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㊼] 코카서스 3국을 가다 13_세계문화유산, 나리칼라 성벽 요새를 따라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4.01 17:49
  • 수정 2021.04.20 13:5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문화유산, 나리칼라 성벽 요새를 따라

부둥켜안고 있는 청춘 남녀들,
젊은 날 열정에 휩싸여,

덧없이 날렸던 수많은 말들
다 어디로 날아갔을까?
제트기가 날아간 뒤에 사라지는 구름 연기처럼,
비어있는 하늘


지금 그 곁에 누가 남아있는가?

(므크바라 강에 빠진 노을. 촬영=윤재훈)
(므크바라 강에 빠진 노을.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트빌리시 도심으로 므츠바리강(쿠라강)이 관통한다. 태고적 어느 한 무리가 이 강가를 지나다 이 기름진 옥토를 보고 모여 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후로 수천 년, 이 조그만 나라는 우리와 비슷하게 주변에 수많은 나라들에게, 끊임없이 침략을 당했다. 그러면서도 부평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이 강은 터키에서 시작되어 조지아를 거쳐 아제르바이잔를 지나 카스피해로 빠져나간다. 고대 실크로드 대상들이 이 강을 통해 조지아를 거쳐 카스피해와 터키를 오갔다.

 

(요새 안 ‘성 니콜라스 교회’. 촬영=윤재훈)

조지아인들에게 ‘나리칼라 성벽(Narikala Fortress)’는 매우 특별할 듯하다. 어린 시절 이 요새 위로 올라와 뛰어놀았으며, 황혼녘에도 다시 이 언덕에 올라와 자신의 꿈이 당긴 사베바 대성당과 메테키 교회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또한 여름이면 그 아래로 흘러가는 므츠바리 강물에 몸을 담구고 꿈을 키웠을 것이다.

이 요새는 4세기경 페르시아 성채로 건축되어 수많은 개보수 작업을 거쳐, 8세기 아랍제국에 의해 대부분 건설되었다. 이후 조지아, 투르크, 페르시아 등이 장악하면서 수리와 증축을 거듭했다.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에 지대까지 좁아, 대규모 군사가 올라오지 못하니 방어하기도 유리하였겠다. 특히나 앞뒤가 절벽이니 유사시 방비가 더 쉬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대제국 러시아에게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제국의 연방이 되면서 1827년에는 그들이 만들어 놓았던 러시아 무기창고가 폭발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나마 요새 안의 ‘성 니콜라스 교회’는 1990년대 경찰국장의 재정 도움으로 재건될 수 있었다. 므크바리 강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세계문화유산인 이 요새와, 강 건너 메테히 교회, 사베바 대성당은, 이곳이 군사적 요충지인 동시에 조지아인들의 정신적, 신앙적 거점임을 말해준다.

눈이 쌓이면 올라가기 힘들 것 같은 가파른 길, 간간이 차들이 올라가면서 엄청나게 고무 타는 냄새를 피워, 여행자들을 힘들게 한다. 사람들은 참 걷기를 싫어하는 동물인 모양이다. 나날이 세계적으로 성인병은 늘어만 가는데, 인류의 생활은 갈수록 자동화가 되어 배만 불룩해지는 두꺼비 같다.

“지구의 절반은 굶어서 죽고 그 반은 배불러 죽는다.” 운동은 특별히 시간을 내어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자체가 운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헬스크럽이라도 찾아가 운동을 해야, 운동하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당장 런싱머신 위에 올라가 달릴 것인데도, 꼭 올라갈 때는 엑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트를 탄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動物)이다. 그 ‘동’ 자가 바로 “움직일 동(動)”이다.

(두 개의 종. 촬영=윤재훈)

수많은 외침을 견디다 못하고 부서진 잔해들만 쓸쓸하게 트빌리시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성, 야경만 하릴없이 아름답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바로 앞에 황금빛에 휩싸인 사베바 성당, 조선총독부를 닮은 대통령궁, 화려한 불빛의 평화의 다리, 므크바리 강 건너 메테히 교회, 발아래 성 조지 교회, 등이 꿈결 같다. 그 빛에 취해 폐허가 된 성터를 밤에 돌아보는 것은 약간 위험하기도 하다. 부서진 성벽 위로 올라갈 때는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이곳의 명물인 두 개의 종을 본다. 그 은은한 종소리를 따라 이타(利他)적이고 선한 복음이 퍼져 나가기를 기원해 본다. 우리나라에는 1,250년이 된 신라의 에밀레종(성덕대왕 신종)이 있으며, 이탈리아에는 1,000년이 넘어가는 종의 명가 ‘마리넬리 종’이 형제들에 의해 대를 이어가고 있다.

(요새 성벽. 촬영=윤재훈)
(요새 성벽. 촬영=윤재훈)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오르다 중국인 아가씨를 만났다. 점점 고국에서 멀어질수록 동양인 만나기가 쉽지 않아 더욱 반갑다. 조지아 어머니상과 케이블카가 있는 곳까지 쉬엄쉬엄 걸어가며, 지나온 여행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부둥켜안고 있는 청춘 남녀들,
젊은 날 열정에 휩싸여,

덧없이 날렸던 수많은 말들
다 어디로 날아갔을까?
제트기가 날아간 뒤에 사라지는 구름 연기처럼,
비어있는 하늘


지금 그 곁에 누가 남아있는가?

 

(조지아 어머니상. 촬영=윤재훈)
(조지아 어머니상. 촬영=윤재훈)

케이블카는 늦게까지 운행되어 많은 사람이 타고 내려간다. 그 옆으로 조지아 랜드마크인 ‘조지아 어머니상(Georgia mother)’이 서 있다. 전통복장을 입고 알류미늄으로 단장되어 있다.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도 52미터나 되는 어머니상이 있다.

예레반에 있는 어머니상은 육중한 칼을 두 손으로 잡고, 지금은 터키 땅이 되어버린 그들의 성산 아라라트 산을 바라보며, 금방이라도 공격할 자세다. 반면 조지아의 어머니상은, 왼손에는 와인 잔을 오른 손에는 칼을 들고 있다.

"친구에게는 와인을 선사하지만,
적에게는 단호하게 칼로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칼은 조국을 지키는 힘이자, 보호를 의미하고,
포도는 하늘의 선물이자 동포애를 상징한다. ”

조지아 속담에 ‘우정과 불화는 형제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나타내며, 배려하는 삶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 같다.

(발밑에 성조지 대성당, 므크바리 강 건너 메테히 교회, 츠민다 대성당, 대통령궁, 평화의 다리, 시청사. 촬영=윤재훈)
(발밑에 성조지 대성당, 므크바리 강 건너 메테히 교회, 츠민다 대성당, 대통령궁, 평화의 다리, 시청사. 촬영=윤재훈)

어머니상은 메테키 교회 옆에 있던 ‘바흐탕 골가사리 왕’의 기마상보다 2년 먼저인, 1959년에 조각가 ‘엘구자 아마슈켈리’에 의해 만들어졌다. 므츠헤타에서 수도를 천도한 지 1,500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다.

(나리칼라 요새 성벽 풍경. 촬영=윤재훈)
(나리칼라 요새 성벽 풍경. 촬영=윤재훈)

어머니상 뒤 절벽 아래로는 식물원이 있다.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의기가 통한 두 청년과 함께 왔다. 서울에 있는 한양대학교를 나왔다는 이란인 모재민과, 프랑스에서 온 요세프와 같이 왔다. 느긋하게 움직이는 이들과 호흡이 잘 맞는다.

기계공학과에서 공부했다는 ‘모재민’은, 아빠는 이란인이고, 엄마는 영국인인데, 자신은 영국 국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미국과 가까운 영국사람은 이란을 갈 수 없단다. 엄마도 이란에 있는데, 한 달 후에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고 한다.

‘요세프Youssef’는 포토그라퍼다. 아빠는 모로코인이며 엄마 프랑스 인이다. 그는 유럽인들답게 매우 자유스럽다. 세계가 너무나 가까워져 오고 좁아짐을 느낀다.

이곳에 오니 나라들간에 인종에 대한 별 경계가 없는 듯하다. 육로국경들이 사방팔방으로 연결되어 있어 나라의 개념, 인종의 관계도 좀 혼란스러워진다. 특히나 육로가 막힌 섬나라로 단일 민족으로 머리가 굳어져 온 우리이다 보니 더욱 그러하다. 무엇이 옳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카메라가 고장 나 며칠 동안 고민하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요세프의 덕분으로 역 광장에 있는 ‘스퀘어 바자르’를 가서 구할 수가 있었다. 바자르는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굉장히 크다. 수리를 하려고 갔는데, 주인이 <케논 650d>를 보여준다. 외관이 비교적 깨끗한데 200라리(88,000) 뿐이 안 한다. 거기에 8기가 메모리까지 끼어 준다고 한다. 무엇보다 화면이 돌아가고 터지 스크린이어서 마음에 든다.

(나리칼라 요새, 성벽 잔해 위 십자가만 쓸쓸하다. 촬영=윤재훈)
(나리칼라 요새, 성벽 잔해 위 십자가만 쓸쓸하다. 촬영=윤재훈)

내려다보니 푸른 숲길 사이로 사람들이 제법 오고 간다. 특히 바로 아래로 내리꽂히는 <레그브타크헤비 폭포Leghvtakhevi water fall>의 물줄기가 아찔하다. 그 주위로 삼삼오오 사람들이 앉아 망중한을 즐긴다. 폭포의 높이는 22m이며 수량도 제법 된다.

폭포의 이름은 무화과를 의미하는 그루지아어 ‘Leghvi’에서 왔으며, 실제로 이곳 주변에 무화과나무가 많다. 2012년에는 많은 재단장이 이루어졌다.

파란 하늘 아래 무너진 성터 모서리에는 협죽도 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자연은 이렇게 평화로운데,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핏빛 싸움이었다. 말발굽 아래 칼을 휘두르며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하며 지구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하늘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고 구름과 새들은 오늘도 평화롭게 넘나드는데, 인간들만이 국경을 만들어 놓고 끊임없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덧없는 정복자와 그 추종자 몇 사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는가?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가장 큰 죄악인, 전쟁이 없는 지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열강들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크나큰 불행들을 겪었는데, 얼마나 반성들을 하고 있을까? 현실을 보면 그렇지 못하는 것 같다. 극단적인 욕망들로 인해 지금 세계는 코로나의 망령으로 혼돈 속에 있지만, 인간은 경제만 부르짖는 천박한 동물이 되어 버렸다. 세계의 국경을 지나가면서 다시는 그런 거대한 불행이 없기를 기원해 본다.

(므크바리 강물 따라 펼쳐진 고도의 풍경. 촬영=윤재훈)
(므크바리 강물 따라 펼쳐진 고도의 풍경. 촬영=윤재훈)

조지아는 독립 이후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컷기 때문에 국민은 가난하고 치안도 매우 위험하여, 여행 위험 국가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소련 시절 공산당의 그늘 아래 닫혀있던 이 나라는, 지금은 코카서스의 비경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여행자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특히나 넉넉한 여행 기간과 함께 치안도 안정되어 급속하게 여행객들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