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투어] 전국 향토민요 한자리에...‘이 땅의 소리꾼’ 특별전 외

서성혁 기자
  • 입력 2021.06.09 18:12
  • 수정 2022.04.2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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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획전시_각 지역 향토민요 남긴 '이 땅의 소리꾼'
#2. 기획전시_독특한 화산섬 제주도의 민요 '너영나영'

(서울 우리소리박물관 전경. 사진=서성혁 기자)
(서울 우리소리박물관 전경. 촬영=서성혁 기자)

[이모작뉴스 서성혁 기자] 판소리 명인은 무형문화재로서 유명해지고 대우받기도 하지만, 향토민요를 부르는 소리꾼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또한, 누가 불렀는지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일반 사람이 부른 노래기 때문이다. 소멸할 수 있는 향토민요를 모아 소리와 함께 전시‧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인 ‘서울 우리소리박물관(이하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서는 특별전시공간과 기획전시실에서 다양한 향토의 소리를 기증받아 기획전시를 연다. 현재는 전국 각지의 소리를 담은 ‘이 땅의 소리꾼’과 제주 향토민요를 들을 수 있는 ‘너영나영’이 기획으로 전시돼 있다.

#1. 기획전시_각 지역 향토민요 남긴 '이 땅의 소리꾼'

(서울 우리소리박물관 외부의 '이 땅의 소리꾼' 전시관 입구. 사진=서성혁 기자)
(서울 우리소리박물관 외부의 '이 땅의 소리꾼' 전시관 입구. 촬영=서성혁 기자)

박물관에서 기획전시로 연 <이 땅의 소리꾼>은 일반 서민을 주인공으로 해 그들이 살아온 생애와 함께 우리소리를 곁들인 전시이다.

<이 땅의 소리꾼>은 박물관 외부의 기획전시실에서 열렸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많은 향토민요 소리꾼이 있다. 그중에서도 향토민요를 많이 부르고, 중요한 민요를 알고, 잘 부르는 6인을 선정했다. 평범한 사람이 각자 살아온 생애를 우리는 느끼며, 그들이 부른 향토민요의 지역성과 예술성을 감상할 수 있다.

일하다 힘들 때쯤 술 마시며 노래하는 것이 낙일세...“충북 보은군의 소리꾼, 서정각”

(“충북 보은군의 소리꾼, 서정각”. 촬영=서성혁 기자)
(충북 보은군의 소리꾼, 서정각. 촬영=서성혁 기자)

 

그가 살던 보은군 풍취리는 평야지대로, 마을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지었는데, 자연스레 농요를 불렀다. 그는 농사할 때 향토민요를 불렀다. 그 소리로 자신과 품앗이꾼들을 고무시켰다. 농부들은 잠시나마 힘든 것을 잊고 함께 부르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가 농사지으며 그 당시 합을 맞추기 위해, 자신과 품앗이꾼들에게 힘을 내고자 부른 노래 <모찌는소리>, <모심는소리>, <논매는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혀...“전남 고흥의 소리꾼, 정영엽”

(정영엽. 사진=서성혁 기자)
(전남 고흥의 소리꾼, 정영엽. 촬영=서성혁 기자)

소리꾼 정영엽의 고향은 전라남도 고흥의 득량도라는 섬이다. 그녀는 열아홉에 시집살림을 시작하며 섬을 떠나 육지로 나왔다. 결혼 전부터 시집살림을 준비하기 위해 집안일을 도우며 민요를 배웠다. 스스로 얻은 민요를 결혼 후에도 부르며 마을에서 대표하는 소리꾼이 됐다.

그녀가 부르는 민요는 <맷돌질소리>서부터 남자들이 부르는 <풀짐나르는소리>, 꽃놀이를 하러 오가며 부른 <화전놀이노래>까지 다양하다. 일하다 잠이 오는 사람들이 “노래나 하시오”라며 운을 띄우면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했던 그녀는 “뒷소리나 잘 맞추시오”라고 말했다. 그녀의 삶에서 우리소리는 떼어낼 수 없는 존재였다.

소리내다보면 노래가 되더라...“강원 화천의 소리꾼, 신현규”

(신현규. 사진=서성혁 기자)
(강원 화천의 소리꾼, 신현규. 촬영=서성혁 기자)

강원도 화천은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곳에서 그는 평생을 살았고 그에 맞게 산일을 했다. 나무와 맞닿은 하늘을 벗 삼아 일할 적이면 그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 노래 실력은 주위 사람들이 인정했고, 무슨 일을 하든지 노래할 일이 있으면 그가 나서곤 했다.

강원도 산골에 노래가 메아리쳤던 것은 그가 있기 때문이었다. 나무를 벨 때 부른 <운재소리>와 <목도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른들 소리듣고 보존해 후세에 전하고 싶었다...“경남 고성의 소리꾼, 천의생”

(천의생. 사진=서성혁 기자)
(경남 고성의 소리꾼, 천의생. 촬영=서성혁 기자)

그는 진주 평촌에서 태어나 근현대 격동의 시기를 모두 겪었다. 일제강점기에 만주 기마병으로 차출되고, 일본의 멸치잡이 배를 타고, 품팔이했다. 광복 후에는 농부로 살았다. 일상이 아닌 평생이 고단한 노동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는 농요를 향한 애정과 계승의지로 우리소리를 보존하고자 했다. 그렇게 고성의 농요는 보존될 수 있었다.

그가 농부로 일하던 경남 고성은 논이 넓어 <보리타작소리>, <논매는소리> 같은 소리가 나올 수 있었다. 특히, 그가 부른 <칭칭이소리>는 많은 국민이 경상도 민요인 “쾌지나칭칭나네”로 알 정도로 유명하다.

옛날엔 조기가 잘 잽혔시유...“충남 태안의 소리꾼, 강대성”

(강대성. 사진=서성혁 기자)
(충남 태안의 소리꾼, 강대성. 촬영=서성혁 기자)

황금빛 석양이 드리우는 태안반도에는 예전만 해도 조기가 엄청나게 잡히던 시절이 있었다. 조기잡는 철이 되면 서해안 일대 어부들은 모두 조기잡이에 나선다. 태안의 안면도 옆 황도의 소리꾼인 그는 40년 가까이 어부로 살며,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조기잡이 소리를 남겼다.

그는 연평바다에서 물밀 듯 들어오는 조기에 엉덩이 춤을 출 정도로 신이 났던 광경을 <만선풍장소리>로 남겼다. 또한, 쉴 새 없이 일하며 부른 <노젓는소리>는 그가 어부를 하며 흥을 돋우려고 했던 모습이 보였다.

그저 듣고 잊지 않는 게 노래...“경북 칠곡의 소리꾼, 우상림”

(우상림. 사진=서성혁 기자)
(경북 칠곡의 소리꾼, 우상림. 촬영=서성혁 기자)

우상림은 영남 지역의 주요 민요를 기억하고 부른 소리꾼이다. 우리소리의 가치를 알고 그녀는 보존하려 했다. 그녀는 노래를 따로 배우지 않고 그저 들어서 배웠다. 스쳐 지나갈 수 있던 우리소리를 주머니에 보관하듯 넣어놨다가, 펼쳐낸 ‘보따리 소리꾼’이다.

영남 지역의 사투리가 묻어나고 얇고 가녀린 목소리로 들려주는 그녀의 우리소리는, 내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 든다. 의성어와 후렴구가 매력적인 <꽃노래>와, <꿩노래>, <아이어르는소리>, <시집살이노래>를 들을 수 있다.

#2. 기획전시_독특한 화산섬 제주도의 민요 ‘너영나영’

(너영나영 전시장. 사진=서성혁 기자)
(너영나영 전시장. 촬영=서성혁 기자)

박물관 내의 특별전시공간에서는 제주도 민요를 담은 ‘너영나영’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제주도의 굿문화‧민요문화를 깊이 연구한 ‘제주토박이 조영배 교수’가 1980년대 후반부터 제주민요의 음원과 영상자료를 꾸준히 수집했고 이를 바탕으로 전시가 열렸다.

음악은 보통 3분할 리듬이지만, 제주도의 민요는 2분할 리듬이 기본이다. 육지문화와 다르게 제주도 민요의 구조가 독특한 것은, 제주도민 삶의 환경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화산섬이다 보니 논이 많지 않고, 바람도 세며 바다도 험했다. 밭이 많아 이에 관련한 민요가 발달했다. 바다에서는 갈치나 멸치를 잡아서 부르는 노래나, 해녀들이 물질하며 부르는 노래가 생겨났다. 이밖에도 육지에서 유입돼 전승된 통속민요도 들을 수 있다.

제주 대표 민요, <오돌또기>

(사계절의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스크린. 사진=서성혁 기자)
(사계절의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스크린. 촬영=서성혁 기자)

<오돌또기>는 경서도(전남 완도군 소안면 옆의 섬) 민요권에서 유입된 제주 대표 향토민요이다. 음악적으로는 경기민요인 <오돌독>과 유사한 점이 있다. 오돌또기와 오돌독은 오도도기 소리에서 나온 것인데, 이것은 ‘화약 불꽃’을 가리킨다.

노랫말을 들어보면, <흥부가>와 <가루지기타령>에 오돌또기 첫머리와 비슷한 구절이 나타난다. 이를 보면 기녀들에 의해 경기민요가 유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모두가 남녀의 정분, 사랑‧이별‧고독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오돌또기 저기 춘향 나온다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까나

둥그대당실 둥그대당실 너도당실

연지머리로 달도 밝고 내가 머리로 갈까나

-오돌또기 中-

너하고 나하고, <너영나영>

(너영나영 소개 영상. 사진=서성혁 기자)
(너영나영 소개 영상. 촬영=서성혁 기자)

<너영나영>은 ‘너하고 나하고, 함께 어울린다’는 의미의 제주방언이다. 오래전부터 유입된 제주도의 다른 통속민요와는 달리 근대시기에 제주도에서 경기민요의 가락을 모방해 만든 신민요 계통의 노래인 게 특징이다. 곡조가 단순하고 노랫말이 쉬워 쉽게 따라부를 수 있다.

노랫말은 남녀 간의 정분을 다루면서, 덧없는 인생과 제주도의 자연경관을 노래한다. 여흥을 즐길 때 주로 부르는데, 또 다른 지역에서는 망건 만들 때도 이 노래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너영나영 두리둥실 놀고요

낮에 낮에나 밤에 밤에나

쌍사랑이로구나

-너영나영 中-

제주여성의 애환, <해녀노젓는소리>

(제주도 해녀들 물질 모습 사진=제주도청 제공)
(제주도 해녀들 물질 모습 사진=제주도청 제공)

이 소리는 제주도 어업노동요 중 가장 토속적인 원형을 잘 드러내는 민요이다. 삼다도라고 불리는 제주도는 어업이 발달했고 해녀도 유명하다. 해녀들이 물질하러 갈 때, 배를 타고 노 저으며 하는 소리를 이번 전시에서 들을 수 있다.

모터가 달린 배가 나오기 전에 해녀들은 노를 직접 저어 소라, 전복 등을 어획하기 위해 해산물이 많은 곳으로 오갔고, 경상도나 전라도 심지어 대마도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갔다. 이 노래는 해녀만 부른 것이 아니라 남자 어부들도 함께 불렀다.

후렴구로 ‘이여도 사나’, ‘이어도 허라’, ‘이어 싸’ 등이 사용된다. 이는 노 저을 때 힘들 내도록 유도하는 여음이다. 해녀 일과 밭일, 고된 집안일까지 도맡아 했던 옛 제주여성 삶의 내용이 이 소리에서 그려진다.

잘잘 가는 참나무배가 솔솔 가는 솔나무배가

우리 배는 참새새끼 나는 듯이 둥긋둥긋 잘도 나간다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해녀노젓는소리 中-

어긴여랑 사데야, <밭매는소리-사데소리>

제주도에선 밭에 김을 매며 하는 소리를 ‘검질 맨다’고 한다. 화산섬인 제주도의 농토는 대부분은 밭이었다. 그래서 다양한 밭 매는 소리가 생겼다. 밭매는 소리는 대개 품앗이를 해 앞소리꾼이 메기면 다른 사람이 후렴을 받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잘자라 우리 아가, <자장가>

(애기구덕 재현 장면. 사진=디지털제주문화대전 제공)
(애기구덕 재현 장면. 사진=디지털제주문화대전 제공)

어머니의 품 안에서 자본 기억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제주도민들은 바쁜 일상이 반복됐고, 아이를 빨리 재워야 일할 시간이 늘어났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아이를 애기구덕(대나무로 만든 제주도 전통 요람) 속에 눕혀 좌우로 흔들며 재웠다. 또, 부모와 독립적인 위치에서 성장하기를 바란 것이기도 하다. 노랫말은 아이가 잠을 잘 자고, 건강을 기원하며, 훌륭한 사람이 되길 기원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독특하고 특유의 선법이 사용된 2분할 리듬으로 제주음악양식이 잘 드러난 민요인 <자장가>는 제주도 민중의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나, 전역에 걸쳐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물 아래 옥돌 튼 요 애기야

어서 자라 어서자라

자랑자랑 웡이자랑

-자장가 中-

옛날 제주도 사람들은 고된 삶의 애환을 노래나 무속행위 등 재미와 흥으로 나타내니 감정이 직설적으로 드러나고 가사가 거칠어졌다. 제주 고유의 방언으로 노래한 제주민요는 호흡이 길고 선율이 아름다워 문학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조영배 교수의 연혁과 제주민요 관련 자료. 사진=서성혁 기자)
(조영배 교수의 연혁과 제주민요 관련 자료. 촬영=서성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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