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의 안식처⑯] 성북동 골목길 풍경 6

윤재훈 기자
  • 입력 2022.05.09 15:44
  • 수정 2022.05.1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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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골목길. 촬영=윤재훈)
(성북동 골목길. 촬영=윤재훈 기자)

 성북동 골목길 풍경

성북동 골목은 깊다,
고향 집 마당 우물처럼.
여름이면 풋감이 주렁주렁 열리고,
가을이면 빨갛게 감이 익어가던 시골 큰 집처럼.

키가 큰 대나무들이 빙 둘러 담 역할을 해주고,
바람이 불 때마다 쏴, 쏴,
한 많은 여인네 같은 울음소리를 내던 그 집,

그 우물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너무나 속이 캄캄하여,
금방이라도 처녀 귀신이 올라올 것 같았던
그 마당가 우물,

지금은 사라진 그 집
친척들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떠나가버린 낯선 마을
바람만 아련히 마을을 감싸고 돌아 나가는 곳.

- 성북동 골목길, 윤재훈

[이모작뉴스 윤재훈 기자] 필자는 ’골목 여행‘을 참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우리들의 희노애락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동무들과의 추억도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숨박꼭질을 하던, 나무로 칼을 만들어 밤이 이슥하도록 놀던, 아득했던 추억들이 여기저기에서 툭, 툭,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치앙마이 시장 골목길. 촬영=윤재훈)
(태국 치앙마이시장 골목길. 촬영=윤재훈 기자)

필자는 오랫동안 세계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 나라에 가면 특별히 중점을 두는 여행의 세 가지 테마가 있는데, “그 나라의 골목, 재래시장, 종교”이다.

그중에서도 골목은 그 나라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볼 수 있다. 가르마처럼 이어진 골목길을 걷다 보면, 삼삼오오 집 밖으로 나와 소박한 웃음을 짓거나, 어느 공터 조그마한 곳에ㅅ는 옹기종기 모여, 마을의 대소사(大小事)를 의논하기도 한다.

골목은 주로 그 지역의 가난한 서민층들이 산다. 그래서 그 나라의 문화 저변을 보다 빨리,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다. 그 나라 사람들과 가장 빨리 가까워질 수 있다. 한 장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듯 그 동화(同化)가 빠르다. 그리고 사진에 담을만한 질곡한 풍경들이 참 많다.

차통 하나
따뜻한 물 한 주전자
산으로 든다

폭포수 아래
평평한 돌 위에
짐을 풀면,

소나무 숲에
다향茶香이 감돈다

그 향에 취해
비스듬히 기대
오수에 들면,

나는
한 장의 풍경이 된다
그림 속으로 바람이 분다

- 전시장에서, 윤재훈

(“너, 무엇하러 왔니.”, 촬영=윤재훈)
(고양이 책방, “너, 무엇하러 왔니.”, 촬영=윤재훈 기자)

골목길은 잘못 들어가면 헤어나오기가 힘들다. 자칫 들머리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길을 헤매다가 문득, 문이 굳게 닫힌 집 앞의 팻말이, 나의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고양이 책방‘, 관심 있는 사람은 벨을 누르라고 한다. 젊은 남자주인이 나오고 안은 아기자기하고 소박하게 꾸며놓았다. 커다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이 녀석들이 낯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너, 무엇하러 왔니” 하는 것 같다.

고양이를 구조해서 키우다 보니 특별히 좋아하는 편인데, 10년 넘게 개인 작업실로 고양이 그림, 사진, 디자인 등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 로망 중에 하나가 서점이었는데, 그 꿈을 이루고 싶어 2020년 10월의 마지막 날, 같이 시작하기로 했단다.

세계적으로 고양이 책도 많이 나와 있는데, 그중에서도 일본이 많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고양이 전문 출판사가 한두 군데 생겼으며, 옛날에는 주로 번역된 것 위주로 나왔었는데, 요즘은 국내 작가 작품들도 수천 권이 나와 있다고 한다. 갈수록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인간은 파편화되어 가는 이런 시대에는, 예술과 동물들이 사람을 위로해 줄 것이라고 작가는 힘주어 말한다.

(고양이 책방, 망중한(忙中閑). 촬영=윤재훈 기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동물을 키우는 사람‘과 ’키우지 않는 사람‘으로 의견이 팽팽히 나뉘어지고 있으며, 불협화음도 많다. 여기에 반려동물로 인간을 위로해 주는 것과 동시에, 거세, 목 수술 등 동물 학대에 대한 우려도 많다.

십여 년 전쯤인가 SBS에서 보았던 ’애완동물에 습격‘이라는 프로그램의 내용이 잊혀지지 않는다. 놀이터 모래밭에 개가 똥을 싸놓으니 순식간에 기생충이 번식을 하고, 거기에서 놀던 아이들에게 감염위험이 된다고 한다. 어느 아저씨는 시름시름 앓고 있어 X-RAY를 찍어보니, 시신경에 개의 기생충이 침범하여 실명 위기에 놓였는데,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천 만을 육박해 간다고 하지만, 여전히 키우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 감염의 위험이 있으니 인간과 동물의 공간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인류의 반은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옷을 입히고 구두를 신고, ’엄마‘, ’우리 아기‘하면서, 분리되지 않은 언어표현으로,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도 한다. 이런 것들이 서로의 협오를 조장한다.

(치앙마이 시장의 상인들. 촬영=윤재훈)
(태국 치앙마이 시장의 상인들. 촬영=윤재훈 기자)

두 번째로 ’재래시장‘를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재래시장은 그 나라의 서민층들을 대변한다. 자신들이 노동으로 해서 얻은 것들을 소박하게 팔러 나와 꼭, 그만큼의 댓가을 원한다. 그들에게는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은 항상 붐비고 왁자하다. 그 나라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그래서,

삶의 의미가 희박해질 때면,
시장이나 병원으로 가보라고 한다.

시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상인들의 모습을 보거나, 병원에서 ’건강한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을 반추해보라고 한다. 건강하게 살아가는 오늘, 내 자신의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고, 스스로 삶의 의욕이 저절로 솟아나게 할 것이다.

오늘 내가 사는 하루는,
어제 죽어가던 그 사람이,
그토록이나 원하던 오늘이라고.

물건을 사면 약간의 덤을 얹어줄 때도 있고, 소박한 사람들끼리 서로 의기가 통하며 스스럼없는 눈빛으로 웃기도 한다. 그 나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향기들이 물씬, 물씬, 풍겨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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