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㊺] 코카서스 3국을 가다 11_'백만 송이 장미의 나라', 조지아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3.18 15:24
  • 수정 2021.03.2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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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송이 장미의 나라', 조지아

세계의 통로, 실크로드를 지나면 생각이 많아진다.
하늘이 준 이 아름다운 자연의 비경과 푸르른 하늘,
그 아래 평화로운 지상.

오랜 인류의 역사를 생각하면, 햇빛과 바람, 비에 풍화되어
땅에 파묻힌 인류의 문명은, 많은 영감과 반성을 불러온다. 

(러시아풍 건물이 즐비한 푸시킨 공원앞 자유광장, 황금빛 성조지아 상. 촬영=윤재훈)
(러시아풍 건물이 즐비한 푸시킨 공원앞 자유광장, 황금빛 성조지아 상.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기자] 갑자기 어디선가 <백만 송이 장미> 노래가 나온다. ‘그때 그 사람으로’으로 대학가요제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심수봉 씨가, 1997에 불러 7080세대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곡이다. 그녀의 물기 어린 목소리는 평생 들어도 좋다. 수십 년 동안 사내들의 가슴을 애타게 했다. 특히 술이 한 잔 취한 우울한 밤에 들으면 더욱 귀에 감긴다. 평생 듣고 사는 고마운 가수 정태춘, 멜랑꼬리 했던 김광석, ‘사랑 했어요’의 김현식, ‘찔레꽃’의 장사익 씨도 마찬가지다.

이 곡이 세계인의 가슴도 울렸나 보다. 끊임없이 전 세계 가수들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심수봉씨는 화가와 여배우의 사랑을 노래하는 러시아 판이나, 일본어의 가사들과는 전혀 다르게 쓰였다는 것이다.

원래 작사된 가사들에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가사를 쓰고 있어 더욱 좋다. 본인도 스스로 작사했으며, 작업한 것 중 최고라고 자찬한다니, 관객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는 듯하다. 다만 약간의 내용이 러시아에서 번안한 가사에 일부 영향을 받은 듯도 하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을 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 나라로 갈 수 있다네……,”

 

(러시아처녀와 동화속 같은 성 바실리대성당. 촬영=윤재훈)
(러시아처녀와 동화속 같은 성 바실리대성당. 촬영=윤재훈)

원본은 '백만송이 장미'와 전혀 다른 내용으로 라트비아가 처한 지정학적 운명과 비극적 역사를 모녀 관계에 빗댄 것이다. 지모신이자 운명의 여신 마라(Māra)가 라트비아라는 딸을 낳고 정성껏 보살폈지만, 가장 중요한 행복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그냥 떠나 버렸다. 그 때문에 성장한 딸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독일과 러시아의 침략과 지배라는 끔찍한 운명 앞에 놓이게 된다.
2002년 라트비아의 힙합 가수 오졸스(Ozols)가 자신의 앨범 'Augstāk, tālāk, stiprāk'에 랩을 가미해 부르기도 했다.

(왼쪽부터 클레믈린 궁, 동화의 성 바실리대성당, 굼 백화점. 촬영=윤재훈)
(왼쪽부터 클레믈린 궁, 동화의 성 바실리대성당, 굼 백화점. 촬영=윤재훈)

이 노래의 원곡은 발트 3국에 가운데 있는 라트비아에서 부른, '마라가 딸에게 준 삶(Dāvāja Māriņa meitiņai mūžiņu)'이라는 노래이다. 1981년 라트비아가 당시 소련 치하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었을 때, 한 방송국이 주최한 가요 콘테스트에 출전한 ‘아이야 쿠쿨레(Aija Kukule), 리와 크레이츠베르가(Līga Kreicberga)’가 불러 우승을 차지했다. 작곡은 라이몬즈 파울스(Raimonds Pauls)가 작사는 레온스 브리에디스(Leons Briedis)가 했다.

dāvāja Māriņa
마라가 준 인생


Kad bērnībā, bērnībā
내가 아주, 아주 어릴 적에
Man tika pāri nodarīts
지치고 힘들어 할 때
Es pasteidzos, pasteidzos
난 다급히 서둘러서
Tad māti uzmeklēt tūlīt
엄마를 찾았었지
Lai ieķertos, ieķertos
난 꽉 붙잡았었지
Ar rokām viņas priekšautā
엄마의 앞치마를
Un māte man, māte man
그러자 엄마는 나에게
Tad pasmējusies teica tā
웃으며 말씀하셨지

Dāvāja, dāvāja, dāvāja Māriņa
주었지, 주었지, 마라는 주었지
Meitiņai, meitiņai, meitiņai mūžiņu
소녀에게, 소녀에서, 소녀에게 생명을
Aizmirsa, aizmirsa, aizmirsa iedot vien
잊었네, 잊었네, 한 가지를 잊었네
Meitiņai, meitiņai, meitiņai laimīti
소녀에게, 소녀에게 행복을 주는 것을

Tā gāja laiks, gāja laiks
시간은 흐르고, 흐르고
Un nu jau mātes līdzās nav
엄마는 세상을 떠났지
Vien pašai man, pašai man
오직 나 혼자, 나 혼자서
Ar visu jātiek galā jau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지
Bet brīžos tais, brīžos tais

그러나 이 노래가 정작 세계에 알려지게 될 때는 지배자였던 소련의 가수 ‘알라 푸가초바’에 의해서이다. 그 후 핀란드와 스웨덴, 헝가리, 한국, 일본 등에 번안되어 널리 알려졌다.

이 곡은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가 작사한 것으로, 조지아의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가 넋 놓고 사랑했던 대책 없는 이야기다. 장미의 꽃밭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집을 팔고 그림을 팔고, 채워지지 않자 자신의 피까지 팔았다는 남자. 사랑 하나에 모든 것을 다 걸었던 순애보 같은 사내가, 프랑스 출신 여배우를 짝사랑하게 된 이야기이다. 1982년 싱글판으로도 발매됐다

한 화가가 살았네 홀로 살고 있었지
작은 집과 캔버스를 가지고 있었네
그러나 그는 꽃을 사랑하는

여배우를 사랑했다네
그래서 자신의 집을 팔고,

자신의 그림과 피도 팔아
그 돈으로 완전한 장미의 바다를 샀다네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붉은 장미
창가에서 창가에서 창가에서
그대가 보겠지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사랑에 빠진
누군가가 그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꽃으로 바꿔놓았다오

아침에 그대가 창문 앞에 서 있으면
정신이 이상해질지도 몰라
마치 꿈의 연장인 것처럼
광장이 꽃으로 넘쳐날 테니까
정신을 차리면 궁금해 하겠지

어떤 부호가 여기다 꽃을 두었을까 하고
창 밑에는 가난한 화가가
숨도 멈춘 채 서 있는데 말이야
만남은 너무 짧았고 밤이 되자

기차가 그녀를 멀리 데려가 버렸지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는 넋을 빼앗길 듯한
장미의 노래가 함께 했다네
화가는 혼자서 불행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삶에도 꽃으로 가득찬 광장이 함께 했다네

이 가사에 나오는 진실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다고 하지만, 인간은 믿고 싶은 이야기만 믿는다. 그리고 이 지상에 이런 사랑 하나 있으면 좋겠다. 돌아오는 님을 위하여 온 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달았다는, ‘귀향(Going home)’이라는 소설도 떠오른다. 2018년 러시아 가수 이고르 크리드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기차를 생각하면 1930년대 김영랑과 쌍벽을 이루던. 시문학파의 ‘박용철 시인’의 ‘밤기차로 그대를 보내고’가 생각이 난다.

온전한 어둠 가운데 사라져버리는
한낱 촛불이여.
이 눈보라 속에 그대 보내고
돌아서 오는 나의 가슴이여.
쓰린 듯 비인 듯한데
뿌리는 눈은 들어 안겨서
발마다 미끄러지기 쉬운
걸음은 자취 남겨서.
머지도 않은 앞이 그저 아득하여라.

밖을 내어다 보려고, 무척 애쓰는
그대도 설으렷다.
유리창 검은 밖에 제 얼굴만 비쳐
눈물은 그렁그렁하렷다.

내 방에 들면 구석구석이 숨겨진
그 눈은 내게 웃으렷다.

목소리 들리는 듯 성그리는 듯
내 살은 부대끼렷다.
가는 그대 보내는 나
그저 아득하여라.

얼어붙은 바다에 쇄빙선같이 어둠을
헤쳐 나가는 너.
약한 정 뿌리쳐 떼고 다만 밝음을
찾아가는 그대.
부서진다 놀래랴 두 줄기 궤도를
타고 달리는 너.

죽음이 무서우랴 힘 있게 사는 길을
바로 닫는 그대
실어가는 너 실려 가는 그대
그저 아득하여라.

이제 아득한 겨울이면 머지 못할 봄날을
나는 바라보자.
봄날같이 웃으며 달려들 그의 기차를
나는 기다리자.
「잊는다」말인들 어찌 차마! 이대로 웃기를
나는 배워보자.
하다가는 험한 길 헤쳐 가는 그의 걸음을
본받아도 보자.
마침내는 그를 따르는 사람이라도 되어보리라.

(얼큰하게 취하면 악기를 들고 나오는 모양이다. 촬영=윤재훈)
(얼큰하게 취하면 악기를 들고 나오는 모양이다. 촬영=윤재훈)

일본에서는 1987년에 가토 도키코의 '백만송이 장미(百万本のバラ)'를 불러 크게 히트했으며, 1984년 오다 요코도 불렀고, 구미코가 부른 버전도 있다. 철도역인 JR 니시니혼 산요 본선 후쿠야마역에서는 접근 멜로디로도 쓰인다.

한 사내는 양손으로 북을 치고, 또 한 사람은 탬버린를 치는데, 약간 어설프다. 술들이 거나하게 취했지만, 얼굴은 한없이 만족스러워 보인다. 잠시 후 역시 술에 취한 친구가 아코디언을 잡고 연주를 하는 데, 솜씨가 있다. 1978년 박경애가 불렀던 ‘곡예사의 첫사랑’에 아코디언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줄을 타면 행복했지, 춤이 추면 신이 났지.
손풍금에 빨간 코로 사랑 얘기 들려줬지.”

노래에 심취한 그의 목소리가 점점 밤하늘로 올라가 주변소리와 섞인다. 그의 텅 빈 것 같은 음색이 여행자의 가슴에 깊은 동질감으로 다가오며, 가슴 속이 따뜻해져 옴을 느낀다. 1라리를 적선한다.

(밤마다 이 거리가 요란하다. 촬영=윤재훈)   

건너편에 요란하게 4인조 보컬소리가 나오자, 다른 음악들이 묻힌다. 조지아 황금상에 노을이 내리는 시간이면 항상 연주가 시작된다. 올드 시티 입구에는 오늘 밤에도 사람들이 많다.

아까 저쪽에서 구걸을 하던 어린 아이가 여기까지 왔다. 마치 맡겨둔 돈이라도 달라는 듯 스스럼없이 손을 내민다. 옆에 사람이 건들기라도 하면 화를 낸다.

밤새 맨발로 매트로 주변을
개처럼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는,
5, 6세쯤 되어 보이는 아이
유리조각이라도 밟으면 어떻게 하려고.

인도 근처쯤에서나 왔을까
역 앞에는 할머니, 숙업(宿業)이 깊어 보이는
목발을 짚은 아빠, 엄마,
또래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 하나
7~8명이나 되는 가족이 떼거리로 몰려다닌다.
아이도 벌써 생의 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이국에 와서 돈이 떨어진 걸까
아니면 단체로 구걸을 하기로
작정이라도 하고 온 걸까?

그래도, 매트로 표는 사서
블랙홀처럼 한없이 깊은 나락 속으로
사라지는데,

아이는 오늘 밤 돌아가
무슨 꿈을 꾸려나

- 구걸의 시련. 윤재훈

(돈 주세요, 아이에게는 일상인 듯하다. 촬영=윤재훈)
(돈 주세요, 아이에게는 일상인 듯하다. 촬영=윤재훈)

그런데 이 나라들은 왜 이리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광활한 국토의 카자흐스탄이 그랬고, 카스피해의 석유 부국 아제르바이잔도 그랬다. 오직 대통령만 부자였다.

오랜 세월 러시아의 지배에 의한 기간산업의 부재와, 오랜 식민지시대 국민들의 밑바탕에 깔린 의식의 문제는 아닐까?

이 14개국 나라들의 철저한 독립투쟁에 관해서도, 그렇게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기성세대들은 예전에 식민지시대 때보다 못한 사회보장제도와 의료체계에 대해서, 옛 시대를 그리워한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어찌되었던 자원은 철저히 수탈당하고 러시아에 의해서 권력층은 좌지우지되어 왔을 것 아닌가?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 오랜 세월 소련을 철저하게 다스려왔던 피의 숙청자 스탈린도, 자신이 조국 조지아보다는 철저하게 소련인이 되고 싶어 이름까지 바꾸지 않았던가.

그래도 대한민국은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피와 열망으로 투쟁을 했다. 일본의 부는 서구 열강들의 대항해 시대, 개항과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20세기 초까지 쇄국을 하고 있었다.

일제는 앞선 개항으로 선진문물를 받아 들이며 총과 대포로 무장을 했다. 그것이 발판이 되어 비행기와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 선단을 구축하여 동남아를 피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대제국 미국의 진주만까지 공격하게 된다. 한마디로 조그만 나라 한국은 바윗돌에 깔린 벌레 같은 형상이 된 것이다.

신채호 선생님의 ‘나라 없는 민족에게는 인권도 없다’는 말은, 시대를 뛰어넘어 언제나 진리로 다가온다. 일제는 얼마나 이 민족을 개돼지 취급을 하며, 군홧발 아래 아직 피지도 않은 동남아의 어린 소녀들을 유린했는가?

그리고 우리는 열강들과 미국에 의해 미처 준비되지 못한 독립을 이루었다. 그리고 친일파와 친미파들의 득세와, 세계 열강들의 이권에 의해 두동강이 된 나라를, 아직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이만큼 이루어 낸 이 나라가 자랑스럽다. K-Pop이 자랑스럽고, 반도체와 자동차, 선박 등을 만들어 낸 근로자들도 자랑스럽다.

(멀쩡한 청년이 깨끗하게 차려입고, 무슨 잘못이 있다고 저리 고개를 푹, 숙이나. 촬영=윤재훈)

지금 러시아로부터 해방된 14개의 나라는 올해가 독립 30년이다. 그러나 아직도 국가의 기간산업들의 체계는 갖추어져 있지 않은 듯하다. 나라에 따라 자원은 넘치게 풍부하지만, 오랜 세월 독재가 진행되고 권력층에 의해 독점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실크로드 상에 위치하여 오랜 세월 부와 영화를 누리던 곳이다. 특히 세계 최대의 종교인 이슬람과 기독교 국가들이다. 대상들의 도시 알마티, 이슬람의 성지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을 비롯한 정교회의 국가들, 여기에 빼어난 자연을 가지고 있다.

세계의 통로, 실크로드를 지나면 생각이 많아진다.
하늘이 준 이 아름다운 자연의 비경과 푸르른 하늘,
그 아래 평화로운 지상.

오랜 인류의 역사를 생각하면, 햇빛과 바람, 비에 풍화되어
땅에 파묻힌 인류의 문명은, 많은 영감과 반성을 불러온다.

밤은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이제 돌아가려는 도다.
가자, 어서 가자, 수밀도(水蜜桃)의 내 가슴으로,

어둠이 몰려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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