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대학입시, 제비뽑기로 하자!...‘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샌델 著

고석배 기자
  • 입력 2022.04.14 15:24
  • 수정 2022.04.18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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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들을 오만으로, 패자들은 굴욕과 분노로 몰아가는 능력주의
능력주의의 폭정을 막을 수 있는 일의 존엄성 회복
인생이모작은 일의 존엄성 회복의 기회

 

('공정하다는착각' 마이클샌델 저. 촬영=고석배기자)

[이모작뉴스 고석배 기자] 한국 독서 시장에서 경이적으로 200만부를 찍어내며 베스트셀러가 된 ‘정의란 무엇인가’의 후속작이 10년만에 ‘공정하다는 착각’으로 찾아왔다.

(마이클 샌델,1953~. 촬영=고석배기자)

 역시 마이클 샌델이다. “샌델이니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책을 읽는 내내 자조하며 그의 거침없는 발언에 시침을 뗐다. 대한민국에서 누군가 태국처럼 군대를 제비뽑기로 보내자고 한다면 박장대소를 하며 웃기는 사람 취급을 할 것이다. 한발 더 나가 대한민국에서 누군가 대학을 제비뽑기로 보내자면 웃기는 사람이 아닌 실성한 사람 취급을 하며 정색을 하고 쫒아낼 것이다. 능력주의의 두터운 성벽은 어떠한 도전도 용납하지 않는다.

공정公正  공평하고 올바름
착각錯覺  어떤 사물이나 사실을 실제와 다르게 지각하거나 생각함

‘착각의 자유’는 있지만  ‘자유로운 착각’은 용납하지 않는 사회

'착각은 자유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한다. 하지만 착각이 누적되면 오해가 된다는 것이 문제다. 착각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인지적 오류라면, 오해는 사고의 과정을 거친 논리적 오류이다. 착각이 원인이라면 오해는 결과다. 결과는 자신이 오롯이 책임지면 된다. 그런데 착각에서 오는 결과는 종종 ‘잘못된 신념’이라는 단단한 돌덩이로 변해 공공에까지 막대한 폐해를 준다. 

(대학으로 가는 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명문대로 가는 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SKY캐슬'에 갇힌 아메리칸드림

책은 2019년 미국의 부유한 학부모 33명이 예일대등 명문대에 자녀를 집어넣기 위해 악덕 입시브로커와 짜고 교묘히 입시부정을 일으킨 사건에서부터 시작 된다. 그 시기 한국은 <스카이캐슬>이란 드라마가 히트를 쳤다. 2020년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소위 SKY대 신입생 55%가 소득분위 9~10분위 가구에 속해 있음이 통계로 밝혀져 드라마는 결국 다큐임이 확인 되었다. 책에서 미국의 SAT 점수 그래프가 부모의 경제와 비례 해 올라간다는 샌델의 발언은 하나도 충격적이지 않다. 대졸자의 임금과 비대졸자의 임금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샌델의 걱정도 우리에겐 배부른 소리다. 대학진학률은 OECD 1위 이지만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차이가 이미 2배를 넘어서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에겐 엄살로 들린다. 처음 책장을 넘겨가면서 미국사회와 우리 사회의 다른 요소를 찾아내는데 신경을 몰두했다. 마치 변호사가 되어 한국사회는 그나마 희망이 있다는 변론거리를 찾고 싶었다.

(예일대 졸업식.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예일대 졸업식.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하지만 CHAPTER를 넘어갈수록 겁이 덜컥 났다. 미국사회 능력주의의 병폐가 앰블런스 실리기 직전 단계라면 한국사회 능력주의는 이미 수술로도 힘든 중증단계라는 진단이 책 곳곳에서 아우성쳤다.

책은 서론의 ‘대학입시와 능력주의’에서 시작하여 CHAPTER1. 승자와 패자 CHAPTER2. “선량하니까 위대하다” 능력주의 도덕의 짧은 역사 CHAPTER3. 사회적 상승을 어떻게 말로 포장하는가 CHAPTER4. 최후의 면책적 편견, 학력주의 CHAPTER5. 성공의 윤리 CHAPTER6. ‘인재선별기’로서의 대학 CHAPTER7. 일의 존엄성 그리고 마지막 결론에선 ‘능력, 그리고 공동선’으로 마무리 한다.

"능력주의 윤리는 승자들을 오만으로, 패자들은 굴욕과 분노로 몰아간다"

많은 통계와 예로 샌델은 능력주의의 민낯을 CHAPTER별로 신랄하게 파헤치지만 전작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결론을 쉽게 단정하지 않는다. 독자들이 이 책에서 어렵고 답답해하는 부분이 책의 두께와 번역체의 딱딱한 문장보다도 결론을 시원하게 내지 않고 독자에게 미루는 저자 특유의 우유부단함(?) 때문일 지 모르겠다.

(경쟁사다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책 목차의 결론에 가면 그 기대는 더 허무해진다.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우리의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의 덕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는 샌델은 운명의 우연성을 인지할 때 비로소 ‘겸손’해지며, 그 겸손함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성공윤리로부터 헤어날 수 있다는 결론이다. 무거운 낱말과 씨름하며 끝까지 읽고 기대했건만, 가혹한 능력주의에 맞설 비장의 무기가 ‘겸손’이라는 한마디 관념적 용어로 끝나다니 허무했다. ‘겸손’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재능에 준 보상은 행운 덕이지 우리 업적 덕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촬영=고석배기자)  

책장을 덮고 표지를 보며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마이클 샌델의 메시지는 결론에 있지 않고 이미 본론에서 다 말했음을 깨달았다. CHAPTER6에서 행동강령까지 제시하며 강력한 메시지를 저자가 제시했지만 막상 독자는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인 확증 편향의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샌델은 지나가는 말처럼, 하지만 진지하게 대학입시를 제비뽑기 하자고 제언했다. 그걸 들은 독자는 농담으로 착각하고 오죽하면 그런 생각을 했을까 하며 간과했다.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가장 큰 착각은 바로 독자의 착각이다.

예일대에서 오래 근무해온 입학사정관은 이런 말을 남겼다. “때때로 수천명의 지원자들을 모두 합격시켜 주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나는 그들의 지원서를 계단 아래로 집어 던져 버리고, 아무나 골라 1,000명을 뽑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여전히 훌륭한 학생들을 보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 288쪽)

책에서 샌델은 제비뽑기의 부작용에 대한 예상되는 반론에 대해서도 충분히 답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입시가 경쟁이 아니라 추첨이 되면 학업능력은 저하 되고 명문대의 명예는 추락한다는 논리다. 그는 경쟁에 의한 선별이 오히려 불평등만 심화시키고 반면 명문대의 교육수준은 별로 개선 되지 않았다 반격한다.

샌델은 입시에서 능력주의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능력을 극대화 되어야 할 '이상'으로 보기보다 일정 관문을 넘을 수 있는 '조건'으로만 본다. 한국에서도 한때 이런 제도가 있었다. 50플러스 세대는 ‘예비고사’를 기억할 것이다. 전면적으로 제비뽑기가 두렵다면 3배수나 5배수를 먼저 선별한 뒤 제비뽑기를 하는 방식이다. 경쟁은 비록 남아 있지만 적어도 행운에 의해 합격한 학생이 평생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이 성공했다는 착각의 신념만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비로서 ‘겸손’해 질 것이다.

(사다리와 엘리베이터.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인생이모작'은 '일의 존엄성 회복'의 기회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샌델이 강력히 주장하는 또 하나의 해결책은 <일의 존엄성 회복>이다. 한국사회 정치권에서 최근 86세대 용퇴론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산업화와 민주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낀세대인 86세대는 미처 넉넉한 노후를 준비하지 못했다. 100세 시대에 은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고 인생 이모작은 필수이다.

('공정함=정의'란 공식은 정말 맞는 건가? 촬영=고석배기자)

샌델은 그들에게 ‘용퇴’ 대신 새로운 ‘임무’를 부여한다. 인생이모작에서는 일의 가치를 이제 금전의 댓가로 등치하지 말고 사회연대와 시민적 가치로 환원시키라고. 민주화와 경제성장의 주역인 그들에게 새로운 임무란 이제 능력주의의 폭정에 맞서는 것이다. 사회적 존경 받는 일에 역량을 계발하며, 배움의 문화를 공유하고, 이웃 시민들과 공적 문제에 숙의 하는 인생이모작을 갖는다면 그게 바로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도 존귀한 삶을 살 수 있는 샌델이 말하는 ‘조건의 평등’이고 공동선의 실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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