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61] 천년 붓다왕국 미얀마14_미얀마인의 꿈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7.22 17:34
  • 수정 2021.08.1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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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인의 꿈 

우리는 카렌 사람입니다.
우리는 미얀마 사람이 아니에요.
미얀마 사람들은 우리를 싫어해요.
우리는 미얀마 언어도 문화도 알지 못해요.
우리는 미얀마에서 살지 않을 거예요.
왜 우리가 메솟 난민 캠프에서 수십 년간 힘들게 살아야 했는지,
우리는 앞으로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한국에서 살 거예요.

(카렌 여인, 촬영 윤재훈)
(카렌 여인,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냥우 마을 초입에 길게 불빛이 켜져 여행자를 유혹한다. 한 블록 정도 양쪽으로 빼곡하게 가게들이 들어차 사람들이 제법 붐빈다. 한 가게 안에는 목과 팔, 발목까지 링을 찬 카렌족 여성이, 마치 전시상품처럼 불편하게 베틀 앞에 앉아있다.

전시용인가? 베틀 앞에 앉아있는 깡마른 여인,
귀밑까지 올라온 빼곡한 링 때문에, 활동이 부자연스럽다.
족쇄처럼 목을 감아오는 그 철제 링 때문에,
잘 움직이는 못하고 바짝 마른 그 모습이 애처롭다.

(타일랜드 최대의 난민촌, ‘맬라캠프’ 촬영 윤재훈)
(타일랜드 최대의 난민촌, ‘맬라캠프’. 촬영=윤재훈 기자)

‘카렌족’은 미얀마에서 샨족에 버금가게 많은 종족이 살고 있다. 특히나 폭압과 가난 때문에 국경을 접한 타일랜드 북쪽으로 넘어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민족이다. 타일랜드 내 최대 규모의 맬라 캠프를 비롯하여 멧솟 같은 난민 수용소에서 수십 년씩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로 열악하다. 철조망 안에 갇혀 살아가는 그들의 처지에 대한 깊은 회의 같은 것이 밀려오지만, 그들은 웃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왜 지구에 살고 있는가?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회의가 밀려오지만,
그들은 또 하루의 삶을 유지해 가고 있다.

(타일랜드 오지 산속, ‘콘 맬라노이’ 마을에 사는 카렌족, 촬영 윤재훈)
(타일랜드 오지 산속, ‘쿤 맬라노이’ 마을에 사는 카렌족. 촬영=윤재훈 기자)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 사슴, 노천명

이 시가 저절로 떠오르는 민족, 동관으로 된 황금색의 쇠고리를 목에 칭칭 감아, 움직이기조차 불편해 보이는 카렌(깔리양 빠가요) 족의 숙명, 이 시는 극렬 친일파 노천명 시인의 작품이다.

‘다른 부족 남자들의 납치나, 호랑이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또는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했다고 하는데, 옛 부족국가 시절 소규모 종족들이 오직 자신의 부족을 지키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외지인들이 보기엔 불행하게 보이기까지 하는데, 그들의 속내가 궁금하다.

(이 향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 촬영=윤재훈 기자)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암컷의 페로몬 향내를 따라간 수컷과의 교합일까? 만약 자웅동체(雌雄同體암수한몸) 번식을 한다면 ‘아름다움’이나 ‘미소’라는 말들은 원래부터 없었을까? 사랑이라는 것도 호르몬의 장난일까? 그래서 나이가 들며 모든 것이 사라지나.

카렌족 여성들은 링의 무게 때문에 목도 빠지고 척추와 어깨가 저절로 눌러진다고 한다. 그 때문에 체구도 야위고 작다. 눕기도 힘들고 머리도 숙일 수가 없으니, 항상 머리를 앞으로 뺀 자세다. 우리처럼 숙이고 스마트폰도 보기 힘들 것 같다. 걷기도 부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그런 자세로 농사일도 한다니.

다섯 살이 넘어가면 동으로 된 링을 5개부터 목에 감기 시작한단다. 해마다 링을 한 개씩 목에 추가해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스무 살 정도가 되면 7~10kg 정도까지 나간다고 하는데, 전통인지 인권 유린인지 문명인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속절없이 목은 늘어나고 20~25cm 정도까지 늘어난다고 하는데, 팔, 다리에도 링을 끼우고, 그녀가 살아온 만큼 링이 늘어난다.

‘무지의 족쇄인가, 관광의 고리인가?’
가볍게 미소 짓은 카렌족 여인들의 얼굴 속에서,
이방인은 어렴풋이나마,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위안을 삼는다.

(창살 없는 감옥, 맬라 캠프. 촬영 윤재훈)
(창살 없는 감옥, 맬라 캠프. 촬영=윤재훈 기자)

부평에 가면 타일랜드의 난민 캠프 등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카렌인의 마을이 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그들, 마땅한 조국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들, 그들의 미래가 신기루처럼 흔들거린다.

우리는 카렌 사람입니다.
우리는 미얀마 사람이 아니에요.
미얀마 사람들은 우리를 싫어해요.
우리는 미얀마 언어도 문화도 알지 못해요.
우리는 미얀마에서 살지 않을 거예요.
왜 우리가 메솟 난민 캠프에서 수십 년간 힘들게 살아야 했는지,
우리는 앞으로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한국에서 살 거예요.

“그들은 알까?” 동남쪽에 있는 메솟 캠프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왔다니, 대단히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그곳에 가본 사람들은 안다. 핍박받은 소수민족 ‘난민’들이 사는 그곳은 정말 처참하다. 쓰레기가 넘쳐나고 위생 상태는 엉망이고, 배우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 그런 것은 없다. 그냥 좁은 철조망 속에서 태어나, 수십 년 그냥 살아가는, 동물원 우리 같은 곳이다.

무슨 커다란 꿈이나 희망도 없이, 밖에 나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다. 병원 하나도 없으니, "아프면 어쩌나!" 우리는 그런 복된 선진국에 살고있다. 이곳은 어떤 문화시설 하나도 없다. 나라가 없으니 인권에 대한 아무런 보장도 없이, 혹시나 쫓겨나면 갈 곳이 없다.

“나라가 없으면 인권도 없다”라고 일갈하던 신채호 선생의 말이 저절로 가슴에 와 닿는다. “청년들이여” 36년 일제의 그 피어린 길에서 우리의 선인들이 기어코 찾아낸 나라다. “조국이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바라지만 말고, 나는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깊이 되뇌어지는 장소다.

가끔 있는 자들은, “무슨 일 생기면 이민 가버리면 되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반만년이 넘은, 한민족의 삶터가 아니지 않는가?

(‘롱지’을 입고, 보따리 싸들고, 마을 사람들과 붓다 성지순례를 왔다. 촬영 윤재훈)
(‘롱지’을 입고, 보따리 싸들고, 마을 사람들과 붓다 성지순례를 왔다. 촬영=윤재훈 기자)

바간의 유적지에서 나오면 바로 냥우 삼거리와 만난다. 미야와디 강변을 따라 마을이 펼쳐져 있어 오토바이로 달리니, 움막 같은 집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어둠침침한 노점 아래에는 꽁야(꿍야)라도 파는지, 미얀마 전통 복장인 ‘롱지(Longyi)’ 치마를 두른 사내들이 모여있다.

그들이 항상 즐겨 입는 롱지에는 종류가 있다. 남녀가 구분 없이 입는 것은 ‘롱지’라 하지만, 남자만 입은 것은 ‘파소(Pasoe)라 하고’, 여자가 입는 것은 ‘타메인(Htamain)이라고 한다. 남자들은 그 치마를 입고 길거리를 가다가 오줌이라도 급하면 주위를 살핀 다음 살짝, 들고 쭈그려 앉아, 오줌을 눈다. 타일랜드의 오지 산골 몽족의 잔칫날 초대받아 가서 보니, 남자들은 급하면 여성들이 지나가는 문 앞에서도 오줌을 누었다.

(꽁야을 씹으며, 마는 주인. 촬영=윤재훈 기자)

남자들은 하나 같이 웃음기를 머금은 채 검게 침착된 이를 내보이면, 꽁야(꿍야)을 씹고 있다. 꽁야는 미얀마 남자들의 대표적인 기호품이다. 한참을 씹다가 이따금 시커먼 침을 찍, 찍, 길에 내뱉는데, 보기가 흉하다. 1개 100k인데, 옆에서 검정 이를 드러내며 웃는 사내는, 하루에 20개 정도 씹는다고 한다.

꽁야에 들어가는 재료는 상당히 다양하다. 빈랑이라는 잎에 밤색 빛깔의 ‘빈랑 열매’와 ‘석회 물질’ 그리고 ‘향이 있는 몇 가지 열매’들을 잘게 부수어 돌돌 만다. 그다음에 미련 없이 입으로 쏙, 밀어 넣는다. 동남아의 대표적인 토착문화인 ‘베텔(구장목Betel vine) 씹기(chewing)’가 미얀마식으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작은 비닐봉지 안에 넣어, 담배처럼 판다. 싸구려 화장품 로션을 입에 넣은듯하고 몇몇 알갱이들이 혀를 톡 쏘기도 하며, 약간의 박하 향이 배어 나오기도 한다. 여행자들에게는 한없이 떫고 구역질이 날 만큼 매스껍지만, 그들은 너무나 맛있게 씹는다.

(저녁 시간이 되면 남자들은 꽁야 노점으로 모여든다. 촬영 윤재훈)
(저녁 시간이 되면 남자들은 꽁야 노점으로 모여든다. 촬영=윤재훈 기자)

긴장을 풀어주고 피로를 회복시켜 주며, 담배처럼 중독성이 강하다고 한다. 사내들의 붉은 이는 꽁야를 너무 많이 씹어 침착에 의한 것인데, 그들이 웃을 때마다 입은 웃지만 얼굴이 찡그려지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는 자기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을 위해 고급 꽁야를 준비해 두는 것이 예의였으며, 왕실에서도 많이 애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국민들의 건강과 위생을 위해, 꽁야를 규제하는 캠페인이 강화되고 있다.

말레이시아가 원산지로 25m 이상 크게 자라며, 열매는 노랑, 빨강, 오렌지 색 등이 있으며, 세계적으로 이 열매를 많이 씹는다. 타닌과 알칼로이드를 함유해 ‘두통, 설사, 피부병, 구충’ 등에 효과 있으며, 어린잎은 식용한다. 동남아 여러 나라 등에서 재배되고 있다.

(조개껍질 게임을 즐기는 오후. 촬영 윤재훈)
(조개껍질 게임을 즐기는 오후. 촬영=윤재훈 기자)

그 앞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조개껍질 같은 것 6개로 게임을 즐기고 있다. 바로 앞으로는 이라와디강이 흘러가고 있어 내려가 본다. 밤이 이슥해서 인지 컴컴하고 인적이 없다. 갯벌에는 두어 척의 배만 세월 속에서 낡아가고 있는데, 약간의 두려움이 인다.

(타나카를 곱게 바르고, 뙈약볕 아래 무거운 짐을 이고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는 여인. 촬영 윤재훈)

‘타나카(Thanakha)’, 미얀마 여심을 흔드는 미용의 대명사이다. 여인네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얼굴에 달팽이 문양으로 황톳빛 타나카를 바른다. 엄마를 따라 나온 아이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귀엽게 발랐다

타나카는 ‘화장품’과 ‘선크림’, ‘약’의 세 가지 효과가 있다. 2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나무는, 미얀마의 샨이나 버꼬꾸 지역 등에서 자란다. 건조하고 바위가 많은 토질에서 자라기 때문에 줄기에 딱딱하고 얇은 껍질이 생기는데, 이 껍질 부분을 갈아 바른다. 편편하고 둥근 석판에다 물을 몇 방울 붓고 진득해지도록 나무를 갈아 그 액을 바르는 것이다.

전통은 2000년 전 베익따노(Peikthano) 왕국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문학과 시 등에서 언급하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또 최근 15세기 환따와디(Hanthawaddy) 왕조의 공주가 사용했던 타나까 용품이, 사원에서 출토되기도 하였다.

타나카는 소나 돼지처럼 ‘뿌리, 줄기, 잎’ 등 모두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이렇게 오랫동안 미얀마인들이 애정을 가지고 사용하는 이유도, 다 그 다재다능함에 있다.

먼저 ‘화장품’이자 ‘선크림’ 역할을 한다. 바르는 순간 피부를 시원하게 해주는 냉각 효과가 있으며, 자외선을 막아 ‘잡티가 생기는 것을 방지’한다. 이 때문에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경우 얼굴 전체를 포함해 팔과 다리에, 아주 두껍게 바르곤 한다.

일본 총리 다나까와 이름이 비슷하다. 까만 얼굴에 하얀 칠을 하고 눈을 껌뻑이는 모습에, 처음에는 헉, 하고 놀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노란 나뭇가루의 위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화장품, 선크림에 약의 기능까지 하는 ‘미얀마 사람들의 보물 중의 보물’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는 피부를 좋아지게 하는 목적으로 볼 부분에만 바른다. 이렇게 타나까를 매일 바르면 피부가 부드러워지고 땀구멍이 작아져 피부 유분이 조절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니, 아열대 기후에 적합한 미얀마인만의 최고의 미용 재료인 셈이다.

그런데 이 타나까는 몸의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서까지도 빛나는 역할을 한다. <뿌리>는 심장병과 배탈에 좋고, 시고 쓴 맛을 내는 <열매>는 천연두를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으며, <잎>은 말라리아와 간질 치료 성분이 있다.

가끔 얼굴에 바르려고 타나까를 갈다가 틈틈이 손으로 찍어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피가 맑아지고 몸의 열이 내려간다’고 한다. 그 외에도 나무줄기는 빗, 장신구, 상자 등을 만드는데 골고루 사용된다고 하니, 정말 뿌리부터 잎까지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이런 타나까도 피할 수 없는 단 하나의 단점이 있으니, 바로 일단 물에 개어 갈아 놓으며, 금방 부패한다. 그러므로 신선한 타나까를 쓰기 위해서는 매번 석판을 준비해 갈아야 한다.

여기에 좋은 타나까를 얻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기준이 있는데, 바로 ‘껍질의 두께’와 ‘향’이다. 오래도록 쓸 수 있는 두꺼운 껍질과 함께 아름다운 향기를 가져야만 좋은 제품인 셈이다. 그래서 버꼬꾸 지역에서 나는 것을 으뜸으로 치며, 보통 하나에 2$ 정도에서 50$까지 호가한다.

(아마라푸라, ‘짜욱또지 흰색사원’에서 타나카 발라주며 용돈벌이 하는 소녀들. 촬영 윤재훈)
(아마라푸라, ‘짜욱또지 흰색사원’에서 타나카 발라주며 용돈벌이 하는 소녀들. 촬영=윤재훈 기자)

아마다푸라에 가면 티크나무로 만들어져 171년이나 세월의 무게를 견딘, 노을로 유명한 ‘우 베인 다리’가 있다. 그 건너편에는 흰색 사원으로 유명한 ‘짜욱또지’가 있는데, 뜨락을 거닐다 초등생쯤으로 보이는 소녀 둘을 만났다. 아이들은 쩨디(파고다) 옆에서 햇볕을 피하며, 용돈 벌이 삼아 나에게 타나카를 한 번 발라보라고 권했다. 작은 볼에 달팽이 모양으로 돌아 들어간 타나카 문양이 귀엽고 대부분 여성이 바르고 있어, 호기심이 일었다. 한 번 발라 보았는데, 한참 동안 기분 좋게 시원하다.

여기에 미얀마인들의 기호품을 하나 더 들라면, 인도, 네팔인들처럼 ‘짜이’를 즐겨 마신다. 넉넉한 그들의 품성처럼 오전 시간 찻집에 앉아 왁자하게 차를 마시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보기만 해도 활기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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