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59] 아차차 방심!

오은주 기자
  • 입력 2021.05.2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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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종호씨에게 오랜 친구들과의 산행은 언제나 즐겁다. 매달 첫 번째 토요일과 세 번째 토요일 오전에 만나 3~4시간 산행을 마치고, 하산해서 마주앉는 점심식당. 그 자리에서의 막걸리 한 사발이면 주중에 쌓였던 피로와 고민이 한 번에 사라져버리는 마법이 가능했다. 산행 중에는 어떤 얘기를 해도, 혹은 아무런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은 편안함이 깃든 친구 사이였다. 대모산, 청계산, 북한산, 아차산 등 서울 근교의 산을 번갈아 다니는데, 오늘은 싱그러운 연두색 나뭇잎이 지천인 남한산성 둘레길을 걷고 내려와서 버스 종점 부근에서 유명한 삼겹살 집에 자리를 잡았다. 삼겹살도 맛있지만, 반찬으로 나오는 전라도식 대파김치와 갓김치가 곰삭은 맛으로 손님을 휘어잡는 가게였다.

종호씨와 두 친구들은 산행으로 땀이 촉촉해진 등과 목마른 입으로 기대에 차서 그 가게에 들어섰다. 삼겹살만큼이나 몸피가 푸짐한 주인아줌마가 마스크로 미모(?)를 가린 채, 종호씨 일행이 앉자마자 막걸리 사발 세 개를 탁자에 놓으며, “뭘로들 잡수실까?”하고 묻더니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오늘은 제주산 오겹살이 더 쫀득허니 그걸루덜 드시오.” 하고는 답도 듣지 않고 휭하니 주방으로 가버린다. 종호씨와 친구들은 결정장애를 해결해준 주인아줌마 덕에 메뉴를 정하고 고기가 구워지기 전에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다. 사이다를 탄듯 알싸한 막걸리에 묵은지 한 점이 환상의 궁합이었다. 삶의 소소한 재미로는 산행 후에 친구들과 마시는 맥주나 막걸리가 최고가 아닐 수 없었다. 종호씨네 테이블 불판에 초벌구이 오겹살이 올려지고 미나리와 마늘까지 곁들이로 잘 구워지고 있었다. 그때 저쪽 테이블에 여자 일행 2명과 앉아있던 50대로 보이는 한 여자가 다가왔다.

“오라버니들, 아까 수어장대 앞에서 뵈었어요. 친구분들이시죠?”

종호씨는 뭐지? 하면서도 아직 그 여자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고, 친구들도 모르는 여자지만 막무가내로 물리칠 수만은 없는 교양인들인지라 우린 친구들이라고 답하고 무슨 일이냐고만 물었다.

“아무 일도 아니구요, 저희들도 친구들이랑 왔는데 하도 분위기가 좋아 보여서 막걸리 한 잔씩 따라드리고 가려구요.”

하더니 정말 종호씨와 친구들의 잔에 막걸리를 따라주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종호씨는 별 싱거운 여자도 다 있네, 한 친구는 저 여자가 술이 좀 취했나봐 괜히 남의 자리에 와서 술을 따르고 그러네, 다른 친구는 우리가 남자로서 멋있어서 그랬겠지 하며 가볍게 넘겨버렸다. 그러나 진실은 계산대 앞에서 곧 밝혀졌다. 주인아줌마 왈, 아까 술을 따라주러 왔던 테이블의 여자들이 자기들이 먹은 밥값을 종호씨네가 낸다고 하고 나갔다는 것이다. 주인아줌마는 주방에서 보니 그 여자가 왔다갔다 하고 술도 따라주고 해서 코로나 시대라 부부들인데 따로 앉은 줄 알았다는 것이다.

아뿔싸! 모르는 여자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하는 남자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덤터기 씌우기가 아닌가. 사무실에서도 모르는 여자들이 동창의 동생이니 친척이니 하고 찾아와 어려운 형편을 읍소하면 뭐라도 사주고 보험도 들어주는 선량한 남자들인줄 알아챈 모양이었다. 소위 꽃뱀이라고 확대 해석할 일은 아니지만 한두 번 해본 솜씨는 아닌 것 같았다. 종호씨는 친구들과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아직 술값 정도는 있는 남자들로 보인 대가로 생각하자. 그나저나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남자는 언제나 여자조심, 여자는 남자조심 하랬는데 깜빡 했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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