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훈의 지구를 걷다 89] 지중해 여행3, 지중해를 따라 마르세이유를 걷다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3.31 11:03
  • 수정 2022.05.2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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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를 따라 마르세이유를 거다

길 위에 서면
누구나 들꽃이 된다
바람에 서걱이는
억새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끝없이 펼쳐진 길을 보면
가슴이 뛴다
저 산모롱이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 길 위에서, 윤재훈

(마르세이유 포장마차. 촬영=윤재훈)
(마르세이유 포장마차.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유럽 대륙으로 들어서면서 밥을 찾기가 힘들다.

집에서 자주 해주던 돼지고기를 듬뿍 썰어 넣은 얼큰한 김치찌개나
바지락이 들어가 시원하고 구수한 된장찌개가 애타게 생각나는 날이다.

거기에 막걸리 한 잔이 곁들인다면 최고의 식탁이 아니겠는가.
아니, 그런 것은 사치이고 김치 구경 한지가 벌써 1년에 지났다.
해외에 나오면 그야말로 ‘금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 위에 붉은 김치만 올려놓아도 꿀맛이겠다.

창호지에 배어 나오는 먹물 같은 은은한 한국인들의 예술혼은,
그 붉은 고춧가루에 버무린 김치에서 나오는 힘이 아닐까.
좋은 사람과 어울려, 따뜻한 밥 한 끼가 더욱 굴풋한 날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주식이 빵으로 바뀐 지가 오래되었다. 싸구려 하몽과 그나마 저렴한 야채와 과일, 막걸리 가격이나 될 것 같은 와인를 곁들어 늦은 아점을 먹는다.

(하몽, 빵, 각종 야채, 유럽은 도마토도 야채다, 요거트, 맥주, 한국 김이 아직도 남았있다, 촬영=윤재훈)
(하몽, 빵, 각종 야채, 유럽은 토마토도 야채다, 요거트, 맥주, 한국 김이 아직도 남아있다, 촬영=윤재훈 기자)

그러나 올해는 ‘빵’을 먹기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전쟁광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탱크를 앞세운 채 무력 침공하여 ‘밀가루 대란’이 올 것 같다. 우크라이나 땅은 수 세기 동안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려왔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옥한 땅인 흑토 지대를 가진 덕분에 밀을 대량 생산하여 수출까지 해왔기 때문이다. 국제 곡물 위원회는 우크라이나를 2021~22년 세계 4위 밀 수출국으로 예상했다.

또한 이 땅은 밀 뿐만이 아니라 옥수수, 보리, 호밀 등 주요 곡물의 세계 최대 수출국이기도 하다. 특히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저개발국에도 많은 양을 공급하고 있어, 세계 식량안보에 중요한 국가이다. 그런데 푸틴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는 올해 밀 파종 시기까지 놓쳐 버렸다. 가격상승과 밀 부족의 대란은 불 보듯 뻔하다. '푸틴은 빵을 절대 먹지 말아야 한다.'

(문명 박물관에서 바라본 마이세이유 항 풍경. 촬영=윤재훈)
(문명박물관에서 바라본 마르세이유항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장기 배낭여행자는 ‘경비와의 싸움’이다. 고생을 감내하고 떠나온 여행이니 어쩔 수는 없다. 부실한 먹거리와 잠자리를 감내하면서도 여행을 계속하는 이유다.

길 위에 서면
누구나 들꽃이 된다
바람에 서걱이는
억새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끝없이 펼쳐진 길을 보면
가슴이 뛴다
저 산모롱이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 길 위에서, 윤재훈

 

(지중해, 허브 비누 파는 사람. 촬영=윤재훈)
(지중해, 허브 비누 파는 사람. 촬영=윤재훈 기자)

게스트하우스의 리셉션 보는 아가씨가 너무 시끄러워 귀가 아플 지경이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을까? 숨 막힐까 봐, 걱정이 될 정도다. 창밖으로는 바람이 심하게 분다. 지금 지중해도 파도가 심란하겠다. 다행히 오후부터는 날씨가 화창해진다. 바닷가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항구에서는 이곳 특산물이라고 직접 손으로 만든 것 같은 허브 비누를 파는데, 종류별로 다양하다. 세숫비누는 1개 3유로씩이고, 4개를 사면 10유로에 해준다고 한다. 빨랫비누도 있고, 머리 감는 비누로 따로 나누어 진다. 이를 닦아도 된다고 하는데 깜짝, 놀라서 다시 정색을 하고 물어도 그렇다고 한다. 쉬, 믿기지가 않는다. 이 비누는 1개 6유로이고, 4개에 20유로를 한다.

(지중해 문명 박물관. 촬영=윤재훈)
(지중해 문명 박물관. 촬영=윤재훈 기자)

사람들이 붐비는 항구를 따라 걷는다. 지도에는 분명히 건너가는 다리가 나와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 포기하고 걸어가는데, 비유 포트(Vieux Port) 지하철역이 나온다. 커다란 천장 덮개가 거울처럼 투명하게 아래 지나가는 사람들을 다 비추는데, <파필리쿤>이라고 부른다. 바다에는 한낮의 해가 빠져 눈이 부시다.

요트 항구의 끝쪽, 바다에 접해있는 유럽 지중해 문명 박물관(Mucem-Musée des civilisations de l'Europe et de la Méditerranée)으로 간다. 성벽으로 올라가는 데는 무료다. 지중해와 도심의 풍경이 잘 보이는 전망대 같다.

성벽을 거닐다 우연히 한국인 아가씨를 만났는데, 이곳에서 3년째 무용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와인의 나라, 서구무용의 원류를, 이 정열의 땅에서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그녀의 대성을 빈다.

(‘르 파니에 지구’ 풍경. 촬영=윤재훈)
(‘르 파니에 지구’ 풍경. 촬영=윤재훈 기자)

성은 외곽으로 바닷가를 따라 20여 분 돌아가니 거의 한 바퀴 돈 듯하다. 건너편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있는데, <르 파니에 지구>라고 한다. 한적한 남프랑스의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골목인 것 같다. 오후 시간인데 사람의 그림자는 거의 보이지 않아 스산함마저 든다. 그렇다고 항구 건너편에 비해 아주 오래된 거리도 아닌 듯하다. 도심 한가운데는 조그만 광장이 있고, 소슬한 저녁 바람에 사람들 몇 서성거리고, 낙엽들이 바람에 쓸려간다. 사람의 냄새가 나는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추운 영혼. 촬영=윤재훈)
(마르세이유 추운 영혼. 촬영=윤재훈 기자)

다들 일을 마치고 돌아갔을 어두컴컴한 사무실 앞, 초저녁부터 이불을 펴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부랑아, 고개를 숙이고 골똘히 앉아 무슨 생각을 할까? 혹 고국에 있는 부모 형제라도 그리운 것일까?

밤새 맨발로 매트로 주변을
개처럼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는,
5, 6세쯤 되어 보이는 아이
유리 조각이라도 밟으면 어떻게 하려고.

인도쯤에서나 왔을까
역 앞에는 할머니, 숙업宿業이 깊어 보이는
목발을 짚은 아빠, 엄마,
또래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 하나
7~8명이나 되는 가족이 떼거리로 몰려다닌다.
아이도 벌써 생의 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이국에 와서 돈이 떨어진 걸까
아니면 단체로 구걸을 하기로
작정이라도 하고 온 걸까?
그래도, 매트로 표는 사서
블랙홀처럼 한없이 깊은 나락 속으로
사라지는데,

아이는 오늘 밤 돌아가
무슨 꿈을 꾸려나
- 구걸의 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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