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투어] ‘그려진 젊음’, 그림 한 점으로 되찾은 ‘자유’...달리에서 마그리트까지 : 초현실주의 거장들

고석배 기자
  • 입력 2022.04.12 17:44
  • 수정 2022.04.1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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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작뉴스 고석배기자]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홍수환의 4전 5기를 한번쯤 들어본 세대라면 허영만의 권투만화 ‘카멜레온의 시’에 나오는 주인공 이강토의 카운터펀치를 기억할 것이다. 이현세의 ‘외인구단’과 함께 영화로까지 만들어졌지만 정작 흥행한 것은 로트레아몽의 시집 ‘말도르의 노래’였다.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남진우 시인이 ‘로트레아몽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킬 때도 정작 ‘말도르의 노래’는 우리나라에 번역 되지 않았었다. 

문학동네
( 말도르의노래, 저자:로트레아몽. 사진=문학동네 제공)

익숙한 낯설음, 초현실주의

로트레아몽은 ‘초현실주의’의 원천이자 상징이다. 그는 보불전쟁 와중에 파리에서 24살에 요절한 무명시인이었다. 그가 죽고 70년 후 스페인의 천재화가 달리는 우연히 그의 시집 ‘말도르의 노래’를 읽다가 ‘재봉틀과 해부용 탁자 위의 우산이 우연히 마주치는 것처럼 아름다워!’라는 싯귀에 확 꽂힌다. 말도 안 되는 이런 비문맥의 구절에서 달리는 화산처럼 상상력의 아름다움을 폭발시킨다.

(우산이 있는 재봉틀, 1941 by 살바도르 달리. 촬영=고석배기자)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의 배경에는 전쟁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중립국 스위스 취리히에 유럽의 망명 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들은 카바레 볼테르에서 와인을 마시며 지금까지의 모든 예술형식과 가치를 부정하며 ‘다다이즘’을 선포하였다. 그들은 합리적이지 않은 것, 도덕적이지 않은 것, 아름답지 않은 것을 찬양하였다. 예술가들이 현실에서 벗어나 그러한 시각을 가지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현실이 지나치게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현실을 ‘환상’의 상태로 도피 할 수 만은 없었다. 오히려 불행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얼리티가 필요함을 자각했다. 초현실주의는 이렇게 탄생했다. ‘무의식’이라는 같은 뿌리를 갖고 있지만 다다이즘이 ‘무의 상태로 되돌림’을 추구하였다면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을 통해 이성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새로운(초/sur) 리얼리즘(realism)으로 현실을 극복하려 했다. 다다이즘이 인간의 이성과 제도가 저지른 현실에 대한 무조건적 ‘반항’이었다면 초현실주의는 그 끔찍한 현실에 대한 ‘대안’이었다.

(금지된 재현,1937 by 르네 마그리트. 촬영=고석배기자)
(금지된 재현,1937 by 르네 마그리트. 촬영=고석배 기자)

이 시대에 초현실주의를 마주해야 하는 이유

우리는 초현실주의 하면 흔히 ‘꿈’이나 ‘환상’ 같은 키워드와 함께 어렵고 난해함을 떠올린다. 하지만 초현실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민중들이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독백에서 시작되었다. 초현실주의의 상징 로트레아몽이 ‘말도르의 노래’를 부르던 시절도 전쟁이었고 21세기 코로나팬데믹시대에도 총성 없는 전쟁을 치루고 있다. 아니 우크라이나와 미얀마에서는 피비린내나는 현실의 총성이 울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 초현실의 세계에 살고 있다. 지하철 안 풍경을 그려보라! 모두들 입을 지우고 눈만 껌벅거린다. 모니터 앞에서는 친구와 건배를 하며 술을 마신다. 인류가 상상만 하던 이런 미증유의 현상은 현실이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꿈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꿈이 되었다. 이성과 과학으로 우주에 도전하던 만물의 영장은 얼마나 나약한가? 혼란스럽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초현실주의가 탄생했듯 판데믹의 혼란 속에서 다시 초현실주의를 찾는다. 팬데믹 이후 초현실주의 미술의 의미를 새롭게 읽어보려는 비슷한 시도들이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 겨울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3층에서 ‘달리에서 마그리트까지 : 초현실주의 거장들’전이 열리고 있다. 코로나에 지친 관객들이 입에서 입으로 조용한 소문을 내면서 관람 기간을 4월 24일까지 연장했다. 살바도르 달리를 비롯하여 르네 마그리트, 앙드레 부르통, 만 레이, 마르셀 뒤샹 등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180여점이 새로운 ‘초현실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

(초현실주의의 거장들, 전시장 입구 초현실주의 섹션. 촬영=고석배 기자)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앙그레 부르통이 1924년에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과 마주한다. ‘경이로운 것은 언제나 아름답고, 경이로운 것은 모두 아름다우며, 사실 경이로운 것만이 아름답다.’ 입구의 ‘초현실주의의 혁명’ 섹션을 지나 ‘다다와 초현실주의’ ‘꿈꾸는 사유’ ‘우연과 비합리성’ ‘욕망’ ‘기묘한 낯익음’까지 총 6개 섹션으로 구성해 보여준다. ‘욕망’ 섹션에서는 친절하게(?) ‘미성년자 관람불가’라는 안내판도 붙어 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평범한 것은 없습니다.

 섹션의 끝 ‘기묘한 낯익음’의 넓은 공간 오른편에 요즘 네티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는 그림 한 점이 놓여 있었다. 르네 마그리트의 ‘La jeunesse illustrée’이다. 전시회 측은 ‘삽화가 된 젊음’으로 번역하였지만 ‘그려진 젊음’으로도 불려지는 작품이다. 어딘가 2% 부족한 번역이지만 연연할 필요는 없다. 사실 화가가 이 그림을 그린 나이도 통상적 젊음과는 거리가 있는 40대였다. 캔버스에 일렬로 그려진 당구대, 배럴 통, 튜바, 새장, 자전거등은 마그리트가 일상에서 사용하던 사물들이다. 마그리트는 이 사물들을 그의 무의식의 세계에서 그의 방식대로 젊음의 지나온 순간들을 그렸지만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젊음의 순간을 감각하면 된다. 생각보다 큰 이 그림 앞에 서니 피델의 고향집을 찾아가면서 만난 쿠바의 끝없는 사탕수수밭이 연상되었다. 뻥뚫린 하늘과 들판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젊은 날 어디선가 만났던 힐링의 바람이었다. 자유의 바람이었다.

(그려진 젊음,1937 by 마그리트. 촬영=고석배)
(그려진 젊음,1937 by 르네 마그리트. 촬영=고석배 기자)

 어쩌면 이 ‘그려진 젊음’이 다른 초현실주의 작품보다 해석이 쉬워 일반 대중들에게 환호를 받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 사물이 아닌 ‘사자’는 어찌 해석해야 할 것인가? 해석을 하려면 할수록 어려워 지는게 특히 초현실주의 작품이다. ‘말도르의 노래’에서 ‘재봉틀’과 ‘해부용 탁자’와 ‘우산’에대한 해석이 평론가마다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어느날 몽트레아몽이 생존하던 시절의 잡지 광고가 발견되면서 그 해석의 논란은 종식되었다. 그냥 잡지의 광고 페이지에 함께 실린 우산과 재봉틀을 보고 우산과 재봉틀이라는 단어가 나왔고 몽트레아몽은 그 느낌을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느낌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는가? 사실 초현실주의의 시작은 무의식의 서술이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게 맞다.

 사람마다 일생이 다르고 느낌과 해석도 다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느낌이다. 한 점의 그림을 보고 상처나고 지친 영혼이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림엽서라도 한 장 사 책상 위에 붙여 놓자! 굳이 비싼 원화가 아니어도 좋다.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이 현재 내부수리중이다. 암스텔담을 가지 않고도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원화를 직접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오는 4월 24일이 지나면 이 걸작들은 멕시코로 다음 여정을 떠난다. 그전에 영혼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그림 한 점, 만나보기를 권한다.

작가는 영감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영감을 주는 자

 로트레아몽을 자신의 모토로 삼았던 프랑스 초현실주의 작가 폴 엘뤼아르도 '작가는 영감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영감을 주는 자'라고 말했다. 그는 초현실주의 동지였던 ‘달리’에게 아내 ‘갈라’를 빼앗길 때도 쿨하게 행복을 빌었다. 하지만 달리가 스페인 내전에서 독재자 프랑코를 공개지지하자 그의 변절만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초현실주의는 신비로운 꿈을 지키기 위해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저항이자 모든 억압에 대한 자유의 크로스카운터 펀치임을 그의 대표시 ‘자유’에서 선언한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또는 현실의 정치에서 상처 받은 영혼이 있다면 책상 앞에 초현실의 그림 한 점 걸어두자! 그리고 이제 정면을 응시하며 뺏기지 않을 소중한 이름 하나 불러보자! 

(허영만, 카멜레온의 詩,1986.)
(허영만, 카멜레온의 詩,1986.)

나의 공책 위에 / 나의 책상과 나무 위에 / 모래 위에 눈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 모든 비어 있는 백지 위에 / 돌과 피, 종이, 혹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황금빛 그림 위에 / 병사들의 총칼 위에 / 왕들의 왕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밀림과 사막 위에 / 새둥지 위에 금작화 꽃 위에 / 내 어린 시절 메아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중략>
파괴된 내 안식처 위에 / 무너진 내 등대 위에 / 내 권태의 벽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욕망 없는 부재 위에 / 벌거벗은 고독 위에 / 죽음의 계단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회복된 건강 위에 / 사라진 위험 위에 / 회상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리고 한 단어의 힘으로 /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 /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자유(自由)여!

자유(自由) - 폴 엘뤼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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