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건희의 산책길㊴] 시대를 밝힌 빛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 계획’ 그리고 여성의 한글기록 내방가사 ‘이내말삼 드러보소’

천건희 기자
  • 입력 2022.04.0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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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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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천건희 기자] 박물관은 한 국가나 사회의 문화적인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이자 국민의 복지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지난 3월 20일, 국립한글박물관에서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 계획>과 내방가사 <이내말삼 드러보소>를 관람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 옆에 있는데, 관람 예약이 필요 없고 무료이다. 한국 전통 건축의 추녀처럼 지붕이 길게 뻗은 건물로 멋스럽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디자이너 양태오가 새롭게 디자인한 한글 영상이 담긴 작품들이 맞이해 준다.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 계획>은 국립한글박물관이 개관 8년을 맞아 새롭게 만든 상설 전시이다. 훈민정음의 머리말을 바탕으로 1,104점의 한글문화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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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전시장에 들어서니 어두운 조명에 훈민정음 언해본(우리말) 머리말 첫 문장이 바닥에 나뉘어져 새겨져 있다. 이어진 전시는 놀랍다. 깜깜한 공간에 훈민정음 해례본(한자본) 33장(66면) 활자판 이미지를 담은 아크릴판이 줄지어 서 있다. 빛나는 길처럼 보이는 훈민정음 조형물은 우리 글자가 없었던 어둠의 시대를 밝혀준 한글을 빛으로 상징했다. 다음 전시실은 미디어 아트로 벽과 바닥 4면을 모두 활용해 세종대왕이 새로운 글자로 꿈꾼 세상을 표현하였는데, 영상미가 뛰어났다.

전시는 훈민정음 해례본 내용을 훈민정음 머리글 문장에 따라 1부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2부 ‘내 이를 딱하게 여겨’, 3부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4부 ‘쉽게 익혀’, 5부 ‘사람마다’, 6부 ‘날로 씀에’, 7부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로 나누어 보여준다.

촬영=천건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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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게 들어왔던 말인데,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인 글자이며, 한글 창제의 목적 또한 얼마나 숭고한지 되새길 수 있었다. 한글은 전 세계 문자 가운데 창제에 관한 모든 기록이 책으로 남아있는 유일한 문자이고, 그래서 『훈민정음』이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라는 사실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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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관람은 터치스크린으로 자세히 관람할 수 있고, 증강현실을 이용해 옛날 책을 크게 확대한 모형 책으로 관람객들이 넘기면서 내용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또한 한글의 창제 원리와 세종의 일대기를 볼 수 있는 인터렉티브북(Interactive Book)도 있어 전시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전시 기법이 많이 바뀌어 박물관이 역동적으로 변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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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기획전시실에서의 내방가사 <이내말삼 드러보소> 전시는 제목이 가슴에 와 닿는다. 한글이 대중화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지식층의 사대부나 선비가 아니라 조선시대 교육에서 소외되었던 여성이다. 조선 후기부터 현재까지 창작되고 향유되는 내방가사 90여 편과 여성 생활사 유물, 여성 잡지 등 260여점의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는 시대별, 상황별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에 대한 내방가사를 소개하고 있다.

가사는 4음보의 운율로 시조와 다르게 무한히 길어질 수 있다. 여성들이 창작한 가사를 내방가사(또는 규방가사)라고 부른다. 내방가사에는 여성들이 살아온 삶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내방가사에 담긴 진솔한 내용은 동시대를 사는 여성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켜, 이를 베껴 쓰거나 고쳐 쓰는 방식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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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전시실은 한옥 안채처럼 창호지문을 연상시키는 한지로 꾸며 신선했다. 전시실 한가운데에 두 자손의 앞날을 축복하는 연안 이씨의 <쌍벽가>가 전시되고 있다. <쌍벽가>는 무려 163행 7.2m 길이의 긴 두루마리에 쓰여 있었는데, 연안 이씨의 정갈한 글씨가 인상적이었다.

내방가사에는 여성들이 삶과 애환 등 자기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사용된 글쓰기로 다양한 감정의 목소리가 깃들어 있다.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노래, 먼저 간 딸을 생각하며 쓴 「잊지 못할 내 딸이라」, 일제 강점기의 「해방가」 등으로 다양했다. 내방가사의 내용이 자신의 일상사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자식들에게 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부터 신문물과 남성에 대한 신랄한 비판, 애국에 이르기까지 그 주제가 넓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여성들의 힘이 깃들어 있는 <이내말삼 드러보소> 내방가사 전시는 4월 10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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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한글박물관에는 체험공간인 ‘한글 놀이터’가 있어 어린이들이 즐겁게 놀면서 한글의 원리를 배우고, 생각을 표현해 볼 수 있다. 또한 ‘화요 한글문화강좌’, ‘문화가 있는 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고,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 계획>과 <이내말삼 드러보소> 전시는 모두 온라인 관람이 가능하다.

한류의 바탕틀(플랫폼)이 되고 있는 한글에 대한 감동을 품에 담고 용산공원을 산책하며 봄의 정취를 맛보는 것은 또 하나의 덤이다. 2018년 공개되기 전까지 무려 114년간 일반인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금단의 땅이었던 용산공원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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