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62] 언니, 괜찮아 괜찮아

오은주 기자
  • 입력 2021.08.31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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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시골집에 살고 계신 친정어머니가 홀로 생일을 맞이하면 안 될 것 같아 며칠 전에 막내딸인 인자씨가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왔다. 노모는 제일 마음 편한 막내 인자씨 집에 며칠째 묵으면서 두 아들과 다른 두 딸을 보고 싶어 했다. 인자씨는 큰언니인 숙자씨에게 전화해서 어머니 생일 점심때 장어구이를 먹으러 교외로 가자고 했다. 여름을 보내느라 부쩍 기운이 떨어진 88세 노모에게 보양도 해드리고 꽤나 뜨악해져버린 언니와의 만남도 주선할 참이었다.

그런데 큰언니 숙자씨의 병이 또 도졌다. 이번에도 한사코 어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동생들이 잘 알아서 모시고 다니고 자신은 부르지도 말고 집에도 오지 말라는 엄포였다. 인자씨는 큰언니가 아직도 그놈의 학력 콤플렉스와 그 연장선상에 있는 부모에 대한 원망을 떨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숙자씨는 시골에서 가장 형편이 어려운 때 10대를 보낸 터라 중학교밖에 나오질 못했다. 그 사실을 잘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가, 서울로 와서 시작한 남편의 건설자재납품 사업이 잘돼 강남 아파트에 사는데다 딸이 예술중학교에 다니게 되자 숙자씨가 어울리는 사람들이 달라지면서 상처로 변했다. 그때 숙자씨는 40대 중반이었는데 일단 예술중학교 어머니들 모임에서부터 주눅이 팍 들었다. 학부형들이 대부분 서울에서 내노라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누는 대화들도 엄청 품위가 있어 보였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때부터 숙자씨는 서울에 와서 알게 된 여자들의 학벌에 초민감해지기 시작해서 수시로 마음의 병을 치르고 있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듣고, 같이 골프 치러 다니면서 “그네들도 별건 없어”하고 안분지족하다가도 친정어머니가 서울에 나들이 한다면 지병이 도져서 한사코 만나려들지 않았다.

지금 60대 여성 중에, 그 중에서도 시골출신들이 대학교에 다닌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언니는 저렇게 몸살을 앓는단 말인가. 지금도 고향마을에서는 서울에서 부자로 잘 살고 있는 큰딸 숙자로 널리 회자되고 있는데 그만하면 된 거 아닐까? 인자씨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 내가 그때 밤새 울면서 읍내 여고에 간댔는데, 그예 등록금을 안 해 주더니 나를 이 꼴로 만들어놨어.” 이 말은 숙자씨가 40대 때 한 말인데 아직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수시로 노모에게 심통을 부리며 살아온 지 20여 년째라 이젠 불치병이 된 것 같았다. 인자씨는 큰언니를 만나 자신이 시골 여고 출신의 한미함을 무엇으로 극복하고 이 서울에서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싶었다.

시골출신 여자들이 가진 미덕, 차라리 서울아줌마들 앞에서 몸을 낮춰가며 특유의 친화력으로 다가가고 따스한 태도로 감싸 안아 인격적 우위로 저절로 선의를 가지게 하는 전법이었다. 아니 전법이 아니라 자연스런 행위였는데 뾰족한 그들에겐 따스한 사람으로 느껴졌는지 시간이 흐르자 서로들 찾았다. 서울내기 아줌마들은 의외로 서로 고립돼 있지만 먼저 사람을 당기지는 않는 편이라 인자씨의 다정한 접근법은 효과가 좋았다. 인자씨는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지만 이번에사 용기를 냈다. “언니, 우린 우리가 가지지 못한 걸로 이기려하지 말고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장점을 베풀면서 조화롭게 살아나가는 게 좋지 않을까? 어설픈 화장으로 덮기보다는 말간 민낯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언니의 맨얼굴은 건강하고 예뻐, 언니 정말 괜찮아. 괜찮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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