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의 안식처⑭] ’성북동 누들 거리’를 따라 ’선잠 박물관‘까지 4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5.03 13:44
  • 수정 2022.05.0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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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누들 거리’를 따라 ’선잠 박물관‘까지

평생 고생하여 초가삼간 지어놓고
너 한 칸 나 한 칸 달님 한 칸 들여놓고
청산은 넣을 때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누들 거리 풍경. 촬영=윤재훈)
(누들 거리 풍경. 촬영=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성북동 누들 거리’를 따라 오른다. 한성대 입구 역부터 이태준의 ’수연산방‘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된 칼국수와 잔치국수 집을 비롯해 메밀국수, 짜장면, 냉면, 쌀국수, 파스타, 우동 전문점 등 스물대여섯 개가 넘어가는 식당들이 모여 있다.

성북동은 북악산 동남쪽 기슭에 있으며 한양 도성의 북쪽에 있다는 뜻이다. 일제 시대까지만 해도 한적한 마을이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누에사육이 잘되라고 제사를 지내던 ‘선잠단지가 있던 곳이다. 특히 경치가 아름다워 양반들의 별장이 많이 있었다.

1960년 삼청터널과 북악산 길이 개통되면서 빠른 개발이 이루어졌으며, 그때의 광풍을 묘사한 시가 바로 김광균의 ’성북동 비둘기‘이다. 그러나 지금은 세월이 변하여 평창동, 한남동 등과 더불어 회장들의 저택과 25곳이나 되는 대사관저 등, 고급 주택가들이 들어선 부자 동네이다. 그와 더불어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에 얼마 되지 않는 달동네도 있는데, 그곳이 바로 오늘 목적지인 북정마을이 대표적이다.

(구포국수. 촬영=윤재훈)
(구포국수. 촬영=윤재훈 기자)

허름한 옛집이 하나 보인다. 구포(龜浦) 국수라는 말이 유난히 정겹다. 창가 따뜻한 봄볕 아래에는 시절 잃은 아낙네 둘, 노닥거리고 있고, 주방의 아주머니만 바쁘다. 일렬로 서있는 나무문들은 그야말로 어린 시절 우리가 살았던 집처럼, 오래되고 따스하다.

구포 국수는 원래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일대에서 생산되는 국수를 가리켰다. 지명 자체로 브랜드가 된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구포는 조선 시대부터 곡물이 집산하던 곳이라, 일제강점기에는 제분, 제면 공장이 성업했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서 마을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 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 ’국수가 먹고 싶다', 이상국

여기에 국수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6, 25전쟁으로 피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1959년 10월, 20개의 국수 공장들이 모여 ’구포건면 생산조합‘을 결성하고 상표 등록을 하며 생산에 박차를 가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60~70년대에는 국수 제면 공장이 30여 곳에 달했으며, 80년대에는 부산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90년대가 넘어서고 곳곳에서 국수가 대중화되면서 사양길을 걷기 시작했다.

구포국수는 두 가지가 있는데, ’소면‘은 익는 시간이 짧고 쉽게 붙기 때문에 비빔국수나 낙지볶음, 골뱅이 무침 등 비벼 먹는 요리에 알맞고, 두께가 두꺼워 더 쫄깃한 맛을 내는 ’중면‘은 주로 국물을 말아 먹는다.

(마을에서 동무들과 이런 놀이를 하며 보내는 아이들을 참 보기 힘든 세상이다. 촬영=윤재훈)
(동네에서 친구들과 이런 놀이를 하며 보내는 아이들을, 참 보기 힘든 세상이다. 촬영=윤재훈 기자)

우리들의 어린 날 국어책에 ’승무’로 유명했던 조지훈 시인을 기리는 건축조형물이 보인다. ’한국적 정서가 잘 녹아나 있는 격자무늬 문틀과 전통가옥의 마루와 처마를 살리면서도, 그 안에 자연 공간을 두어 내, 외부 공간을 모두 담은 듯하다.

평생 고생하여 초가삼간 지어놓고
너 한 칸 나 한 칸 달님 한 칸 들여놓고
청산은 넣을 때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시인은 자신이 기거한 집을 방우 산장이라 불렀는데, 조형물의 이름도 거기에서 가져왔다. 그 의미는,

“설핏한 저녁 햇살 아래 올라타고
풀피리를 희롱할 한 마리 소가 있는 자리”

즉, ’방우즉목우(放牛卽牧牛)‘의 십우도(十牛圖) 사상을 담고 있다.

“마음속에 소를 한 마리 키우면,
직접 소를 키우지 않아도
소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

(어린 날의 꿈, 카스테라. 촬영=윤재훈)
(어린 날의 꿈, 카스테라. 촬영=윤재훈 기자)

아직 점심시간은 멀었는데 어디선가 구수한 빵 냄새가 흘러온다. 어린 시절 그렇게 먹고 싶었던 카스테라가 진열장에 곱게 놓여있다. 잠시 빵집으로 들어가 옛 추억에 잠겨보는데, 시절 모르는 처자는 빵을 고르지 않자 낯선 눈으로 쳐다본다.

최순우 옛집으로 오르는 길가에는 은행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깊어가는 가을날에 오면 성균관 대성전 뜨락의 은행나무 못지않게 황금색 잎새들이 바람에 나부끼어, 잠시 옛 추억에 가슴 시리게 한다. 성균관 은행나무는 조선 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며 2014년 5월 1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7호로 지정되었는데, 10월에 가면 은행나무 죽비를 맞을 수 있다.

(최순우 옛집. 촬영=윤재훈)
(최순우 옛집. 촬영=윤재훈 기자)

왼쪽 골목길로 접어드니 멀리 잘 생긴 기와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미술사학자이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와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으로 많은 독자를 설레게 했던, 혜곡 ’최순우 옛집‘이다. 입구에 서니 치켜 올라간 처마가 순박한 시골 여인처럼, 머리 위에서 단아하다.

한때 이 아름다운 집은 헐릴 위기에 처했는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조성해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 시민문화유산 1호’로 지정된 집이다. 2006년 9월 19일 등록문화제 제268호로 지정되었다.

이 집에 올 때마다 자랑스러운 우리 국민의 헌신에 가슴 뭉클해진다. 우측 벽에는 그때 기금을 냈던 분들의 이름이 빛나고 있고, 오른쪽에는 전시회 안내가 있다. 선생은 평생 문화재를 알리는 일에 헌신하여,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신 분이다.

(최순우 옛집, 단아한 방. 촬영=윤재훈 기자)

사랑방 입구의 현판이 여행자의 눈길을 끈다.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이다. ‘문을 닫으면 곧 깊은 산골‘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던 선생의 심성이 느껴지는 듯하다.

(선잠단지. 촬영=윤재훈)
(선잠단지. 촬영=윤재훈 기자)

건너편의 언덕으로 홍살문이 하나 보이는데, 바로 ’선잠단지(先蠶壇址) 터‘이다. 누에치기를 처음 했다는 중국 고대 황제의 황비 서릉 씨(잠신蠶神)를 누에 신으로 모시고, ’선잠례'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983년 고려 성종 2년에 처음 단을 쌓았고, 왕비가 그것을 장려하기 위해서 음력 3월이 되면, 친히 참여하였다. 그 옛날 여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옷감 짜기였으니, 그 참뜻이 느껴지는 듯하다. 단의 앞쪽에는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키우게 하였으며, 1908년에는 신위를 사직단으로 옮겼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고, 주변에 50여 그루의 뽕나무가 자라고 있다.

세종대왕은 누에를 키우는 일을 크게 장려했는데, 각 도마다 좋은 장소를 골라 뽕나무를 심도록 하였으며, 한 곳 이상의 잠실을 지어 누에를 키우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중종 원년(1506)에는 여러 도에 있는 잠실을 서울 근처로 모이도록 하였는데, 지금의 강남 잠실이 바로 옛 잠실들이 모여 있던 곳이다.

(왕비의 친참례. 촬영=윤재훈 기자)

조금 더 오르니 ’선잠 박물관‘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이제 우리에게 낯설은 것이 되어버린 선잠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옥상에 쉼터가 있다고 하여 올랐는데, 뙤약볕을 피할 데가 없고 의자만 한 줄로 놓여있다. 뒤쪽에는 학교 운동장이 보이는데 얼마나 지대가 높은지 3층 높이에 펼쳐져 있다.

일행들은 배가 굴풋한지 부스럭거리며 하나, 둘, 간식을 꺼낸다. 내 배낭에도 아침에 집에서 싸준 떡과 오렌지가 있어, 깔깔거리며 같이 나누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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