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작 성공수기] 내 인생의 세 가지 앞치마...우수상 ‘조강명’

김남기 기자
  • 입력 2021.10.21 14:31
  • 수정 2021.10.2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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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김남기 기자] 경상남도에서 실시한 제1회 신중년 인생이모작 성공수기 공모전 수상작품을 연재한다. 연재될 수상작품들은 퇴직 후 삶 준비, 재취업 성공사례, 사회공헌활동, 재능나눔 경험 등을 공유하고, 신중년 세대의 성공적인 인생 2막을 엿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내 인생의 세 가지 앞치마

우수상 '조강명'

(사진=조강명 제공)

나는 수 년 전에 삼십여 년의 교직생활에서 명예퇴직을 하였다. 한 번도 쉬어본 적도, 다른 직업을 가 져본 적도 없이 사립학교와 공립학교 교사, 그리고 대학 강의자로서의 경험이 전부이다.

비교적 도전적 인 성격이라 현직에 있을 때도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시대별로 소개되는 정보들을 빨리 습득한 편이었다. 88올림픽 때 운전면허를, 컴퓨터 프로그래밍, 윈도우, 워드, 엑셀 등의 컴퓨터 활용과 정보처리분야를 학교 업무와 병행하여 열심히 배우고 활용했었다. 한마디로 멀티 플레잉을 좋아하고 추구하는 형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던 직장에서 퇴직하면 이제 출근시간 스트레스에서 벗어 나고, 남은 노년기 동안은 꽤 편안하게 여가 생활을 누리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한 것은 삶의 현장에서 치열했던 40대를 넘어서 50대 들어서 좀 더 구체적으 로 내 인생의 후반부 이모작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나는 별도의 퇴직 후 봉사의 삶을 계획했었다. 미리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준비하였고 퇴직 후 처음, 열심히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한국어 강의로 봉사했다. 또 대안학교에서 학생들 교육에 일조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가르치는 일이 지속 되니, 어느 날 갑자기,

“나는 평생 한 가지 일만 하고 살아야하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나는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 반평생 해오던 교육의 길보다 몸을 쓰는 일을 해보자’

라고 진로를 결정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직업을 새로 갖겠다기보다, 막연하지만 몇 가지 새 로운 일들을 하고자 각종 국가자격증 취득에 도전했다.

(사진=조강명 제공)

산모육아도우미를 비롯하여 노인심리치료사, 방과후 강사, 논술지도, 영어동화구연 등등, 인터넷 원격수업으로 열 몇 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특히 학원 수강과 실습까지 마쳐야 국가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생기는 요양보호사와 제과기능사 자격을 땄고, 지난해에 제빵기능사 취득을 위한 학원 수강을 마쳤고 최종 실기기능 시험에서 2전 3기 도전 만에 마침내 자격증을 취득했다.

얼마나 기쁘던지. 한 두 번의 좌절에 용기를 잃지 않는 내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2020년 코로나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국민 내일 배움 카드’를 발급받아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았다. 직장인반이라 퇴근 후 저녁 시간에 강의를 들으며 이렇게라도 배울 수 있어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지 감사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날, 강사의 질문이 왜 제과·제빵을 배우려고 합니까?라고 물었는데, 그에 대한 나의 답은

’평생 안 해본 일을 이제부터 찾아서 해보기로 했는데 그것이 제과·제빵의 길이다. 나는 가게를 차릴 것도 아니고, 그저 내 손으로 가족과 손자들에게 홈 베이킹 과자와 빵을 해주고 싶어서 이 길로 왔다‘라고 답했다.

(사진=조강명 제공)

실제로 제과·제빵 기능을 배우니 너무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도, 몸이 피곤한 줄도 모를 정도였고, 살면서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즐거움이 컸었다. 그 취미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일로 이어져서 대안학교 학생들에게 제과 제빵을 가르치는 특별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것이 올해도 또다시 입게 될 나의 ’첫 번째 제과 제빵 앞치마‘이다.

한 번은 나에게 왜 쉬지 않고 끝없이 배우는 일에 도전하시느냐고 물어보는 이가 있었다. 나는 사십여 년을 규칙적인 출퇴근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갈 데가 없다는 것이 너무 슬프더라고 답했다. 규칙적인 시간에 일어나 준비하고 출근하고 퇴근하면서 장 봐오고, 가족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고, 휴식하고 다음 날 또 일터로 향하던 규칙적인 패턴이 무너지니까 꽤 힘들다고 대답하면서... 그래서 퇴직 후 한 번의 쉼도 없이 작은 일이라도 찾아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는 일을 찾아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작년 오월, 내 어머니는 요양병원에서 지내시다가 삼월부터 급격히 건강이 악화 되셨고, 결국 대 유행 병 바이러스 때문에 가족들 그 어느 누구의 임종 작별 인사도 받지 못하시고 떠나셨다. 모친을 여윈 뒤로 내가 정말 열심히 몰두했던 일은 방문 요양보호사 일이었다. 처음에는 어머니 간병 때문에 가족 요양 일을 하려고 했었는데, 갑작스런 어머니의 상실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후 다른 어르신 한 분을 섬기는 일을 했었다. 비록 몸은 힘들지만 정신은 평화로웠다. 가르치는 일은 까마득히 잊어버렸고, 과거의 학교 교사로서 자신을 완전히 지우고 새로운 요양보호사로서의 직분에 걸맞게 자신을 새롭게 정형하였다. 물론 평소 해보지 않은 청소나 가사일로 육체노동이 힘들었지만, 차츰 적응하면서 거의 일 년 정도 일했다. 어머니 연배의 어르신을 만나, 더 잘해 드리고 싶었고, 같이 울고 웃으며 노동으로 헌신하며 돕는 일은 진심으로 좋았다.

거리의 가로수 은행잎이 어르신 집안 마당까지 바람에 날려 들어와 수북히 쌓였고, 쓸고 나면 또 쌓이고 하는 것을 나는 기꺼이 쓸어냈다. 아파트 사는 사람이 언제 정원의 낙엽을 치울 기회가 있겠냐며, 노동이 아니라 정원 가꾸기 취미 생활처럼 즐겼다. 노인복지센터에서 제공한 내 ‘두 번째 보라색 앞치마’를 입고서 은행잎과 냄새나는 은행알과 수시로 대격돌을 하곤 했었다.

작년 겨울에 학원 수강이 끝난 한식 조리는 내 원래 계획에 없었던 것이었다. 늘 직장에 바빠 그럴 듯한 요리라곤 해보지 못했고 심지어 김치마저 친정과 시댁에서 가져다 먹곤 했다. 그랬던 내가 요리를 한다고? 전혀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다만 요양보호사로서 재가 방문 시 어르신을 위한 식사 준비에 도움이 될까 해서 수강하게 되었던 것이다. 첫 강의시간 소감발표 때가 지금도 기억난다.

‘저는 평생 모친으로부터 김치를 비롯한 모든 음식을 얻어먹고만 살아왔는데, 이제 누군가를 위해 손수 만들어 대접해 드리고 싶은 동기로 학원등록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매일 저녁 시간, 나는 바쁘게 가족 식사를 준비해주고 학원으로 향할 때마다, 여전히 내가 정식으로 요리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아 가방에 들어있는 조리학원의 앞치마를 가만히 만져보았다. 한식 조리과정을 마친 후, 이어서 올해 2월 한 달간 양식 조리 학원 수강을 끝냈다. 곧 한식・양식 기능사 실기시험을 앞두고 있는데 나는 이 ‘세 번째 하얀 앞치마’가 가장 실용적으로 여겨져 사뭇 자랑스럽다.

학원을 마친 어스름 저녁 귀갓길, 비록 다리가 부어서 집에 가서 충분히 쉬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걷다 보면 내 옷과 머리카락에서 풍겨오는 버터 향과 향신채 샐러리 향을 맡게 된다. 그때마다 내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번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서 가서 오늘 배운 메뉴로 저녁을 차려서 남편과 아 이에게 내놓자며 기쁘게 내달았다. 자격증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주부로서 아내로서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 있게 건강한 음식을 제대로 만들어 내어 놓는 그 기쁨이 크다는 점을 육십이 넘은 지금에 비로소 느끼니, 늦어도 한참 늦은 듯하다. 그러나 ‘좀 늦으면 어때’ 싶다. 오십대 때 느끼지 못했던 여유로움과 인생을 바라보는 혜안의 각도가 더 크고 넓어진 것은 분명하다. 나아가 70대가 되면 내가 얼마나 더 지혜롭게 삶을 대할 지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

(사진=조강명 제공)

코비드로 어려웠던 작년 한 해.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꼽자면, 경남 인생이모작 지원센터에서 주관한 다문화 학습지원단 멤버로서 경험이 그것이다. 한국사와 한국어 학습을 돕는 멘토링 활동이었다. 멘토-멘티로서 만나는 기간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나는 나의 멘티와 교류하며 만나는 중이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어느 교육연구소에 재취업해서 주한 외국인을 위한 ‘방문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다. 한국어 강사로서 가르치는 일로 다시 회귀하긴 했으나, 나의 원래 전공과는 전혀 다른 길이긴 하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와 부모를 대상으로 열심히 한국어를 가르치느라 한겨울에도 땀이 날 정도로 몰두하다보면 정해진 수업시간이 금방 흘러가 버리곤 한다. 조력하는 보람만으로 큰 희열을 살 수 있는 그런 일을 나는 진심으로 즐기며 하고 있다. 비록 앞치마는 불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안 가본 길, 가보지 못한 길, 가지 않은 길. 인생을 살아가며 어느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서 우리는 얼마나 고민을 해왔던가.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에 서서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갈등을 노래한 적이 있다. 과연 못 가본 길이 과연 더 아름다울지? 지금 천천히 그 못가본 길을 걷고 있는 나는, 그 길 또한 운치가 있고 멋질 거라 짐작해본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저서 『두 번째 산』에서

“인생이란 두 개의 산을 오르는 일과 같은데 첫 번째 산을 오르는 삶은 나의 성공을 위한 삶이요, 두 번째 오르는 삶 은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헌신적인 삶을 말한다.”고 했다.

나는 지나온 익숙한 길들을 뒤돌아 보며 잘 걸어왔노라 만족해하며 미소 짓는다. 내 앞에 놓인 조금 가파르고 울퉁불퉁한 경사길 앞에서 두려움 없이 내 인생의 두 번째 산을 오를 때가 되었다고 선언하고 실천하고 있다. 매일 아침 기쁜 마음으로 현관문을 나서며, 이 두 번 째 삶을 경작하는 일이 진정 과거에 못 가본 길일지라도, 더 아름다운 길이 분명하길 바란다. 또 그 길 가운데서 앞으로의 내 노년의 이모작이 더 풍성할 것이라고 소망하며 나는 소중한 이 세 개의 앞치마와 함께하는 내 삶이 행복해지길 아니, 더 행복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사진=조강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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