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㉗] 이건용, 오페라 ‘박하사탕’...상처를 견디고 이겨낸 삶은 아름답다

천건희 기자
  • 입력 2021.09.02 15:46
  • 수정 2021.09.02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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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사진=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나 다시 돌아갈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에서 주인공 영호(설경구)가 달려오는 기차 앞에서 핏발 선 눈으로 절규하며 외친 대사다. 영화 <박하사탕>이 개봉한지 20년이 지나,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창작 오페라로 새롭게 탄생했다. 영화가 오페라의 원작이 되는 일은 처음 시도되는 일이다. 광주시립오페라단의 ‘이건용, 오페라 <박하사탕>’의 초연을 지난 8월 2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관람했다. 우리 시대의 아픈 단면을 보여주었던 영화 <박하사탕>이 어떻게 오페라로 재해석 되었는지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국립극장은 1950년 부민관(현 서울특별시의회 건물)에서 개관해 1973년 현재의 장충동으로 이전하여 작년에 70주년을 맞이했다. 국립극장은 2017년부터 개보수 작업을 진행해 올해 대극장인 해오름극장을 재개관했다. 극장의 외관은 그대로지만, 높은 계단 위에 서 있던 국립극장의 거대한 돌계단이 사라지고 평지와 연결되었다. 내부는 나무 원목으로 리모델링되었고, 객석 경사도가 조금 높아져 무대가 잘 보이고, 몰입형 입체음향 시스템이 더해져서 음악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전경/촬영=천건희 기자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전경/촬영=천건희 기자

오페라 <박하사탕>은 1980년 5월 광주에 공수부대원으로 투입된 한 남자의 사랑과 파멸을 다룬 비극 오페라이고, 죽음의 공포를 넘어 삶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대서사시이다. 1막 1장은 1999년 야유회, 마지막 2막 6장은 1979년 같은 장소로 20년의 시간을 거스르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1막 무대는 덧붙여진 천 조각들이 거칠게 나부끼고,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어둡다. 즐거운 야유회에 나타나 행패를 부리다 기차에 뛰어드는 주인공 영호(테너 윤병길,국윤종)에게 첫사랑이었던 순임(소프라노 윤상아, 김순영)은 순수하던 시절을 기억하느냐고 묻고 영호의 기억은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2장 망월동 묘역에서 광주 열사들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부르는 ‘망월동의 노래’는 마음을 울컥하게 했다. 합창단원들은 묘비들이 되어 합창과 독창으로 열사의 이름들과 묘비 내용을 노래했다.

묘비들 : 강대일, 강동일, 강복원, 강석신

묘비명1 : 못 다 핀 님의 사랑의 꿈

우리들 가슴에 피어나소서

평화와 자유, 그리움의 민들레로

영원히 피어나소서

사진=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사진=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2막의 첫 장면은 1980년 5월, 광주 금남로. 현장을 재현한 듯 시위대와 시민들이 함께 부른 김민기의 ‘아침이슬’ 은 가슴을 뜨겁게 했고 장중했다. 불안한 상황에서도 시위대에게 주먹밥을 나누어주는 함지박과 딸을 찾는 화순댁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는 따뜻하고 정겨웠다.

함지박 : 밥은 자셨오? 이거라도 좀 드쇼

화순댁 : 아녀라

속이 메슥거려 싸서.

우리 애기 찾음 같이 먹을라요

발포 명령과 함께 콩 볶듯 총격이 가해지고, 무대 위에는 주인 잃은 신발들이 너부러져 있다. 영호는 공수부대에서 순임이 편지와 함께 보내주었던 박하사탕이 군화로 짓밟히는 폭압적 상황을 경험하고 광주로 투입된다. 수색 중 총상을 입은 영호를 여고 간호반원 명숙(소프라노 정주희, 김샤론)이 치료해주고, 영호가 우발적으로 쏜 총에 맞아 사람이 죽는다. 상관은 전쟁 중에는 적을 사살할 수 있다고 한다. 영호는 절규한다. ‘누가 적인가?’

부상자를 치료하던 명숙은 광주에서 엄마를 잃고, 대학생 때 시위를 주도하다 끌려가 고문도 당하지만 ‘삶은 아름답다’고 노래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망가지고, 비틀어지는 영호와 달리 세상과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선한 의지를 세우는 명숙의 노래는 감동이다.

명숙 : 상처를 견뎌낸 

상처를 이겨낸 

삶은 아름다움이어라

사진=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사진=광주시립오페라단 제공

마지막 장면의 영호는 1979년 청년 시절의 찬란하던 자신을 만난다. 순임에게 사랑을 느꼈던 자신의 아름다웠던 순간을 기억해내고 막은 내리며, 이건용 작곡으로 가수 안치환이 불렀던 ‘그렇지요’가 관객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올 때쯤이면 오겠지요, 그렇지요

생사람으로 아니온다면

죽은 사람으로 오겠지요, 그렇지요

죽어도 이 땅에만 묻힌다면

무덤으로 이 산 저 산 바라보며

서로 만나 보겠지요, 그렇지요

광주시립오페라단의 오페라 <박하사탕>은 작곡과 예술감독 이건용, 연출과 대본 조광화, 지휘 윤호근, 광주시립합창단, 노이 오페라 코러스, 오케스트라 티 피니 등 많은 손길로 만들어졌다. 창작 오페라이기에 2막 6장 모든 아리아와 합창을 자막을 볼 필요가 없이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음악과 우리말의 자연스러운 조화로 이해와 몰입이 잘 되어 감동이 더 컸다. 우리말로 된 창작 오페라가 더 많이 제작되길 소망해 본다.

이건용 작곡가/촬영=천건희 기자
이건용 작곡가/촬영=천건희 기자

“이 작품을 1980년 5월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빛의 고을을 지킨 광주시민들에게 바친다. 오페라 <박하사탕>이 광주 시민들의 인정과 사랑을 넘어 전 세계로 나아가 5·18의 가치가 전해지기를 바란다”는 이건용 예술감독의 바람처럼 우리말로 된 아리아가 세계무대에서 불려지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개인의 선택과 책임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창작 오페라 <박하사탕>이 국립극장에서 단 2회 공연으로 끝난 것은 아쉽다. 다시 무대에 오르는 날을 기대해본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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