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식의 인생 바라보기㉗] 허리에 얹힌 세월의 무게
[윤창식의 인생 바라보기㉗] 허리에 얹힌 세월의 무게
  • 윤창식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14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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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식-수필가-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윤창식
-수필가
-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Y씨는 골방 천정이 닿을 정도로 쌓여있는 농구공들을 바라보자니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Y씨는 평생을 농구공 제조업체에서 잔뼈가 굵었으나 그놈의 코로나가 웬수지, 각종 농구경기도 덩달아 시들해지고 농구공이 잘 팔리지 않으니 하는 수 없이 나이순으로 희망퇴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해외수출에 공헌하여 무역의 날에는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농구공 제조업체 (주)하이바스키코리아는 퇴직자들에게 기념으로 농구공을 나눠주는 퍼포먼스를 하곤 한다. 사장이 워낙 농구를 좋아한 이유도 있으나 그럴싸한 영문으로 된 회사 이름 치고는 매우 영세한 업체라서 일부는 농구공으로 대신한다는 퇴직금 정산 규정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냥 주는 게 아니고 가내공장 옆에 설치된 농구골대에 농구공을 30번씩 던져 골인시킨 숫자만큼 농구공을 주는 방식이었다.

Y씨도 느닷없이 닥친 퇴직의 날, 회사직원들의 환호 속에 농구골대 앞에 섰다. 손바닥 곳곳에 훈장처럼 남은 바늘자국과 고무풀 냄새가 배인 손바닥을 한참을 바라보다 공을 던지기 시작한다. 서른 개의 농구공은 더러는 쉬원하게 골망을 흔들었으나 더러는 백보드만 맞추고는 옆으로 튀었고 아예 홈런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기도 했다.

그래도 Y씨는 40년 간 농구공만 만져온 손바닥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제법 골인에 성공하였다. Y씨는 큼지막한 그물망에 담긴 일곱 개의 농구공을 짊어지고 회사문을 나서며 생각했다.

"이래봬도 평생을 농구전문 중계 아나운서를 꿈꿔오지 않았던가! 비록 목소리는 많이 탁해졌으나 시켜만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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