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주의 신중년 요즘세상65] 위기의 여자

오은주 기자
  • 입력 2022.03.2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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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현재,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이화여대 심리학과 졸업
1989년 현대문학에 소설 '늪'
'저녁 산행' 추천완료 등단
소설집 [달의 이빨] [하루 이야기]
[잠든 정원으로부터] 출간
2011년 한국소설작가상 수상
2019년 조연현문학상 수상
한국문화콘텐츠 21 운영위원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인옥씨는 요즘들어 자꾸 한숨이 나고 절로 눈물이 흘렀다. 코로나 시절이 오래되자 누구나 겪는 코로나 블루인 것 같아서 처음 며칠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멍하게 소파에 앉아 있다가 가게 되는 곳이 작은 아들의 방이었다. 아들만 둘을 둔 인옥씨는 한 달 전에 작은 아들을 결혼시켰다. 요즘은 부모가 주체어인 ‘결혼을 시켰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자식이 주체인 ‘결혼을 했다’라고 말한다지만, 부모의 마지막 역할이 자식의 결혼이라고 생각해왔던 인옥씨 입장에선 마침내 두 아들을 다 ‘결혼시키고’ 임무를 완수했다는 확인도장을 받은 것 같았다.

작은 아들의 결혼식장에서 느꼈던 날개 달린 비상의 기분이 요즘들어 추락으로 꺼져갔다. 작은 아들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고 신혼집에서 집들이를 치르는데 그 집 거실에서 순간에 그쳤지만 여기가 어디지? 작은 아들이 왜 낯선 이 집에 있지? 하는 기분이 들어 속으로 깜짝 놀랐다. 며칠간은 아들이 퇴근했던 시간에 맞춰 저녁밥을 하는 작은 소동도 벌여서 치매가 아닌가하는 서글픈 걱정도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은 자식이 결혼으로 독립한 게 그렇게 서운하고 실감을 못하냐고 지청구를 하면서 이젠 부모의 마지막 과업을 다 했으니 홀가분하게 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마지막 과업이라는 명제가 더 문제였다. 그렇다면 이젠 인옥씨의 삶에서 의미 있는 과제가 남아 있지 않다는 의미가 아닌가.

“나 이제 아무런 쓸모없는 사람이 된 건가요?”

“쓸모없기는… 할머니 역할이 기다리고 있잖아.”

하긴 그랬다. 3년 전에 결혼한 큰아들네가 올가을에 출산 예정이니 할머니 역할이 예비되어 있기는 했다. 그런데 요즘 육아는 친정어머니들이 주로 돕고 시어머니는 두 번째 자리라 가끔 만나보는 수준에 그칠 것 같았다. 친구들 말대로 인옥씨 세대는 며느리 노릇을 잘 해야 하는 가부장제적 시대에 며느리가 되고, 요즘은 좋은 시어머니가 돼야 하는 세태가 되서, 그야말로 아래윗 세대에 모두 봉사해야 하는 팔자였다.

남편도 상실감은 마찬가지일텐데 평생 전업주부로 두 아들을 잘 키워서 제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데만 열중했던 인옥씨와는 좀 다르긴 했다.

“아들 둘이 결혼해서 살고 있는 노부부가 앞으로 잘 살아가는 방법은 딱 한 가지야.”

인옥씨는 뭐 신통한 방법이라도 있나 싶었다.

“애들이 어떻게 살든 관심 끄고 그저 우리 둘이서만 잘 살면 돼.”

그러면서 남편은 제주도행 항공권이 저장돼 있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보여주었다.

“자, 이제 그 홀가분함을 만끽하러 제 1탄으로 제주도로 떠납시다. 제주 공항에 렌터카도 대기시켜 놨으니 당신은 이 ‘백발의 연인’만 믿고 따라오면 돼.”

인옥씨는 몇 년 전에 제주도에서 봤던 유채꽃과 수국이 떠오르며 남편의 선견지명과 배려에 가슴이 따스해졌다. 역시 노후에 제일 든든한 우군은 남편뿐인가! 그런데 남편은 단 한 가지 조건을 꼭 지켜야 한다고 다짐을 받았다.

“제주도에서 자식 얘기랑 돈 얘기는 일체 하지 맙시다. 사려니 숲길에선 그저 걸으면서 숲을 가슴 안에 들이고 오름에서는 두 발로 오르기만 합시다. 전복이 싱싱해서 맛이 있고 갈치조림이 부드러워서 너무 맛이 좋다는 그런 이야기만 나누기로 합시다.”

인옥씨는 남편의 깊은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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