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69] 조지아 ‘게스트하우스’의 풍경

윤재훈 기자
  • 입력 2021.09.0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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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게스트하우스'의 풍경

얼마나 굶었을까
세계는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을 것이다
새들이 하루종일 먹이를 찾아 헤매듯
그도 그러했을 것이다

세계는 또 어떤 이데올로기와 이상을 꿈꾸며
오늘을 위태롭게 지탱하는지

(일자리를 잡기 위해 온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친구들. 촬영=윤재훈)
(일자리를 잡기 위해 온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친구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오는 사람들, 하루종일 무료하게 방을 지키는 사람들. 대부분 이웃 나라에서 돈을 벌러 온 사람들인 듯하다. 더러는 여기보다 대우가 훨씬 좋은 유럽 쪽으로 일자리를 잡기 원하지만, 나가기가 힘들다. 특히 이란 청년들이 조지아에 많이 머무는데, 미국의 압박 때문에 유럽에서는 기피 대상인 듯하다.

50년 전에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동차를 생산했던, 부유한 나라. 그러나 지금은 이슬람 지도자들의 자존심 때문에, 초강대국 미국과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다. 나라가 경제적으로 힘드니, 청년들이 이국의 하늘을 떠돈다. 한 번 나오면 당분간 고국에 들어갈 수도 없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에서도 이란 청년들이 떼거리로 몰려 있었다. 그들과 나누었던 잠시 동안의 우정을 잊을 수가 없다.

(포토그라퍼인 프랑스인과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나온 이란 청년. 촬영=윤재훈)
(포토그라퍼인 프랑스인과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나온 이란 청년, 한국이름 모재민. 촬영=윤재훈 기자)

바로 옆 침대의 이란 젊은이는 저녁마다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고, 아침이면 들어온다. 며칠 전에는 표정이 밝더니, 어젯밤에는 많이 잃었는지 인사를 해도, 인상이 험악하다. 더 이상 말을 붙여서는 안될 것 같다. 그는 이제 하루종일 자다가 밤이면 또 나갈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가 도박으로 돈을 따려는 자다. 그들이 다 조정해 놓은 기계속에서 밤새 어리석게 놀아난다.

요즘 한창 미국과 영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된,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라는 작품이 생각난다. 이 작품은 ‘뉴욕 타임즈 북리뷰팀이 선정한 2017년 베스트 도서 10선, ’2017년 내셔널 북어워드 최종후보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란과 미국, 영국, 이스라엘은 서로 적국이다. 왕래도 하지 않으려 하며, 그 나라를 다녀온 여행자들은 상대 나라를 가지 못한다

한쪽 침대에서는 젊은 부부가 위아래에서 자며, 이 싸구려 호스텔에서 오랜 기간 머물고 있다. 살림살이라고는 달랑 가방 두 개가 전부인 것 같다. 사내는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들어오는데, 직장이라도 다니는 것일까. 어제는 오전에 일찍 들어오는데, 혹 새벽 노가다 일자리라도 찾아 나갔다가 없어서 그냥 들어온 것일까? 가끔씩 잠깐 머물다 가는 여행자들이 들어와, 다음 날이면 사라지곤 한다.

종각역 1번 출구 앞
사내 하나
간이 공원 바위 위에 정물(靜物)처럼 앉아
양말까지 벗어놓고
무심히 대로를 바라보다,
세상을 향해 무슨 잘못이라도 빌 듯
고개를 푹 숙인다

때 절인 배낭, 낡은 옷차림
새벽 일자리라도 구하러 나왔다가
갈 데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집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어지는 것일까

점심때가 한참 지난 시간인데
그는 도대체 언제까지 저리,
앉아있으려는 것일까
- ’망연자실(茫然自失), 윤재훈‘

(게스트하우스에서 우리들의 만찬. 촬영=윤재훈)
(게스트하우스에서 우리들의 만찬. 촬영=윤재훈 기자)

러시아 <다케스탄 공화국>에 산다는 부부, 누군가는 벨라루스에 산다고도 하는데, 조지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 공화국은 카스피해의 서쪽 북캅카스 산맥에 위치해 있다. 대부분 이슬람교도들이며, 지금도 꾸준하게 분리독립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에서 우루무치처럼, 러시아에서 요주 지역인 모양이다.

부인은 하루종일 어두컴컴한 호스텔 방에서 휴대폰만 보는데, 혹 남편 일자리라도 찾고 있는 것일까? 이국의 하늘 아래에서 직장도 없고 돈이 떨어지면 어떻게 살아갈까? 배가 고프면 무슨 짓이라도 못할까? 더구나 사랑하는 부인이나 자식들이 굶고 있다면.

어제 지하철역에서 보았던 난민 가족들이 생각난다. 주위에 자신도 모르게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하루하루의 삶. 이국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세계는 영영, 그들에게 자비의 손을 내밀지 않을 것인가?

파리, 베르시 세인Very seine 버스터미널
티켓부스 앞에서 초라한 행색으로
서성이는 사내

어느 나라에서 왔을까,
눈동자마저 힘을 잃었다
도너츠를 반쯤이나 먹고 있는 중국인 여자에게

주저주저하며 다가가더니,

빵을 달라고 한다
그녀가 반쯤 떼어주자 서둘러 입에 넣는다


얼마나 굶었을까
세계는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을 것이다
새들이 하루종일 먹이를 찾아 헤매듯
그도 그러했을 것이다

버스 시간이 늦어 허둥지둥하면서
막 티켓을 집어넣으려는 순간, 세상에!
여기에서 장발장을 보다니
그가 아직도 살아있다니,
그것도 더 초라한 모습으로
21세기의 거리를 여지껏
헤매고 다니다니,
탄식이 흘러나온다

나는 주섬주섬 짐을 뒤져
어제 사 둔 커다란 빵덩어리를 주었다
촛점 풀린 그의 눈을 보면서
오늘 저녁은 또 어찌하려나
아무리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하지만,
고국에서는 그의 부모님이나
그리운 아내와 자식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세계는 또 어떤 이데올로기와 이상을 꿈꾸며
오늘을 위태롭게 지탱하는지

-’ 장발장을 만나다‘, 윤재훈

(밖에서 물건을 보고, 이 창문으로 계산하세요. 촬영=윤재훈)
(밖에서 물건을 보고, 이 창문으로 계산하세요. 촬영=윤재훈 기자)

항상 아침이면 나갔다가 저녁이면 들어오는 페르시아 청년들은, 무슨 일자리라도 나가는 모양이다. 중국에서도 창사, 란저우 등지의 싸구려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르면, 일을 나가는 청년들을 숱하게 보았다. 그들은 돈을 벌어 시골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들께 보내주는 모양이다.

마치 우리나라 70년대, 서울역으로 무작정 상경하던 공돌이, 공순이들, 더러는 어느 집 식모로 전락하던 누이, 대한민국의 슬픈 자화상이 오버랩 된다. 그 나라가 세계 10위 권의 경제 대국이 되고, 한류가 세계의 주류가 되고 있다. 요원하게만 보이던 빌보드 차트를 BTS의 노래가 몇 곡씩 10위 권에 들어가 롱런을 하고, 반도체와 대형선박 등이 일등국으로 발돋음 하여 세계에 수출되고 있다.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슬피 우는 이란 청년. 촬영=윤재훈)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슬피 우는 이란 청년. 촬영=윤재훈 기자)

갑자기 덩치가 큰 이란인 사내가 슬피 운다. 고국에 계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그러나 그 조국을 지금은 들어갈 수가 없다. 그가 서럽게 운다. 엄마 앞에서는 다 아기가 된다. 그와 함께 저녁을 해서 먹었다. 그는 눈물과 함께 음식을 씹는다.

사후세계를 믿은 고대 이집트인들은 세상을 떠날 때 두 가지 질문을 한다.

“당신의 삶에서 기쁨을 찾았는가?

당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었는가?“

스스로 되내여 본다. 과연 그렇게 살고 있는가? 오늘 그 사람이 떠나가도 나는 최선을 다해 대해 주었는가? 떠나간 뒤에 후회하지 않겠는가? 바람이 살며시 내 볼을 스치고 가 퍼뜩, 정신을 깬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 조지 버나드쇼 묘비명

순간순간 살면서 항상,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며.”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은 보다 풍요로워질 것이다. ‘나바호 인디언’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내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떠날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

(몽골의 초원, 국제열차 안에서. 촬영=윤재훈)
(몽골의 초원, 국제열차 안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나는 세계여행 중에 몽골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때 잠깐 귀국했다가 다시 여행을 계속했다. 그 후 2차 여행을 하고 16개월 만에 귀국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부모님의 부재는 슬프다. 그냥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온다.

엄마가 아파트 문 앞에
정물처럼 서 있다
열쇠 번호가 생각이 안 나
못 들어갔다고 한다

평생을 살았던 집
왜 엄마는 갑자기
번호가 생각나지 않았을까

텅, 텅, 잠깐씩 어디선가
문 닫히는 소리 들리고
고요한 세상의 정적 속에서
엄마는 얼마나, 이 세상이
막막했을까

자식들 얼굴이 떠올랐을까
남편의 얼굴이 보였을까
세상에 홀로 남았다는
그 적멸 같은 문 앞에서
엄마는 얼마나 막막했을까
- ‘엄마’, 윤재훈

“하늘을 올려다보니,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고, 스러진다.

어디로 갈거나.”

(생과 사의 거리. 메테히 교회 안에서. 촬영=윤재훈)
(생과 사의 거리. 메테히 교회 안에서. 촬영=윤재훈 기자)

전화라도 드리면
다 큰 자식
분가하여 자식까지 낳고
살고 있는데,

“밥 먹었냐”
묻기부터 하시는,
평생 무거운 등짐만 지워드린
못난 자식

새소리 들리는 저녁나절
우두망찰 산 앞에 서 있으면
그 목소리 들을 수 없다는,
다시는 그 목소리 들을 수 없다는
이승의 저녁 무렵

산이 말한다
돌아가라고

나는 문득 가다 말고 묻는다

“어디로 가라는 말입니까?”

- “이승의 저녁 무렵”, 윤재훈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마라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나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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