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51] 겨울 나들이

오은주 기자
  • 입력 2020.12.28 11:1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진우씨는 사방이 막혀버린 듯 답답했다. 진우씨는 이른 나이인 50대 중반에 증권회사에서 퇴사를 하고 서울의 한 대학교 앞에서 1인 카페를 차려서 운영하고 있었다. 아내가 어린이집 영양사로 일하는 터라 생활비 걱정은 크게 없었지만, 취미로 배워둔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어서 용기를 내서 테이크아웃만 전문으로 하는 비좁은 가게를 냈다. 그런데 코로나 여파로 대학교의 비대면 수업이 늘어나면서 학교 앞을 오가는 학생수가 확 줄어서 장사는 1년 내내 여의치 못했다. 테이크아웃만 하는 초소형 가게라 월세가 그리 세지는 않았고, 카페 착석 금지에도 버틸 만은 했는데, 겨울방학도 시작된 터라 아예 대학교 앞은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시피 한 지경이라 이참에 봄 신학기까지 가게를 쉬기로 했다.

어린이집도 휴원 상태라 졸지에 아내랑 집에서 둘이 지내게 됐는데, 처음 며칠은 텔레비전 영화도 같이 보고, 동네산책도 하면서 오붓한 마음도 생겼는데 곧 시큰둥해져 버렸다.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친구도 못 만나고 등산도 가지 못했다. 친구들이랑 서울 근교에서 3~4시간 등산을 하고 나서 산 밑의 식당에서 막걸리에 두부를 곁들여서 먹는 게 큰 즐거움인데, 같이 밥을 먹지 말라는 게 방역지침이다보니 이젠 등산도 가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아내 역시 세 끼 밥을 꼬박 해먹으며 집에 있자니 따분했는지 한 가지 제안을 해왔다.

“여보, 우리 공기도 맑고 사람도 없는 곳으로 가요.”

“요즘 그런 데가 어디 있어?”

“부모님 산소요! 우리 이번 기회에 양가 부모님 산소에 다녀옵시다. 다행히 양가 부모님계신 공원묘지가 서로 그리 멀지도 않으니까요.”

그럴듯했다. 이럴 땐 아직 자가용을 가지고 있고 운전을 한다는 게 편리하긴 했다. 먼저 경기도 쪽인 진우씨 부모님 산소가 있는 공원묘지로 차를 몰았다. 가끔 차창을 열면 들어오는 겨울바람이 차면서도 더없이 신선했다. 아내의 예상대로 한겨울의 공원묘지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진우씨와 아내는 모처럼 부모님의 묘소 앞에서 발열체크와 큐알코드 체크도 없고 심지어 마스크도 벗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한겨울이지만 전체 묘소가 남향을 보고 앉은 공원묘지는 고즈넉하고 안온한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묘소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군락들이 세상의 모든 소란을 차단하며 묻힌 자들에게 안식을 주고 있는 듯 했다.

진우씨는 돌아가시기 직전 대보았던 어머니의 뺨을 만지듯 부모님 무덤의 잔디를 쓸어보다가 살며시 놓았다. 아내는 보온병에서 커피를 따라서 묘소 앞에 놓고 진우씨에게도 한 잔을 주었다. 맑은 공기 속에서, 살아계신 듯 부모님의 훈기를 느끼며 마시는 한 잔의 뜨거운 커피는 모든 공포와 시름을 잠시나마 떨치게 해주었다. 아무튼 생은 이렇게 부모로부터 자식으로 무연히 계속된다는 엄숙한 진리 또한 뜨거운 기운으로 스며들어 왔다. 부모님의 산소가 잠시라도 휴식의 장소가 되다니 역시 죽어서도 부모는 자식을 위한 존재인가 싶었다.

“원두커피 좋아하시던 멋쟁이 아버님, 따뜻한 커피 한 잔 드십시오. 오늘 이 겨울, 세상이 참 소란스럽습니다. 그래도 아무튼 자손들은 살아갑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진우씨는 코로나 시절이 가져다 준 의외의 외출에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었다.

“자, 이제 장인 장모님이 잠들어 계신 공원묘지가 있는 춘천 쪽으로 갑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