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58] 평생 어머니

오은주 기자
  • 입력 2021.05.1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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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요양원 문을 들어서는 발걸음이 마음의 추가 발에 달린 듯 늘 무겁기만 하다. 인숙씨의 친정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신지 벌써 3년이나 되었다.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작은 요양원으로 어버이날이라고 창문 너머라는 조건으로 특별 면회가 허용되었다. 코로나로 저번까지는 요양원 사무실에서 전화로 음성만 듣고 필요한 물건을 전해주는 정도에 그쳐 아쉬움이 너무 컸다.

직장인과 대학생인 인숙씨의 딸과 아들은 어버이날이라고 꽃바구니와 요즘 유행한다는 용돈박스를 선물로 주었다. 인숙씨는 어버이날이 올 때마다 자신이 낀세대임을 절감했다. 선물을 주는 자녀와 아직 챙겨드려야 할 부모님이 살아계신 50대 후반이란 나이. 자립 못한 자녀들에게선 카네이션 한 송이를 받는 것도 부담스럽고, 노쇠하신 부모님에겐 더 잘해드리지 못해서 미안했다. 자연스러운 내리사랑과 어려운 치사랑 사이에 낀, 그런 59세의 딸 인숙씨가 88세의 어머니를 면회하러 갔다.

면회실을 둘로 나눈 큰 유리칸막이 너머로 어머니가 파란 조끼를 입은 간병인과 함께 나타났다. 어머니는 아직 걸을 수 있지만, 일어서고 걷다가 여러 번 침대 머리나 가구에 부딪쳐 멍이 들었던 터라 요즘은 이동할 때 안전을 위해 휠체어를 이용했다. 노인성 기억력장애, 경도 인지장애로 시작한 어머니의 증상은 이젠 치매라는 단어로밖에는 형용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다행히 인숙씨를 알아보고 합죽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볼 때마다 어머니의 몸피가 줄어들어 저러다가 말린 대추처럼 될 것 같은 환상으로 인숙씨는 아린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집보다 좋은 치료시설과 재활시설이 있다는 합리화로 마음을 다잡았다. 칸막이 사이로 마주잡듯이 어머니의 손에 자신의 손을 갖다 댄 인숙씨는 관절염으로 갈쿠리처럼 휘고, 나뭇가지처럼 마른 손에 울컥했다. 저 손으로 우리 4남매가 컸구나...

어머니의 첫마디는 언제나 변함이 없었다.

“밥은 먹었어? 밥은 먹고 댕기는 거야?”

어머니는 자식에게 생의 시작부터 젖이란 밥을 주었고, 밥을 같이 먹는다는 의미인 식구였기에 자식이란 늘 자신이 밥을 주어야 하는 존재로 남아 있었다. 인숙씨의 머릿속에서 부엌에서 4남매의 새벽밥을 짓는 어머니의 행주치마가 펄렁거리고 구수한 밥냄새가 괴어올랐다.

“네, 우린 다 잘 먹고 다녀요. 어머니나 밥 남기지 말고 다 잡수셔요.”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모성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간병인이 비닐봉투에 든 무언가를 보여주며 나중에 집에 갈 때 찾아가라고 했다.

“자꾸 어머님이 따님 준다고 반찬으로 나오는 쌈장을 모으세요. 규정상 안 된다고 해도 한사코 모으시길래 제가 조그만 통을 드려서 이렇게 쌈장이 모아졌어요. 생된장이 반찬으로 나오지는 않고, 가끔 쌈장이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딸 된장이랑 고추장 담가서 주어야 한다며 모으신 거예요.”

어머니는 간병인이 보여주는 자그마한 플라스틱통을 기어이 열어서 보여주었다. 된장과 고추장이 섞인 쌈장이 제법하니 담겨 있었다.

“올해는 된장이랑 고추장이 달게 잘 담가졌어, 어여 가져가서 먹어.”

인숙씨는 눈물이 흘러 어머니의 얼굴이 두 겹으로 겹쳐왔다. 늙은 어머니의 얼굴 옆에 젊은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 보여다. 젊은 어머니의 얼굴은 곧 인숙씨의 얼굴이고, 늙은 어머니의 얼굴은 다가올 자신의 얼굴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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