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㉒] 韓日사진작가의 특별한 만남…한영수·이노우에 코지 사진전 ‘그들이 있던 시간

천건희 기자
  • 입력 2021.06.22 18:36
  • 수정 2021.06.2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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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라고 하기엔 동일한 시선의 닮은꼴 작품들
두 작가의 아들, 딸의 인연이 전시로 이어져
7월 25일까지 종로구 ‘류가헌 갤러리’에서 열려

사진작품집/촬영=천건희 기자
사진작품집/촬영=천건희 기자

[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특별한 사진전이었다. 평생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한국과 일본 두 명의 사진작가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신기하게, 동일한 시선의 닮은꼴 작품을 찍었다. 두 작가 모두 이미 고인이 되었고, 그들의 딸, 아들이 인연을 맺어 사진전을 함께 열었다. 지난 6월 17일, 사진위주 류가헌갤러리에서 『그들이 있던 시간』 전시를 관람했다.

한국의 사진작가 한영수와 일본의 사진작가 이노우에 코지가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까지의 일상을 담은 흑백 사진 전시이다. 제1전시실에는 작품이 한 쌍씩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의 배경과 인물들, 구도와 느낌이 너무 비슷해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 사진들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울과 후쿠오카에서 각자 찍은 사진이었고, 두 사진작가는 죽을 때까지 서로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고 한다.

이노우에 코지 작품(좌), 한영수 작품(우)/촬영=천건희 기자
이노우에 코지 작품(좌), 한영수 작품(우)/촬영=천건희 기자

개성에서 태어난 한영수 사진작가(1933~1999)는 한국전쟁 참전 후 리얼리즘 사진작가로 활동했고, 70년대 광고·패션 1세대 사진작가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작고 후에는 그의 딸이 한영수 문화재단(한선정 대표)을 설립해서 아버지의 작품을 널리 알리고 있다.

후쿠오카에서 태어난 이노우에 코지(1919~1993)는 3세 때 사고로 청력을 잃었으나, 장애를 극복하고 주목받는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소리 없는 세상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작고 후에는 그의 아들 이노우에 하지메(사진작가)가 작품들을 관리하며 ‘이노우에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서울과 후쿠오카에서 각각 활동하면서 교류가 없던 두 사진작가의 작품이 70여 년이 지나 한자리에서 전시회를 하고, 작품집을 출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2세들이 만든 인연 덕분이다. 2008년 대구사진비엔날레를 방문한 하지메 사진작가가 한영수 사진작가의 사진을 보고 “마치 아버지의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며 한선정 대표에게 아버지의 사진집 두 권을 선물로 보내면서 인연은 시작되었고, 이번 전시는 인연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포대기에 싸여 엄마 등에서 장난치는 아이, 벌거벗고 물놀이하는 아이들, 줄넘기하는 아이들 등 한 쌍마다 서로 너무 닮은 분위기이지만, 또 다른 독특한 멋을 가진 커플 사진들이었다. 서울과 후쿠오카에서 촬영된 한 쌍의 사진들은 서로 대화하는 듯했다. 1950년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과 일본의 풍경인데, 사진 속 인물들의 자연스럽고 생기 있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한다. 두 사람의 많은 사진이 이렇게 닮은 건 사물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같기 때문이 아닐까.

한영수 작품/촬영=천건희 기자
한영수 작품/촬영=천건희 기자

제2전시실에는 한영수와 이노우에 코지의 사진들이 나뉘어 전시되어 있다. 한영수 사진작가의 말이 전시된 사진의 길잡이 노릇을 한다.

“그 참담한 기억들이 생생한 가운데 나는 군 복무를 마치고, 전화의 그을음이 채 가시지 않은 생활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놀랍고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당연한 사실이었다.”

아카데미극장 앞에 모인 사람들, 모피코트를 입고 걸어가는 멋진 여성, 양담배를 파는 명동, 등 한영수의 사진들은 전후(戰後) 서울의 낭만, 풍경과 그 시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다리를 다친 주인과 헌책을 고르는 어린 여학생을 찍은 사진은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했다.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1950년대의 서울과 후쿠오카의 생활 방식, 시대 상황,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전시였다. 사진은 재현성(再現性)과 서사성(敍事性)을 가지고 있고, 기록은 그만큼 중요하고 소중한 자산임에 틀림없었다.

이노우에 코지 작품/촬영=천건희 기자
이노우에 코지 작품/촬영=천건희 기자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하지메 사진작가가 뇌출혈로 말을 못하고 동작마저 불편해 더 많은 작품을 전시하지 못하고, 전시회도 보러 오지 못했다는 소식에 안타까웠다

하지메씨가 서면 인터뷰로 남긴 바람은 따뜻하다.

“아버지들이 남긴 수많은 사진들을 보관·출판하면서 당시의 시대상과 분위기, 조형미와 아름다움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나와 한선정씨의 바람이 깊은 인연이 되어 준비한 첫 전시이다. 가난했지만 상냥함, 따뜻함, 씩씩함이 살아 있던 시절의 향수를 관람객들이 느끼실 수 있다면 좋겠다.”

시대적 특징들이 잘 드러나 있어서 자료적으로도 귀중한 아카이브인 아름다운 사진들을 남긴 한영수, 이노우에 코지 작가의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어서 기뻤다. 부모님의 작품을 널리 알리려 노력하는 2세들의 우정이 만들어낸 전시회여서 더 흐뭇하다. 사진작가 한영수와 이노우에 코지의 2인전 『그들이 있던 시간 (The Times They Were)』 은 7월 25일까지 류가헌 갤러리에서 열린다.

사진위주 '류가헌 갤러리'/촬영=천건희 기자
사진위주 '류가헌 갤러리'/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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