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79] 터키, 아시아와 유럽의 나라 1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1.13 17:01
  • 수정 2022.03.09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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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와 유럽의 나라, ‘터키’를 가다.

도올 하다
도봉산의 툭, 솟은
자운봉처럼

천 년 된 소나무의 툭,
튀어나온 옹이처럼

학문의 세계가
한강의 심(心)처럼
도도히 흐른다

시대를 걱정하는 한숨 소리가
짙어 온다

- 새해 아침, ‘도올 하다’, 윤재훈

(시라즈 이슬람 사원 앞에서, 법회 시간이 다 되었다. 촬영=윤재훈)
(시라즈 이슬람사원 앞에서, 법회 시간이 다 되었다. 촬영=윤재훈 기자)

مرا داد فرمود و خود داور است

그가 나를 심판할 제,
나에게 정의를 행하라 하시리라.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이제 이란을 떠난다.

기름이 물보다 싼 나라, 20여 분 이상 대형 ‘벤츠’을 타고 가도 택시비가 2~300원인 나라, 자주의 나라, 초강대국 미국과 유일하게 맞장뜨는 나라, 기름이 그들에게 축복인가, 저주인가.

유난히 K-pop과 한류드라마를 좋아하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 수도 테헤란 중심부에 가장 큰 백화점 일 층의 반 이상을 삼성과 LG 가전제품이 차지하고 있는, 용산처럼 2층 가전매장은 아예 빙 둘러 삼성 간판이 도배하고 있는 나라.

유난히 미국을 좋아하며 가족이 부정부패를 일삼은 팔레비를 몰아내고 다시 이슬람의 나라를 만든 호메이니의 나라, 그의 후계자 하메네이가 철통같은 권좌에 앉아 국민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나라,

많은 젊은이가 그런 나라에 살 수 없다고 이웃 나라를 떠돌고, 한 번 나오면 당분간 돌아갈 수도 없는 나라. 그러나 심성이 착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페르시아 제국으로 세계를 호령했던 나라, “열려라 참깨”하고 주문을 외우면, 돌문이 열려 보물이 쌓여있고, 하늘에는 신밧드의 돗자리가 날아다니며, 알라딘의 요술 램프에서 정령이 나타나 도와주는 나라.

히잡을 쓰고 호수처럼 큰 푸른 눈을 가진, 시원스러운 얼굴에 윤곽이 뚜렷한 미인들이 사는 나라, 더러는 독일에서부터 내려온 게르만계 민족이라고도 하는 나라.

(‘야즈드’에서 만난 소녀, 그녀의 웃음 속에 세상 시름이 다 녹는다. 촬영=윤재훈)
(‘야즈드’에서 만난 소녀, 그녀의 해맑은 웃음 속에 세상 시름 다 녹는다. 촬영=윤재훈 기자)

기억나는 사람들도 몇 있다. 그중에 옛 페르시아의 본영, 그 이름을 만들게 했다는 사막 도시 시라즈, 그곳을 가기 전에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고대도시 야즈드에서 만났던 소녀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다.

재래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소녀는 “손님은 복을 가지고 오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다음날 나에게 관광 안내를 해주겠다고 했다. 내친김에 자기 집으로 초대까지 했다.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 섬처럼 자리 잡은 도시, 집안에 열기를 차단하기 위해 황토로 높게 담을 쌓고 사는 마을. 소녀는 무작정 BTS를 좋아했으며, 제일 먼저 나를 끌고 가는 곳은 자신의 방이었다. 문 앞에서부터 방탄소년단의 사진이 붙어있더니, 온통 방안을 도배질했다.

(‘칸도반’에 함께 온 다정한 이집트인. 촬영=윤재훈)
(‘칸도반’에 함께 온 다정한 이집트인. 촬영=윤재훈 기자)

나는 오늘 이란의 마지막 도시, ‘타브리즈’에서 국경을 넘을 것이다. 오랜 여행을 하다 보니 경비가 부족하여 꼭, 가보고 싶었던 옛 동굴 도시 ‘칸도반’을 그냥 지나치려 하는데, 아프리카 북부 튀니지라고 했나, 아니면 이집트에서 왔다고 했나, 두어 번 같이 게스트하우스에서 소박한 식사를 했던 노인이, 자기가 차비를 댄다고 같이 가자고 한다. 그는 몇 번 가본 적이 있는지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며 능숙하게 찾아간다.

안 보고 가면 참, 후회할 뻔했다. 세계를 샅샅이 훑으며 지나왔지만, 참 낯설은 풍경이다. 부드러운 흙인 응회암을 파고 들어가 동굴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은 카파도키아나 중국 위구르 인들의 땅, 이제는 기후가 변해버렸는지 풀 한 포기 없는 황토 사막에서 보았던 스러진 왕국의 흔적들과 닮았다. 푸석푸석 흙먼지가 날리는 옛 주거형태들은 인간의 모질었던 삶의 현장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터키와 이란의 국경 마을에 ‘반’ 염(鹽) 호수. 촬영=윤재훈)
(터키와 이란의 국경 마을에 ‘반’ 염(鹽) 호수. 촬영=윤재훈 기자)

이제 터어키 국경을 넘는다. 첫 여정은 우리에게 낯설은 도시, 터키에서 가장 넓은 염호(鹽湖)가 있는 ‘반Van’으로 갈 것이다.

세계 최대 문화유산 보고(寶庫)의 땅. 우리나라 경주처럼 아니, 그 몇 배의 문화 유적의 나라. 30센티만 파면 유물이 나온다는, 그래서 개발을 할 수 없다는, 온 국토가 관광지인 나라.

아시아와 유럽의 두 개의 국토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나라, 동쪽 국토는 아시아에 있으면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면 이제 유럽인 나라. 지중해를 따라 옛 그리스 문명이 어마어마하게 남아있는 나라.

손차양을 하고 가느다라하게 눈을 뜨면 북쪽 국경을 접한 아르메니아가 보일 것 같은 곳. 그들의 성산인 ‘아라라트산’을 빼앗아, 지금도 국경 분쟁이 끊이지 않는, 군대가 강하다는 나라.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에 군대를 파견하여 젊은 피를 흘린 나라. 그래서 한국인을 만나면 아직도 형제라며 반가워 해주는 고마운 사람들. 2002년 월드컵 4강 때 만나 한국 관중의 반은 한국을, 또 반은 터키를 응원하고, 경기가 끝나자 서로 얼싸안았다는 참, 좋은 인연의 땅. 

(실크로드의 종착역, “그랜드바자르.” 촬영=윤재훈)
(실크로드의 종착역, '그랜드 바자르'. 촬영=윤재훈 기자)

천년 문화의 보고, 중국 장안(시안)에서 시작된 실크로드가
위구르 인들의 땅과 중앙아시아 대륙, 코카서스 3국,
페르시아 제국을 지나, 터키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
(세계에서 가장 큰 바자르 중 하나)에 다다랐다.

이 길은 수많은 대상의 피와 한숨, 죽음이 교차하며,
동서양의 문화소통 통로를 마련하였다.

칭다오에서 로컬버스로, 기차로, 도보로, 거대한 대륙 중국을 지그재그로 횡단하고, 그 길에서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며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장거리 여행은 심야버스에서 하룻밤 숙박료를 아끼며 왔다.

중국의 도시는 이삼십 군데를 세다가 잊어버렸다. 우리 국토에서 먼 중국 서쪽의 끝, 위구르 땅의 풍경은 참으로 낯설었다.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둔황 17 굴에서는 혜초 스님의 체취를 만났다. 인도에 법을 찾아 타클라마칸 사막을 맨몸으로 넘으면서 오직 “앞사람의 죽어간 뼈다귀를 보며, 행로를 잡았다는 구법승”.

(김미루 공식 홈페이지 캡처)
(김미루 사진작가 작품)

초승달 모양의 월야천 호수에서는 명사산(鳴砂山) 모래들의 울음소리가, 도올 선생님의 딸이며 행위예술가인 ‘미루’님의 사진 작품들을 생각나게 했다.

새해 아침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며, 노구를 이끌고 “농산어촌(農山漁村) 개벽 대행진”을 하고 있는 도올 선생의 이야기를 듣다 문득, 도봉산의 자운봉처럼 도올한 선생에 대한 시 한 편이 둥두럿이 떠올랐다. 조국의 미래를 애닳게 걱정하는 한 사상가의 근심 어린 조언이 더욱 가깝게 다가오는 아침이다.

도올 하다
도봉산의 툭, 솟은
자운봉처럼


천 년 된 소나무의 툭,
튀어나온 옹이처럼


학문의 세계가
한강의 심(心)처럼
도도히 흐른다


시대를 걱정하는 한숨 소리가
짙어 온다
- 새해 아침, ‘도올 하다’, 윤재훈

 

이 길은 어디에서 끝날까?
쭉, 가면 그리운 고국이 나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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