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64] 천년 붓다왕국 미얀마17_위빠사나수행과 ‘쉐다곤 황금탑’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8.12 17:33
  • 수정 2021.09.1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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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빠사나(vipassana) 수행과 ‘쉐다곤 황금탑(Shwedagon gold pagoda)’ 

“요즘 산중에 있는 절간에 가보면 한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중은 물론 스님들도 물 쓰듯 세제와 퐁퐁 등을 쓰고 있다.
일회용품과 비닐도 넘치게 낭비하고 있다.


“산 중에 살 자격이 없는 산중들이다.”


제발 스님들도 환경에 좀, 각성(覺性)하셨으면 좋겠다.
불제자의 입장이다.”

(시내 중심부의 ‘술레 파고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미얀마는 테라와다(소승불교小乘佛敎, 상좌부 불교) 불교의 나라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은 마하야니(대승불교大乘佛敎) 불교의 나라다. 그러나 이 단어에서 어떤 오해가 있어서는 안된다. 마치 대승는 큰 불교이고 소승은 작은 불교 같은 그런 뜻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을 성불시키지 않고는 나는 절대로 성불하지 않겠다”는 뜻의 대원을 세운 보살도 정신의 대승이나, 내가 먼저 성불하고 나서 중생 구제를 나서겠다는 소승의 생각은,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것처럼 하릴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사랑방, ‘꽁야 노점’. 촬영=윤재훈)
(남자들의 사랑방, ‘꽁야 노점’. 촬영=윤재훈 기자)

미얀마는 어느 곳을 가나 우리나라 담배가게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거리 곳곳에 씹은 담배를 파는 노점이 있다. 주인은 씹으면서, 싸면서, 하루 100개 정도를 씹는다고 하는데, 옆에 사람은 50개 정도 씹는다고 한다. 잘 믿기지가 않는다. 담배 5갑의 개수를 씹는다니.

한 봉지에 11~12개 정도가 들어가며 500원 정도를 받는다. 그 옛날 우리의 고단한 살림살이에서 곰방대에 밀어 넣거나, 종이에 싸서 피웠던 봉초가 문득, 생각이 난다.

미얀마 국민도 무더위 속에서 가난과 독재 탄압을, 이것을 질겅질겅 씹어내며 녹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잠이 안 오는지 마을 사람들은 길거리에 나와 있고, 씹은 담배 가게는 남정네들의 사랑방이다.

여기서는 ‘꾸니’라는 나무 열매에 ‘토우’라는 흰색 액체를 넣고, ‘세이’라고 부르는 코코넛을 합해 한입 넣은데, 이것을 ‘꼬니야’라고 사내가 말한다.

(시내 중심부의 ‘술레 파고다.’ 촬영=윤재훈)
(탁발. 촬영=윤재훈 기자)

동남아 지방의 국민 간식인 바나나는 높이 걸어두면, 자기가 아직도 나무에 걸린 줄 알고, 썩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은 어떻게 그런 식물의 식생까지 알아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거리에는 이런 넘치는 과일을 비롯해 식물성을 많이 먹어서인지, 살찐 사람이 별로 없다. 하나같이 조금 야윈 듯한 모습이다.

21세기 영양이 넘쳐나는 풍요 속에서, 많은 나라의 국민이 성인병으로 죽어 나가는데, 영양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하긴 지금도 세계의 절반이 굶어 죽고 있지 않는가?, 부자 나라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당연히 선택받은 민족으로 자만심에 들떠 있을까?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 비구니가 탁발을 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미리 준비해 놓은 공양 쌀을 탁발 그릇에 넣는다. 이어 양산을 쓴 큰 비구니가 오더니, 어린 비구니의 탁발 그릇에 먹을 것을 담아주고, 다시 탁발을 한다. 오늘은 사람들이 쌀을 많이 준다. 그들에게 탁발은 매일 조석으로 하는 일상적인 복 쌓기이다.

수행자들은 또 그 양식을 먹으면서, 검소하게 수행에 정진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자식, 우리 동네 사람들이 수시로 멍크가 되니 그들에게 멍크는 이웃 사람처럼 가까워 보일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마을에는 사원이 있고, 그들의 생노병사를 관장하여 수시로 사랑방처럼 드나들고 있으니. 더욱 그러하리라.

“우리나라처럼 빳빳하게 날 선 승복을 입고 솔바람 맞으며,
신도들이 시주한 공양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이 도적놈들아”,

성철스님의 일갈(一喝)이 떠오른다. 

(‘부처님의 미소처럼’, 서양 여인이 향을 피우고 있다. 촬영=윤재훈)

요즘 조계종단에서 펼쳐지고 있는 ‘나눔의 집’ 상황을 보면 정말 시정잡배(市井雜輩)들보다 못한 상황에 불단을 떠나고 싶어진다. 보다 못해 양심선언을 한 직원들을 1년째 감찰하고 괴롭히고 있다고 하니, 총무원장을 그렇다 치고, 종정 큰 스님을 비롯하여 원로들은 도대체 무얼하고 계시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종정 스님을 선거로 뽑아 매번 개구렁텅이로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모든 인연과 심지어 부모 처자의 연(緣)까지 끊어버리고 나온 수자들도 보기 힘들고, 매일 도박에 찌들고 있는 소식만 뉴스에 올라온다. 민중 구제의 보살도 정신은 찾기 어렵고, 아전인수격인 재물착복에만 급급하고 있는 도승들만 난무하고 있는 소림사 활극이라도 보고있는 느낌이다.

하긴 자유당 시대부터 일제의 간계에 의해 이어져온 깡패스님들을 친일파처럼 처단하지 못하고, 매번 분규가 나는 것도 큰 문제일 것이다. 이어 조계종단의 대처승 문제도 있을 법하다. 눈 맑은 이판(理判) 스님들 앞에 무릅 끓고 않아 가슴으로 들어오는 법어 한 자락 듣고 싶다. 일거에 항복시켜 버리는 그 '할()'을 듣고 싶다. 그나마 무자비한  종단에서 쫒겨난 명진 스님의 말씀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까치 담배를 드릴까요? 촬영=윤재훈)
("까치 담배를 드릴까요?". 촬영=윤재훈 기자)

이 골목에도 씹은 담배 노점이 있다. 이 집 주인은 하루에 55개 정도를 씹는다고 하면서, 까만 이를 드러내며 웃고, 옆 사람은 18개 정도를 씹는다고 맞장구를 친다. 그는 이것을 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잠이 깬다고 한다. 여기서는 (꿔냑)이라고 하는데, 사람마다 부르는 이름이 약간씩 다르며, 안에 넣은 내용물도 그런 듯하다. 이 집은 나뭇잎과 열매, 그리고 흰 액체와 담배 가루를 넣는다.

여기에 까치 담배까지 파는데, 셀렉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어린 시절 노점 리어카 위에서 팔던 '까치 담배'와, 연탄불 위에 노릇노릇 구워서 팔던 두터운 '쥐포'가 생각난다. 다방에는 대낮부터 어른들이 죽치고 앉아 레지에게 커피나 기분 좋으면 쌍화차를 사주고, 세월을 죽이거나 엉덩이를 만지던 꼰대들도 떠오른다. 씹는 담배는 ‘꽁야’, ‘꼬니야’, ‘꿔냑’, 부르는 사람마다 약간씩 이름이 다르다.

(“다시 한국에 가고 싶어요.” 촬영=윤재훈)
(“다시 한국에 가고 싶어요”. 촬영=윤재훈 기자)

옆에 있는 사내는 한국 사장님 차 운전을 하며 식사제공에 한 달에 35만 원을 받는데, 미얀마에서는 잘 살 수 있다고 뿌듯해한다. 말할 때마다 그의 입은 씹는 담배 때문인지 붉은 색으로 침착되어 있고, 혀도 마찬가지다. 거리는 수시로 사람들이 뱉은 붉은 침 때문에, 지저분하다. 

전남 광주에서 철근 일을 했다는 모민우라는 청년은 한국 이름도 갖고 있는데, 한달에 140만원 받았다고 한다. 다행히 그는 좋은 사장님을 만나 5년 일하고 왔으며, 7인승 밴도 소유하고 있어 안도의 한숨이 쉬어진다.

외국을 여행하면서 한국에 근로자 생활을 하고 왔다는 사람들은 만나면 우선 겁부터 난다. 그의 한국 인상은 어땠을까,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떠했을까, 봉급은 잘 받았을까 하고. 뉴스를 보면 봉급을 안주고, 때리고, 비닐 하우스에서 재우는, 그런 악덕 사장님들이 있다고 하니 걱정이다. 특히나 배를 타게 되면 선원들이 때리고, 바다에 나가면 나쁜 잠자리와 음식을 먹는다고 하니, 더욱 걱정스럽다.

그는 지금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에 2시간씩 한국어 공부를 하며, 또 갈 거라고 한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꿈을 키워주는 그런 사람들이 사는 나라로 각인되었으며 좋겠다. 그 옆에 있는 청년은 만달레이에 살며, 이름은 phyo thu maung이라고 한다. 그도 한국에서 4년 일했으며 돈 많이 벌어왔다고 밝게 웃어 마음이 놓인다.

(쉐다곤 파고다. 촬영=윤재훈 기자)

칸도기 호수 서쪽, 싱구타라 언덕 위에 서 있는 ‘쉐다곤 황금탑(Shwedagon gold pagoda)’는 건축 년도에서부터 논란이 있다. 승려들의 기록에 따르면 부처가 입멸하기 전인 B.C. 486년에 지어져 약 2,500년이 되었으나, 고고학계에서는 6~10세기 사이에 몬족에 의해 건축되었다고 한다. 이후 지진이나 재해,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약탈되었지만, 매번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탑은 1,300년대 바고의 ‘빈야우 왕’에 의해 18m의 높이로 재건되기 전까지는 파괴된 상태였다. 이후 몇 차례의 개축을 거쳐 15세기에 98m 높이가 되었으며, 2016년 8월 기준, 7.17m 정도인 첨탑까지 포함시키면 높이가 무려 112, 17m가 된다. 무려 40층 가까운 높이이며, 미얀마 불교도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는 곳이다.

몬족의 왕은 바고의 슈웨마우다우와 쉐다곤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불탑을 소유하고 있었다. 원래는 8m에 불과했으나 1362년 빈야우 왕에 의해 20m로 증축되었다. 신사우부 여(1453~1472) 왕은 탑의 높이를 40m로 높였다.

그러나 다음 세기에 연속되는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다. 1768년에는 최악의 지진으로 탑의 정상부가 무너졌으나, 콘바웅 왕조의 신뷰신 왕에 의해 현재의 높이로 증축되었다.

(황금탑 경내. 촬영=윤재훈 기자)

쉐는 ‘황금’, 다곤은 ‘언덕’이라는 뜻이며, 부처님 머리카락 두 가닥을 봉안해 언덕에 묻고, 그 위에 탑을 세웠다고 한다.

1608년에는 포루투갈의 용병이자 탐험가인 ‘필리페 데 브리토 에 니콜테’가 쳐들어와 약탈을 일삼았으며, 1485년 신 사우부를 계승한 담마제디 왕이 기증한 30톤이나 되는 종을 대포로 만들기 위해 약탈했다. 그러나 바고강을 건너다 그 종을 빠뜨려 다시는 회수하지 못한 그는 1613년 미얀마군에 붙잡혀 참수당했다.

또한 1824년 5월 11일 제 2차 영국-미얀마 전쟁 중에도 수난을 당했다. 영국군은 2년 넘게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이 근처에 주둔하며 떠날 때까지 요새로 쓰며, 약탈을 일삼았다. 하지만 미얀마인들이 다시 재건했으며, 영국의 식민지 때는 그나마 탑을 보호받기도 했다.

(금빛의 부처님. 촬영=윤재훈)
(금빛의 부처님. 촬영=윤재훈 기자)

탑에 얻힌 황금판은 비바람에 손상되기 때문에 5년에 한 번씩 교체한다. 금판으로 뒤덮여 있는 대탑 주변으로는 72개의 작은 탑이 있으며, 모든 탑 안에는 크고 작은 불상들이 가득하다. 처음에는 금이 16kg 불과했는데, 신소부 여왕이 자기 몸무게만큼의 금 약 40kg을 보시한 후에, 역대 왕들이 앞다퉈 기증하고 일반인들도 금을 보시했다.

보시된 금은 계속 붙여지면서 지금처럼 거대한 황금 사원이 되었다. 금의 무게는 6만 kg에 달하며, 꼭대기에는 수천 캐럿의 다이아몬드들을 비롯한 보석들이 장식되어 있다. 1년에 두 번씩 불자들이 시주한 금을 추가로 붙이고 있어, 현재도 점점 커지고 있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현지인들에 따르면, 탑 내부에 처음 건립될 때를 비롯해 중간중간 대대적이 보수작업이 있을 때마다 많은 사람이 기부한 엄청난 양의 보석이나 금불상들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미얀마인이 성지로 항상 순례객이 북적거린다. 탑뿐만 아니라 수많은 불상, 불교 박물관, 보리수 나무, 불교용품 상점, 인도 마하보디 사원의 복제품 등이 있는 거대한 관광단지가 되었다. 거대한 황금탑이다 보니 해가 뜰 때나 질 때를 비롯해 야경도 매우 아름다워, 미얀마인들에게 랜드마크가 되는 곳이다. 미얀마 내에는 비슷한 이름의 탑들이 많다.

위빠사나(vipassana) 수행과 ‘쉐다곤 황금탑(Shwedagon gold pagoda)’
(양쪽에 빽빽한 가게들과 함께, 오르는 계단이 찻길을 건넌다. 촬영=윤재훈 기자)

현지인과 중국인에게는 무료이지만, 외국인들은 8달러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불교 사원은 어느 곳이니 옷차림 조심하여야 하는 것이 성자가 계시는 곳에 대한 예의이다. 입장시 1만짯(한화 13,000원)을 보증금으로 맡기면, 전통 의상인 론지를 빌려준다.

미얀마 대부분의 사원은 양말을 벗고 맨발로 들어가야 하므로, 신발을 넣은 주머니가 있으면 좋다. 특히나 한낮에는 대리석이 달궈져 댈 정도로 뜨겁지만, 중요 통로에 매트를 깔아두었으므로 그것을 밟거나, 오후 4시 넘어서 가는 것이 좋다. 또 비가 올 때는 바닥이 매우 미끄러우니 주의하여야 한다. 여행 나와서 다치면 그것만큼 낭패(狼狽)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미얀마 인들은 자기의 생일의 요일을 중요시하는데, 술래 파고다처럼 요일에 맞는 입구로 입장한다. 참배에 사용하는 꽃의 종류도 달라지므로, 자신이 태어난 요일을 미리 알고 가는 것이 좋다. 파고다 내에서는 와이파이가 무료이며 속도도 괜찮다. 입장료를 내면 생수 1병과 물티슈를 준다.

(“내가 누구냐?” 촬영=윤재훈)
(“내가 누구냐?”. 촬영=윤재훈 기자)

미얀마는 위빠사나(vipassana) 명상의 나라다. 조용히 자신을 뒤돌아보거나,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문제에 고민에 빠져있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그 원형을 체험할 수 있다. 숙식이 모두 무료로 제공되어 더없이 좋으므로 단지 수행만 열심히 하면 된다. 24시간 홀로 독행(獨行)을 하며, 아침에 한 번 상좌에게 점검만 받으면 된다. 깊이 수행할 수 있지만, 한없이 나태해질 수도 있다. 외로움과는 철저히 동고(同苦)해야 한다.

수행방법에는 두 가지 전통이 있는데, 인도에서 온 ‘고엔카’ 전통과, 미얀마에서 온 ‘마하시’ 전통이다. 호흡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큰 변화는 없다. 우리나라 충청도에도 10일짜리 코엔카 수행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가 산 속에 있다. 이곳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환경에 대한 대처였다. 산 속에 있으므로 일체의 세제는 사용하지 않았으며, 치약 대신에 소금을 사용했다. 며칠 있다보니 스스로가 청아해지는 느낌을 받았으며, 자연이 나에게 웃는 것 같았다.

“요즘 산중에 있는 절간에 가보면 한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중은 물론 스님들도 물 쓰듯 세제와 퐁퐁 등을 쓰고 있다.
일회용품과 비닐도 넘치게 낭비하고 있다.


“산 중에 살 자격이 없는 산중들이다.”


제발 스님들도 환경에 좀, 각성(覺性)하셨으면 좋겠다.
불제자의 입장이다.”

(위빠사나 명상, ‘쑤코타이’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치앙마이의 인근 도시 좀통에서는 21일짜리 수행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 기간 동안은 약간의 극기를 요한다. 단번에 변하는 환경 속에서 홀로 스무하룻 날을 빈 방에서 보내는 것이 만만치가 않다. 이곳에서 수행하러 온 한국인 여성과 한국 스님도 만났다. 여인은 수행에 대한 강박에 빠져 있었으며, 보살도의 정신을 찾기는 어려웠다. 스님은 사과 멜론을 참 좋아하셨다. 나는 점심 공양이 끝나면 만나 사과 멜론을 공양하고,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법명은 아드반으로 기억된다.

이곳은 태국 북부에서 가장 원력이 큰 스님이 주석하고 계셨으며, 아예 국제적인 위빠사나 수행처로 만들고 있었다. 아직 공사중이었지만 샤워실이 있는 방은 깨끗했으며, 가끔 외로움도 밀려왔다. 담 너머에는 수행하러 온 멍크(스님)들의 수행처가 몰려 있어서 종종 담 너머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로 온 멍크들이 삭발식을 할 때는, 인연에 무상함이 밀려왔다.

인근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어, 새벽에 깨어나면 산책하기에 좋은 장소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저수지는 인생무상의 허(虛)함과 수행의 기운을 북돋워 주었다.

(“오르고 내리는 배만 의식해라”. 촬영=윤재훈 기자)

위빠사나(vipassana)의 ‘위’는 마음과 몸의 세 가지 특징인 
‘삼법인(三法印 Tilakkhana)’을 말한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도 없고 괴로운 일만 있으며,
이를 알고 느끼는 몸과 마음 또한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의미다.

‘빠사나’는 ‘깨달음’이라 말이니,
위빠사나는 ‘삼법인에 대한 깨달음’의 의미하는 말이 된다.

붓다 시대의 언어이자 경전의 원형 언어인 팔리어(pali)를 전 국민의 95%에 이르는 불자들이 능숙하게 구사할 정도로 불교에 대한 탐구열이 뜨거운 나라. 이곳 미얀마에는 불교 수행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띠(위빠사나 수행의 보다 넓은 개념)’를 실천하고, 담마(다르마, 진리)를 설법하는 존경받은 사야도(sayadaw, 큰 스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재가자들의 수행처가 산재해 있다.

우리나라처럼 “이곳은 수행공간이니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등의 재가자들에게 호기심을 주는 그런 공간도 없고, 수행공간은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다. 100%로 보시로 운영되고 있으며, 그 관리는 재가자들이 하므로, 스님들은 이판사판 싸울 이유가 없다. 스님들은 매일 자기가 먹을 음식을 탁발해 오고 수행에만 전념하면 된다.

(“알아차림”이 관건이다. 촬영=윤재훈)
(“알아차림”이 관건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미얀마의 양곤에도 몇 군데의 수행처가 있다. 그중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하시 명상센터>는 자산가 ‘우 뜨윈(U Thwin)을 회장으로 하는 ’붓다 사사나 눅가하 협회(BSNO)‘와 정부 지원에 의해 1949년 설립되었다.

그리고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1904~1982)’를 초대 법사로 모셨다. 2만 5천평의 대지 위에는 마하시 대선사 기념관, 수행자들을 위한 숙소 등, 100여 채의 다양한 건물이 있으며, 한 번에 3,000명이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밍글라돈 국제공항에서 20여 분, 양곤시 중심가에서도 10여 분 걸리는 편리한 교통편으로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쉽게 수행에 접근할 수 있다.

수행의 특징은 좌선(坐禪)과 행선(行禪), 두 가지 방법으로 진행되는데, 붓다가 보리수 아래에서 미혹을 깨쳤듯, 오직 홀로 밀고 나아가야 한다. 이 남방불교식 두 가지 수행법 중에서, 고엔카 수행법은 오직 내 ‘코 밑으로 지나가는 두 줄기 숨’을 관찰하며, 마하시 수행법은 ‘오르고 내리는 배’에 집중한다. 그리고 순간순간 빠져나가는 내 정신의 미혹됨을 보고, ‘알아차림’으로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특별한 제약이나 회비는 없지만 형편에 맞게 보시를 해야, 이곳이 운영될 것이다. 부처님 법에 따라 수행하려는 열의만 있으면 되고, 8계를 받아 지켜야 한다. 수행 중 묵언이며, 12시 이후 오후 불식과 각 방에서 수행한다. 낮에는 넓은 홀에서 할 수도 있다. 코엔카 수행법에서는 금해야 하는 계가 더 많은 것 같다

(“옴마니 밧메홈”, “부처는 마른 똥 막대기다”. 촬영=윤재훈 기자)

다음으로는 <쉐오민 수행센터>가 있다. 양곤에 있는 본원은 시설이 낡고 좁아 주로 내국인들이 이용하고, 양곤에서 1시간 정도 달려 밍글라돈 이라는 한적한 시골에 분원은 수행처로서 손색이 없다.

약 3,000평의 부지에 지어진 국제적 수행센터로 약 300명의 수행자가 기거하며 쾌적하다. ‘쉐오민 사야도’가 설립했으며 20세기 미얀마 최고의 수행승으로 칭송받는 마하시 사야도의 제자 중 가장 연장자셨다. 다른 제자들과 달리 홀로 두타행을 실천하며 수행정진 하셨기 때문에, 이렇다 할 제자를 남기지 못했다. 말년에는 주로 쉐오민 분원에 주석하며 세계적인 수행처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셨으며, 2002년 11월 20일 향년 92세로 열반하셨다.

또한 쉐오민 센터는 미얀마의 코리아 타운이라고 할 만큼 한국 수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수행처다. 담마(다르마, 법)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좋은 스승들이 있으며, 다른 수행처들보다 한국적인 분위기를 많이 느낄 수 있는데, 미얀마어에 능숙한 청연 스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념처(四念處) 수행 즉 신수심법(信受心法) 중에서도 ‘마음을 집중적으로 관찰(cittanupassana)’을 한다. 때문에, ‘내 몸을 항복 받아라’고 ‘몸을 집중적으로 관찰(kayanupassana)’하는 수행풍토에 익숙해 있는 한국인들이,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 이외에도 마하시 선사들의 제자들이 주석하는 몰라메인의 파욱 명상센터를 비롯해, 찬몌 예익다 명상센터 등도 있다.

동남아는 남녀 차별이 좀 있으며, 남자만 스님이 될 수 있고, 여자는 분홍빛 옷을 입은 ‘띨라신’ 이 될 수 있다. 대승불교인 법화경에 와서야 비로소 ‘여인 성불’과 ‘악인 성불’이 용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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