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53] 천년 붓다왕국 미얀마6_소박하고 친절한 나라, 미얀마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6.01 11:54
  • 수정 2021.10.1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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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친절한 나라, 미얀마

 

이 땅에 수고로운 곡식들이
내 안으로 들어가면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굳어져 나오는지,
미풍美風진 세상을 어떻게 살았으면
그 부드러운 살 속에서 돌멩이를 만들어 내는지

- 변비, 윤재훈

 

(한낮 무더위 속 불 앞에 앉아, 점심을 만들어 주던 아주머니. 촬영=윤재훈)
(한낮 무더위 속 불 앞에 앉아, 점심을 만들어 주던 아주머니.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아주머니에게 이 근처에 레스토랑이 있냐고 묻자 “밥 먹을래요”한다.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자신의 오막살이로 데려가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부엌으로 들어간다. “지르르르”, 아주머니가 계란 후라이를 붙이는지 맛있는 냄새가 난다. 아저씨는 허름한 탁자 위에 멋진 식탁보를 깐다.

(한 번 출가 경험이 있는 초등학교 아이. 새총을 들고 있다. 촬영=윤재훈)
(한 번 출가 경험이 있는 초등학교 아이. 새총을 들고 있다. 촬영=윤재훈)

아저씨의 이름은 턴 턴(Tun Tun)이고, 부인은 모 모(Mow Mow)이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방랑자”, 옛 노래 ‘모모’가 생각이 난다. 9살 딸은 나디Nadi, 13세 아들은 앙 앙Aung Aung이다. 같은 자가 반복되는 이름들이 많은 모양이다. 테라와다 불교권 나라들의 남자들은 일생에 한 번 이상 출가를 하는데, 이 집의 아들도 초등학교 여름방학 기간 3달 중의 1달을 출가했다고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한다.

출가는 가문의 영광인 동시에 마을의 자랑이다. 그 옛날 우리가 진새례(진사, 진세)를 지내거나 성인식을 할 때, 무거운 들돌을 들면 어른으로 인정해 주는 것과 비슷한 모양이다.

아이들과 뒤란으로 돌아갔다. 수도가 있고 커다란 플라스틱 대야에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다. 너무 더워 머리에 물을 들이부었다. 닭들은 작은 나무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다 놀라서 도망간다. 영락없는 우리의 어린 시절 시골집의 모습이다.

감나무가 여러 그루 있고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는 깊은 우물이 있고, 담 대신 시누대가 두껍게 집과 마을 길의 경계를 내고, 치간(변소)이 있고, 거름을 하기 위해 쌓아놓은 겨 위에 똥이 있고, 할아버지가 잡고 일어날 수 있게 새끼줄이 길게 내려와 있고…, 동구 밖 장승 옆에는 객지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보이고.

밥을 먹고 나면 변비가 생긴다
왜, 헤아릴 수 없는 태양과 바람을 맞으며,
농부의 숱한 수고로움 속에서 자라난 곡식을 먹었는데,
내 뱃속에서는 돌이 되어 나오는가
도대체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길래
한 번 들어간 것들은
순하게 나오지 못하고
살을 찢으며 선홍빛 피를 내는가
화장실에 앉아 신음을 하면서
한 줄기 빛도 없는 어두움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나를 보았다

이 땅에 수고로운 곡식들이
내 안으로 들어가면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굳어져 나오는지,
미풍美風진 세상을 어떻게 살았으면
그 부드러운 살 속에서 돌멩이를 만들어 내는지
내 옆에서 배냇똥을 누고 있는 아이
송아지도 맨 처음 사람을 살리는
우황을 만들어 낸다는데
나는 왜 부드러운 내장 속에서
그다지도 딱딱한 돌멩이를 만들어
오늘 아침도 괴로워하는가

-변비, 윤재훈

 

(그네가 정겹다. 촬영=윤재훈)
(그네가 정겹다. 촬영=윤재훈)

내 젖은 머리를 보고 아저씨는 여기서는 낮에 머리에 물을 묻히면 위험하다고 한다. 이곳처럼 더운 나라에서는 갑자기 쓰러질 수 있다고도 한다. 그래서 샤워도 아침저녁으로만 하며, 5월이 되면 45도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그리고 한낮에 서너 시간씩 돌아 다니면 안된다고 하는데, 나는 매일 뙤약볕 아래에 돌아다녔다. 등산화를 신고 있는 나를 보고도 발이 너무 뜨거우면 눈에 안 좋다고 한다. 나는 여행을 떠나면 등산화 한 켤레만 신고 다녔다. 그리고 1년 정도 지나면 신발이 너덜너덜해진다.

마당에는 10마리의 닭이 자라고 있는데, 계란은 먹고 어미닭을 시장에 내다팔면 1키로에 6,000짯을 받는단다. 그리고 상인들은 그것을 다시 10,000짯에 판다고 허탈하게 웃는다. 아주머니는 이 더운 날씨에 연신 뭔가를 하고 계신다. 이 무더운 날씨에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불 앞에 앉아서 밥을 해주다니.

어린 시절 사립문이 오롯이 남아 있는 집. 담장 위로는 나팔꽃처럼 녹색의 넝쿨들이 길게 뻗어 있다. 아저씨가 꿀을 내 와 인근에서 사 왔다고 하면서, 풀과 같이 먹으며 기운이 불끈 솟는다고 한다. 그들이 고마워 1만 킵(k)에 꿀을 한 통 샀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촬영=윤재훈)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촬영=윤재훈)

금방 따뜻한 밥을 해오시는 아주머니, 가슴이 뭉클하다. 이 말 없는 보시행布施行. 이 공양을 잘 먹고, 더욱 선업(善業)을 많이 쌓으란 것일 게다. 며칠 후 가까운 곳에 식당을 시작한다고 하는데, 다시 찾아왔을 때, 이 인심이 변해있으면 어떻게 하지 하고, 저윽이 걱정이 된다. 배낭 여행자는 밥을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 비록 통일벼(안남미)처럼 찰기가 없지만, 인정이 끈끈하다. 막 해온 따뜻한 밥과 네 가지나 되는 신선한 반찬에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후덕한 집이라 그런지 처마에 참새와 비슷한 (싸)라는 새가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았다. 수컷 한 마리와 암컷 두 마리가 함께 사는데, 먹이 사냥을 하느라 바쁘다. 천적을 피하기 위해 인가(人家)에 집을 지었을까. 잠시 후에 아주머니는 아까 내가 관심을 보였던 사립문 위에 있던 넝쿨 같은 것으로, 국을 끓여 왔다. 참 신선하고 상큼하다.

(사원 건축에 사용할 도안. 촬영=윤재훈)
(사원 건축에 사용할 도안. 촬영=윤재훈)

아저씨와 한참을 이야기하다 휴대폰으로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같이 사진을 보는데, 화웨이 중국 휴대폰를 가지고 있다. 200,000짯이라고 한다. 그는 파고다에 벽화를 복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장인이지만, 여기서는 사정이 아주 열악한 듯하였다. 사원 벽에서나 보았을 법한 불교 문양들을 드로잉해 놓았는데, 그 전문성이 보이는 듯하다.

소년이 내 배낭 뒤에서 달랑거리는 노란 야광판이 갖고 싶은 모양이다. 이것은 한국에 있는 여행대학에서 합숙할 때 받은 것이다. 아이에게 주니 무척 좋아한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부족했다. 많은 것을 본 적도 없으니 필요한지도 몰랐다. 욕심보다는 자족(自足)에 더 익숙했다. 과자는 귀해서 보기가 힘들었으며 명절이나 장날, 어쩌다 귀한 손님이 오시며 어쩌다 사탕 구경이나 겨우 할 수 있었다.

(딸은 미얀마 천연 화장품 ‘타나카’,에 더 관심이 많다. 촬영=윤재훈)
(딸은 미얀마 천연 화장품 ‘타나카’,에 더 관심이 많다. 촬영=윤재훈)

모든 것이 부족하고 아예 없었으니 조금만 구슬 한 개가 받아도 그리 좋을 수가 없었다. 종이로 딱지를 만들고 그것만 많이 있어도 어깨가 으쓱했다. 나무로 칼을 만들어 온종일 놀고, 흙 위에 남자아이들은 가위샌이나 만세빵 같은 것을 그려 종일 놀았다. 어쩌다 말좃박기 놀이를 할 때는 허리가 아팠다.

여자 아이들은 사방을 하거나 고무줄, 오자미 같은 놀이도 했다. 짓궂은 아이들은 고무줄을 칼로 자르고 도망가기도 했다. 특별하니 무엇을 살 수도 없었고, 그저 서로 몸을 부대끼며 노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마을길은 하루종일 아이들이 고함 소리 요란했다. 그래서 그 시절이 더 그리운 모양이다. 고향을 생각하니 온 몸이 따뜻해지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아련함이 밀려온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 집집마다 아이들 부르는 소리, 어머니가 “밥 먹어라”하는 그 소리는 이 세상의 어느 소리보다 정답고 편안했다.

아침이면 나갔다
저녁이면 돌아오던 길
평생 그 자리를 배회하며
여름 땡볕, 겨울 눈보라 맞으며
걸어 다니던 길

"밥 먹어라"

저녁나절 어머니 목소리
따스했던 길

풍경 소리 들리며
이제 마지막 그 길을

떠나려 한다
지상은 가을볕 내리고
알곡들은 여물어 가는데


이제 이 행성을 지나
어느 별로 가시려는지

- 화양면行, 윤재훈

문득 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뵌다고 골목길을 빠져나가던 아내의 뒷모습을 보고 썼던 시가 생각이 난다.

(아이들은 아무 부끄러움이 없다. 촬영=윤재훈)
(아이들은 아무 부끄러움이 없다. 촬영=윤재훈)

21세기 골목에는 아이들이 없다. 학원으로 쫒기고, 컴퓨터와 휴대폰에 빠져 혼자 사는 것이 일상화가 되었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시대다. 갖고 싶은 것과 먹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집집마다 쓰레기로 몸살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뭐가 더 없다고 불만이고 잠시도 참지 못한다. 소아비만의 수치가 위험 수준을 넘은 지가 오래되었지만, 부모나 아이는 안중에도 없다. 내 분신처럼 친구를 아끼던 그런 우정은 이제 책 속에서나 존재하는 유물이 되어버렸다.

부모들의 황금만능 풍토도 이제 도를 넘어버렸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라지는 고유한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안중에도 없다. 그저 배금(拜金)주의 물결에 떠밀려, 좋은 집, 좋은 음식, 우리 집, 우리 식구뿐이다. 옆에 가던 친구가 넘어지면 ‘잘 됐구나’ 하고 밟고 넘어가라고 가르치는 시대가 되었다. 어른들의 윤리의식이 갈수록 마비되니 소박했던 아이들의 정서가 AI(인공지능) 같은 기계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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