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㉝] 크리스마스 온기 40년 동안 이어 온 연극 ‘빈 방 있습니까’

천건희 기자
  • 입력 2021.12.28 16:18
  • 수정 2021.12.28 16:5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21년 40주년 기념공연, 대학로 열림홀에 올려져

사진=극단 '증언' 제공
사진=극단 '증언' 제공

[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지난 12월 22일, 12월이 되면 어김없이 무대에 오르는 크리스마스의 사랑과 감동이 담긴 연극 <빈 방 있습니까>를 대학로 열림홀에서 관람했다.

극단 「증언」의 연극 <빈 방 있습니까>(이하. 빈방)는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든 작품이다. 연출가 최종률은 1980년 성탄절 무렵에 신문에 실린 ‘월리의 성탄절’이라는 짤막한 칼럼을 읽고 느낀 감동을 대본으로 완성했다. 1981년 12월 이대 앞 민예소극장에서 초연을 한 <빈방>은 올해까지 4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공연이 이어졌다고 한다. 팸플릿 뒤에 빼곡히 새겨진 공연 연보는 감동이었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무대는 작은 교회 고등부 연극반 연습실.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 연극을 준비하는 연극반 연출교사(배우 김충실)는 학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말을 더듬는 지진아 덕구(배우 박재련)에게 여관주인 역을 맡긴다. 모든 면에서 소외되고 있던 덕구에게 자신감과 성취감을 주려는 교사는 학생들을 설득한다. 덕구는 ‘빈 방’의 발음이 잘되지 않아 힘들어 하면서도 ‘우리집엔 빈 방이 없습니다!’ 라는 대사를 기쁘게 열심히 외운다. 마침내 12월 24일 공연 날.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 앞에서 연극은 시작됐다. 요셉과 만삭인 마리아는 로마 황제가 고향에서 호적을 정리하라는 칙령에 따라 고향 베들레헴으로 간다. 그런데 그들을 맞아줄 방이 없다. 빈 방이 없어 마구간 말구유에서 아기 예수를 낳고 경배를 받아야 한다. 연극은 덕구가 등장하는 여관 장면에 이르고 요셉과 마리아는 여관집 주인 역할을 맡은 덕구에게 사정을 한다.

“빈 방 있습니까?”

덕구는 빈 방을 애타게 찾는 요셉과 만삭의 마리아의 딱한 사정에 몰입한 나머지, 방이 없다고 쫒아내야 하는 장면에서 소리치며 마리아를 붙잡는다.

“가지 마세요. 여관에는 빈방이 없지만, 우리 집에는 내 방이 있어요.”

사진=극단 '증언' 제공
사진=극단 '증언' 제공

연극은 중단이 되고, 나머지 연극은 엉망이 되었다. 연극 안의 성탄극이 끝나고 홀로 남은 덕구는 울면서 독백한다.

“하나님...아이들이 많이 화 나 있을 거예요. 저 때문에 연극을 망쳤거든요....그치만 하나님...어떻게 거짓말을 해요. 우리 집에는요 방이 있걸랑요.... 예수님이 태어나시려고 하는데 어떻게 나가라고 해요....어떻게 마구간으로 가라고 해요....그치만...저 때문에 애들이 많이 속상해있을 거예요. 속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나님과 덕구의 대화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지나 성탄의 새벽으로 이어졌고, 새하얀 눈이 내린다. 연출교사는 그때 그 연극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극이었다는 독백으로 연극은 끝난다.

가슴이 먹먹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극단 「증언」은 1980년 창단된 단체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자원 봉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12월 대학로 극장에서 정기공연을 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장애인 시설, 군부대, 교도소, 양로원, 등 주로 소외된 이웃을 찾아다니며 무료로 위문공연을 하고 있다.

이 공연의 주인공 ‘덕구’역의 박재련 배우는 40년 전 첫 무대의 주인공으로 선 이후 지금까지 한해도 빠지지 않고 그 역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20대 젊은 시절에 시작해 이젠 머리가 하얗고 주름진 얼굴의 60대 중년인데도 여전히 무대 위해서 고등학생 ‘덕구’로 열연하고 있다. 어눌한 발음의 순수한 표정 연기로 몰입감을 높인다. 놀랍고 존경스럽다. 최종률 작가는 연극 <빈방>을 저작권 없이 자유롭게 공연할 수 있도록 인터넷에 대본을 전부 올려놓았다고 한다.

촬영=천건희 기자
공연 연보/촬영=천건희 기자

<빈방>이 앞으로 50회를 넘어 100회로 잘 이어지리라 믿는다.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공연되는 시즌 공연이 아니라 항상 공연되는 상설공연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박재련 배우의 꿈을 응원하는 마음이다. 화려한 조명도, 무대 전환도 없는 소박한 무대였지만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를 소환하고 깊은 감동을 주는 연극이었다.

크리스마스의 의미와 내 마음의 빈 방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연극 <빈방>의 내년 무대를 벌써 기다린다.

 

저작권자 © 이모작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