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의 안식처⑬] 성북동 길가에서 만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이발사3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4.28 15:42
  • 수정 2022.05.05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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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길가에서 만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이발사

- 서울성곽을 따라, 혜화문에서 북정마을까지

 

“무슨 일이 그리 재미있을까?
열심히 일하다 보니 손에 마디가 안 생겼어.
놀면 마디가 생기는데,
계속 일을 하니 마디가 안 생겼어.”

()
(“제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이발사입니다.” 촬영=윤재훈 기자)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이발사라고 입소문이 자자한 할머니, 여기저기 입소문이 나고 기삿거리에 오르다 보니 어느새 유명인이 되었다고 너스레를 떠는 그녀.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이 한 사람 앉아있다. 팔순이 훨씬 지난 할머니는 귀후비개를 휘휘 돌리며 남자의 귓밥을 파고 있다. 일부러 멀리서 온 것 같은 사내, 갑자기 아주머니 몇 사람이 와르르, 들어와서 소란스럽게 해도, 넉넉하게 별말이 없다. 뒤쪽에는 그래도 밤색 세면대가 놓여있고 직접 머리를 감는다. 이발소 안의 풍경이 옛 시절 동구 밖의 풀향기처럼 물씬, 옛 향기가 스친다.

실내는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찼다. 아버지 때부터 써 100년이 넘어갔다는 바리깡(?)은 어느 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한쪽에는 할머니가 주무시기라도 하는지 자그마하게 침구들도 보인다. 대여섯 명이 들어와 있으니 실내가 몸 돌릴 틈도 없을 지경이다.

(오래된 이발소. 촬영=윤재훈)

(오래된 이발소. 촬영=윤재훈 기자)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133-86,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하여 어린 시절 했던 놀이 ‘짓고땅’으로 살펴보니, 3, 8 따라지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아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허름한 옛 풍경에 골동품 같은 낡은 이발 도구들이 박물관처럼 놓여있는 이발소, 그 옛날 단골손님 중에는 유명인들이 많았는데, 특히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과 ‘국민의 사카린’으로 유명한, 장군의 아들 김두한 전 의원 등도 있었단다. 요즘 같은 시국에 더욱, 그리운 분이다. 김두한 씨는 워낙 체격이 커 이발소 의자에 앉으면 꽉, 찼다고 한다. 여기저기 매스컴을 탄 뒤로는 경향각지(京鄕各地)에서 구경 삼아 머리를 깎으러 오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단다.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어요.” 촬영=윤재훈)
(“나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어요.” 촬영=윤재훈)

할머니의 이름은 ‘이덕훈’ 씨다. 일제 말기, 아버지는 생체 실험으로 유명했던 731부대 이발부로 들어갔다. 자연히 가족들도 북만주로 이주했다. 그러나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7살 난 어린 소녀는 어머니 일을 도왔지만, 이 가난을 벗어나려면 돈을 벌고 있는 아버지를 도와야 되겠다고, 생각했단다.

“가난이 찐득하여 아버지를 도와 일을 시작했지
아버지가 이발사였거든,
처음 가위 잡고, 아버지를 도울 때,
사람들이, 저기 봐, 남자 이발소에 여자가 있네,
하고 다들 수군거렸지.”

휴전선이 막힌다는 소문을 듣고 해방되자마자 부리나케 서울로 돌아와 무학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다시 전쟁의 소문이 흉흉해지자 피난을 갔다. 그 후 아버지가 을지로 입구의 보건사회부로 발령 나자 아버지를 따라 잔심부름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웠다.

1954년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가위질을 시작해 58년 10월에 이발사 자격증을 따고, 우리나라 최초로 여자 이발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일이 천직이 됐다. 하도 그녀가 일을 잘해 아버지가 시집을 안 보내려고도 했다지만, 스물여덟에 결혼을 했다.

(네 아들을 낳고. 촬영=윤재훈)

(네 아들을 낳고. 촬영=윤재훈 기자)

“48년 전 성북동 쓰레기장 옆에 움막을 짓고 살았거든.
시집가서 6개월에 한 번씩 이사를 열두 번을 했어.
내가 너무 혼자서 애쓰고 사니까,
사람들은 아예, 살지 말라고 그랬어. ”

하루 네다섯 시간만 자고 스무 시간 일을 했어, 일하느라 바빠 하루 한 끼만 먹고 살다가 보니, 그게 습관이 되어 지금도 엄청 소식한단다. 아들 넷과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남의 집에서 열두 시간 일하고 일당 오백 원 받으며 봉지 쌀을 사 왔다고 한다. 하도 바빠서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하도 바빠서, 못 늙었잖아.”
정말, 오는 세월 만나줄 시간도 없이, 바삐 산 모양이다.

(수십 년 된 이발 도구. 촬영=윤재훈)

(수십 년 된 이발 도구. 촬영=윤재훈 기자)

이제 몇십 년씩 그녀의 이발소를 찾던 단골들은 다 사라지고, 지금 오는 손님들은 그 아버지의 손을 잡고 온 자식들이라고 한다.

“난 일이 꼭 애인 같아.
스티브 잡스처럼 살려고,
한정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남을 위해서,
내 삶에 대해 후회 없이 살 거야.
내가 좋아하는 일에 미쳐서,
비록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겁내지 않고 ”

꼭 어느 시인의 좌우명도 같다.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 동업으로 홍익고등학교 후문 쪽에서, 1975년 ‘명랑 이발관’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28년 동안 함께 이발소를 운영하다가 동업자가 2003년 지병으로 더 이발을 할 수 없게 되자, 지금의 대로변으로 옮겨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자고, ‘새 이용원’이라고 이름을 달았다.

필자는 처음에는 날아가는 ‘새’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이곳은 김광섭 시인의 ‘성북동 비들기’라는 시가 하도 유명해서 말이다

성북동 산허리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 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서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할머니의 쉼터. 촬영=윤재훈)

(할머니의 쉼터. 촬영=윤재훈 기자)

4명의 아들을 낳았으며, 배우자와 둘째 아들은 이 세상에 없단다. 물도 불도 없는 움막 같은 집에서 이발소를 하며, 쌀 한 되박을 팔아먹고 살았지만, 마디 없는 손가락을 보면 그녀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만은 대단한 것 같다. 직업을 쉽게 바꾸는 이 시대에, 장인정신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언젠가는 세 명의 사람들이 들어와 무턱대고 사진부터 찍길래,

“내가 마을 어귀의 고목 나무냐,
길가의 전신주냐”

하며 혼냈다고 한다.

올해 팔순이 훌쩍, 넘었으며, 이발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60여 년이 지나갔다고 한다. 성북동 ‘추억 담긴 가게’로 선정되었으며, 서울시 지원으로 리모델링까지 한다고 하는데, 걱정부터 앞선다.

사람들이 오래된 이 허름한 가게를 왜 찾아오는가? 섣불리 뜯어고치지 말고 그 의미를 잘 숙고하고 고쳤으면 좋겠다. 모든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는 것들은 한 번 부서져 버리며, 다시는 복구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이다. 이런 풍경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 자리에서, 그것을 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1962년, 이용사 면허증. 촬영=윤재훈)

(1962년, 이용사 면허증. 촬영=윤재훈 기자)

가끔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출장 이발을 나가기도 하고, 휴일이며 노인정에 나가 무료이발도 해주며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는 그분의 모습이 꼭, 천사 같다.

‘나눔’과 ‘봉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한다.
부자나 정치인들은 생색내기 위해서 사진부터 찍는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다.
어려운 시절을 겪어본 사람만이,
그 신실한 아픔을 알기 때문이다.

(‘다리 아픈 사람은 쉬어가세요.’ 촬영=윤재훈)

(‘다리 아픈 사람은 쉬어가세요.’ 촬영=윤재훈 기자)

이발소 문밖에는 동네 사랑방처럼 의자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리가 아프면 쉬어가라는 배려인 것이다. 그리고 그 손에 사탕도 쥐여 준다고 한다.

봄바람이 분다.
꽃향기가 실려 온다.
이 향기가 널리, 널리, 퍼져
시린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저마다의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났으며 좋을,
그런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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