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채운의 스카이가든14] 기도

권채운 작가
  • 입력 2022.02.2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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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채운2001년 제4회 '창작과비평' 신인소설상 당선      소설집 [겨울 선인장] [바람이 분다]
권채운
2001년 제4회 '창작과비평' 신인소설상 당선
소설집 [겨울 선인장] [바람이 분다]

심 권사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를 한다. 기도 제목이 많지만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은 일본에 사는 딸네 가족의 평안이다. 평생을 해 온 가족구원의 기도가 뒤로 밀린 것은 코로나 펜데믹이 발생하고, 일본의 코로나 확진 상황이 심상치 않게 된 다음부터다. 심 권사는 속이 타서 더욱 기도에 매달렸다. 여기저기서 살기가 어렵다고, 코로나 때문에 굶어죽을 판이라고 아우성이다. 하물며 타국 생활인들 오죽할까. 심 권사는 자신보다도 일본에 살고 있는 딸네가 더 걱정이다. 이러한 세상을 살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몇몇 출중한 과학자들이 예고했는지는 몰라도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가늠할 수도 없었던 세상을 살고 있다.

“엄마, 어떡해. 현수가 코로나 확진 받았어. 열이 펄펄 끓고, 계속 토하는데 어쩌지?”

페이스 톡으로 전화를 한 딸은 열에 달떠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손자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올해 아홉 살 난 손자는 일주일 전에 한 반 아이가 확진을 받아서 코로나 검사를 했는데 그 때는 음성이 나왔다고 했었다.

“병원에서는 뭐래? 너는, 너는 괜찮아? 한 서방은?”

“해열제하고 구토 억제제만 주던 걸. 나도 검사하고 왔지 뭐. 아직까지는 괜찮아.”

“열이 그렇게 높은데 입원도 안 시켜줘?”

“재택 치료하라고 하네.”

“현수야, 현수야. 할머니 목소리 들려?”

“네, 할머니. 현수 아파요.”

“우리 현수가 많이 아프구나. 열이 나면 물을 많이 마셔.”

“물 마시면 토해요,”

“어떡하니. 현수야, 현수는 기도 잘 하지? 예수님께 코로나 낫게 해달라고 기도해. 그러면 예수님이 낫게 해줄 거야.”

“정말요?”

“그럼, 현수야 할머니랑 같이 기도하자. 사랑하는 예수님, 우리 현수가 열이 나고 아파요. 예수님께서 낫게 해주세요. 낫게 해주실 거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현수가 큰 소리로 아멘, 했다.

“엄마, 현수가 엊그제 교회학교 갔다 왔는데 거기서 코로나 걸린 것 같아. 교회학교 선생한테 얘기는 해 놓았는데 거기 애들도 다 걸렸으면 어떡하지? 선생이 얼마나 열심인지 일요일 아침이면 꼭 현수를 데리러 오고, 끝나면 데려다 주고 해서 현수가 좋아하긴 해.”

“어디서 누구한테 옮은 게 무슨 대수냐? 코로나가 조심한다고 안 걸리는 것도 아닌데. 어른들은 2차까지 백신을 맞았으니 만약에 걸리더라도 수월하겠지? 그나저나 현수는 어린데다가 백신도 안 맞았으니 어떡하나?”

“엄마 하나님한테 기도해야지 뭐.”

“당연한 소릴 하네. 하지만 치료는 해야 할 거 아니냐.”

“해열제가 조금 듣는 것 같긴 한데 토하는 게 걱정이야. 어제부터 물도 못 마셨어.”

“물수건으로 잘 닦아주고 뭐라도 조금씩 먹여 봐. 너도 마스크 꼭 쓰고. 너까지 걸리면 애는 어떻게 돌보냐. 내가 갈 수도 없고.”

마음만 앞섰지 손이 닿지 않는 거리였다. 타국에서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얼마나 애가 탈까. 심 권사는 애가 타서 집안을 서성거렸다. 차분히 소파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TV 소리도 귀에 거슬렸다. 차라리 늙은 할미가 걸리는 게 낫지, 어린 게 얼마나 아플까. 주여, 주여, 차라리 제가 코로나에 걸리게 해주세요. 어린애들한테는 절대로 옮아가지 않게 해주세요. 하필이면 교회에 갔다가 코로나에 걸릴 게 뭐람. 가뜩이나 교회를 멀리하던 딸의 마음이 더 멀어질 것만 같았다.

일본에서 사업하는 사위를 따라서 딸네가 도쿄에서 산 지 십 년이 넘었다. 서울에서 살 때에도 딸은 어미의 등쌀에 못 이겨 교회에 다니는 시늉만 했다. 심 권사는 늘 그게 걱정이었다. 몇 차례 도쿄에 다녀왔지만 거리에서 십자가를 본 기억이 없었다.

“얘, 여기는 교회가 없니?”

“왜? 있어.”

“그런데 왜 십자가가 안 보여? 서울에는 밤만 되면 붉은 십자가가 불꽃처럼 솟아 있는데 여긴 좀 이상하다.”

“이상하긴, 서울이 이상한 거지. 엄마가 교회 다닌다고 세상사람 모두가 다 예수 믿어야 되는 거야?”

“저 웬수, 어렸을 때는 엄마 따라서 교회 학교도 잘만 다니더니 일본 와서 다 버려놨어.”

“나는 교회에 안 다녀도 엄마 손자는 착실하게 교회학교 잘 다니고 있으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그래? 정말?”

“맨션의 파티 룸을 빌려서 예배드리는 교회가 있는데, 여름 성경학교를 영어로 한다기에 현수를 보냈더니 현수가 아주 좋아하네.”

“현수만 보내고 너는 왜 안 가?”

딸은 못 들은 체 했었다. 알뜰하기로 치면 전국 일등을 할 딸은 아마도 헌금 내는 게 아까워서 교회에 가기를 꺼리는지도 몰랐다. 대학생 선교회에서 활동할 만큼 착실히 신앙교육을 시켜놨는데, 결혼하고 도쿄에서 살게 되는 바람에 신앙의 끈을 놓쳐버린 것 같았다.

코로나가 시작되자 교회가 먼저 전염병의 진원지로 지목되어서 예배가 어려워졌을 때도 심 권사는 한 번도 주일예배를 빼먹지 않았다. 새벽기도, 수요예배도 빼놓지 않았다. 예배가 중단되면 모를까 예배가 열린다면 심 권사는 달려가서 맨 앞자리에 앉아서 설교에 온 마음을 기울였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하나님의 손을 놓지 않게 해달라고 평생을 기도하며 살아온 심 권사였다. 그 기도대로 심 권사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역경을 헤쳐 나왔다. 자식이라고는 딸 하나인데 곁에 두고 살았으면 좋았으련만 사위의 사업장이 도쿄에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나들이삼아 딸네 집을 방문하는 걸 큰 낙으로 살아온 심 권사였다. 코로나로 막혀버린 하늘 길은 언제 뚫린다는 기약이 없다. 비자 없이 드나들던 일본도 비자 없이는 입국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또한 이겨낼 것이다. 뉴스에도 어린애가 코로나로 희생됐다는 기사는 없었다. 전화를 해 볼까? 간호하느라고 힘든데 괜히 귀찮겠지? 심 권사는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성경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기도도 되지 않았다. 아이가 좀 나았으려나? 나아졌으면 전화라도 좀 하지, 어미 속 타는 걸 알면서 전화도 없나, 하다가도 아직 차도가 없으니까 전화를 못 하는 것이겠지. 심 권사는 혼자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늦은 아침을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그예 페이스 톡을 했다. 딸이 지친 모습으로 누워서 전화를 받았다.

“현수는?”

“이제 겨우 잠들었어. 밤새 열이 나고 토하느라고 잠을 못 잤어. 애 잘 때 나도 좀 자려구.”

“그래, 그래. 어서 자. 푹 자고 나면 조금 나아지겠지. 물이라도 마시고 자라.”

“세상에, 코로나가 무섭긴 무섭구나. 약도 없고, 특별한 치료법도 없고. 결국에는 스스로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니…….”

심 권사는 마스크를 쓰고 털모자를 쓰고 두꺼운 패딩코트로 완전무장하고 집을 나섰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교회 문이 잠겨 있었다. 코로나 방역 문제로 예배시간 외에는 문을 잠가 놓는 모양이었다. 심 권사는 교회 문을 붙들고 기도했다. 우리 손자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내려 주세요.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디 갈 데라고는 없었다. 식당도 카페도 두려웠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가 이렇게나 두려운 일이라니. 심 권사는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돌고 또 돌았다. 시간이 더디 흘렀다. 거리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드물었다. 아무라도 만나서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낯선 사람이야말로 멀리 해야만 했다. 심 권사는 마트에 들러서 콩나물 한 봉지와 두부 한 팩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휴대폰에 카톡이 몇 개 와 있었다.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갔던 모양이었다.

“엄마, 왜 전화 안 받아? 이제 현수 잘 놀아. 열도 내리고 죽도 조금 먹었어. 걱정하지 마.”

현수의 동영상이었다. 내의 바람의 현수가 엉덩이를 흔들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세상에, 아이는 아일세. 열에 달떠서 축 쳐져 있더니 열이 내렸다고 금세 춤을 추다니. 심 권사는 페이스 톡을 눌렀다. 손자가 개구쟁이 표정으로 얼굴을 디밀었다.

“괜찮아? 진짜 괜찮은 거야? 엄마는? 엄마도 괜찮은 거지?”

손자가 어디론가 뛰어가고 딸의 얼굴이 나왔다.

“나는 음성 나왔어. 아직까지 아무런 증상도 없고. 현수도 잘 노는 걸 보니 이겨낸 것 같아.”

“다른 애들은? 다른 애들도 잘 이겨냈대?”

“그건 잘 모르겠고, 현수는 이제 과자도 먹네.”

“애 썼다. 애 썼어.”

이제 한 시름 놓았다. 심 권사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목이 뜨끔뜨끔한 게 감기가 오는 것 같았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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