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식의 인생 바라보기㉙] ‘돌잡이’ 대소동

윤창식 칼럼니스트
  • 입력 2021.10.20 14:03
  • 수정 2022.01.1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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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식-수필가-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윤창식-수필가
- 前 초당대학교 교양교직학부 교수
- 문학과환경학회 회장 역임

황무진씨(69세)는 온갖 험한 일을 하면서 참 잘 버텨오다가 늘그막에 얻은 손자 돌잔치를 맞이하게 되어 감격에 겨웠다.

아들내미도 비록 좋은 학교는 보내지 못했어도 지금은 어엿한 중소기업 사장님 소리를 듣고 있으니 딱히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돌잔치는 화려하다 못해 눈이 부셨다. 조명등은 방송국 드라마 세트장보다 으리번쩍했고 이벤트 사회자의 말솜씨는 좌중을 휘어잡는 것을 넘어 구사되는 미사여구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돌잔치의 주인공과 엄마, 아빠, 그리고 하객들 또한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다.

"자, 하객 여러분! 이제 가장 중요한 돌잡이 순서로 들어가겠습니다."

사회자가 아이 엄마에게 건네준 큼지막한 쟁반에는 여섯 가지 모형장난감이 놓여있었다. 엄마 아빠는 물론 할아버지 황씨는 반쯤 입을 벌리고 흐뭇한 웃음을 머금었고 하객들도 수런수런 객장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자~, 과연 아이가 무엇을 잡을까요?"

엄마는 자꾸 아이 앞으로 육법전서를 내밀었다. 아이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이번엔 엄마는 기다란 연필을 만지며 아이를 유도했으나 마찬가지로 거들떠도 안 본다. 엄마는 이마에 송글 땀이 맺히고 아이를 안고 있는 아빠는 애써 미소를 짓느라 무척 힘이 드는 듯 했다. 그때 엄마 손에 들린 쟁반이 약간 기울면서 모형 야구공이 굴러 떨어진다.

"자, 아직도 좋은 것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잡을까요?"

사회자는 다른 행사 사회 시간이 다가오는지 자못 초조해 하면서 목소리가 약간 야바위꾼처럼 변해가는 듯 했다.

그때 어느 하객이 소리쳤다.

"사임당 아줌마 돈을 콱 잡어라! 머니머니해도 머니가 쵝오여~ (크흐억~)"

이번에는 사회자가 5만원짜리를 아이 쪽으로 슬쩍 내밀었으나 고개를 외면하는 폼이 여간 영특해 보이는 게 아닌가!

"워~메, 쩌 녀석 보게. 돈도 싫은개비여."

하객석에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이제 방송용 무선마이크와 청진기 두 가지만 남은 상황이 되었다.

"자~, 이제 방송인이냐 의사냐만 남았네요."

엄마, 아빠, 할아버지는 기대만땅이다.

하지만 아이는 까만 청진기가 전혀 눈에 띄지 않은 듯 딴청이었고, 모형 마이크도 영 빛이 나지 않은 건 마찬가지여서 결국 아이의 간택을 받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구만리 같은 아이를 무직자나 주거부정자로 키울 수는 없지 않은가! 다행히도 하객 중에 장난감 제조회사 직원이 끼어있었고 그 직원은 자기 회사로 급히 전화를 건다.

"어이 김대리! 장난감 여섯 가지만 챙겨서 빨리 나한테 가져다주게."

김대리가 빛의 속도로 가져온 모형장난감은 다음과 같았다 :

빨간 불자동차

밭갈이용 경운기

택배용 널빤지 밀판

빠루식 몽끼스패너

쓰레기 수거 트럭

안강망 고기잡이 그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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