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반격] 글로벌기업 리더에서 외국어봉사활동 리더되다 ... '액티브외국어봉사단' 전영욱

권오승 기자
  • 입력 2021.08.19 13:59
  • 수정 2021.08.2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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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는 평생 '정답'만 찾아왔잖아요"

액티브외국어봉사단 전영욱

오랫동안 청소년들을 주로 많이 만나셨는데 어떠셨어요?
“한마디로 우리와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거침없이 표현하고 활발해요.”
청소년들에게 특별히 무엇을 강조하세요?
“정답은 얘기할 필요 없어. 그냥 너희 생각을 말해봐. 그게 중요한 거야.”

(액티브외국어봉사단 전영욱 씨) 사진= 권오승 기자
(액티브외국어봉사단 전영욱. 촬영=권오승 기자)

[이모작뉴스 권오승 기자] 액티브외국어봉사단은 서울시 도심권50플러스센터와 함께하는 커뮤니티다. 여러 시설·기관에서 외국어자원봉사 및 다문화를 소개한다. 회원들의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장기간 외국에서 거주 또는 외국에서 비즈니스를 하였던 경험있는 사람들이다.

“우리 50+세대는 정답이 아니면 틀리는 줄 알았다. 이제는 좀 나에 대해서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때이다. 우선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 퇴직을 하게 되면 많은 사람이 위축이 되어서 대개 수동적인 모습을 보인다. 집근처를 산책하거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책이나 텔레비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본다. 우리는 이 사회에 존재하는 한 무언가 기여를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성공적인 인생 이모작을 위해 열심히 인터넷에서 찾고 공부하며 ‘청소년 봉사’에 흠뻑젖어 사는 액티브외국어봉사단 전영욱(64세)씨를 ‘청운효자북카페’에서 만났다. 서울시 도심권50플러스센터가 운영하는 카페다. 이 곳에서 1년 전부터 코디네이터 활동 중이다. 그의 인생 이모작 이야기로 아직 경험해 보지 않은 50+세대가 삶의 베이스캠프로 기억 되었으면 한다.

(영파여중 자유학습) 사진=본인
(영파여중 자유학습. 사진=전영욱 제공)

 

(청소년 봉사대 발대식) 사진=본인
(청소년모니터 봉사대 발대식. 사진=전영욱 제공)

◇ 봉사 ‘어디가 그리 좋아서?’

- 나에게 봉사는.
“현대 사회의 일원으로써 사회에 기여했을 때에 갖는 만족감이다.”

- 어떤 봉사를 하고 싶었나.
“8년 전 퇴직을 맞으며 염두에 둔 것은 나의 재능이나 경험을 필요로 하는 곳 혹은 사회공헌활동 이었다. 첫 문을 두드린 곳은 송파자원봉사센터(3년 근무)다. 중·고등학생과 멘토, 멘티로 만나서 인성, 봉사를 가르쳤다. 우리 학생들에게 유연한 사고로 ‘다양성’을 키우도록 돕고 싶었다.”

- 학생들은 잘 따라오던가.
“유연한 사고를 갖자. 혹여 내 생각에 갇혀 우물 안에 개구리가 되지말자. 일예로 미국에서 9.11사태가 벌어졌을 때.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찬성, 반대, 중립의 3개 구룹으로 토론을 시켰다고 한다. 매우 충격적이었다. 거기서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아이들이 무언가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각자의 생각을 적극적 개진할 수 있도록 해야 했었다.”

기성세대는 손윗사람과 얘기할 때 상대방의 면을 세우기 위해서 돌려서 얘기를 하다보면 그 의미가 잘못 전달되기도 했다. 생각의 유연성을 생활화하며 다양성을 얘기하는 스마트 시니어 전영욱 씨의 학창시절은 다른 의견을 가지고 토론하고 이러기 보다는 ‘해답’은 뒤로 한 채로 높은 점수가 ‘정답’이었던 주입식교육 세대다.

(대학생 야학 교사 시절) 사진=본인
(대학생 야학 교사 시절. 사진=전영욱 제공)

- 봉사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는가.
“특별히 어떤 계기가 있거나,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제 삶은 늘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도 도서위원을 하면서 봉사를 했고 대학 시절에도 내내 야학교사를 하느라 대학생활을 즐기는 것은 하나도 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은 종종했다. ‘내가 살아가면서 과연 나는 나와 내 가정만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이런 고민과 생각들이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런 점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기도 하고 인정도 해줬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후회는 없다. 육체의 건강을 잘 유지해서 봉사를 오래 하고 싶다. 그렇다면 내 정신적인 건강은 봉사가 지켜줄 것으로 믿고있다.”

스마트 시니어 전영욱 씨는 1982년 럭키화학 입사 후 실리콘 제조회사인 다우코닝(미국) 공장장을 역임하고 다우코닝 ‘유럽 벨기에’ 실란트 공정개발책임자로 발탁된 글로벌 리더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생활을 했고 보람도 있었다. 그의 포지션, 역할 등은 각별한 경험의 시간이었다.

 

(공장장 이/취임식) 사진=본인
(공장장 이,취임식. 사진=전영욱 제공)

 

(유럽 벨기에 다우코닝 직원들과 함께. 사진=전영욱 제공)

- 글로벌 회사 근무를 오래 하셨다.
“1983년 11월 합작회사(럭키디시실리콘) 첫 회의였다. 내가 익숙해있는 회의방식과는 달랐다. 우리는 무언가를 결정하고 집행해서 성과를 내야했다. 여기서는 정해진 시간은 있으되 결론은 없었다. 회의를 하는 것은 A가 의견을 내서 설령 그것이 토픽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어도 그 아이디어로 구성원들과 다양성있고 구체적인 생각을 이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너무 개인 생각에 빠져든 나를 돌아봤다.”

리더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관리한다. 서로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존중해야한다. 아무리 내 생각이 옳고 좋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상대가 이해를 못하면 문제다. 프로젝트가 제대로 실행되려면 역시 다양성이 전제 돼야하는 것이 맞다.

- 글로벌 환경에 어떻게 적응했나.
“다우코닝 유럽 근무(3년)에서는 한국적인 마인드가 무척 강했다. 외국 직원들하고 마찰도 자주 있었 다. 우리 정서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과 위주로 달렸던 터라. 시간을 두고 외국인들과의 잦은 접촉 등 그들만의 문화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오슬로 공원에서 아들과 함께...) 사진=본인
(오슬로 공원에서 아들과 함께. 사진=전영욱 제공)

- 유럽에서 가족들과의 3년은 어땠나.
“제 아들(초등학생)이 그러더라구요. 아빠는 누구보다 더 바쁘게 직장일로 쫓기면서도 늘 여유가 있었다며 나도 커서 그렇게 되고싶다고 해 한바탕 웃었다. 가족들과의 첫 해외여행 등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다.하하”

- 글로벌 리더가 가져야 할 덕목은.
“프로페셔널 근성이다.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반면에 그 값어치가 떨어지게되면 떠날 각오도 필요하다. 럭키디시실리콘에서 실리콘을 제조하는 공장이 처음 생겼을 때 성장률은 20%~30%였다. 원가절감, 생산성 향상, 안전의 문제는 공장장인 내 몫이었다. 부지런히 아이디어를 내야했다. 한번은 신 장비 세팅에 2~3개월 걸리는 것을 1주일만에 조립해서 합작회사에서 깜짝 놀랐다.”

인생 1막에서의 생활은 배움의 시기를 마치고 신입 사원으로 시작하여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다. 유럽, 중국에서만 8년 간 해외근무를 했다. 특히 유럽에서 파견근무를 하면서 가족들과 자동차로 여러나라를 여행하면서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었던 기억들은 감사하고 축복받은 직장생활이다. 인생 2막에서도 다른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봉사생활이 기대된다.

“물론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뭔가 누군가와 얘길하면 정답만 얘기하다 보니까, 도덕적으로 ‘맞다, 틀리다’는 아니어도 어찌보면 흑백논리가 될 수도 있고 해서 자유로운 생각 다양한 생각들이 필요하다. 퇴직 이후에 내가 뭘할지는 정형화된 것은 없다. 그것을 따를 필요도 없고 그것이 정답일 수도 없다. 인생 2막을 앞두고 각자의 생각과 해법에 따라서 거기에 맞게 풀어가는 것이 좋겠다.”

 

(외국어 표기판 개선사업) 사진=본인
(외국어 표기판 개선사업. 사진=전영욱 제공)
청운효자북카페 사진=권오승 기자
(책으로 만나는 지구촌 여행. 화면 갈무리)

◇ '인생 이모작' 준비는 어떻게 했나.

- 시작은.
“재정적인 부분 하나와 또 하나는 과연 내가 뭘 할 것인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더 일을 해야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 일원으로써 기여를 하기위한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고생했으니 놀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유럽에서 3년 만에 귀국했을 때 재정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질 않았다. 청주에 살았는데, 서울로 발령을 받았다. 서울에 집값이 너무 올라서 전세방도 얻을 돈이 없었다. 아차 싶었다. 그 때부터 재정적으로 길게 보고 계획을 세웠다. 90세를 기준으로 매년 수입과 지출이 어떻게 이뤄질지 퇴직 후 플랜 A,B,C로 고민했다.

- 잘 되고있나.
“내가 가고 싶은 봉사의 길이다. 지금까지는 80% 가까이 다가섰다. 봉사활동의 외연이 꾸준하게 확장 되고 있다. 오늘 기자님과의 인터뷰 또한 그런거 아닌가. 하하.”

- 보람은 뭐였나.
“보람이란 것이 참 신기하다.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저 봉사인데 일하다 보람이 느껴지면 그간의 힘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한 아이가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쭉 지켜봐왔다. 그 학생 이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연락이 왔다. 대학생으로서 어떤 봉사활동을 하면 좋을지를 내게 물어왔다. 매우 기뻣다. 그 학생의 가치관에 조금이나마 선한 영향을 준 것 같아서다. 이런 보람은 그 어디에서 도 느껴보기 힘든 행복이었다.”

NPO(밝은미래봉사단)활동. 사진=전영욱 제공)

- NPO(밝은미래봉사단-민간비영리단체)에서 5년 간 활동했다.
“청소년들이 봉사활동을 통해서 인성 함양과 리더십을 키울 수 있도록 했다. 매년 중·고등학생 100~150명을 모집한다. 다문화 자녀인 초등학생들의 학습지도, 교통안전캠페인 실시, 장애인 학생들의 스포츠 활동 돌보기의 3가지가 주된 활동이다. 단장 역할을 맡아서 특히 다문화 자녀인 꼬맹이들의 성장과 함께하며 5년 내내 낯설지않게 애정을 느끼며 보람이 있었다.”

- 엑티브외국어봉사단 활동가는 어떤 일인가.
“엑티브외국어봉사단은 7년 차를 맞이했다. ‘신나는 지구촌여행’프로젝트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다른나라의 문화, 역사, 지리등을 소개한다. 봉사단은 외국에서 거주했거나 아니면 업무상으로 외국과의 많은 교류를 하면서 외국어가 수월한 사람들이다. 외국어 안내판 오류 모니터 사업 프로젝트(안내판 수 총 574개 중 오류 및 개선 제안 223개) 등 미국, 유럽 등 7개국 소개 동영상 제작도 했다.”

- 서울시도심권50플러스센터는 어떤 의미인가.
“우리 50+세대들의 베이스캠프다. 인생 이모작을 실천해 나가는 소중한 배움터이고 우리들의 성장학교이자 애정 어린 아지트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액티브외국어봉사단 커뮤니티 활동을 위해 늘 정기 모임도 가지며 센터와 협의, 연구하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다.” 프로그램도 다양하고 커뮤니티, 엑티비티(활동), 보람일자리, 사회공헌자리를 제공한다. 자신의 경험과 재능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다문화 자녀  힉습지도 봉사
(다문화 자녀 힉습지도 봉사. 사진=전영욱 제공)

욕심을 하나 부리자면 ‘지혜로운 이웃집 할아버지’로 불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했다. 꼭 한번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지는 그런 할아버지, 더불어 내게 ‘일’은 끝까지 ‘봉사’일 것이라고 담담하게 남겼다. "나를 위한 인생을 살면 기쁘고, 남을 위하는 인생은 감동적"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비밀을 일찍부터 알고 있는 선생님을 만나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내가 이제라도 알아서 말이다.

이제 스마트 시니어들은 과거의 뒤편 지킴이에서 벗어나서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리더의 역할이 강조된다. 대한민국의 ‘스마트 시니어’세대들의 문화가 보다 더 다양성 있는 복지 프로그램으로 발전·운영되기를 기대한다.

(청운효자북카페에서. 촬영=권오승 기자)
(청운효자북카페에서. 촬영=권오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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