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시달(尹時達)씨는 반지하방 구석에 놓인 화장지 겉면의 선전 문구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잘 풀리는 집'이라고라? 감었으니께 풀리겄제, 뭔놈의 그것도 광고라고 참.
생각이 워낙 많은 위인인 윤시달은 지난 해 11월 수능 며칠 전 일이 생각난다. 수능을 치는 옆집 고3 아이에게 문제를 잘 풀라고 잘 풀리는 화장지를 갖다 주었다는 아내의 자랑에, 늘그막에 무슨 요즘 아그들 식 이벤트를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던 것.
시달씨야 타고나기를 워낙 선물에는 취약한 체질이어서 60평생 누구에게 이렇다 할 선물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주제에 선물 내용이나 방식을 타박할 처지는 사실 못 되었다.
윤시달은 스무 살 청춘시절 비 내리는 어느 봄밤에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로 시작하는 이은하의 '봄비'가 흐르는 영등포 다방에 앉아 있었다. 이제 돌아보니 "사람은 뒷모습이 추하면 안 된다"는 말만을 남기고 돌아섰던 그날이 무척 후회가 되었다. 분명 누군가의 마음을 홀리는 그 말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고향 후배 정옥이한테는 하지 말 것을.
어찌되었건 세상일은 모두 새옹지마 복불복이 아니던가. 윤시달의 아내 황정옥은 남에게 베푸는 일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라 맨날 되도 않은 글을 쓴답시고 뜬구름에 그림 그리듯 하는 오빠에게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는 여인이라니.
시달씨는 오늘도 너덜너덜 헤진 <시는 밥이다>라는 책을 뒤적이다 설핏 잠이 들었다. 또 꿈을 꾼다. 시골에서 중학교 다닐 때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타서 여학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졸업 후에는 <새농민> 잡지에도 글이 실리는, 실로 꿈같은 꿈이었던 것이다.
"시인은 정년이 없다대요. 내가 힘닿는 데까지는 도울게요. 시가 밥이 되는 그날까지요."
(그새 우리 정옥이가 시인이 다 되었네)
시달씨는 정옥씨의 말에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었고 때마침 우리쌀연구회에서 주최한 순우리말 글쓰기 공모전에 "밥이 시다/그녀의 밥은/정말 시다"라는 작품을 보냈던 것이다. 며칠 후 윤시달은 자기 시작품이 가작으로 뽑혔다는 통보와 함께 세상에서 제일 맛좋다는 '왕건이가 탐낸쌀(*)' 한 포대를 받았다. 시가 밥이 되기까지 꼬박 한 세월이 걸린 셈이다.
"정옥아! 쪼끔만 더 고생해주라. 내가 세상에서 젤로 멋진 시를 쓰고 말테니께!"
"오메 그려요! 비에 젖은 영등포 모퉁이를 돌아가던 시달이 오빠 뒷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있겄어요."
"아, '쌀논에서 울던 뜸부기도 못 잊겄어요'를 살짝 덧붙여 우리쌀연구소에 보내면 이번엔 '뜸부기쌀'을 보내올지도 모르겄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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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나주의 '왕건이 탐낸쌀'과 충남 서산의 '뜸부기쌀'은 전국 쌀품평에서 매년 상위 평가를 받는 우리쌀 브랜드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