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⑯] 무아(無我)의 아름다움 ‘김영택 펜화전’을 다녀와서

천건희 기자
  • 입력 2021.01.22 16:29
  • 수정 2021.01.2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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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축하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가는 곳이 전시회인데, 너무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는 전시회도 있다. 지난 1월 20일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고(故) 김영택 화백의 펜화전 개막식에 다녀왔다. 김 화백은 자신의 펜화 작업 30년을 정리하는 개인전을 일주일 앞둔 1월 13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자랑스러운 특별 개인전은 유작전이 됐다.

전시회장 앞, 한국펜화가협회에서 보낸 축하화환의 글 ‘기억하겠습니다’가 크게 보였다. 전시회장 안에는 김 화백이 본인을 그려 넣은 캄보디아 따프럼 사원에서의 펜화가 크게 제작되어 사람들을 반기고 있고, 대표적 펜화 작품 40여 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1994년 경복궁 경회루 연못의 초기 작품부터 청계천 수표교 복원화, 병산서원 만대루 등의 우리나라 작품과 노르망디 몽생미셀 수도원과 런던 타워브리지, 나고야 이누야마성 등 세계건축물을 그린 작품도 전시되어 있어 코로나로 여행이 제한된 우리들을 위로해 주는 듯 했다.

수표교 복원화 / 촬영=천건희 기자
수표교 복원화 / 촬영=천건희 기자

개막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축사가 조사가 될 줄 몰랐다며 아쉬워했으며, 음악인 장사익 선생이 반주도 없이 천상병 시인의 ‘귀천’ 노래를 불러주어 애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중에서

펜화는 펜을 사용해 외곽과 선의 복합으로 이미지를 표현한 그림으로 흑백이 전하는 무게감과 세밀함으로 마음에 깊이 남는다.

세계에서 가장 가는 펜촉의 굵기는 0.1mm라고 하는데, 김 화백은 이 펜촉을 사포로 갈아 0.05mm로 만들어 사용했다. 작품 하나 완성하는데 많게는 80만 번 선을 무념무상으로 한 획 한 획 철필을 그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전시장 안에는 김 화백이 직접 사용했던 펜촉과 펜대가 전시되어 있어 관람자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김 화백의 작품은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중앙일보>에 ‘김영택 화백의 펜화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작품이 연재되었는데, 이렇게 직접 원화 작품을 보니 감동 그 자체였다.

색도 없이, 얇은 선 수십만 개가 모여 만들어진 김 화백의 건축물에는 품위가 느껴진다. 크게 확대된 작품에선 선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있는 듯 느껴졌다.

김 화백은 광고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쳤으나, 나이 오십이 되었을 때 서양 펜화를 접하고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펜화를 독학으로 익힌 뒤, 기록 펜화 장르를 개척했으며 역사적 고증을 거쳐 우리 전통 건축물과 세계문화유산을 펜화로 복원하는 업적을 남겼다. 황룡사 9층 목탑, 숭례문, 로마 콜로세움도 김 화백의 작품으로 복원됐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김 화백의 호는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샘처럼 쏟아낸다는 뜻인 ‘늘샘’이다.

김 화백은 인간의 시각이 사진이나 서양화의 원근법과는 다르게 중요한 사물은 더 크게 기억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은 ‘김영택 원근법’으로 알려진 사진보다 더 실물같이 느껴지고 한국화를 보는 듯한 한국적 펜화를 만들었다.

김 화백은 우리 건축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펜화에 담아 전 세계인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전국을 돌며 한국 전통 건축물 도록을 만들었다. 저서로는 『펜화로 읽는 한국 문화유산』, 『멋진 세계 문화유산』, 『펜화, 한국 건축의 혼을 담다』 등이 있다. 제목만 보아도 김 화백의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느껴진다.

<김영택 펜화전>은 인사아트센터에서 오는 2월 15일까지 이어진다.

전시 벽면에 쓰인 김 화백의 바람대로 무아의 아름다움으로 행복한 관람이다. 김영택 화백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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