱정이 되니 남편이 있는 집으로 좀 가봐 달라는 것이다.

중식씨가 사는 아파트와 친구가 사는 아파트는 큰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금방 가 보았다. 친구가 사는 현관문 앞에서 전화를 걸자, 안에서 벨소리가 들려왔는데 받는 기척이 없었다. 현관 벨을 누르고 두드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갑자기 소름이 돋으며 관리사무실에 연락해서 문을 강제로 열게 되었다. 친구는 소파와 탁자 사이에 쓰러져 있었다! 119가 왔지만 이미 친구는 숨을 거둔 상태였고,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참으로 돌연하고 허망했다.

친구들은 믿을 수 없어하며 빈소에서 허탈한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런데 경환이 이 친구는 아무리 코로나 전쟁 중이라지만, 소주 한 잔 따르며 이별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황망히 떠나간단 말인가! 100세 시대라는데, 59세가 이런 식으로 친구들의 돌연한 죽음이 시작되는 나이인가? 중식씨는 “친구의 죽음은 너도 죽는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라는 경구를 떠올리자 이번에는 머리가 멍해졌다. 그러나, 그러나……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음 사이에 “죽음은 다른 사람에게나 있지, 내게는 없다”라는 모든 인간의 오랜 이기심이 한쪽에서 피어나는 건 또 어쩐 일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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