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반격] 시니어 바리스타 "웃음으로 볶고 정으로 내린 커피"...카페 '라운지(Round.G)’

서성혁 기자
  • 입력 2021.07.13 18:22
  • 수정 2021.08.1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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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바리스타 "웃음으로 볶고 정으로 내린 커피"]

'카페 라운지(Round.G)'
(카페 라운지에서 일하는 매니저와 편xx 씨(54세). 촬영=서성혁 기자)
(카페 라운지에서 일하는 매니저와 편xx 씨(54세). 촬영=서성혁 기자)
“딸이 말하길, 제가 카페 일을 시작한 후로 즐거워 보인대요... ” 인천 서구 ‘라운지 카페’의 시니어 바리스타 편xx 씨(54세)가 커피를 내리고 있다. 친근한 웃음과 정(情)으로 커피를 내주셨다. “아메리카노 한잔 나왔습니다.” 활기차고 따뜻한 말투가 친절한 직원보다는 내게 커피를 내주는 어머니와도 같았다. 현재 카페 라운지에서 일하는 그녀는, 원래 뷔페에서 매번 단기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일자리가 줄자, 고용복지센터에 도움 받아 일을 시작했다.

[이모작뉴스 서성혁 기자] 올해 5월에 인천 서구에는 신중년 세대의 일자리 창출과 소통공간을 위한 카페 ‘라운지커뮤니티센터(Round.G)’가 생겼다. ‘협동조합 문화비상구’는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베이비붐 세대를 위해 일자리를 제공하고, 세대 간을 이어주는 문화프로그램 공간을 운영하며 신중년에게 인생2막을 펼칠 공간을 인천공항공사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아 제공한다.

“카페라는 공간 안에 자신의 끼를 발산하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어요”
세대를 아우르는 긍정적 소통의 공간, 카페 라운지

('협동조합 문화비상구'는 카페 라운지 개점을 위해 전문가의 의견을 듣곤 했다. 사진=문화비상구 제공)
('협동조합 문화비상구'는 카페 라운지 개점을 위해 전문가의 의견을 듣곤 했다. 사진=문화비상구 제공)

‘문화비상구’는 2019년 인천에 사는 청년 문화인 4명이 모여서 만든 협동조합이다. 그들은 “우리가 살았던 인천지역에도 문화예술로써 긍정적인 영향을 주자”는 다짐으로 조합을 만들었다. 연극영화‧조각‧서양학 등을 전공한 학생이다 보니 문화예술에 관해 관심이 많았다. 인천에는 문화예술 공간이 없어 서울로 가야만 했는데,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라운지’는 시니어가 일하는 카페로만 보일 수도 있지만, 지하는 전시·공연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1층에는 카페, 지하에는 문화공간이 마련돼 있는 라운지는 골드세대가 모인다는 중의적인 의미와 시니어들이 문화여가생활을 즐겼으면 해서 Round.G로 카페이름을 지었다. 실제로 카페 라운지는 매니저를 제외하고 신중년이 직원으로 근무한다. 시니어 바리스타가 일하는 카페 라운지에는 많은 이야깃거리가 나온다.

“제가 많이 우울해보였죠, 감사합니다.”

(시니어 바리스타와 함께 만든 독특한 모양의 컵(상단)과 단골손님이 놓고 먹는 전용 컵(하단). 촬영=서성혁 기자)
(시니어 바리스타와 함께 만든 독특한 모양의 컵(상단)과 단골손님이 놓고 먹는 전용 컵(하단). 단골이 꽤나 생길 것 같다. 촬영=서성혁 기자)

이 근처에 7호선 석남역이 5월에 개통됐다. 그전에는 홀로 거주하는 청년ㆍ중년들이 많이 찾아 왔다. 시니어 바리스타 중 한분이 말하길, 어떤 여성이 한가한 오후 2시쯤 매번 카페에 방문했는데, 한 달 내내 우울하고 고독하니 커피 한잔을 놓고 창문 너머를 바라만 보고 갔다고 한다.

바리스타는 공허함과 우울함을 비추는 그녀를 공감하고 싶었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으로서, 그 여성에게 다가가 말을 몇 번이고 걸었다. 한동안 대답도 안 하던 그녀는 며칠 뒤, 옆 가게의 빵을 사왔다. “제가 많이 우울해보였죠, 감사합니다.”

그녀는 단 두 마디와 빵 봉투를 시니어 바리스타에게 건네줬다. 귀찮았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저 자식이 걱정거리가 있다면 그 고민을 귀 기울이며 공감해주는 모성애를 카페에서도 발산한 것이다. 그 공감이 연결된 보답이었다.

“사랑방 같은 공간, 카페 라운지”

(카페 라운지 김민주 대표가 시니어 바리스타와 함께 논의해 만든 원두를 설명하고 있다. 촬영=서성혁 기자)
(카페 라운지 김리원 대표가 시니어 바리스타와 함께 논의해 만든 원두를 설명하고 있다. 촬영=서성혁 기자)

시니어가 바리스타로 있는 카페라고 하면 누구나 ‘친절함’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서비스업이니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신중년의 연륜에서 나오는 그 말투가 친절함을 불렀다. 요즘 카페 라운지에 사람이 꽤나 찾아온다.

카페 라운지에서 근무하는 시니어 바리스타들은 모두 50세가 넘는다. 편 xx씨는 며칠 전 한 중년 손님에게 “왜 요즘 안 보이세요”라고 말했다. 마감시간 때마다 방문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손님이었다. 스케쥴을 바꾸다보니 마감시간에 안보여 그 손님이 말을 건 것이다. 항상 친근하게 먼저 다가가 간간이 말을 걸고, 그 손님과 연배까지 비슷하니, 자연스레 친해졌던 것이었다.

이외에도 젊은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혼자서 오면, 화장실을 갈 틈이 없는데, 그동안 시니어 바리스타가 아기를 돌봐준다. 강아지를 데리고 오는 손님도 있었는데, 갑자기 안 데려와서 무슨 일이 있나 물어보기도 했다. 분리불안이 심했는데, 나아서 데려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손님들의 사소하고도 평범한 일상에 시니어 바리스타가 함께 녹아들었다.

애초에 ‘시니어 바리스타들’과 ‘협동조합 문화비상구’의 소망은, “카페 라운지가 커피와 음료만 만드는 곳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카페 라운지는 인천 지역에 녹아들어 지역 주민과 함께 소통하는 ‘사랑방’같은 공간이 됐다.

“내가 이 공간에 있어서 뿌듯하고 멋져 보인다”

(컵 위에 화분을 얹어 놓은 것은 시니어 바리스타의 아이디어다. 촬영=서성혁 기자)
(컵 위에 화분을 얹어 놓은 것은 시니어 바리스타의 아이디어다. 촬영=서성혁 기자)

시니어 바리스타들은 오기 전에 하던 말들이 ”공공근로사업 혹은 신중년 일자리사업에 참여하면 조그마한 테이블에 앉아서 멍하니 있거나 청소만 하는 등 단순업무만 했다”고 한다. 나도 인생2막이 분명 올 텐데, 그렇게 커리어 없이, 자존감이 떨어지는 무의미한 일만 한다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직원 간에 서로 소통하고 의논하는 카페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여름 신메뉴 개발에 앞서 수박쥬스를 만들었는데, 카페 직원들끼리 서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렇게 시니어 바리스타가 직접 담근 청주를 활용한 달달한 수박쥬스가 탄생했다. 서로 의논하고 절충해 만들어진 것이다.

(수박쥬스가 만들어지기 전, 컵 안 수박 디스플레이가 참 앙증맞다. 촬영=서성혁 기자)
(수박쥬스가 만들어지기 전, 컵 안 수박 디스플레이가 참 앙증맞다. 촬영=서성혁 기자)

식물을 선정하는 일, 쿠키 등 디저트를 만드는 일, 신메뉴를 개발하는 일 등 서로가 의논해 카페를 디자인하고, 메뉴가 만들어지니 한 시니어 바리스타는 “내가 이 공간에 있어서 뿌듯하고 멋져 보인다”고도 했다. 시니어 바리스타가 성취감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지는 게 보였다.

단절을 근절하는 상징적 공간, 카페 라운지

영국 공영방송 BBC는 2019년 화재 단어 중 하나로 ‘꼰대’를 선정했었다. ‘꼰대’란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어른(그리고 너는 항상 틀렸다)’이라고 풀이했다. 김리원 대표는 “꼰대라는 단어가 세대 간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것 같다”며 “카페 라운지가 청년ㆍ시니어 간 긍정적인 소통이 이뤄지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라며 말을 맺었다.

(카페 라운지를 우편에 두고 경인고속도로 방음벽이 길게 뻗어 있다. 어찌보면 단절된 듯한데, 언젠간 드러날 것만 같다. 사진=네이버 지도)
(카페 라운지를 우측에 두고 경인고속도로 방음벽이 길게 뻗어 있다. 사진=네이버 지도)

카페 라운지 앞에는 경인고속도로 방음벽이 길게 뻗어 있다.
어떻게 보면 단절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방음벽이 없어짐과 동시에 단절된 곳이 드러나면서,
저 너머를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대 간에 이해하지 못해 만들어지는 세대차이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카페 라운지 전경. 촬영=서성혁 기자)
('카페 라운지'는 어찌보면 방음벽때문에 단절된 듯한데, 언젠간 드러날 것만 같다. 촬영=서성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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