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반격] ‘시가 있는 마을 만들기’...어린이와 주민들의 소통공간

김남기 기자
  • 입력 2021.08.31 14:29
  • 수정 2021.09.09 13: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린이와 주민들의 소통공간

‘시가 있는 마을 만들기’

주민들은 버스정류장에 서면, 대부분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다.
버스도착 전광판에 곧 도착이 켜지면, 버스카드를 꺼내고, 앞을 본다.
울산 동구에는 좀 다른 풍경이 있다.
버스정류소와 마을버스정류소에 시화가 걸려있다.
주민들은 매주 바뀌는 시화를 보고,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는다.
그리고 뭔가를 열심히 적는다.
울산 동구 버스정류장에 과연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시가 있는 마을 만들기 시즌1

(시가 있는 마을 만들기1 플랫폼. 그래픽=김남기 기자)

버스정류장의 변신

(일산해수욕장 대왕암공원입구방면 정류장 시화설치. 사진=울산 동구 자원봉사센터 제공)

[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작년 울산시교육청에서 ‘마을씨앗동아리’ 공모사업을 실시했다. 마침 울산 동구 자원봉사센터에서는 비대면으로 아이들과 주민들이 소통하게 해줄 아이템을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버스정류장을 주목했다.

버스정류장에 어떤 콘텐츠로 주민 소통의 공간을 만들까? 고민을 했다. 코로나19 이후 청소년들의 사회공헌활동 기회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비대면시대에 적합한 봉사활동 소재를 찾고 있었다.

마을버스 정류장을 이용하는 주민들에게, 아이들이 컨텐츠를 제공하고, 주민들의 피드백을 전달해 주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좋은 언택트 모델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아이들이 잘할 수 있고, 주민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시화를 생각했다. 초등학교에서는 시화전을 열고, 우수작을 학교신문이나 전시회에 게시한다.

“어린 아이들의 정서가 담긴 시화가 마을주민들에게 전달된다면, 나이를 뛰어넘는 공감대를 형성할 것이다.”고 확신을 했다.

이런 취지를 담은 내용을 초등학교에 보냈고, 울산 동구에 방어진초, 상진초에서 참여의사를 밝혔고, 지난 5월부터 마을버스정류장 10곳에 전시를 했다.

정류장에 시화를 본 주민들이
“시를 보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어떤 위로를 받았을까?”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없을까?”

하는 궁금증들이 생겼다.

(시화 하단에 아이들에게 보내는 응원 메세지 QR코드)

아이들의 시선과 따뜻한 마음을 볼 수 있네요. 코로나로 인한 지친 마음을 달래고, 힘이 나네요.

잊고 있던 아이시절의 마음도 떠올리고 덕분에 아침시간이 즐거웠습니다.

너무 화나고 힘든 날이었는데, ‘그 어느 날’ 이란 단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느 날…….

많이많이 놀아라! 커서 못 논다.

- 울산 동구 주민들의 '아이들에게 보내는 응원 메세지'

그래서 6월부터는 시화 판넬 하단에 시를 보고 느낀 감상을 아이들에게 응원메시지로 보내 달라는 QR 코드를 추가적으로 부착하게 됐다. 그래서 주민들은 매달 바뀌는 시를 보면서 주민들의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들은 자신의 시가 누군가에게 좋은 감정을 선물하고 , 그 감정에 대해 피드백을 받고 즐거워했다.

지금은 더 많은 학교에서 참여의사를 밝혀와 10여개 학교의 학생작품들을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시가 있는 마을 만들기 시즌2

(시가 있는 마을 만들기2 플랫폼. 그래픽=김남기 기자)

마을버스정류장의 변신

(마을버스정류소 앞 '시가 있는 마을 만들기' 관계자. 사진=울산 동구 자원봉사센터 제공)

버스정류장은 온돌의자, 선풍기, 그늘막, 버스 도착정보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이 돼 있다. 반면에 좁은 골목길에 덩그러니 놓인 마을버스 정류장은 주민들이 빈번히 이용하지만, 일반 버스정류장에 비해 많이 소외 받고 있었다. 마을버스정류장에는 시화 게시대도 벤치도 없었다. 일반 버스정류소처럼 제대로 앉을 공간도 없었기 때문에, ‘공동정원’ 마을공동체의 협조로 정류소에 벤치를 설치하게 됐다. 덩그러니 정류소 간판만 있던 공간에 벤치와 시화가 걸려있는 ‘쉼터’로 변신한 것이다.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잠시 지친 몸을 벤치에 기대어 앉아, 문득 시화를 발견하고 동심에 빠져 빙그레 웃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뜻밖의 수확...불법주차 해결

(불법주차 공간이었던 곳에 마을버스 쉼터가 자리잡고 있다. 사진=울산 동구 자원봉사센터 제공)

마을버스 정류소 대부분은 불법주차 차량이 차지하고 있었다. 정류소가 쉼터로 변신하자 불법주차가 사라졌다. 이전엔 주민이 불법주차 차량을 신고하면, 동네 주민인 차주는 주변 식당의 주인들과 왜 신고 했냐며, 다투곤 했다. 또한 불법주차로 인해 통행이 불편하거나, 교통사각지대 발생으로 어린아이들의 등하교 길이 위험에 노출됐었다. 정류서 쉼터가 가져 온 뜻밖의 수확으로 불법주차의 피해를 없앨 수 있었다.

고독사 예방 등 제보함 설치

얼마 전 코로나 걸린 줄 모르고 끙끙 앓다가 혼자 집에서 고독사를 했던 사례가 있었다. 우리는 지역사회의 복지사각지대를 미처 발견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런 사각지대들을 주민들은 알고 있다. 주민센터와 복지관에 제보하는 것은 문턱이 높다. 그래서 마을버스정류소에 제보함을 설치할 것이다. 마을버스를 기다리면서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어르신들의 사연을 제보하는 것은 매우 손쉬울 것이다.

‘시가 있는 마을 만들기’ 일자리사업 모델로 확장

(마을버스정류장에 그늘 벤치를 설치하고 있다. 사진=울산 동구 자원봉사센터 제공)

동구청 일자리정책과에서는 버스정류소를 이용한 ‘시가 있는 마을 만들기’사업을 둘러보고, 운영 공동체와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일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이 사업의 지속적인 확산을 위해 예산을 지원 받아 ‘시가 있는 마을 쉼터’로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울산시청에서도 관심을 갖고 타 지역에 모범사례로 전파하고 있다.

또한 이 사업의 취지를 여러 기업과 공유해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의 예산도 지원받을 예정 이다.

“버스정류소에 시를 게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어느덧 어린 아이들과 주민들이 서로 비대면으로 소통하는 버스정류소를 만들었다.
더불어 불법주차 문제를 해결하고, 그늘 벤치로 편안한 쉼터가 생겼다.
작은 도전들이 예상 못 했던 결과들을 만들어 냈다.
이제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마을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일자리도 만들어 가는 ‘시가 있는 마을 만들기’가 되는 바램을...

- 울산동구 자원봉사센터 이장호 센터장

(초등학교에서 시화전에 출품할 시를 쓰고 있다. 사진=울산 동구 자원봉사센터 제공)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