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74] 조지아_와인의 고향, ‘시그나기’
[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74] 조지아_와인의 고향, ‘시그나기’
  • 윤재훈 기자
  • 승인 2021.10.22 10:3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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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_와인의 고향 '시그나기'

모두가 환한 빛 속으로
걸어나가는데,
이 지하도의 걸인은
도무지 밖으로 나가기가
싫은 모양이다

그의 삶에 여명이 비치기를
기도해 본다.

-‘음지에 내린 뿌리’, 윤재훈

 

(시그나기 박물관 뜨락에 뒹구는 ‘크베브리Qvevri 항아리’. 촬영=윤재훈 기자)
(시그나기 박물관 뜨락에 뒹구는 ‘크베브리(Qvevri) 항아리’. 촬영=윤재훈 기자)

땅에 묻은 크베브리(Qvevri, 암포라) 항아리에 포도를 통째로 넣고 숙성시키는 <크베브리 와인 제조법>이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나라, 그 시절 아니, 그 전부터 포도씨를 심어 어느 집 마당에라도 포도가 풍성한 나라. 담장을 너머 포도 가지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사람들을 유혹한다. 8000년 전에 포도를 숙성시킨 흔적과 포도 씨가 들어있는 크베브리 항아리까지 발굴되었다.

크베브리는 바닥이 뾰족하게 생긴 황토빛 큰 도자기 항아리인데, 케브리, 퀘리 등으로도 발음이 다양하다. 우리의 항아리와 달리 왜 바닥을 뾰족하게 해서 누워있게 하는지, 두고두고 그것이 궁금하다. 크베브리는 ‘와인 양조부터 숙성까지 모든 양조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올인원(All in one) 도구다.’

그 용량은 20~5,000리터까지 다양하며, 와이너리에서는 현재 2~3천 리터를 주로 사용한다. 진흙을 한 겹씩 덧붙여 만들기 때문에 1개를 제작하려면, 약 1달 정도가 걸린다. 크베브리의 두께는 약 3~5센티이며, 말린 뒤 밀봉된 1,000도 이상의 가마에 넣어 구운다. 와인 생산자는 이 크베브리를 목 부분까지 땅에 묻는데, 그럼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시그나기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시그나기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수확한 포도는 껍질째 넣거나 혹은, 줄기째 으깨어 크베브리에 넣고 입구를 진흙으로 밀봉한다. 그 후 발효가 시작되면 포도껍질과 과육 등 머스트(must, 발효되지 않은 압착즙, 과실의 껍질, 씨, 줄기가 포함되는 것이 보통)가 윗부분에 떠오른다. 이후 이 머스트는 발효가 진행될수록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화이트 와인인 경우에는 6개월 정도 접촉한 뒤 머스트에서 와인을 분리해, 다른 크베브리로 옮겨 숙성시킨 후 병에 담는다.

다 사용한 크베브리는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 특수 제작된 솔과 물만으로 꼼꼼히 문질러가며 2달 동안이나 공을 들여 닦는다. 그리고 물을 넣어봐서 완전히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반복하여 닦아낸 뒤 자연 건조시켜 재사용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특히나 크베브리 방식은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하면, 한 해 농사지은 포도를 전부 못쓰게 될 수 있어 와인 생산자들이 특히 신경을 많이 쓴다.

크베브리로 만든 와인은 ‘단일 품종 와인’ 혹은 ‘블렌딩 와인’이 될 수 있다. 앰버 와인은 보통 크베브리에 보관된 온도 그대로 음미하며, 대부분 수확 연도의 1~3년 안에 마시는 것이 좋다. 극히 드물지만 일부 앰버 와인은 5년 이상 숙성시키는 경우도 있다.

“블렌딩이란,
더 맛있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여러 품종을 섞어서 만드는 기법이다.”

칠레의 유명한 와이너리인 ‘쿠지노 마쿨’의 수석 와인메이커인 파스칼 마티는 ‘블렌딩’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와인을 블렌딩 하는 것은,
특별한 와인을 창조하는 가장 우아한 방법이다.
개성 있는 각각의 악기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울림을
선사하는 교향곡과 비슷하다.”

그래서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블렌딩’이야 말로 와인메이커의 ‘오랜 경험과 고도로 숙련된 테이스팅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라고 한다.

(박물관 벽, 포도송이 아래 사람들. 촬영=윤재훈 기자)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와인은 아직까지 골프처럼 약간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 즐긴다. 와인에 대한 표현들도 어떻게 보면 약간의 거품까지 덧씌워 진 것 같다. 여기에 코리아 와인Korea wine인 우리의 ‘막걸리’는 왜, 이렇게 우아한 옷을 입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까지 든다. 한류 드라마가 세계를 강타하고, ‘싸이’나 ‘방탄 소년단’,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인의 혼을 빼놓은 이 시대에 말이다.

수천 년 우리네 민초들의 삶과 고됨을 다 떠받들고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견디어오면서도,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찬란한 옷을 몇 겹씩 덧 입히는 그들의 상술에 찬사를 보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요즘 더욱 품격을 올리면서 수입쌀이나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을 쓰지 않고, 더욱 자연에 가까운 전통 막걸리들이 나오고 있어 애주가로서 불행 중 다행인데, 가격이 너무 비싸 그림에 떡이 되고 만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국력 신장으로 코카서스 지역이나 유럽을 가보면, 와인의 가격이 우리네 막걸리보다 더 싼 것들도 많다.

"‘앰버 와인(Amber Wine, 오렌지 와인)’은 호박색을 띠어 그렇게 부른다.
껍질을 함께 넣어 발효시키기 때문에 ‘껍질째 발효된(skin fermented) 화이트 와인’
또는 ‘껍질 침용된(skin macerated) 화이트 와인’, ‘스킨 콘택트 와인(skin contact wine)’이라고도 부른다.
색과 풍미, 탄닌의 스펙트럼이 넓어 사람들 사이에 호불호가 갈린다."

오래전부터 조지아에서 만들어졌던 와인은 지금.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유행되고 있다.

이탈리아인인 요슈코 그라브너와 스탄코 라디콘은 오렌지 와인의 르네상스를 일으켰으며, 지금도 조지아에서는 크베브리 양조법을 서방에 알린 그들을 고마워한다.

대부분의 양조 과정에서는 이산화항을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해외로 수출할 경우에는 첨가하기도 한다. 앰버 와인은 화이트 와인이지만, 타닌과 상당한 바디를 지니기에 고기와도 잘 어울린다.

조지아에서는 3~4세기 시대의 크베브리도 찾아볼 수 있는데, 그 형태는 요즘 것과 거의 비슷하다. 양조장을 잘 찾아가면 볼 수 있다.

나는 코카서스를 시작으로 유럽을 다 지나갈 때까지, 우리의 막걸리보다 더 싼 와인을 실컷 마셨다. 그런데 내 입에는 막걸리의 맛이 더 간절했다. 이웃한 브랜디의 나라 아르메니아에서는 황금빛 브랜디를 맘껏 마실 수 있었다.

(도무지 그는 밖으로 나가기가 싫은 모양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도무지 그는 밖으로 나가기가 싫은 모양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모두가 환한 빛 속으로
걸어나가는데,
이 지하도의 걸인은
도무지 밖으로 나가기가
싫은 모양이다

그의 삶에 여명이 비치기를
기도해 본다.

- ‘음지에 내린 뿌리’, 윤재훈

마침내 <시그나기>로 떠난다. 나는 세계여행을 떠나면서 이름에 반해서 가고 싶은 나라가 몇 군데 있었다. 그 나라는 ‘아유타야, 루앙 프라방’, 그리고 이곳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삼고리> 역에서 내려 좌측 편 지하 통로를 나가면 <삼고리 재래시장>이 나온다. 여기도 디두베 역처럼 미니 버스들의 터미널인데, 이곳에서는 조지아의 동쪽 지방으로 가는 마슈르카들이 집결한 듯하다. 시그나기 행은 안쪽으로 5분여 더 걸어 들어가며 모여있다.

요금은 6라리이며 약 2시간여 정도 가면 된다. 키가 크고 배가 남산만하게 나온 나이든 남자 운전자들이 많은데, 여행자들을 속이지 않고 현지인들과 똑같은 요금을 받으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오전 9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출발하는데, 여기는 사람이 차지 않아도 출발한다

(조지아의 주식인 ‘푸리’. 촬영=윤재훈 기자)
(조지아의 주식인 ‘푸리’. 촬영=윤재훈 기자)

중간에 한 번 쉬는데, 빵이 맛있는 집인지 기사는 커다란 빵을 4개나 사 온다. 뒤에 검색을 해보니 트빌리시에 사는 사람들도 여기까지 사러 올 정도로 유명한 집이라고 한다. 손님들도 몇 사람 빵을 들고 온다.

조지아어로 빵은 ‘푸리(Puri, პური)’라고 한다. 그리고 푸리라는 말 앞에는 재료, 지역, 모양에 따라 꾸미는 말들이 더 붙는다. 만약 빵 이름 앞에 하차푸리(khacha puri, ხაჭაპური)가 들어있는 종류를 골랐다면, 담백하게 구워낸 조지아식 전통 치즈빵을 말한다. 이 하차푸리만으로도 그 종류가 무척이나 다양하다.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여기서는 돈을 받지 않는다.

이제 시그나기가 40여 분 정도 남았는데, 마슈르카는 점점 산으로 오르면서 비탈을 따라 차가 구불구불 달린다. 와인에 취했으니 인생도 취해있을 그 사람들과 산촌 마을을 빨리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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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2021-10-29 17:35:16
와인은 유럽의 맛
막걸리는 우리의 앗
어쩔수 없는 한국인입니다.
아름다운 여행지
맘껏 다닐 그 때를 고대해봅니다

윤재훈 2021-10-22 04: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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