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54] 천년 붓다왕국 미얀마7_바간 왕국에서도 빼어난, ‘아난다 파야'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6.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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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간 왕국에서도 빼어난, ‘아난다 파야(Ananda Paya)

수천 년 그 자리에 앉아
무슨 생각을 그리 꼴똘히 하십니까
지금 세상 밖에는 바람 불고
꽃잎 날리고, 생사 번열(煩熱)
천 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데

- 돌부처, 윤재훈

 

(고향. 사진 윤재훈)
(고향, 미얀마 마을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무더운 여름날, 불 앞에서 낯선 여행자에게 점심을 해주는 아주머니가 고마워 쉬 떠날 수가 없었다. 사립문 속 옛 고향 마을 같이 자연의 품 안에 들어앉는 집은 햇살만 바라보아도 그냥 편안했다. 한참을 놀다 하도 고마워, 아이들에게 과자라도 사줄 요량으로 근처에 가게가 있냐고 물으니 있다고 한다. 쉬엄쉬엄 마을 구경을 나섰다. 띄엄띄엄 인가(人家)가 보인다. 그 옛날 우리들의 시골 마을 같은 나라,

집 뒤쪽으로 돌아가니 대나무 발로 벽을 막고 지붕을 야자수 열매 같은 걸로 이은 집들이 서너 채 보인다. 건기의 막바지라 땅이 푸석푸석하니 너무 말라 발을 내디딜 때마다 먼지가 신발과 바지에 올라와 묻는다.

어디선가 깔깔거리는 여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서 바라보니, 마당 건너편에서 중학생 쯤으로나 보이는 아이들이 가슴팍 정도까지 막아 논 대나무발 안에서 목욕을 하고 나온다. 시원한 야자 지붕 안쪽에는 사람들이 앉아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

(.아기를 재우는 아낙 사진 윤재훈)
(아기를 재우는 아낙.  촬영=윤재훈 기자)

올해 62살이라는 남자 옆에 32살의 부인이 젖을 내놓고 이제 3개월 된 아이에게 먹이면서 해맑게 웃고 있다. 옛적 우리의 시골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다. 그 옆으로는 6살과 8살 먹었다는 딸과 아들이 앉아있다. 배낭에서 과자를 내어 주었다. 엄마가 자그마한 접시에 차와 물병, 튀긴 콩을 내와 먹으라고 준다. 폭염 때문에 연거푸 물을 두 잔을 마셨는데, 그 옛날 우리 고향 마을 뒤란에 있던 우물처럼 물맛이 달다.

허름한 움막 같은 집이 가게인 모양이다. 어둠침침한 실내에 낡은 나무로 만들어 놓은 계단식 진열대에, 오래된 과자들이 몇 개 놓여있다. 건빵, 뽀빠이, 라면땅, 사탕, 쫄쫄이 등이 놓여있던 옛 고향마을 가게가 생각난다. 어린 시절 보았던 영락없는 그 하꼬방이다.

(귀퉁이에 붓다 2기가 보인다. 사진 윤재훈)
(귀퉁이에 붓다 2기가 보인다. 촬영=윤재훈 기자)

멀리 상당히 규모가 있는 붉은 벽돌의 사원이 세월 속에 낡고 있다. 주위로 제법 풀들까지 자라있는 걸 보니,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진지 오래인 것 같다. 붉은 벽 귀퉁이에는 붓다 2기가 앉아있다.

(꽃피는 고향 마을. 사진 윤재훈)
(꽃피는 고향 마을. 촬영=윤재훈 기자)

비포장 길에 먼지를 일으키며 옆에 일본군 장교들을 태우고 다니던 옛 일본식 오토바이 같은 것이 달려오는데, 무슨 배달이라도 하는 것인지 파란 통들이 몇 개 실렸다. 멀리 문도 담도 없이 마당이 넓은 집이 보이고, 사람들은 덕석에 마른 깻대나 콩이라도 터는지, 일손들이 분주하다. 제법 많은 하얀 소들이 보이고, 그 틈에 관광용 수레를 끄는 말도 한 마리 보인다. 소들은 커다란 구유에서 여물을 먹는라 바쁘다. 어른도 아이들도 더위에 지쳤을까, 별 표정들이 없다.

수천 년 그 자리에 앉아
무슨 생각을 그리 꼴똘히 하십니까
지금 세상 밖에는 바람 불고
꽃잎 날리고, 생사 번열(煩熱)
천 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는데

도대체 그 자리에 앉아
무엇을 할 작정입니까

들꽃 한 송이라도 피울 작정입니다

- 돌부처, 윤재훈

 

(다가오지 마! 사진 윤재훈)
(다가오지 마!.  촬영=윤재훈 기자)

야자로 지붕을 씌우고 대나무로 벽을 막은 집이 두 채 있다. 아주머니가 문앞 대나무 의자에 누워있다가 손짓을 해 안으로 들어가 보니 딸과 함께 앉아있다. 영어로 이야기를 하니 대화가 잘 안된다. 잠시 후 젊은 남편이 들어오더니 커다란 칼을 내린다. 섬찟하다. 이윽고 뒷춤에 차고 어디 밀림에라도 나가는 것일까?.

이제 막 부화를 했는지 병아리 10마리와 어미닭이 바쁘게 돌아다닌다. 어미가 막 먹이를 쪼으려고 하면 마치 밀물처럼 10마리가 달려들어 어미가 쪼지를 못한다. 평생 주기만 하던 우리네 부모님이 생각난다. 자식은 평생을 봉양해도 그 은혜의 반의 반도 헤아리지 못하다는데, 도대체 부모님은 주고 또 주어도 항상 안타까워하는지 모르겠다.

(잊혀진 탑들. 사진 윤재훈)
(잊혀진 탑들. 촬영=윤재훈 기자)

천 불 천 탑의 고향, 돌뿌리 하나에도 불심이 깃들여 있는 땅, 세상에는 신들이 이리 많아 그나마 세상이 이렇게 유지되고 있는지, 바간 왕국에 머무는 내내 오토바이를 타고 탑과 절을 찿아나섰다.
멀리 또 탑 군락이 보인다. 사방을 둘러보며 다 탑들이 보인다. 화순 운주사도 천불 천탑이라고 하지만, 이곳에 오면 입이 딱 벌어진다.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은 한곳에 몰려 있지만, 이곳은 넓은 지역에 산재해 있는 불교 왕국이다. 뙈약볕 아래 풍화되어 가는 탑들, 마치 무더위에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질 듯하다. 탑들도 부처님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직선으로만 된 부처님의 손동작은 약간 어색하다.

큰 탑, 작은 탑, 허물어진 탑, 꼭 유명한 장소만 찾아다니지 않아도 보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천 년 고도 바간, 그 불국에서 다시 한 번 세계가 평화롭기를 기원해 본다.

(옛 영화가 아스라하다. 사진 윤재훈)
(옛 영화가 아스라하다. 촬영=윤재훈 기자)

동남아 불교국가에서 탑을 말할 때는 단순한 탑의 개념이 아니라, 사원의 의미로 보면 된다. 탑의 내부가 워낙 넓어, 그 안에서 법회와 기도를 비롯해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탑이 조그마하면 그 이름도 얻지 못하는 듯하다.

탑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파야(Pa Ya)>는 ‘노예’라는 뜻이다. 만약 사원에 그 이름이 있으면 전쟁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면 된다.

다음은 <제디(째디)>이다. 이 탑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탑이다. 파토와 같은 회랑이 없고, 땅 위에서 바로 탑이 올려진 양식이다. 바간에서는 밍글라제디가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파토>이다. 탑 안에 불상들이 모셔져 있어 순례자들이 안으로 들어가 기도와 법회를 한다. 대부분의 사원은 맨발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대통령도 공식적인 행사에 올 때는 전통복장인 ‘론지’을 입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다닌다.

(“나에게 길은 없다” 아난다 파야. 촬영=윤재훈 기자)

‘아난다 파야(Ananda Paya)의 입구는 돌출되어 위에서 보면 열 십 자 형태를 띄고 있다. 아치형 회랑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벽면에는 감실을 만들어 좌불상을 하나씩 안치시켰다. 바간의 쉐지곤’, ‘만달레이의 마하무니’, ‘양곤의 쉐다곤’과 함께 미얀마에서 가장 숭배받는 성지 가운데 하나이다. 이 가운데 쉐지곤과 쉐다곤은 ‘탑’으로, 마하무니는 ‘불상’으로, 유명한데, 아난다는 ‘사원 건축’으로, 바간의 중기 건축 양식을 띄고 있다.

바간왕국을 대표하는 사원이며 양곤의 쉐모도 사원이 생각날 정도로 규모가 크다. 13세기 이후 바간이 사실상 버려진 이후에도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으며, 바간의 가장 전성기를 이룬 아노라타 왕과 미얀마 최초 통일왕국을 이룬 그의 아들 짠지타 왕에 의해서 1091년에 완성되었다.

짠지타 왕은 쉐지곤을 완성시키고 난 1년 후 이 사원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그 양식이 전혀 다른 것은 인도에서 이주해 온 불교건축가들의 영향이 컸다. 완벽한 균형미와 함께 바간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불리며, 보존도 잘 되어있다. 출입구는 동서남북 4군 데가 있으며, 사원의 높이는 51m로 대략 17층의 건물에 해당하며, 동서 길이가 182m, 남북의 길이가 180m이다.

(막 산보라도 나갈 차림이다. 사진 윤재훈)
(막 산보라도 나갈 차림이다, 목조 도금 전신불. 촬영=윤재훈 기자)

전체적으로 십자가 모양으로 지어져 있으며, 내부에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불상들이 있다. 그중 동서남북에는 약 9,5m에 달하며 금빛으로 빛나는, 목조 도금 전신불이 4기가 서 있다. 이것은 해탈의 경지에 오른 부처를 형상화한 것으로, 사방으로 도는 길이 3개가 있는데, 아무리 돌고 돌아도 제 자리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가장 안쪽은 왕이 다니던 길, 중간에는 귀족이, 바깥쪽은 서민들이 다니던 길이다.

남쪽과 북쪽의 불상은 멀리서 보면 인자한 모습인데, 가까이서 보면 노려보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귀족에겐 엄격하고, 멀리서 밖에 볼 수 없는 평민에게는 인자하신 모습을 상징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부처님의 전생담을 그린 637점 정도의 그림도 볼 수 있다. 1090년에서 1105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부처의 한없는 지혜’를 대표하는 파고다로 1975년 지진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복원되었다.

(부처를 수호하는 로카낫(Loka nat). 사진 윤재훈)
(부처를 수호하는 로카낫(Loka nat). 촬영=윤재훈 기자)

마지막 네 번째 불이 석가모니불이며, 입구 양옆을 지키는 황금색 옷을 입은 젊은 상은 로카낫(Loka nat)이다. 머리에 높은 모자를 쓰고, 목걸이, 팔찌 등으로 장식했다. 왼손은 아래로 힘차게 누르고 오른손은 손바닥을 밀면서, 부정한 것을 물리치겠다는 의지와 용맹으로 보인다.

(“무엇을 찾아 허둥대느냐”. 촬영=윤재훈 기자)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도 수많은 부처님들이 계셨는데, 기록으로 나타나신 부처님은 28분이 있다. 아난다 파야에는 현겁 세상에 나타난 석가모니 부처님 외에 과거 3불이 모셔져 있다. 한국에서는 22대 위빠시 붓다(Vipassi Buddha)에서 28대 석가모니 붓다까지를 과거 7불이라고 일컫고 있다. 29대는 미래에 오실 미륵불(彌勒佛, 마이트레야 부처)이다.

서쪽에는 ‘고따마 부처(Gautama Buddha), 석가모니불(釋迦牟尼, Sakyamuni)’님이 서 계시며, ‘고따마 싯다르타’라고도 부르는데, 고따마는 성에 해당한다. 또한 석가모니라는 이름에서 ‘석가’는 부족명으로 ‘능하고 어질다’라는 뜻이며, ‘모니’는 ‘수행자나 성자’를 가르킨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석가모니불 아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으며, 불상에는 워낙 많은 금딱지를 붙여서 점점 불상이 두꺼워지고 있다.

이 붓다는 화재로 전소되었고, 현재의 불상은 약 100년 전 콘바웅 왕조 때 ‘우산네’라는 사람이 금, 은, 동, 아연, 철 등을 합금해 새롭게 조성한 것이다. 붓다는 수인의 모양에 따라 그 성격을 구분할 수가 있다. ‘시무외인(施無畏印)’은 중생들의 근심과 두려움을 없애주겠다는 뜻이며, 왼손 ‘여원인(與願印)’은 자비를 베풀고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의미이다. 틸로민로 사원과 달리 방향에 따라 불상의 위치가 다른 듯하다.

옆에 감실에는 바간왕조를 상좌부 불교국가로 만드는데 일조한 ‘신 아라한 (Shin Arahan)’ 스님과, 아난다 사원을 건설한 짠지타 왕의 조각상이 있다.

북쪽의 ‘구류손불(拘留孫佛, 까꾸산다 부처 Kakusandha Buddha)’은 과거 28불 가운데 25번째 부처로 현겁 세상에 첫 번째 부처님이며, 아난다 사원 건축 당시의 불상이다. 티크 나무로 만든 목불금박으로 도금한 바간양식이다. 수인은 ‘설법인(說法印)’이다. 득도하신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의 손 모양이다. 유리 광배로 화려하게 장식한 모습이 다른 불상에서 볼 수 없으며, 눈은 아래 방향을 보고 있어 인자하다.

동쪽의 ‘구나함모니불(俱那含牟尼佛, 꼰냐가마나 부처 Konagamana Buddha)은 과거 28불 가운데 26번째 부처다. 화재로 크게 훼손된 것을 1857년 꼰바웅 왕조 ‘민돈왕’ 시기에 바간의 행정 관리가 티크목으로 새롭게 조성하였다. 수인은 두 손으로 가사 자락을 잡고 있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손 모양은 무한한 자비를 상징한다. 오른손 엄지와 중지 사이에 구슬을 쥐고 있는데, 이 구슬이 알약과 닮아서 병자를 치료하는 역할을 한다.

남쪽에 있는 가섭불(迦葉佛, 갓싸바 부처 Kassapa Buddha)은 현 세상에 출현하신 세 번째 과거불이다. 인도에 관련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가섭불이 앉았다는 연좌석이 경주 황룡사지에 있었는데, 몽골군의 침입 때 땅에 파묻혔다고 한다.

(세계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사진 윤재훈)
(세계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촬영=윤재훈 기자)

파리, 베르시 세인Very seine 버스터미널
티켓부스 앞에서 초라한 행색으로
서성이는 사내

어느 나라에서 왔을까,
눈동자마저 힘을 잃었다
도너츠를 반쯤이나 먹고 있는 중국인 여자에게

주저주저하며 다가가더니,
빵을 달라고 한다
그녀가 반쯤 떼어주자 서둘러 입에 넣는다

얼마나 굶었을까
세계는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을 것이다
새들이 하루종일 먹이를 찾아 헤매듯
그도 그러했을 것이다

버스 시간이 늦어 허둥지둥하면서
막 티켓을 집어넣으려는 순간, 세상에!
여기에서 장발장을 보다니
그가 아직도 살아있다니,
그것도 더 초라한 모습으로
21세기의 거리를 여지껏
헤매고 다니다니,
탄식이 흘러나온다

나는 주섬주섬 짐을 뒤져
어제 사 둔 커다란 빵덩어리를 주었다
촛점 풀린 그의 눈을 보면서
오늘 저녁은 또 어찌하려나
아무리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고국에서는 그의 부모님이나
그리운 아내와 자식들이
기다리는 가장일 텐데

세계는 또 어떤 이데올로기와 이상을 꿈꾸며
오늘을 위태롭게 지탱하는지

 - 장발장을 만나다, 윤재훈

미얀마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사서가 19세기에 쓰여진 <유리궁 연대기>라는 책이다. 여기에 의하면 바간은 기원후 2세기부터 ‘버마족’에 의해 왕국이 발전하였으며, 1044년 즉위한 ‘아노라타 왕’은 당시 가장 강력했던 남쪽의 몬족 ‘타톤 왕국’을 점령하고, 그곳 왕 마누하와 왕비 등 3만여 명을 끌고왔다. 또한 전쟁을 통해 수많은 부족들을 복속시켜 왕국을 넓혔다. 그리고 그의 아들 짠지타 왕은 많은 부족들을 화합시켜 명실공히 ‘미얀마 최초의 통일왕국’을 완성했다. 열렬한 불교신자였던 두 왕은 수백 개의 불탑과 사원을 건축했다.

왕국은 불심의 힘이였던지 200년의 영화를 누렸지만, 1287년 자신의 부탁을 거절했던 마누하 왕처럼, 몽골의 조공을 거부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고향 마을에 온 듯하다. 사진 윤재훈)
(고향 마을에 온 듯하다. 촬영=윤재훈 기자)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 땅에 존재했던 왕국들이 생각난다. 삼국을 지나 이 땅에 존재했던 ‘신라(新羅)’, 최초로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여들여 이 땅을 통일해 ‘천 년’이라는 유구한 역사를 이어간 ‘금관, 석가탑, 천문학의 성지 첨성대, 인면 유리구슬의 나라, 그리고 500년을 이어간 ‘고려’와 ‘조선’이라는 나라

500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어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련가 하노라.

- 야은, 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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