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㊵]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를 마라8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2.19 17:43
  • 수정 2021.02.20 13: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를 마라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를 마라
어디에 사느냐고 묻지도 마라

그대들이여 잘 가라.
한 시절 좋은 인연이었다.


여기서 받은 기운들이,
앞으로의 수행에 큰 힘이 되기를 

 

(탁밧 행렬. 촬영=윤재훈)
(탁밧 행렬.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타일랜드의 위파사나 멍크들에게는 두 가지 수행환경이 있다. ‘담마 유타’와 ‘마하니카야’이다.

어두운 노란색 가사를 입은 ‘담마 유타(Thammayutta, 팔리어Arayya Vasi)’는 위파사나 명상(Forest Monk vippasa) 수행을 하며, 하루 한 끼만 먹는다.

화려한 금란가사를 입은 ‘마하니카야(mahanikaya, 팔리어Kama vasi)’는 붓다의 말씀인 경전을 공부하여, 중생들에게 그 가름침을 펼친다. 한국 조계종의 수행풍토 속에 산 속에서 선수행만 하는 ‘이판(理判)’과 절에서 주지 업무를 보는 ‘사판(事判)’을 보는 듯하다.

또한 이곳에는 5개의 붓다가 있다. 첫 번째가 Kaku Santho, 두 번째가 Kona Kamano, 세 번째가 Kassapo 붓다라고 한다. 현재는 네 번째인 Kotamo(age 80 years) 붓다의 시기라고 한다. 그리고 Ariya Mettri(after 80,000 years) 붓다로 미래불(佛)이라고 한다.

(잊혀진 고향. 촬영=윤재훈)
(잊혀진 고향. 촬영=윤재훈)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오전에 인근 깔리양 마을에 <파빠> 행사가 있어 아잔과 멍크들이 길을 나섰다. 이곳을 올 때 지나왔던 위앙 파파오(Wiang papao)를 거쳐 험한 산길 비포장 도로로 현대 카니발 9인승을 타고 갔다. 한국산 차의 등판능력은 이곳에서도 좋다. 험한 오르막 길을 탄력도 받지 않고 정원을 다 채운 채, 가볍게 올라간다. 새로 절을 지어 <파빠> 행사를 할 모양이다. 벌써 나무로 골격은 다 세우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멍크들과 함께 마을을 한 바퀴를 돈다. 어디를 가던 멍크는 존경의 대상이다. 사람들은 공손하게 다가와 두 손을 모두고 인사를 한다. 나이는 상관이 없다. 이 산간의 생활이 한없이 무료한 것 같은 어린 아가씨가, 풀밭에 홀로 앉아 사람이 와도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외로워 보인다

아래를 내려가니 나무판자를 잇대어 지은 작은 교회가 하나 보인다. 오지마을로 들어가면 이렇게 사찰과 교회가 함께 있다. 오늘 행사에라도 쓰려는지 아가씨가 바나나잎에 카우니아오(찹쌀밥)를 싸고 있다. 그 옛날 우리의 정개을 닯은 컴컴한 실내에서는, 젊은 아줌마가 카우니아오를 설설 끓은 물 위에서 쪄내고 있다.

모닥불이 피워져있는 공터에는 동네 아저씨들이 둘러앉아 있는데, 깔리양족 마을 같다. 하꼬방 앞에는 대낮부터 사내들이 앉아 독한 깔리양 위스키을 마시고 있다. 아침 한 끼만 먹어 배가 굴풋한데, 떡과 위스키를 준다. 위스키는 집에서 만들어 질도 떨어지고 독하기만 한데, 물을 타 세 잔을 마시고 나니 마오(취기)가 오른다.

벌써 파빠 행사가 끝났는지 멍크들이 내려온다. 마을 사람이 아잔 앞에 무릅을 끓고 말씀을 듣는데, 그 존경심이 정말 대단하다. 저절로 마음에서 울어나오는 것 같은 행동이다.

(노모와 여동생과 아들, 노모가 관을 들여다보고 있다. 촬영=윤재훈)
(노모와 여동생과 아들, 노모가 관을 들여다보고 있다. 촬영=윤재훈)

돌아오는 길에 위앙파파오 시내에 있는 사찰로 들어간다. 스님이 돌아 가셨다고 아잔이 나에게 관을 볼거냐고 묻는다. 늙은 노모와 여동생이 슬픈 눈빛으로 들여다보고, 승복을 입은 철없는 아이는 아들이라 한다.

사찰로 돌아오자 한낮에도 여전히 멍크들 개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위장 청소를 하기 위함인지 나무토막을 갈아놓은 물을 일부로 마신다. 어제 밤에 아잔이 법석에서 팔던 팔찌, 브로치, 반지, 구슬 같은 물건들을, 오늘은 법회 중간에 경매를 해서 판다. 여기저기 멍크와 신도들이 가격을 말한다. 산속에 낯선 풍경이지만 이제는 그들의 전통으로 다가온다.

(화력이 엄청나다. 촬영=윤재훈)

서서히 노을빛이 물들어 오는가 싶더니 산 속의 겨울밤은 빨리도 찾아온다. 이제 한 해의 마지막 불꽃놀이를 시작할 모양이다. 누군가 하늘 위로 불꽃을 쏘아 올리자, 순식간에 절마당에서 폭죽이 터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하늘로 <홈로이>를 날리기 위해 불을 붙인다.

화약들은 성능이 너무 세어 위험하고, 소리가 고막을 가른다. 분수폭약이 사람들 옆에서 산화하는 분수처럼 쏟아내는데, 불꽃이 너무나 크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마당에서 터뜨리는 것이, 아무래도 무지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더욱 낯선 것은 풍등과 화약을 멍크가 가지고 다니면서 판다.

(화약을 판매하는 멍크. 촬영=윤재훈)

밤이 깊어갈수록 폭약 터지는 소리는 더욱 요란하다. 귀가 멍멍하다. 아까부터 약간 술에 취한 듯한 사내가 폭약을 너무 조심성 없이 쏘는가 싶더니, 하늘로 향해야 할 폭죽을 옆으로 들고 쏜다.

급기야 폭죽이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더니 내 앞에 서 있던 멍크의 무릅을 맞고, 다시 거북이 조각에 걸려 터진다. 그 소리가 너무나 커 고막이 상할 정도다. 먹먹한 귀를 비비고 보니 멍크가 쓰러져 있다. 폭약에 살이 패여 상처가 심하고 멍크가 몹시 괴로워한다.

나도 그 옆에 서 있었는데, 만일 거북이 상에 안 막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바로 병원으로 갈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오늘 절에서 만든 오일만 바르면, 갈 생각을 안한다. 다친 멍크는 양다리를 덜덜 떨면서 괴로워하는데, 별 반응들이 없다.

한참을 그러고 있더니 여신도들이 나와 그 앞에 무릅을 끓고 기도를 올린다. 참 무지해 보인다. 꼭 성물을 지니고 있으면 누가 총을 싸도 괜찮다는 사람과 같아 보인다. 누구 한 사람 병원을 가야 한다는 이는 없다. 시간이 계속 흘러가지만 병원은 안 갈 모양이다. 화상에는 빨리 처지하는 것이 최고일 텐데.

다른 사람들은 계속해서 폭죽 올리기에만 여념이 없다. 한참을 그렇게 폭죽과 홈로이를 띄우더니, 이제 한 해의 마무리 법회를 할 모양이다. 11시 30분, 또 악을 쓰듯이 경을 왼다. 저마다 태어난 국토세간의 기근에 따라 종교도 변해 왔을 것이다.

(화상이 심한데 만든 약만 바르고, 신도들이 옆에 앉아 기도를 드린다. 촬영=윤재훈)
(화상이 심한데 만든 약만 바르고, 신도들이 옆에 앉아 기도를 올린다. 촬영=윤재훈)

유사(有史) 이래 세계는 전쟁이 끓일 날이 없고 매일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그 밑바탕에는 대부분 종교가 있다. 모두 자기 마음에 따라 말씀을 호도하며, 인류를 이렇게 전쟁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사람을 행복으로 몰고 가야할 종교 때문에, 세계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종교인을 걱정한다. 신전 안에 숨어서 온갖 기이한 짓들을 한다.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고 하는데, 정말 제대로 들은 것일까? 정말로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오직 인류을 위해서만 들었을까? 커다란 건물 안에서 좋은 차를 몰며 돈에 연연하는 성직자들은 모두 가짜다. 가난한 사람들의 고혈을 짜 얼굴에는 기름이 흐르고 배가 나온 성직자들은, 신뢰할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허상을 쫒는다. ‘말씀만 믿어야 하는데, 사람을 믿는다.’ 그러니 항상 항상 속는다. 각자의 기근에 따라 밀물처럼 그 물결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스님이 세밀하게 붓다 목거리를 보고 있다. 촬영=윤재훈)

이곳 사람들도 부처상이나 각종 만다라를 가지고 있으면, 총에 맞아도 괜찮다고 한다. 깊은 신심을 좋지만 너무 신비화되고 맹목적인 신앙이 되면, 사람들에게 항상 불행을 가져왔다. 그 증거가 지금 현대의 종교다. 상대방의 믿음을 경멸하고, 나와 다른 종교의 신자는 죽여야만 할 대상으로 치부되어 왔다.

TV 극들도 그런 식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만다라를 가지고 있으면 총에 맞아도 멀쩡하다. 언제부턴가 믿음은 사라지고, 맹목적인 무지함만 남아 있는 것이다.

(수행자는 무슨 소망으로 풍등을 띄울까. 촬영=윤재훈)

마침내 새해가 밝아온다. 법회도 끝나고 이제 사람들은 열에 들떠 더욱 폭약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여전히 화력은 너무나 세고 고막이 먹먹한데, 모두들 들떠있다. 마치 나만 떨어져 ‘이상한 나라 엘리스’에라도 온 기분이다. 

밤새 들었던 폭죽 소리가 새벽 5시쯤부터 다시 울린다. 동자승들이라도 쏘는지 동이 틀 때까지 간간이 터지는데, 역시 소리가 너무 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아잔과 대부분의 멍크들은 치앙마이로 새해맞이 행사를 떠나 절 마당이 쓸쓸한가 싶더니, 신도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법회가 시작되고 새해 아침에도 밧(B) 소리는 여전히 끓이지 않는다. 아주머니가 1,000B(40,000원)을 들고 있다. 새해를 맞아 큰 돈을 공양할 모양이다.

갑자기 멍크들의 입에서 <아지노모또>라는 말이 연달아 나온다. ‘맞다, 옛날에 우리의 식탁에서도 저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식탁에서는 ‘미원, 미소’가 사라진 듯하다.

대부분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라오스, 미얀마 등, 인근에서 온 승들이다. 그러니 나는 한국대표로 참가한 셈이다. 그만큼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진다. 멍크들이 타이 북부에서는 90세 아잔통(큰스님, 통한 스님)이 비파사나 수행자 NO 1이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겨든다. 나에게 하얀 목거리 선물을 준 80세 <루앙포 짤란 멍크>가 두 번째라고 한다.

아잔도 없는 사원은 약간 조용하다. 오늘 밤에는 <찌공 멍크>의 영혼이 깃들었다는 스물세 살 대학생이, 늦은 시간 멍크들에 둘러쌓여 궁금한 점을 상담해 주고 있다. 멍크들이 서로 손을 잡고 명상을 하며, 아직 젊은 스님 한 사람이 돌면 기를 넣어준다. 나이 든 멍크들이 어린 그와 상담을 하려고 줄을 서 있다.

그 옛날 찌공에게도 그랬듯이, 더 나이 들어보이는 멍크가 대학생 옆에 앉아, 계속 차를 따라주고 있다. 그는 마치 혼이 들어와 있듯 손을 떨면서, 멍크들의 끝없는 질문에 대답을 해준다.

오는 해니 가는 해니 분별하지 말게

날이가고 달이 가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한 해의 액운은 훨훨, 새해의 소망은 쑥쑥, 촬영=윤재훈)
(한 해의 액운은 훨훨, 새해의 소망은 쑥쑥, 촬영=윤재훈)

신년을 맞은 세계에서도 폭죽들의 소비가 엄청난 모양이다. 다른 나라들을 비해 일찍 새해를 맞는 호주의 시드니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불꽃놀이가 벌어졌다.

특이한 것은 군사정권에 의해 새해맞이 행사가 금지됐던 미얀마에서도 불꽃 축제가 열려 개혁·개방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아웅산 장군의 딸로 초대 국가고문을 맡으며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아웅산 수치는, 세계인의 염원과 달리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탄압해 많은 실망을 안겨 주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수도 두바이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칼리파(828m)의 벽면에서는, 폭죽이 쏟아져 나오는 장관을 연출했다.

몇몇 유럽 국가는 경제위기를 의식해 차분하게 새해를 맞이했으며, 프랑스 파리는 정부가 폭죽 사용을 금지한 탓에 밋밋한 분위기였다.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는 그리스에서는 안토니스 사마라스 총리가 TV연설을 통해, 고비는 지나갔고 새해는 희망의 해가 될 것이라며 국민을 위로했다.
교황도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신년 전야 미사를 집전하고, 일상의 사색과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를 호소했다.

(새해를 맞아 마을 사람들이 낮술이라도 즐기는 걸까. 촬영=윤재훈)
(새해를 맞아 마을 사람들이 낮술이라도 즐기는 걸까. 촬영=윤재훈)

소승불교는 고기를 먹으니 신도들이 정성껏 가져온 고기가 사원에 넘친다. 매끼 나오는 공양이 참으로 풍성하고 귀하다. 오랜 세월 불교가 국교로 내려온 동남아 나라들은 스님에 대한 신심이 참으로 깊다. 공양이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사원에 올 때마다, 뭔가를 꼭 신전에 올린다. 어떨 때는 아잔은 매일 저렇게 많은 돈을 만지니 세간의 눈으로 보면, 성불과는 멀어 보일 때도 있다.

양심에서 ㅇ을 빼면 야심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양심을 빼내 버리면 욕망뿐이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원력이 참으로 대단한 불사를 이루었다.

어느 나라를 가든 환경에 대한 개념이 없다. 사원은 좀 다를까 했지만, 똑같다. 가는 곳마다 비닐과 각종 세재들이 넘쳐 나지만, 아무 곳에서나 태우고 버리는 인간의 이 이기심을 어찌할까?

코로나가 온 지구촌을 휩쓸면 몸살을 앓아도

경제에만 목소리를 높일 뿐,

당장 죽어가는 삶의 터전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다.

코로나가 벌써 한 해를 넘어가고 있다.

저녁 무렵 동자와 멍크들이 절 밑 개울가에서 목욕들을 하고 돌아간 자리에도, 세재 냄새가 진동한다. 특히나 이곳은 빨래 등에 향수 세재를 많이 써 더욱 지독하다. ‘편리와 풍요’로 달려가는 인간의 문화가 왜 이렇게 환경에는 무지하기만 한가.

생태적 삶의 개념조차 없고, 개발과 발전, 먹고 사는 문제가 급하다고 항변을 하지만,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한 번만 돌이켜 보면 인간과 환경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무너지면 우리의 삶도, 후손들도 이 초록별에서 살 수가 없다.

어느 곳을 가나 왓(Wat.사찰)은 보통 마을 안쪽에 있고, 생노병사를 비롯한 마을에 대부분의 일들을 다 주관하니, 사찰 문화가 우리와 다르다. 나아가 이 나라는 한 번도 식민지가 된 적이 없다. 왓이 삶의 중심이 되어 잘 이끌어 온 것이, 그 원동력이라도 되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왕과 총리들이 줄타기 외교라도 잘했던 것일까?

동자들과 스님들이 모여앉아 TV를 보는데 그 내용이 아주 잔인하다. 특히나 어린 아이들에게 왜 저런 내용을 보여 주어야 하나, 절로 고개가 돌려지게 한다. 명상 CD라고 하는 데, 몸은 덧없는 것이라는 인식이라도 심어주기 위함일까?

극단을 내려가야 튀어 오르는 공처럼, 잔인한 묘사, 나아가 인간 경시풍조까지 느껴지는 피, 붉은색들. 불도의 방식은 그 기근에 따라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한국의 선수행처럼 고요하고 정적인 느낌은 덜 한 것 같다. 동자들이 쵸코렛 분말, 설탕, 프림 등을 거의 컵 한가득 채워, 물을 부어 비벼 먹듯이 한다. 무료한 사찰 생활을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이.

이곳에서는 10~20살 사이에 동진(童眞) 출가 아이들을 노바스(Novice)라 부르고, 20세 이상 되면 멍크(Monk)라고 한다. 동자들은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면 TV들을 자주 모는데, 밤늦도록 모여서 볼 때도 있다.

(가슴은 뜨겁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넘치는 동자들. 촬영=윤재훈)
(가슴은 뜨겁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넘치는 동자들. 촬영=윤재훈)

물론 이것이 위파사나 불교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멍크 친구와 타일랜드를 만행하면서, 비 오는 날 어느 산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비파사나 명상에 전념하는 멍크를 만난 적이 있다. 솔바람 향기가 나는 눈밝은 선승들은 아직 네가 기근이 안되어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100년에 한번식 내려온 선녀가 스란치마를 입고 스쳐 가는 바위, 그 바위가 다 닮아 없어지면 만날 수 있다는 ‘인연’처럼 말이다. 자연적이고 구도적인 삶을 꿈꾸는 이들도 어디에나 있을 것이다.

아침부터 멍크들이 모여 나무를 쪼개고 치우느라 바쁘다. 멍크들이 매일 개우면서 먹었던 <터농뎅> 허브hurb 나무, 그 옆에 있는 나무를 타서 마시면 그 효과가 두 배로 상승한다고 한다.

갑자기아잔이 나에게 커피를 타준다고 방에서 커피 봉지를 두 개 내오면서, 저쪽에 잠깐 같다 오라고 한다. 나는 그의 말이 고마워서 다녀오니 커피를 주면서 마시라고 한다. 따뜻하지도 않고 맛도 없어 반쯤 마셨더니, 아잔이 어서 먹으라고 손에 쥐어준다. 다 먹고 나자 자기처럼 물로 행궈서 또 마시라고 준다.

아잔의 마음 써줌이 고마워서 마시는데, 아잔이 웃으면서 춤을 추고 난리다. 나는 걸림이 없는 멋진 중이라고 생각하며 돌아오니, 옆에 있는 멍크들이 커피에 터농뎅을 탔다고 한다. 장난기 있는 아잔에게 기어코 한 번 당하고 말았다. 옆에 있던 친절한 멍크 포poj가 큰 물병을 세 병 챙겨주면서, 수시로 마시라고 한다.

2~30여분 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속이 매스꺼워 오면 목이 따금거린다. 동자들이 공부하는 교실에서 참고 글 정리를 하고 있는데, 점점 뭔가 차오르는 느낌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까지 올라와 화장실로 가 시원하게 게워버렸다. 이것이 내가 매일 개우는 멍크들을 보면서 혹시 낮술이라도 마셨나 오해했던, 그 결과이다

계속해서 목이 따금거려 물을 마시면서 텐트로 돌아와 나도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러나 계속해서 속은 편하지 않고 설사까지 나온다. 멍크들은 얼마나 불편했을까, 화장실에 가 속옷까지 빨았다. 오후가 되자 속이 약간 편해져 사원 학교(Temple school) 영어 선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현재 이 사찰에 기거하는 동자의 수는 33명이라고 한다.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 촬영=윤재훈)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 촬영=윤재훈)

한 해가 가고 새해도 벌써 이틀이나 지났다. 이제 그동안의 인연들을 뒤로하고 회향식를 하는 날이다.

여기서 멀지 않은 통(Theong)에서 트럭을 몰고 남자 신도 4명이 3명의 스님을 모시러 왔다. 이곳에서 가장 높은 도이(산) 안타논 가는 길에 있는 절에 기거한다는 스님들이다. 누군가는 그 근처에 있는 타일랜드 북부 지역(North Tai)에서 수행이 가장 높다는, 아잔통 멍크가 계시는 왓 파타시 좀통<Wat phatasi jomtong>에 가서 수행을 할 모양이다. 나도 그곳에서 명상을 한 적이 있는데, 북부지역에서 외국인을 위한 가장 큰 위파사나 수행도량이 있다.

 

이 말과 저 말이 달리 보여도,

모두 하나를 말씀하셨을 것이다.

예수도, 붓다도, 무함마드도,

단지 중생들이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았을 것이다.

 

저마다의 길로 돌아가는 시간, 10일간의 집중 수행을 마치고, 올 때처럼 미니 트럭을 타고 자신의 사찰로 떠나간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를 마라
어디에 사느냐고 묻지도 마라

그대들이여 잘 가라.
한 시절 좋은 인연이었다.

여기서 받은 기운들이,
앞으로의 수행에 큰 힘이 되기를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