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순례] 국립중앙박물관③ 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전부길 기자
  • 입력 2021.09.24 13:46
  • 수정 2021.09.2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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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넋을 빼 놓는 정선과 김홍도의 산수화
우리집 강아지 같이 귀여운 해학적인 호랑이
발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않는 한글의 아름다움
정교함과 고매함의 극치 금동상
홀리는 마술을 가진 백자, 청자

(국립중앙박물관 전경. 촬영=전부길 기자)

[이모작뉴스 전부길 기자] 프랑스 루브르, 영국 대영, 미국 스미스소니언 등 해외 유수 박물관들은 주로 개인이 소장해온 골동품과 작품을 기증받아 세계적 박물관으로 거듭난 곳이다. 이를 부러워한 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생전에 ‘문화재, 골동품은 한데 모아야 가치가 있다. 10만 명이 10점씩 갖고 있어 봐야 아무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전시 포스터.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이 회장이 세상을 떠난 후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평생 모은 개인소장품 가운데 고미술품 2만1600여 점, 국내외 작가들의 근대미술품 1600여 점 등 모두 2만30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제주 이중섭미술관, 양구 박수근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서울대미술관 등에 기증하였다.

감정가만 2조5천억∼3조원으로 알려진 일명 '이건희 컬렉션'은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을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에서 개최했다.

(전시관 내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매 예약 때마다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가 접속 폭주로 다운될 만큼 큰 관심거리였다. 광클에 성공한 소수만 입장이 허락되는 그야말로 별 따기보다 어려운 입장권이었다. 아쉽게도 오는 26일 전시를 마치고, 내년 4월에 더 많은 작품으로 일반에 재공개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문화유산 중 각 시대와 각 분야를 대표하는 명품 45건, 77점이 공개됐다. 여기에는 국보와 보물 28건이 포함돼 있어 알짜 중의 알짜라고 할 수 있다. 전시 작품의 대부분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언급되는 작품들이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입구. 촬영=전부길 기자)

이번 명품전은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밝혔던 이건희 회장의 문화유산 수집 철학과 경영철학, 이건희 컬렉션의 성격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기획됐다.

산수화(山水畵)

인왕제색도 (仁王霽色圖)
겸재 정선(謙齋 鄭歚, 1676~1759), 조선 1751년, 종이에 먹, 국보 제216호

긴 장맛비가 갠 후 인왕산은 사뭇 다르다. 장맛비로 바위들은 물기를 머금어 묵직해 보이고 수성동과 청풍계에 폭포가 생겨났다. 인왕산 자락에서 태어난 정선은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인왕산을 늘 보고 자랐다. 76세의 노대가 정선은 자신의 눈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인왕산 구석구석을 자신감 있는 필치로 담아내 최고의 역작을 남겼다.

인왕제색도를 그린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측된다.  친한 친구의 병세가 나은 상태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후원자인 이춘재의 저택을 그린 것으로도 보인다. 아니면 옥인동 집에서 비가 개인 뒤 흥에 겨워 그린 것일 수도 있다.

(인왕제색도. 촬영=전부길 기자)

붓이 가는 곳에 길이 있고 그 길은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낸다. 가본적 있는 기차바위 치마바위를 그림속에서 만나니 오랜 벗처럼 반갑다. 270년전의 시간을 뛰어넘어 인왕산을 바라본다. 정선과 함께 인왕산을 바라 보노라니 나도 넋이 나가버린다. 내가 정선인지 정선이 나인지 착각에 빠져 버린다.

추성부도(秋聲賦圖)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57~1806?), 조선 1805년, 종이에 엷은 색,보물 제1393호

송나라의 정치가이면서 문인이며, 소동파의 스승인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쓴 「추성부」의 쓸쓸한 정서가 단원 김홍도의 그림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성큼 다가온 죽음과 마주했던 예순 하나의 김홍도는 「추성부」에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본 듯하다. 김홍도의 그림 중 연도가 확인되는 마지막 작품이다.

그림에는 추성부를 왼쪽 위에 옮겨 쓰고 그림으로 표현했다.

(추성부도.촬영=전부길기자)

이제 그림 속으로 들어가 시를 읽으며 숫자가 표시된 것들을 하나씩 찾아보자

구양수가 바야흐로 밤에 책을 읽는데, 서남쪽으로부터 어떤 소리가 들려와 섬뜩 놀라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고 말하였다. “이상도 하구나!” 처음에는 빗소리 같더니, 소슬한 바람 소리 같다가, 문득 기운차게 솟구친 물결이 부딪치는 소리 같으니, 마치 파도가 밤중에 놀라고 느닷없이 비바람이 들이닥치는 듯하여, 그것이 물건에 부딪히니 쨍그랑쨍그랑 쇠붙이가 모두 우는 듯하고, 또 마치 적을 향하는 병사들이 재갈을 입에 물고 질주하는 것과 같아서, 호령도 들리지 아니하고 다만 사람과 말이 가는 소리만 들린다. 내가 동자에게 말하기를,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너 나가서 보고 오너라.”라고 하니,

동자가 대답했다.
“별과 ③은 희고 맑고 은하수는 하늘에 있는데, 사방에 사람 소리는 없고, ④소리는 나뭇가지 사이에 있습니다.”

나는 말하였다. “아! 슬프도다! 이것이 가을의 소리로다. 어찌하여 왔는가?” 대개 저 가을의 모습은, 그 색깔은 참담하여 안개 흩어지고 구름 걷히고, 그 모양은 청명하여 하늘은 높고 햇빛은 찬란하고, 그 기운은 살을 에듯 차가워서 사람의 살과 뼈를 찌르고, 그 뜻은 몹시 쓸쓸하여 산천이 적적하고 고요하다. 그러므로 그 소리는 몹시 처절하며 울부짖듯 세차게 일어나 무성한 풀은 우거져 녹음을 다투며, 아름다운 나무 파랗게 우거져 볼 만하더니, 풀은 가을의 스침에 색이 변하고⑤나무는 가을을 만나 잎이 떨어지니, 꺾여 시들고 영락하는 까닭은 가을 기운이 너무 매섭기 때문인 것이다. 대저 가을은 형관이라, 시절에 있어서는 음기요, 또한 무기의 형상이다.......

(추성부도 속의 5가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슬프다! 초목은 감정이 없지만 때가 되면 나부껴 떨어진다 하니, 사람은 동물이니 오직 만물의 영장이다. 온 근심이 그 마음에 느껴지며 모든 일이 그 몸을 수고롭게 하여 마음속에 움직이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 정신이 움직이게 되니, 그런데 하물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바를 생각하고, 그 지혜로 할 수 없는 바를 근심하니, 반질반질한 붉은 것이 고목이 되고, 새까맣게 검은 것이 희끗희끗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찌하여 금석의 재질도 아닌 것으로 초목과 더불어 번영함을 다투고자 하는가? 생각건대 누가 이것을 손상케 하든 또한 어찌 가을의 소리를 두고 한스럽다 하겠는가? 동자는 대답도 안하고 머리를 떨어뜨린 채 잠을 자니, 다만 사방의 벽에서 벌레 소리만이 찌륵거리며 내 탄식을 더해주는 듯하여라.

그림 속에 가을이 있다. 그 가을은 인생의 황혼처럼 쓸쓸함을 머금고 있다. 구양수의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시가 김홍도의 그림 한점에 녹아있다. 천천히 그림을 음미하면 시가 이해 되어진다. 시가 있어 그림이 되어졌는지 그림이 있어 시가 되어졌는지 착각하게 된다. 그 속에 풍덩 빠져들면 나도 김홍도, 구양수가 함께 앉아 인생을 논하는 환상에 빠진다.

(추성부도와 인왕제색도.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계산허정도(溪山虛亭圖), 계산기려도(溪山騎驢圖)
표암 강세황(豹菴姜世晃 1713~1791), 조선 1776년, 이후 종이에 엷은 색

ㆍ계산허정도: 전망 좋은 정자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곳에서 산과 너른 강을 혼자 여유롭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여백이 많은 공간, 물기 많은 붓질, 담담한 색채가 어우러져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림이다.

(左:계산허정도,右계산기려도. 촬영=전부길 기자)

ㆍ계산기려도: 나귀를 타고 가을 산수를 거닐며 시를 읊조리는 여유가 산수에 흐른다. 그림 상단에 적힌 시를 그림으로 옮겼는데, 이 시는 고려 시로 중국 사대부들에게 크게 칭송받았다고 전한다. 시의 여유로운 정취와 강세황 특유의 넓은 공간감과 유연한 필치가 잘 어울린다.

(전시장. 촬영=전부길 기자)

민화(民畵)

십장생도(十長生圖)
10폭 병풍,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오래 살거나 변치 않는 자연물을 함께 그리는 십장생도는 만수무강을 비는 그림이다. 대표적인 십장생은 해, 산, 물, 돌, 소나무, 구름, 불로초, 거북, 학, 사슴 등인데, 그림마다 모두 다 그려지는 것이 아니다. 이 병풍에는 십장생에 대나무와 복숭아를 더하여 화면이 더욱 풍성해졌다. 격조 높은 십장생도 병풍으로 완성도가 높다.

(십장생도. 촬영=전부길 기자)

까치와 호랑이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동아시아에서 호랑이는 영물이자 군자의 상징이었고 까치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전령이었다. 조선 19세기에는 까치호랑이 그림이 크게 유행했다. 까치호랑이 그림은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부른다는 의미가 있어서 집집마다 붙이고 싶어 했다. 까치호랑이 그림이 많이 전해지는데 이 그림은 탄탄한 묘사 실력이 돋보인다.

(까치와 호랑이.촬영=전부길기자)

세종대왕과 한글

석보상절(釋譜詳節) 권11
조선 16세기(15세기 초간본을 재간행), 종이에 목판 인쇄, 보물 제523-3호

세종대왕 한글창제의 노력과 결실.‘석보상절’은 석가모니 부처의 일대기를 자세히 또는 간략히 기술했다는 의미이다. 여러 한문 불교 서적의 내용을 편집해, 구어체로 이해하기 쉽게 풀고, 훈민정음으로 표기한 책이다. 15세기 우리말, 한글 활자의 조형미를 알 수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석보상절. 촬영=전부길 기자)

중·고생 시절에 뜻도 제대로 모르고 외웠던 실물을 오늘 만났다. 세종대왕 만세! 참으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글자가 살아서 말을 걸어온다.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다 유리관에 이마를 찧었다. 쭈그려 서서 무릎이 아픈 줄도 모르고 최대한 가까이 보려고 얼굴을 붙여 본다. 한글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1·12 
조선 1459년, 종이에 목판 인쇄, 보물 제935호

석가모니 일대기와 설법을 한글로 편찬한 최초의 책으로 『월인석보』는 1447년 완성된 『석보상절』과 세종이 1447년 무렵에 노래 형식으로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세조의 명으로 합치고 수정하여 간행되었다. 구성은 『월인천강지곡』 구절을 먼저 적고, 『석보상절』 구절로 이를 해설하고, 다음 작은 글씨로 보충 설명을 넣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월인석보. 촬영=전부길 기자)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7·18 
조선 15세기, 종이에 목판 인쇄

한글과 한자 서체의 슬기로운 배치가 돋보인다. 『월인석보』는 한자와 순우리말, 한자음을 함께 배치해야하는 어려운 과제를 슬기롭게 해결한 책이다. 본문은 굵은 한자와 한글, 한자음에 해당하는 가는 한글 서체를 썼고, 설명 부분은 동일한 크기의 가는 한글과 한자 서체를 한 칸에 두 줄씩 배치했다. 서체 굵기와 크기, 배치 방식을 다르게 하여 여러 서체를 조화롭게 안배한 구성력과 디자인 능력이 돋보인다.

(월인석보. 촬영=전부길 기자)

지금은 옾셋인쇄로 거의 사라졌지만 이전에는 책을 만들 때 글자를 하나하나 뽑아서 만드는 활판인쇄였다. 책을 읽을 때 손가락으로 글자를 더듬으면 올록볼록한 느낌이 참 좋았고 금방 나온 책들은 책에서 빵굽는 냄새가 났다.

여기 전시되어 있는 인쇄물이 그랬다. 예전에 맡았던 구수한 책 냄새가 풍겨온다. 마치 금방 나온 것처럼 글자가 살아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아름답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받침들과 점들이 한글의 정교함을 말해준다.

(진열장.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금동상(金銅像)

일광삼존상(一光三尊像)
삼국시대 6세기 청동에 금도금 국보 제134호

위쪽 끝이 뾰족한 광배를 배경으로 보살상과 승려상 두 구가 함께 자리한 일광삼존상이다. 구리와 주석, 납을 섞어 주조한 후 표면에 금을 칠했다. 8.8cm의 작은 크기지만 세부 표현이 섬세하다. 광배에는 보살의 몸에서 나오는 신성한 불꽃 무늬를 치밀하게 새겨 넣어 성스럽고 고결한 느낌을 준다.

(일광삼존상.촬영=전부길 기자)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삼국시대 6-7세기 청동에 금박 도금 보물 제643호

의자에 앉아 오른 다리를 왼 무릎에 올리고 손을 뺨에 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본래 싯다르타 태자가 인생에 대해 고뇌했던 모습에서 비롯되었으나, 우리나라 삼국시대에는 미래의 구세주인 미륵보살을 반가사유상으로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소가 정겹고 편안하다.

(반가사유상. 촬영=전부길 기자)

보살(菩薩)
ㆍ보살① : 삼국시대 7세기 청동에 금도금 국보 제128호

머리에 관을 쓰고 몸에는 구슬 장식을 두른 차림새가 화려하다. 왼손에 쥔 정병은 깨끗한 물을 담는 그릇인데, 자비와 구원의 상징인 관음보살이 지니는 경우가 많다. 곧게 선자세, 고요한 표정에서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힘쓰는 보살의 고매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左:보살①,右보살②. 촬영=전부길 기자)

 

ㆍ보살② 삼국시대 말-통일신라 초 7세기 후반, 청동에 금도금, 보물 제780호①②

구리에 주석을 섞어 주조한 뒤 금을 입혀 만든 이 금동보살상은 뛰어난 제작기술과 높은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8등신에 가까운 늘씬한 몸, 팔을 부드럽게 휘감은 천과 구슬 장식에서 유려함이 느껴진다. 삼국시대 말기의 특징을 지니면서도 통일신라 조각의 새로운 양식을 예고하는 상이다.

부처(佛陀)
ㆍ부처① 통일신라 8세기 청동에 금도금 보물 제779호

부처는 온몸이 금색이고 빛을 내뿜는다고 한다. 금동불을 만든 장인들은 이를 금도금으로 표현하였다. 이 상은 도금 아래 청동합금의 구리 함량이 높아 약간 붉은 빛을 띤다. 어깨와 허벅지 등 신체의 형태를 둥글둥글하게 처리하여 원만한 조형미가 돋보인다. 주조와 도금 기법이 뛰어나고 부드러운 미감이 조화를 이룬 수작이다.

(左:부처①, 右부처②. 촬영=전부길 기자)

부처② 통일신라 9세기 청동에 금도금 보물 제401호

이 상은 높이 32.3cm로 통일신라 금동불 중 큰 편이며 비례는 5등신에 가깝다. 몸을 주조하여 만든 후에 옷 주름을 선으로 새겨 입체감이 적은 편이다. 이러한 조형성과 제작기법은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조각의 특징이다. 같은 시기 중국·일본 불상과 달리 표정이 근엄하지 않고 친근하다.

(부처와 보살. 촬영=전부길 기자)

자기(瓷器)

백자 청화 대나무무늬 각병
조선 18세기 국보 제258호

단단하고 간결한 정취 단단한 팔각형 병에 간결하고 청초한 대나무가 배치되었다. 이 병은 바탕흙이 눈부시게 희고 유약은 맑고 투명하여 최상품 조선 백자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18세기 전반 경기도 광주 금사리에 위치했던 관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 백자의 수준 높은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左:대나무무늬병,右산수무늬 병, 촬영=전부길기자)

백자 청화 산수무늬 병
조선 18세기 보물 제1390호

병의 형태가 떡을 칠 때 사용하는 나무 몽둥이인 떡메처럼 생겼다 하여 ‘떡메병’이라 불린다. 고려 말부터 즐겨 그렸던 중국 동정호 주변의 소상팔경 그림 중 동정추월이 병 전면에 그려져 있다. 넉넉한 몸체가 너른 강과 산이 되어 한없이 유유자적한 느낌을 잘 살렸다.

청자 상감 모란무늬 발우와 접시
고려 13세기 보물 제1039호

발우는 승려들이 사용하는 식기이다. 도자기나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모양은 같으나 크기가 다른 여러 그릇을 포개어 보관하였다. 이 청자 발우는 세밀하고 정교한 상감 무늬가 돋보인다.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선박에서 청자 발우 40여 조가 인양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한 점씩만 전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온전한 한 조를 이룬 청자 발우는 매우 드물다.

(청자 상감 모란무늬 발우와 접시. 촬영=전부길 기자)

이사징의 부인 이씨의 묘지와 분청사기 
조선 1448년 보물 제1428호

조선 초에는 무덤 주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묘지를 당시 널리 유행했던 분청사기로도 만들었다. 분청사기로 제작된 이사징의 부인 이씨의 묘지는 다른 분청사기 그릇과 함께 전해져 오고 있다. 묘지에는 ‘정통 13년’이라는 시기가 새겨져 있는데 이 기록으로 그릇이 1448년 무렵에 제작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어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이사징의 부인 이씨의 묘지와 분청사기. 촬영=전부길 기자)

분청사기 조화 새·나무무늬 편병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전반 보물 제1069호

병의 가운데를 가볍게 두들겨 만들어 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편병으로, 분청사기 특유의 형식에 벗어난 유연한 조형성을 느낄 수 있다. 병 표면에 백토를 대충 바른 후 반추상화된 꽃·뾰족하고 가느다란 나무·새를 그렸는데,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듯 자유분방하다. 반듯하지 않은 병의 형태와 거친 듯 무심한 무늬가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左:백자 사발,右분청사기 조화. 촬영=전부길 기자)

천·지·현·황이 새겨진 백자 사발
조선 15세기 후반 –16세기 전반 국보 제286호

순백의 색깔, 고르게 입혀진 유약, 단정한 굽 깎음새로 보아서 이 사발은 국영 도자기 제작소인 관요에서 만들어진 최고급 백자이다. 그릇 굽 안 바닥에는 각각 ‘천’·‘지’·‘현’· ‘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제작 공정을 표시한 기호이거나 궁궐·관청에서 그릇을 관리하기 위한 표식으로 추정된다.

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작품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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