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㊱] 무신론자 프로이트와 유신론자 루이스의 지적논쟁 ‘라스트 세션’

천건희 기자
  • 입력 2022.02.07 17:03
  • 수정 2022.02.0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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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오경택 “이 작품이 해설가가 아니라 질문지가 되길 바란다”

사진=파크컴퍼니 제공
사진=파크컴퍼니 제공

[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뜨거운 지적 논쟁을 바로 앞에서 지켜보는 것은 신선한 자극이었다. 지난 1월 27일 대학로 TOM 1관에서 <라스트 세션>을 관람했다. <라스트 세션>은 20세기 최고의 정신분석학자이자 무신론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작가이자 기독교 변증을 펼친 유신론자인 C.S.루이스가 만나서 벌이는 논쟁을 상상해서 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무대에 올린 2인극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오경택 연출로 2020년에 이어 두 번째로 상연됐다. 오영수 배우와 신구 배우가 프로이트를, 이상윤 배우와 전박찬 배우가 루이스 역을 번갈아 하고 있다.

1월 27일 공연은 오영수 배우가 프로이트를, 이상윤 배우가 루이스로 출연했다. 배우 오영수는 작년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서 깐부 할아버지 오일남 분을 연기해 한국 배우 최초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의 쾌거를 이루었다. 오영수 배우는 1963년 극단 광장 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해 데뷔 60년을 맞았다고 한다. ‘오징어 게임’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79세 연극인으로 대학로에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사진=파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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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로 결정한 1939년 9월 3일 오전, 런던의 프로이트 서재. 중앙에는 책상이 있고, 책상 뒤에는 고대 유물과 신의 조각상이 진열되어 있다. 왼쪽에는 프로이트가 환자를 정신분석 할 때 사용했던 긴 소파가 놓여있다.

라디오에서 영국이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한다는 대국민 담화문이 흘러나온다. 이때 83세의 프로이트의 초대를 받은 41세의 젊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인 루이스가 혼란을 뚫고 약속 시간보다 늦게 방문한다. 프로이트는 33번의 구강암 수술로 입천장을 제거하고 입안에 기구를 착용하고 있어 말하는 것이 힘든 상황이다. 오영수 프로이트는 꿰뚫어 보는 듯한 눈매와 당당한 모습으로 선하고 매력적인 학자인 이상윤 루이스를 맞이했다. 런던으로 향하는 기차가 없는 탓에 늦었다고 사과하는 루이스에게 “내가 여든 셋만 아니었으면 아무 상관없다고 했을 거요!”라는 농담과 함께 “내일을 기약할 수 있어요? 나는 안 그래요!”라고 한다.

사진=파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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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자신의 책에서 프로이트를 비판한 탓에 불려왔다고 생각하지만, 프로이트는 본인을 지지했던 그가 왜 갑자기 유신론자로 돌변한 것인지에 대한 지적 호기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프로이트가 신이 존재한다면 이런 전쟁과 같은 끔찍한 일을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에, 루이스는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인 자유의지로 벌어진 결과일 뿐이라고 응대한다. 이렇게 둘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린다. 갑작스런 공습 사이렌이 울리자, 루이스는 대낮인데도 급히 불을 끄고 방독면을 쓰고 책상 아래 몸을 숨기고 공포에 떤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의 후유증이다.

사진=파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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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는 전쟁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대화 중간 중간에 라디오를 켜는데, 음악이 나올 때는 바로 꺼버린다. 음악이 이유모를 감동을 주는 것에 강한 저항을 느낀다는 프로이트에게 루이스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라며 비판한다.

프로이트는 입안에 착용하고 있던 기구가 자신의 입을 찌르자 괴로워하며 루이스에게 자신의 입 속에 손을 넣어 보철판을 빼달라고 부탁한다. 루이스는 입에서 피를 흘리며 고통 받는 프로이트를 도와 보철판을 빼준다. 프로이트는 이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 암이 더 진행된다면 안락사를 해달라고 주치의에게 미리 부탁해 두었다고 말한다. 그러자 루이스는 남은 사람들에게 많은 슬픔과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사진=파크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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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가 대화를 마치고 캐임브리지로 떠난 뒤, 혼자 남은 프로이트가 라디오를 켜는데 음악이 흘러나온다. 프로이트는 라디오를 끄지 않고 볼륨을 올리며 선율에 귀를 기울인다. 3주 뒤, 프로이트가 모르핀 과다 투여로 생을 마감했고 어떤 종교 의식도 없었다는 내용의 자막이 흐르면서 무대는 막을 내린다.

전쟁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가운데, 신의 존재 여부, 고통과 죽음, 안락사 등 다양한 주제로 치열하게 공방하는 논쟁을 통해 지적 유희를 느꼈다. 자연스럽게 기립 박수가 터졌다. 두 지성은 무신론과 유신론의 입장에서 한 치의 양보 없이 논쟁하지만, 인간의 나약함 앞에서 진심으로 서로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객석에 있는 나 역시, 프로이트의 의견에 공감되기도 하고 루이스의 주장에 동조되기도 했다. 두 배우가 끊임없이 주고받는 논리의 공격과 수비가 마치 운동 경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끝까지 지켰고, 그 어떤 비방도 없이 논쟁하는 품위를 보여주었다.

사진=파크컴퍼니 제공
사진=파크컴퍼니 제공

90분 동안 대사를 단 둘이서 물 흐르듯 소화한 오영수 배우와 이상윤 배우의 연기력은 놀라웠다. 특히 엄청난 양의 전문적 대사를 암기하고 무대 위 프로이트를 완벽하게 보여준 오영수 배우에게 존경하는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다.

촬영=천건희 기자
촬영=천건희 기자

프로그램 북 안에 많은 정보가 있어서 좋았다. 프로이드와 루이스의 연대기뿐만 아니라 1939년의 실제 배경, 루이스가 활동한 옥스퍼드 대학 문학클럽 ‘잉클링스(The Inklings)’ 등과 극 중 의학적 용어 해설까지 소개되어 있어 연극의 이해를 도왔다. 특히 극 중에 등장하는 책인 <천로역정>, <순례자의 귀향>, <모세와 일신교> 등은 극 중 대사와 같이 소개되어 있어 연극을 본 뒤 읽으니, 연극을 한 번 더 본 느낌이 들었다.

‘이 작품이 해설가가 아니라 질문지가 되길 바란다’는 오경택 연출가의 바람이 전달된 것일까? 집에 돌아오는 내내 신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루이스가 떠나기 전에 프로이트와 주고받은 말이 가슴에 남는다.

“시대를 초월한 최대의 미스터리를 하루아침에 풀어 보겠다고 생각하는 건 미친 짓이죠.”

“딱 하나 더 미친 짓이 있지. 그렇다고 생각을 접어버리는 거.”

역사적인 인물들을 무대 위에서 만나고, 품격 있는 논쟁을 경험할 수 있는 <라스트 세션>은 3월 6일까지 대학로 TOM 1관에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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