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62년 전 헤어진 가족 만났다..유전자 분석 통해 극적 상봉

윤철순 기자
  • 입력 2021.07.05 16:52
  • 수정 2021.07.0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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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노년의 조건은 돈·건강 보다 소중한 가족..
진명숙씨, 부모형제 그리워 가족 찾기 포기 안 해

[이모작뉴스 윤철순 기자] 대부분의 시니어세대가 ‘많은’ 형제자매와 함께 성장하며 유년기를 보낸다. 나이가 들면서 영원히 옆에 있을 것만 같은 부모를 여의고 형제자매까지 하나 둘 떠나면 사람들은 그때야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다고 한다.

행복한 노년의 조건은 무엇일까. 경제적 여유와 건강만이 충분조건은 아닌 것 같다. 세월이 흐를수록 기쁨과 슬픔을 함께 공유하며 고독한 노년의 길을 배웅해 줄 수 있는 가족은 그래서 소중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추석이나 설 명절이 다가 올 때면 더욱 그리워지는 게 부모형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난 2012년엔 부산에 살던 80대 한 실향민이 북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었다.

당시 그의 아내는 경찰에서 “남편이 전날 술을 많이 마신 후 아침에 갑자기 미리 준비해 둔 살충제를 마시고 ‘내 간다, 미련 없이 간다’라는 말을 남기고 쓰러졌다”고 진술했다.

경찰조사 결과 스무 살 무렵인 6·25전쟁 때 부모형제를 북한에 두고 혈혈단신 남한으로 내려왔지만, 1년에 두 차례 설날과 추석 명절만 다가오면 북에 두고 온 가족의 생사를 걱정하며 심한 우울증세를 보이며 난폭해지기도 했다.

(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진명숙씨(여동생, 왼쪽)가 큰오빠 정형곤씨와 상봉해 포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5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진명숙씨(여동생, 왼쪽)가 큰오빠 정형곤씨와 상봉해 포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제공)

5일 오전, 62년 만에 헤어졌던 가족이 극적으로 만났다는 경찰청 보도 자료가 언론에 공개됐다. 4살 때 가족과 헤어졌던 진명숙(66세)씨가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경찰청 실종자 가족지원센터에서 오빠 정형곤(76), 정형식(68)씨와 상봉했다는 내용이다.

경찰은 장기실종자 발견을 위한 ‘유전자 분석 제도’ 덕분에 기적처럼 가족을 만나게 됐다고 밝혔다. 진씨는 당시 4살이던 1959년 여름, 인천 중구 배다리시장 인근에서 둘째 오빠 정씨와 함께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걸어가다 길을 잃었다고 한다.

이후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소재 보육원을 거쳐 충남에 거주하는 한 수녀에게 입양돼 생활했다고 한다. 성씨도 정씨에서 진씨로 바뀌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에도 진씨는 가족 찾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방송에도 출연하며 노력을 쏟으며 지난 2019년 11월 경찰에 유전자 등록 신고를 하게 됐다. 이후 경찰청 실종가족지원센터는 지난 3월부터 진씨의 실종 발생 추적과 개별 면담 등을 통해 실종 경위가 비슷한 대상자 군 선별에 들어갔다.

이 중 가족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이는 둘째 오빠 정씨를 발견해 1대 1 유전자 대조를 위한 유전자 재채취를 진행했다. 유전자 재채취는 진씨의 둘째 오빠 정씨가 캐나다 앨버타주에 거주하고 있어 어려웠다.

하지만, 경찰청에서 외교부·복지부와 함께 운영해 온 ‘해외 한인 입양인 유전자 분석제도’를 활용해 주 밴쿠버 총영사관으로부터 정씨의 유전자를 외교행낭으로 송부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진씨는 이날 첫째 오빠 정씨 및 가족들과 감격스런 상봉을 하게 된 것. 캐나다에 있는 둘째 오빠 정씨와는 화상으로 만날 수 있었다.

진씨는 “가족 찾기를 포기하지 않고 유전자를 등록한 덕분에 기적처럼 가족을 만나게 됐다”며 “도와주신 경찰에 감사드리며 남은 시간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둘째 오빠 정씨는 “동생을 찾게 해 달라고 날마다 기도했는데, 유전자 등록 덕분에 결국 동생을 찾을 수 있었다”며 “다른 실종자 가족들께 이 소식이 희망이 되길 바라며 끝까지 애써주신 경찰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언제나 영원할 것 같은 부모형제 가족, 친구와 주변 이웃들이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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