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85] 터키, 2만 명이 살 수 있는 땅 속 도시 '데린쿠유' 7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3.04 13:10
  • 수정 2022.03.08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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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명이 살 수 있는 땅 속 도시 '데린쿠유'

평지에서 파내려간 '지하도시',
바위산을 옆에서 뚫어 만든 괴레메의 '동굴주거지',
깎아지른 절벽 중간에 지은 '동굴교회'.

(데린쿠유 내부. 촬영=윤재훈)
(땅 속 도시 데린쿠유 내부.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의 하나가 괴뢰메에서 남쪽으로 33킬로미터 아래에 떨어진 고도 1300m에 있는, <데린쿠유 지하 도시 Derinkuyu Yeraltı Şehri, Derinkuyu Undetground City>이다. 198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며, 입장료는 15리라이다.

데린쿠유는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큰 규모의 지하도시이자, 절대 빠지지 않는 관광코스이다. 특히 그린 투어 신청시 카이막르(Kaymaklı)가 아니라면 여기를 들르게 되는데, 데린쿠유는 터키어로 ‘깊은 우물’이라는 뜻이다.

 

(촬영=윤재훈)
(땅 속 도시 데린쿠유. 촬영=윤재훈 기자)

데린쿠유는 아나톨리아 반도 중앙의 카파도키아 평원 아래에 부드러운 화산암을 깎아 만든 200개가 넘는 지하 도시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최초의 터널들은 4천 년 전에 파였다고 추정하는 설도 있으나, 터키 문화부의 발표에 따르면 기원전 8~7세기 프리기아 인들이 착공했다고 하며, 본래 이 지하도시 위에는 지상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전성기는 동로마 제국 시대로 동로마인들이 아랍의 심한 간섭과 박해를 받게 되자, 9세기경에 일부가 이곳으로 도망쳐와 굴을 파고 숨어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그들에 의해 크고 아름답게 확장되었다.

동로마 제국이 성상 파괴 운동을 일으키자 이 종파 운동을 반대한 신자들이 동굴이나 바위에 구멍을 뚫고 지하도시를 건설해,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살았다고 한다. 그 후 은둔 기간이 길어지면서 굴은 더욱 깊이 내려가,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개미집 닮은 인간의 집. 촬영=윤재훈)
(개미집 닮은 인간의 집 데린쿠유. 촬영=윤재훈 기자))

지하도시 위에는 지상 마을이 있었고, 데린쿠유는 2만 명이 살 수 있는 규모이다. 방과 방은 통로로 이어졌는데, 총 11개 층이 있고 지하 85m 깊이까지 이어진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땅속으로 28층에 가까운 아파트가 서 있는 셈이다.

여기에 더욱 놀라운 것은 데린쿠유의 시설이다. 곡물창고, 포도주와 기름 착유기, 식당, 학교와 예배당, 심지어 농장과 가축농장은 물론 감옥까지 있다. 그 시대에 지하에 이런 규모의 도시를 건설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지하도시 입구에는 작은 지상 마을도 존재했는데 겨우 수백 명이 거주할 수 있는 규모였다.

차라리 개미처럼 살기로
작정한 것일까
햇빛과 바람을 뒤로 하고
적군을 피해
땅속, 그 어둠 속으로
내려간 사람들

눈은 퇴화하고,
등과 손가락이 굽기
시작한 사람들
더러는 자신의 신을 믿기 위해
두더지처럼 땅을 파고
내려간 사람들

어떻게 살았을까
그 지독한 어둠 속에서
앞사람의 모습마저 보이지 않는,
서로의 얼굴을 더듬으며
그 깊은 어둠 속에서,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잠깐, 머리 위를 지나가는
햇빛을 우러르며,
하루를 가늠했을까
자신의 처지를 가슴 아파했을까

가장 추악했을, 

이 땅에 횡횡하는 이데올로기
개미처럼 내려가며
그 생각을 했을까

더러는 방사능으로
스스로의 터전을 덮고 있는,
오늘도 미세먼지 아래
코로나 마스크로 덮고 
종종걸음을 치는,
초록 행성의 미래가  캄캄하다
- 데린쿠유

(적이 쳐들어오면 이 문을 닫는다. 촬영=윤재훈)
(적이 쳐들어오면 이 문을 닫는다 '데린쿠유'. 촬영=윤재훈 기자))

또한, 적들이 침입했을 때는 지하도시 입구를 봉인했고, 설사 적이 입구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꼬불꼬불하고도 좁은 통로에서 각개격파하기 쉽도록 구조를 세워 놓아, 방어력 또한 탁월했다고 한다. 또한, 키가 큰 사람은 구부려야 하고, 한 명 정도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굴을 가야 하기 때문에, 적잖은 체력을 요한다.

중간 중간에는 공터가 있는데, 적이 쫓아오면 미닫이문처럼 돌덩이를 굴려서 막아버리는데, 밖에서는 열지 못한다. 또한, 적이 공터 안에 들면 뒷문도 막아 안에서 굶어 죽게 만들었다. 투어를 이용해야지 내부가 미로 같아 혼자서 돌아보기는 어렵다 .

거대한 바위 문을 이용해 도시를 성처럼 봉쇄할 수 있는 장점 때문에, 티무르의 공격에도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적을 막기 위한 곳이라 곳곳에 방비를 비책을 숨어있다. 다이너마이트로 입구부터 시작해 싹 날려버리거나 땅굴을 파지 않는 이상 재래식 방법으로는 침입이 불가능한 구조이다. 숨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 구조도 복잡해서 한눈팔면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어지간한 곳은 다 막아뒀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혹시라도 그 안에서 옛 원혼들이라도 만날지 모른다.

여기에 굴이 얼마나 넓은 화산지대가 펼쳐져 있는지, 관광코스가 끝이 아니라 다른 마을과 연결되어있는데, 가장 가까운 ‘카이마클르 지하도시 (Kaymaklı Yeraltı Şehri)’와도 길이 8km 터널로 연결되었다. 이곳도 전체적으로 데린쿠유의 축소판이며 입장료는 8리라이다. 참고로 여행사를 통해 그린 투어를 신청했을 때 예산이 좀 저렴하며 여기를 데리고 가기도 한다.

(데린쿠유 약간 넓은 부분. 촬영=윤재훈)
(데린쿠유 굴 속, 약간 넓은 부분. 촬영=윤재훈 기자))

이후 데린쿠유는 결국 오스만에게 들켜 완전한 지배체제에 들어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었다. 15세기 초 티무르가 공격할 때는 정교회 원주민들의 피신처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이후 거의 잊혀진 지역이 되었다. 1923년에는 그리스와 터키의 주민 교환으로 버려졌다. 그러나 1963년 재발견되었는데, 이 근방에 사는 농부가 자꾸만 닭들이 사라지는 것을 궁금하게 여겨 추적하다, 우연히 땅이 꺼지는 것을 보고 발견하게 되었다. 심지어 20세기까지도 카파도키아의 그리스인들이 오스만 제국의 탄압을 피해 피난하기도 했다.

인간이 마치 개미굴에서 영감을 얻은 것처럼 지하 곳곳으로 파 내려간 대규모 지하도시, 마치 미래의 도시나 인간이 스스로 파괴한 지구의 땅 위에 살지 못하고, 방사능 오염으로 땅 밑까지 숨어 들어간 미래의 불행한 모습까지 겹쳐 두려움마저 몰려온다.

(저 조그만 공기구멍이 2만 명의 생명줄이다. 촬영=윤재훈)
(데린쿠유 저 조그만 공기구멍이 2만 명의 생명줄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특히나 의문스러운 점은 빛도 공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지하동굴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살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인데, 학자들에 따르면, 중앙에 있는 수직 환기구와 주위의 보조 환기구들을 통해서 공기가 들어오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햇볕은 삶의 조건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도대체 어두워서 어찌 살았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암흑 속에서, 오직 환기 구멍 아래에서만 아주 잠깐씩 보였을 햇빛, 불을 피워서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먹여 살렸을까? 환기구로 나간다 해도, 그 어둠과 연기 속에서, 마치 두더지나 개미처럼, 적이 물러가면 잠깐씩 굴속에서 나와 머리를 높이 쳐들고 사방을 경계하는 한 마리 짐승처럼.

동굴 안에 웬만한 주거 기능이 갖추어져 있긴 하지만 침략자들이 물러간 후에는, 지상으로 나와 생활했을 것이다.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 양을 키우면서 지하도시와 생활을 병행했을 것이다. 저장 공간에서 발견된 밀이나 포도주, 그리고 교역을 통해 얻은 직물 그릇, 제의 도구는, 그들의 삶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둡고 좁은 지하 생활에서 햇볕을 쬐지 못해 비타민 D가 부족해 꼽추나 기형, 정신병자가 되었으며, 햇빛 때문에 실명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좀 넓은 공간에는 중앙에 기둥이 설치되어 있는데, 어떤 기둥에는 구멍이 뚫어져 있는데, 이것은 밧줄이나 사슬로 정신질환자를 묶어두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교실, 양쪽에 앉아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촬영=윤재훈)
(데린쿠유 교실, 양쪽에 앉아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촬영=윤재훈 기자))

호모사피엔스,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은 어디를 가나 교육이 우선이었는 모양이다. 이 굴속에도 학교가 있었다고 하는데, 어두워서 어떻게 공부를 했을까? 아득하기만 하다.

데린쿠유에서는 각종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흰 대리석으로 만든 독수리상이 발견되었다. 이는 BC. 18세기 이 지역을 지배하던 히타이트의 유물이다. BC. 401년 크세노폰이 쓴 아나바시스(Ana basis)에는 프리기아인이 만들었다고 쓰여 있다. 그들은 히타이트와 비슷한 시기 아나톨리아에 거주하던 사람들이다. 누가 만들었든 오랜 세월 동안 조금씩 확장되었기 때문에 어떤 한 시기의 유물로 보는 것은 마땅치 않다.

카파도키아 일대에 흩어져 있는 동굴 형태는 크게 세 가지다.

“데린쿠유처럼 평지에서 파내려간 지하도시,
바위산을 옆에서 뚫어 만든 괴레메의 동굴주거지,
깎아지른 절벽 중간에 지은 동굴교회 등.”

그 동굴들 속에서 선사시대의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인간이 처음 여기에 살기 시작한 것은 수렵 채취기인 4000년 이전으로 보인다.
이곳에는 현재에도 100여 개의 교회가 남아있다. 이 석굴 교회들은 지상에 있는 교회와 다른 바가 없으며, 십자 형태의 구조를 하거나 둥근 천장을 가진 곳이 많다. 교회의 프레스코화는 보존 상태가 매우 좋으며, 내부의 장식도 아름답다.

(괴레메 야외박물관. 촬영=윤재훈)
(괴레메 야외박물관. 촬영=윤재훈 기자))

그래서인지 무더운 카파도키아에서도 괴레메에는 동굴을 개조해 만든 ‘동굴 객실(Mağara Odası, Cave Room)’들이 많은 편이다. 외부 공기를 차단하는 동굴 특성상 약간 습하고 촉감이 까글까글하며 싸늘한 기운이 들지만, 카파도키아 외에는 없는 시설이므로 묵어볼 가치는 있다.

다만 동굴의 특성상 4인 이상 머물 가족실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된 독립 시설을 즐길 수 있다. 동굴 분위기만 내는 일반적인 객실은 아치룸(Arch)이라고 하며, 경치에 비중을 더 두는 편이다. 가격은 동굴 객실 >아치 객실 >일반 객실 순이니 참고하여 묵으면 된다.

겨울에 카파도키아에 오며 대부분 호텔이 쉬기 때문에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일단 찾아 묵어보면, 겨울에는 외풍이 안 들어와 굉장히 따뜻하고, 여름에도 직사로 내리쬐는 햇볕을 막아주어 쾌적하다.

어쌔신 크리드: 레벨 레이션에서 데린쿠유 지역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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